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삼구(三仇) 라는 번역 용어의 최초 출처 문헌은 1600년에 저술된 방자유전, 권1, 성호경 해설, 제6쪽이다 [대성호경] [한불자전, 1310_] ratio.pdf 124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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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0 ㅣ No.1958

게시자 주: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8.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질문 1: "삼구(三仇)" 라는 용어의 출처와 기원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질문 2: 그리고  언제쯤부터 이 용어가 십그리스도의 십자성가와 관련되어 언급되기 시작하였는지에 대아여서도 알고 십습니다.

 

1. 들어가면서

 

1-1.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수록된 "삼구"(三仇)에 대한 설명 전문입니다:

 

출처: http://124.137.201.223/search/List_dic.jsp

(발췌 시작)

삼구(三仇)

 

「명사」『가톨릭』

선행을 하지 못하게 막는 영혼의 세 가지 원수. 육신, 세속, 마귀를 이른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1: 그런데, 바로 위에 "표준국어대사전"에 제시된 "삼구"(三仇)에 대한 설명에는,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이 용어의 출처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무슨 이유로 영혼의 원수들인지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인 설명이 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1-2. 다음은, 1941년에 출판된 "천주교요리" 제4판에 수록된, "천주교요리문답" 제179항입니다: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2: (1) "천주교요리문답"1934년에 초간된 교리서로, 1967년"가톨릭교리서"가 나오기까지 33년간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 교리서로 사용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천주교요리문답"의 전문을 입수할 수 있습니다:

 

출처 1: http://home.catholic.or.kr/pdsm/bbs_view.asp?num=47&id=139614&SORT=R&type=I&menu=4798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934_천주교요리문답/천주교요리문답.pdf  

 

(2) "천주교요리문답"을 학습할 때에 단 한 가지 주의하셔야 할 것이 있는데, 1960년대 중반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기존의 "종부성사"를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은 생명이 위급할 때마다 여러 번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완화되었으며, 이에 따라서 명칭도 "병자성사"로 바뀌었습니다.

 

(3)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영혼의 세가지 원수들"에 대응하는 영어 표현은 "three enemies of the soul"일 것임에 주목하십시오.

(이상, 게시자 주 1-2 끝)

 

2. 사료 분석 I

 

이번 항에서는, 번역 용어인 "삼구(三仇)" 라는 용어의 출처와 기원에 대하여, 연대순에 있어, 거슬러 올라가면서 유관 사료들을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2-1. 다음은, 중국 천주교 홍콩 교구 홈페이지 제공의 "要理問答"(요리문답, 香港公教真理學會出版)에서, 三仇가 언급되고 있는 유관 항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요리문답.htm <----- 여기를 클릭하여 확인하라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949_要理問答/1949_NLC416-07jh015287-22459_要理問答.pdf <----- 여기를 클릭하여 확인하라

[주: 1949년판; 마카오 소재 자현인서관출판]

(발췌 시작)

[...]

 

291 問 靈魂有什麼益處?

 善領聖體,同耶穌合而為一,聖體養活靈魂,增聖寵,加聖佑,能勝三仇,好守規誡,脫罪過,立善工,免地獄,奔天堂。 (若:陸,五四 ─ 五九)

 

[...]

 

聖號經

 

335 問 什麼是奉教人外面的記號?

 就是十字聖號。

 

336 問 聖號經有幾樣?

 有大小兩樣。大聖號經就是:『以十字聖架號,天主我等主,救我等於我仇,因父及子聖神之名。亞孟。』小聖號經就是:『因父及子及聖神之名。亞孟。』

 

337 問 為什麼十字聖號,是奉教人的記號呢?

 因為十字聖號,表明信德最重要的兩端道理。

 

338 問 表明什麼道理?

 聖號經的言語,包含天主三位一體的道理,畫十字,表明吾主耶穌為救贖人類,被釘十字架上死。

 

339 問 大聖號經有什麼意思?

