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고속도로 서해대교 건너 송악 인터체인지를 나와 예산 방면으로 약 12Km 정도를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나즈막한 동산에 명동성당과 비슷한 모습의 성당이 우뚝 솟아 있으니 내포지방 복음화의 중심지였던 대전교구 합덕성당이다 우리나라에서 성직자 수도자가 가장많이 탄생한 성당 이기도하며 (1970년대까지) 북동쪽 3Km 지점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요 한국 천주교 모든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님이 탄생하신 솔뫼성지가 있고 남쪽으로 4Km 지점에는 내포 지방의 사도로 불리우던 이존창의 생가인 여사울 성지와 서쪽 으로는 해미 성지가 있다 신라시대의 고찰 수덕사가 자리잡은 덕숭산에서 발원하여 아산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삽교천 줄기를따라 소들강문 이라고 불리는 기름진 평야에 형성된 들녁에 옥금리 신리 공소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공소가 성당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역사도 오래이 명동성당과 비슷한시기에 설립된 합덕성당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결혼 할때까지 교리를 배우고 영성을 가꾸어오던 신앙의 예루살렘 이다 갈매못에서 순교하신 더블리 안토니오 안 주교님도 합덕성당 신리 공소에서 사목 하셨고 한국 천주교 순교 사화 기록을 규장각에 보관 하시어 순교성인 자료 발굴에 도움을 주셨던 파리 외방선교회 달래 신부님도 신리공소 에서 사목 하셨다 성당이 축성되기 전에는 신리공소가 본당의 중심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성당마당에 들어서면 순교자 황석두 루까. 백 신부님, 윤복수 레이문도의 관을쓴 3개의 비석이 나란히 서있는데 백 신부님과 윤복수 레이몬드는 6,25때 순교하신 둔들이시다 9월은 순교자의 성월이다 순교자란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사람을 말한다 우리는 흔히 순교자들을 떠올릴때 조선시대의 박해를 생각하나 6.25 사변때 공산 치하에서 열열히 신앙을 증거하다 순교하신 분들이 계시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특히 합덕 지방에는 다른 어느지역 보다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잔인한 방법으로 공산주의자들에게 무참히 학살을 당하였고 그중에는 백 신부님과 윤복수 레이몬드를 비롯하여 천주교 신자들도 많았다 그러므로 여러증언을 통하여 6.25 사변때 합덕성당 에서 순교하신 분들을 알고 있는대로 서술 히고자 한다 당시 합덕성당을 사목 하시던 백 신부님과 나의 외할아버지 이시며 사목회장 이셨던 윤복수 레이문도와 수녀님들께서 새벽 미사를 드리려 나오시던중 빨갱이 들에게 체포 되었는데 그들은 마치 거물급 범인을 검거한 것처럼 각각 다른차에 분리시켜 서산 어느곳으로 압송하여 백신부님과 외할아버지를 다른장소의 도로가 기둥에 꽁꽁 묶어놓고 처형 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붙인 죄목은 신앙을 가진 종교인 지주로서 반동분자라는 것이다 참으로 공산당 프로레타리아 계급투쟁의 허구와 오판이 빚어낸 참상이 아닐수없다 수녀님들은 빨갱이들이 쇠창살로 엮어만든 닭장같은 트럭에 가두어 놓은채 아군의 반격이 거세었는지 미처 끌어 내리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도맘을 쳤다고한다 외가집에 큰 일이있어 들렸을때 합덕 어르신들의 증언을 듣게 되었는데 1953년 9월 28일 순교하신 외할아버지께서는 신심이 두터운 분으로 큰 과수원을 경영하시는 부자이셨고 가난한 마을사람 들에게 자선을 많이 베푸시던 인정많고 어지신분 이셨다며 살아 계셨더라면 좋은일을 많이 하셨을텐데 하며 아쉬워 하셨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순교 하셨기에 외할하버지의 성품은 알길이 없으나 어린시절부터 자주 왕래하며 외삼촌들의 성품을 보아 매우 자상하시고 인자한 분이시라고 