연희동성당 게시판

또 다른 고백...

인쇄

최인숙 [sugi] 쪽지 캡슐

2000-05-31 ㅣ No.1561

 

 정확히 세어 이틀간은 심한 우울과 자책감으로 인해 고통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굿뉴스에 가입하고 본당 게시판에 이래저래 부끄러운 나의 신앙

을 고백했던 것은 그간 움추리기만 했던, 그저 잠잠히 누워 있기만 했던

내 믿음을 솔직히 드러내고 필요한 가르침을 더 받고자 했었던 것도 사실

이지만 적잖은 교만도 없지 않았었음을 시인한다.이즈음 내게 온 것은

분명 하느님의 은총이었고, 그것을 비단 나 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과 나누

고 싶었을뿐 아니라 넘치는 사랑에 도저히 나 혼자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

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악마가 내게 말했다.

" 너는 이 정도면 충분해.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려는 너의 태도나,마음가짐.

그리고 그 분께 나아가려는 노력 또한.....이제부터는 보상을 받을거야.

그러니 기다려! 간단하잖아, 너 만큼만 하면 앞으로 큰 영광이 올텐데,

다른 이들은 그것마저도 안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해..그들에게 가서

얘기해 봐. 나 만큼만 해보라고. 만나는 모든 이에게도 얘기해." 하고..

 

 솔직히 이것마저도 악마의 속삭임이 아니라고 우기고 싶지만....

 

 더 이상은 기도를 할 수 없었을 뿐더러 기타 도움이 될만한 서적들도 더 이

상은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이미 오르기 시작한 산 중턱에서 되돌아와 처음

부터 올라가야 할 일을 생각하니 눈 앞이 깜깜했었고, 그 옛날 좌절하려고만

했던 삶의 시간들과 견주어 봤을때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의 ’아득함’ 그것

이었다.

 

 하루를 내 안의 악마와 얘기하며 보냈다.그는 지극히도 인간적이고,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것 같았으며 나를 다른 이들에게 자랑시키는데 월등한

능력을 갖고 있는듯했다. 나 또한 그것에 맛들여 산 지가 오래 되었기에

소꿉친구를 만난듯 신이 났었으니까.......

 

 그날 저녁 나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기도도, 책도, 묵상도.....

하루가 피곤하고 짜증스러워 진다.내일 또한 두렵다. 귀찮다.....

그래도 온전히 주님께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간신히 그 분의 옷깃이라도

붙잡고 있다고 느낄때에는 이렇게 한 순간의 허무함으로 무너지려는 마음과

두려움은 없었던것 같은데....

 

 " 바리사이파 사람들도 너 만큼은 한다." 라는 말이 순간 스쳐 지나간다.

   ...........

   그렇다.

 

 "고생하겠다는 결심이 없는 한 순종하지 못한다." 라는 말도.

 

 무엇으로 나는 이렇게 교만해 질 수 있었는가? 감히 그 분께 ’순종하겠

노라."아뢸수 있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원하지 않았다면

악마는 분명 내게 오지 않았을 터인데......

 

 굿뉴스에 감사한다.싸이버 공간속에서의 나눔이 없었다면 철통같은 자물

쇠로 굳건히 닫혀 오성이 마비되었을 것 같은 나를 그나마 밝은 빛 속에

내어 놓게 했으니.....부끄럽지만 이 보다 더 큰 은혜는 없으리라.

주님이 주신 것 찬미하나이다!

 

 본당 게시판에도 죄송함과 더불어 감사의 말을 전한다.이제껏의 모든

글들을 삭제하고 싶지만 그것으로 앞으로의 부끄러운 본보기로 올곧게

그분께 나아갈 수 있다면 나의 십자가로 짊어지고 싶다.더 이상은 고통

이 되지 않을 터이니.......

 

앞으로의 일이 막막하다. 주여!도와 주소서...아멘.



23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