 

 大意是說:求天主看耶穌死在十字架上的功勞,保佑我們不受三仇的害,賴天主三位一體的聖名,賞賜我們所求的恩典。

 

340 問 什麼是三仇[졸번역: 무엇이 바로 이 삼구(三仇)이나뇨?]

 就是魔鬼、肉身、世俗。

 

341 問 在什麼時候該畫十字聖號?

 在行各種神工的時候,飲食、睡覺、及做一切要事前後,特別是在誘感危險的時候,畫十字架很好。

(이상, 발췌 끝)

 

2-2. 다음은, 1880년에 초간된 "한불자전"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30-1884_리델/1880_한불자전.htm <----- 여기를 클릭하면


필자가 어렵게 확보하여 제공하는 [제공처: 분당골 가톨릭 문서 선교 홈페이지 capax Dei], 예를 들어, 우리말 고어체 표기의 변천과정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 제공자가 없어서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서 전혀 구할 수 없었던, "한불자전 전문 pdf"를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2-3. 1790년대에 최초로 번역된, 우리말본 "성경직해광익", 성신강림후제8주일(루카 복음서 16,1-9), 성사, 세속(the world)과 육신(the flesh)의 지혜를 멀리하라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2-4. 1740년에 초간된 메야/마이야 신부님(1669-1748년)의 "성경광익", 성신강림후제8주일(루카 복음서, 16,1-9), 성사, 세속(the world)과 육신(the flesh)의 지혜를 멀리하라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69-1748_모이리악_드_메야/1740_성경광익.htm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2-5. 1738년에 초간된 메야/마이야 신부님(1669-1748년)초판 "성년광익", 9월 23일, 성사,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69-1748_모이리악_드_메야/1738_성년광익_추계_9월23일.htm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여섯 번째 열(column)부터 끝까지 읽고, 또한 계속하여, 아래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첫 번째 열부터 끝까지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5: (1) 바로 위에 발췌된 "성사"는, 영혼의 세 원수(three enemies of the soul)들인 "삼구"들을 어떻게 대적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상당히 잘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2)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바로 위에 발췌된 "성사"를 찾아 낸 것은, 다음에 발췌된, 1740년에 초간된 "성경광익", 수부에 수록된, 예수회 설립자인 성 이냐시오가 마련한 것으로 알려진, 소위 말하는  성 이냐시오의 8일 피정 중의 제4일 마지막에 "적영"라는 소제목과 바로 이 소제목에 붙은 주석을 경유하여서 것이다: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이상, 게시자 주 2-5 끝)

 

2-6. 1733년에 초간된 메야/마이야 신부님(1669-1748년)의 "성세추요", 권2, 구속편, 제44b쪽, 삼수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69-1748_모이리악_드_메야/1733_성세추요.htm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세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2-7. 1673년에 초간된 장 로벨리 신부님(1610-1683년)의 "진복직지", 하권, 제38b쪽, 삼수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10-1683_안드레아_장_로벨리/1673_진복직지.htm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세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7: 우리나라 조선에 바로 이 한문본 "진복직지"가 일찌기 전래되었음은, 다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1801년 신유 박해 문초 기록들 중의 하나인 "사학징의"의 부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56-1819_이기경_et_al/요서사서소화기_in_1801_사학징의_부록.htm

 

2-8. "천주강생성경직해"의 권9 이후 후반부이므로 1642년에 초간된,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의 "천주강생성경직해", 권14, 천당4말지제3, 제28a쪽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4-1659_엠마누엘_주니오르_디아스/1636_천주강생성경직해.htm 

(발췌 시작)