느껴진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슬하에 아드님셋 따님셋 6남매를 두셨는데 어머니가 장녀이시고 두분의 이모중 큰이모 윤데레사가 수녀로 (전주 중노송동 성체 수녀원) 계시다가 수도원에서 선종 하셨으며 가난한 삶 속에서도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으시고 우리를 사랑으로 감싸주시던 큰 외숙모가 2006년 2월에 선종 하셨다는 소식을듣고 달려가보니 합덕성당 주임 신부님께서 성당에 빈소를 마련 해주시었고 장례미사때 강론 말씀중에 고인의 어르신 께서는 2005년 8월 15일 성모 몽소승천 대축일날 순교자로 현양되시어 성당에 비를 세우셨다고 말씀 하시며 그날따라 눈까지 하얗게 쌓이고 북서풍이 매섭게 몰아치는 몹시 추운 날씨에 몸소 장지까지 가셔서 외할아버지 곁에 묘지 축성과 하관 예절을 거행 하실때 어느새 두눈에서는 용암처럼 흐르는 눈물이 얼어 붙은 얼굴을 녹이며 순교자의 큰 며느리요 외숙모의 감동과 사랑이 잠든 내영혼을 흔들고 있었다 이로써 우리집안은 순교자 외할아버지 수녀이모 신부삼촌 (70년 서품 안문기 F.하비에르 당시 신합덕 성당 주임) 을 모신 성직자 수도자 순교자의 집안이 되었다 그리고 친척 중에는 여러분의 성직자 수도자가계시다 자랑스런 집안의 벅찬 감동 속에서도 거룩하신 분들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모범적 삶을 실천하지 못한 내자신과 형제들의 나약한 신앙을 발견 하고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순교자의 성월을 맞이하여 끊임없이 밀려오는 고통과 시련을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기회로 삼고 잘 참아받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신앙을 증거하는 녹색 순교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또한 세상의 즐거움을 모두 버리시고 복음 삼덕을 실천 하시며 오직 주님만을 따라나선 백색 순교의 길을 가시는 성직자 수도자의 거룩한 모습을 닮아 가려고 애쓰면서 피를흘려 순교하는 박해의 시기는 지나 갔지만 영혼을 죽이는 박해가 더욱 극성을 부리는 이시대에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하는 포퓰리즘 신앙에서 벗어나 오직 진리에 집착하는 용기로 숨은일도 지켜보시는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옳바른 영성적 사고와 소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싶다 그렇게 하는것이 목숨을 바처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신앙의 씨앗이 되시어 많은 열매를 맺게해주신 순교자님들께 드리는 우리들의 보답일것 이라고 생각한다 6.25 사변때 신앙을 증거 하시다가 반동분자 라는 폭언을 들으시며 용감히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 하신 백신부님과 외할아버지 그리고 자료가 미흡하여 명단에 오르지 못한 이름모를 순교자님들께 열심히 기도 드려야하겠다 아직도 식지않은 9월의 태양은 뜨겁기만 한데 물려받은 순교자의 성혈이 혈관을 타고 힘차게 돌도록 태양보다 더 뜨겁게 성령의 불로 이 가슴을 불태우리라
아! 장하하신 반동분자님들 이시여 세상의 눈으로는 처참한 주검으로 보이겠지만 님들께서는 어린양의 피로 자기의 두루마리를 빨아 희게 만드시고 은총지위에 올라 죽는 날이 천당에서 다시 태어나시는 생일이니 그토록 그리던 하느님을 면전에서 뵈옵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누리소서
위글중 달래신부님에 관한 내용은 저의 오류입니다 달래 신부님에 관하여는 독자 여러분께서 자세히 알아 보시기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참고로 외할아버지는 순교하신후 외삼촌들이 삼일을 찾아 헤멘끝에 시신을 모셔왔으나 백신부님의 시신은 끝내 찼지 못하였다고 한다 (어머니의 증언) 합덕성당 에서는 현재까지 32명의 사제와 수많은 수도자가 탄생 하셨으며 명동 성당 보다 조금 늦게 설립 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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