권14_7_사념성교중선인첨례_365-368 [11월초2일, 요한 복음서 5,25ㄴ-29(1969년에 개정된 지금의 전례력에 있어, 매년 사순 제4주간 수요일 복음 말씀)] [(2017년 1월 6일) 주: 제9쪽 본문에서 "천주자"라는 번역 용어가 두 번 사용되고 있음. 제9쪽 본문에서 "부활"이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권14_7_성교선인첨례지리_365-367
     권14_10_사말지공론_368-399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주: (번역 오류) 여기서 잘못 사용되고 있는 차용 번역 용어인 "천국"은, [교회 안에 있는] "하늘 나라(kingdom of heaven, 즉, 천국, 즉, 하늘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heaven, 천당)"을 말함을 꼭 상기하도록 하라. 즉, 영어로 "heaven" 으로 직역 번역되는 용어가 여기서, "천(天)"으로 올바르게 직역 번역되는 대신에, [교회 안에 있는] "천국(kingdom of heaven, 즉, 하늘 나라, 즉, 하늘나라)"로 잘못 번역됨] [주: 이 부분은, 여기를 클릭하면 가지게 되는 "국립중앙도서관 국가전자도서관" 화면 제공의 우리말본 "성경직해" 자료에서, 원문 보기 > vol : 권 2에 실려있지 않음] [(2017년 1월 6일) 주: 제35쪽 각주에서 "천주지자"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첫 번재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여기서는 "삼구(三仇)"들 중의 하나인 "육신(肉身)" 대신에 "사정(邪情)"을 언급하고 있다.

(이상, 발췌 끝)

 

2-9.

2-9-1. 다음은,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루도미나 신부님 외 두 분의 선교사 신부님들에 의하여 마련된 저서인 "구탁일초", 권2, 숭정4년(1631년), 4월 8일자 일자, 천주지교유3 에서 발췌한 바인데, 바로 아래 있는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에서 이미 발췌하여 고찰하였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58.htm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한 바에서, 왼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을 보라.

 

(유관 부분 발췌 및 우리말 번역 시작)

司鐸曰:天主之愛人無已也,有性教,有書教,有寵教。

 

사탁(즉,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께서 가로사대: 천주의 사람 사랑이 끝이 없어, 성교(性教)가 있고, 서교(書教)가 있으며, 그리고 총교(寵教)가 있나니.

 

何也?人類之始生也,天主賦之靈性,俾通明義理。斯時十誡之理,已刻於人心之中,普萬國皆然,是謂性教。

 

이들이 무엇일까? 인류가 처음 생겨날 때에, 천주께서, 의리(義理, 올바름과 원리)[즉, 의의(意義, 말이나 글의 속뜻, sense, meaning)]에 통명함(通明)을 더하는, 영성(靈性)을 주셨느니라. 바로 그 때에 열 개의 계율[즉, 십계명들]로 구성된 원리를 인간의 심장(人心, human heart)의 한 가운데에 이미 새기시어, 만국 모두에게 그러함이 두루 미치는데, 바로 이 원리를 말하여 성교(性教, 즉, 본성의 가르침)[즉, 자연법/본성법](*1)라고 하노라,

 

迨物欲漸染,錮蔽日深。於是或明示、或默啟諸聖賢著為經典,以醒人心之迷,是為書教。

 

물욕이 점차 전염되어 태양(日)을 막고 덮는 것이 깊어짐에 이르렀는데, 이 때에 혹시 밝음(明)을 나타내거나 혹은 잠잠하게 일깨워주는 무릇 성현들의 저술들을 경전(經典)으로 삼음으로써, 인간의 심장(人心, human heart)의 헷갈림을 깨우쳐주는 바를 서교(書教, 즉, 경서들의 가르침)[고교(古教, 옛 가르침, old teaching)](*2)로 삼느니라.

 

及至三仇迭攻,人性大壞,雖有經典,亦有難挽回者。天主始降生為人,以身立表,教化始大明於四方,是謂寵教。

 

그리고 삼구(三仇, 즉, 육신, 세속, 그리고 마귀로 구성된  세 원수들)가 번갈아 공격함에 이르면(至), 인성(人性, 인간의 본성)이 크게 무너져, 비록 경전(經典)이 있다고 하나 다만 어려움만 말아 올려 돌아옴에 이르러니, 천주께서 비로소 강생하시어 사람이 되시어, 몸으로써 모범을 세워 교화(教化)가 사방에 큰 밝음을 시작하니, 바로 이를 말하여 총교(寵教, 즉, 은총의 가르침)[신교(新教, 새 가르침, new teaching)](*3)라 하느니라. 

 

-----

(*1) 번역자 주: 성교(性教, 즉, 본성의 가르침)가 곧 "십계명"을 말하므로, 곧 자연법/본성법(natural law)을 말함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들을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07.htm <----- 필독 권고

 

[내용 수정 및 교체 일자: 2017년 11월 28일] 

(*2) 게시자 주: (1) 달리 말하여, 서교[書教, 즉, 구약 성경의 경서들의 가르침(古教, 옛 가르침, old teaching, 즉, 모세에게 전해진 가르침)]는,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하느님의 말씀, 즉, 성자(Son of God)의 강생 이전의 시기에 히브리어 문화권에만 오로지 유일하였던, 구약 성경 중의 모세 오경들의 가르침 및 성자의 강생을 예언하는 예언서들(여기에는 시편도 포함됨)의 가르침을 말한다. 리고 "고교(教)"라는 용어의 출처는 위의 제1-2항에 안내되어 있다.


(2) 다른 한편으로, 원시유학(4서5경)의 가르침 등과 같은 한문 문화권의 유학의 경서(Sacred Scriptures)들은, 우주의 모든 질서(orders)들을 주재하고 계시는 조물주의 존재는 인정하나 그러나 성자의 강생을 예언하는 바없기 때문에, (A) 성교(性敎), 즉, 자연법(自然法, natural law)에 근거한, 따라서 미풍양속(美風良俗)이 포함되는, 인정법(人定法, human positive law), 즉, 인교[人敎, human teaching, 주: 아담 샬 신부님(1592-1666년)에 의하여 1643년에 초간된 "주교연기"에서 그 정의(definition)가 구체적으로 제시됨(#)]에 포함되나, 그러나, (B) 위의 제3항에 안내된,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구탁일초" 권2, 제5쪽 뒷면에서 1631년 4월8일자로 한문 문화권에 최초로/처음으로 도입한 개념들인 성교(性敎), 서교(書敎), 총교(寵敎)들 중의 하나인, 서교(書敎)에, 그 일부는 포함될 것이나, 그러나 그 전부는 포함될 수 없음.

[이상, 2017년 11월 28일자 내용 수정 및 교체 끝]

 

[내용 추가 일자: 2018년 5월 25일]

(#) 게시자 주: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20.htm <----- 필독 권고
[이상, 2018년 5월 25일자 내용 추가 끝]

 

(*3) 게시자 주: 즉, 옛 가르침을 포함할뿐만이 아니라 또한 옛 가르침보다 본질적으로 질(quality)에 있어서의 우수함을 나타내는 의미의 새 가르침, new teaching).(#) 리고,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총교(寵教)"와 동일한 의미 "예수님의 가르침"를 가지는, "신교(新教)"라는 용어의 출처는 위의 제1-2항에 안내되어 있다.

 

(#) 게시자 주: 여기서 "새(new)"는, 시간적 순서에 있어 새로움을 나타내는 그리스어 "neos"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질(quality)에 있어서의 우수함을 나타내는 그리스어 "kainos" 에 대응하는 의미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과 이 글 중에 안내된 글들을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0.htm <----- 필독 권고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9-2. 다음은,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루도미나 신부님 외 두 분의 선교사 신부님들에 의하여 마련된 저서인 "구탁일초", 권1, 숭정3년(1631년), 2월 21일자 일자 에서 발췌한 바 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_et_al/1630-1640_구탁일초.htm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2-10. 1621년에 초간된 중국인 평신도 사대부 양정균(1562-1627년)의 "대의편", 권하, 제19쪽

2-10-1.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62-1627_양정균/1621_대의편.htm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2-10-2.

 

출처: https://ctext.org/wiki.pl?if=en&chapter=208078#p161 

(발췌 시작)

蓋天主生人,付有二分,一分為肉身,風寒暑濕能中之,是為身病;一分為靈性,世俗、肉身、魔鬼三仇能中之,是為心病。二者截然不相混亂,不知者誤認為一。西教則設為多喻,身如舟,性如長年,舟載長年,長年去而舟亦隨敝矣。身如屋,性如主人,屋庇主人,主人亡而屋亦就頹矣。是二物原可合可分,合則生,分則死。世人惟認做一物,故忙忙碌碌,一生只照顧肉身,而至尊至貴之靈性,反撇卻一邊,猶之舍長年以奉舟,棄主人而殉屋,豈不哀哉?

(이상, 발췌 끝)

 

2-11.  

2-11-1. 1608년에 초간된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의 "기인십편" 권하, 제8편, 제13쪽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52-1610_마태오_리치/1608_기인10편_권상&권하_중각.htm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2-11-2. 1608년에 초간된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의 "기인십편" 권하, 제8편

 

출처: https://ctext.org/wiki.pl?if=en&chapter=814106#p95 

(발췌 시작)

吾於世有三仇焉,本身其一,世俗其二,鬼魔其三,三者同盟以害我矣。本身者,以聲色臭味以怠情,放恣愉佚暗溺我於內矣。世俗者,以財勢功名戲樂玩好顯侵我於外矣。鬼魔者,以倨傲魅惑誑我、眩我,內外伐我。則我於其間,亟於防守,迫於抵拒,自不遑暇息矣。嗟乎!區區一心上畏天命,下懼不虞之變,左恐覆於險難,右憚迷於佚欲,前怵往年積累多愆,後惕來世未決大凶,內悚於已,外驚於人,誰得不皇皇乎?使吾不肖耶,懈居誑思褐功,窘於三仇之勢,而委心奉之,雖得暫安,而實奉敵仇之逆命,反天主之正命,為患大矣。使吾為君子耶,立志存正而率循天命,其功雖高,乃仇之冤對至死方止,則當在生時,功未成就略不敢安寧矣。

(이상, 발췌 끝) 

 

2-12. 다음은, 1600년에 저술된 판토하 신부님(1571-1618년)의 "방자유전", 1권, 전성호경, 제6쪽에서 발췌한 바인데, 판토하 신부님"성호경" 해설의 마지막 단락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1-1618_디에고_데_판토하/1600_방자유전.htm  

(발췌 시작)

방자유전_권1_7-11_전성호경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주: 성호경에 대한 설명] [(2017년 9월 7일) 주: 제3쪽(8p)에서 이 책이 저술된 해가 기원후 1600년임을 밝히는 문구가 "동녀마리아" 직전에 있음]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부터 끝까지 읽고, 또한 계속하여, 아래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첫 번째 열부터 여덟 번째 열까지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따라서, 지금까지 본글에서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 삼구(三仇) 라는 "한문 문화권" 내의 천주교회의 고유한 용어의 최초 출처 문헌은 1600년에 저술된 "방자유전", 권1, 성호경 해설, 제6쪽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 유관 원천 자료들

 

이번 항에서는, (i) 시도 때도 없이 기회만 있으면 우리를 유혹하는 세속(the world), 육신(the flesh), 그리고 마귀(the devil) 이들 셋을 두고 말하는, 삼구(三仇, three enemies)로 번역된 용어의 출처와, (ii) 언제쯤부터 이 용어가 십자가와 관련되어 언급되기 시작하였는지 등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3-1.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서 이들 삼구들이 언급되고 있는 부분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the world" "the flesh" "the devil" "temptation" "Summa Theologiae" site:newadvent.org

 

특히 다음의 주소들에 있는 바들을 읽도록 하십시오:

 

https://dhspriory.org/thomas/summa/FP/FP114.html#FPQ114OUTP1 

[제목: Ia q114 사람들에 대한 나쁜 천사들의 습격들]

https://dhspriory.org/thomas/summa/SS/SS055.html#SSQ55OUTP1 

[제목: IIa IIae q55 육의 현명(Carnal Prudence)]

https://dhspriory.org/thomas/summa/TP/TP041.html#TPQ41OUTP1 

[제목: IIIa q41 광야에서의 그 유혹]

 

게시자 주 3-1: (1)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신학 대전"을 곧바로 들여다보는 이유는, 이 "신학 대전"1595년경부터, 예수회의 교과 과정에 의하여, 예수회에 입회한 분들이 4년에 걸쳐 학습하여야 하였던 필독 교과서였기 때문에,(*)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의 사고의 틀(the frame of thought)/마음의 틀(the frame of mind)은 바로 이 "신학 대전"이기 때문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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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52-1773_예수회_in_China/1599_예수회_ratio.pdf

 

바로 위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제33쪽에서 시작되는 소제목, 'RULES OF THE PROFESSOR OF SCHOLASTIC THEOLOGY"에 속하는 본문 전문[제33쪽부터 제37쪽까지]을 꼭 읽도록 하라. 

 

참고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바로 위의 소중한 자료를 입수하여 들여다본 것은 2017년 5월 11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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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2021년 5월 24일자 내용 추가 끝] 

 

(2) 그리고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위에 안내된 "신학 대전"의 본문들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는, "신학대전여행"의 해당 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64.htm <----- 필독 권고

[제목: Ia q114 사람들에 대한 나쁜 천사들의 습격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65.htm <----- 필독 권고

[제목: IIa IIae q55 육의 현명(Carnal Prudence)]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66.htm <----- 필독 권고

[제목: IIIa q41 광야에서의 그 유혹]

 

3-2. 다음에 발췌된 글을 통하여, 유혹을 받을 때에 십자성호를 이마에 긋는 것이 3세기에 이미 권장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scborromeo.org/papers/signcros.pdf 

[St. Hippolytus, 성 히폴리토[주: 성 라우렌시오(St. Lawrence, 축일 8월 10일)의 제자], 성년광익, 하, 8월 13일]

(발췌 시작)

The Sign of the Cross and Us

 

We make the sign of the cross as we pass in front of the Catholic Church to indicate our belief that Jesus is really present in that Church in the Blessed Sacrament, and we want to honor Him. We make the sign of the cross when we get up, at work, at play, before and after meals, and as often as we can. It reminds us of the Father, Son and Holy Spirit, and the fact that Jesus died on the cross for us.

 

The sign of the cross can help us in times of temptation. The book, "The Imitation of Christ" says, "If you confide in the Lord, strength will be given you from heaven, and the world and the flesh shall be made subject to you. Neither will you fear your enemy, the devil, if you be armed with faith and signed with the cross of Christ."(*1)

 

십자성호는 유혹의 시기들에 우리를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모방함(The immitation of Christ)" 제목의 책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대가 주님을 신뢰하면, 굳셈(strength)이 하늘(heaven)로부터 그대에게 장차 주어질 것이며, 그리하여 세속(the wordl)육신(the flesh)이 그대 쪽으로 마땅히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shall). 또한 그대는, 그대가 신앙으로써 무장하게 되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써 성호를 긋게 되면, 그대의 원수인 악마(the devil)를 장차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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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자 주: (1) 다음의 주소는 바로 이 발췌문의 출처이다. 접속 후에 열 번째 단락의 마지막 부분을 읽도록 하라:

 

출처: http://www.catholictreasury.info/books/imitation_of_Christ/im28.php 

(발췌 시작)

To carry the cross, to love the cross, to chastise the body and bring it to subjection, to flee honors, to endure contempt gladly, to despise self and wish to be despised, to suffer any adversity and loss, to desire no prosperous days on earth -- this is not man's way. If you rely upon yourself, you can do none of these things, but if you trust in the Lord, strength will be given you from heaven and the world and the flesh will be made subject to your word. You will not even fear your enemy, the devil, if you are armed with faith and signed with the cross of Christ.

(이상, 발췌 끝)

 

(2) 1418년에 초간된, 성경을 제외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널리 읽혔을 수도 있다는, 라틴어로 저술된, 영성 서적(spritual book)인, "Imitatio Christi"/The Imitation of Christ"(그리스도를 모방함)/"Following of Christ"(그리스도를 추종함)/"경세금서(經世金書)"/"준주성범(遵主聖範)"의 저자인, 의전수도회(儀典修道會, canonici regulares, canons regular)(#) 소속의, 토마스 아 켐피스 신부님(Thomas à Kempis, 1379-1471년)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영어 가톨릭대사전에 주어진 글 등을 읽을 수 있다:

http://www.newadvent.org/cathen/14661a.htm 

https://en.wikipedia.org/wiki/Thomas_%C3%A0_Kemp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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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의전수도회(儀典修道會, canonici regulares, canons regular)에 대한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대사전에 주어진 설명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다:

http://maria.catholic.or.kr/dictionary/term/term_view.asp?ctxtIdNum=2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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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게시자 주 끝)

 

St. Hippolytus, who lived in the 3rd century said, "When tempted, always reverently seal your forehead with the sign of the cross. For this sign of the Passion is displayed and made manifest against the devil if you make it in faith, not in order that you may be seen by men, but by your knowledge putting it forward like a shield."

 

3세기에 살았던 성 히폴리토(St. Hippolytus)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유혹을 받을 때에, 당신의 이마를 십자성호로써 항상 경건하게 날인하도록(seal) 하십시오. 이는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이라는 바로 이 표적(sign)이, 만약에 당신이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당신이 보여지게 되도록 하기 위하여서가 아니고 오로지 당신의 지식이 그것을 마치 어떤 방패처럼 앞쪽으로 배치함으로써, 신앙 안에서 행하면, 악마(the devil)에 반하여 표시되고 그리고 분명하게 드러내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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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자 주: 이 단락의 출처는,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성 히폴리토의 사도 전승(the Apostolic Tradition of Hippolytus)이다:

http://www.bombaxo.com/patristic-stuff/church-orders/hippolytus-the-apostolic-tradition/ 

http://www.rore-sanctifica.org/bibilotheque_rore_sanctifica/12-pretendue_tradition_apostolique_d_hippolyte/1934-burton_scott_easton-tradition_apostolique_d_hippolyte/Burton_Scott_Easton_-_The_Apostolic_Tradition_of_Hippolytus_(193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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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gn of the cross is made while all of the seven Sacraments are being given, during the Mass, when a priest gives his blessing, in times of temptation, etc. From the beginning of Christianity, the sign of the cross was a badge of identification, a shield in times of temptation, a demonstration of belief in the Blessed Trinity and Christ's death on the cross. Our early brothers and sisters believed what the first Christian Emperor of Rome saw in a vision "In this sign you shall conquer."

(이상, 발췌 및 일부분에 대한 우리말 번역 끝)

 

(이 글의 결론 2) 따라서, (i) 마귀(the devil)의 유혹(temptation)들은, 아무리 늦더라도 3세기에 이르면, 그리스도의 십지성가의 효능의 도움으로써 우리가 대적할 수 있음이 이미 언급되기 시작하였으며, 그리고 (ii) 세속(the world), 육신(the flesh), 그리고 마귀(the devil) 이들 셋을 두고 말하는, 삼구(三仇, three enemies)들의 유혹(temptations)들은, 아무리 늦더라도 1418년경에 이르면, 그리스도의 십자성가의 효능의 도움으로써 우리가 대적할 수 있음이 이미 언급되기 시작하였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세속", "육신", 그리고 "마귀"로 구성된 삼구들이 성경 본문에서,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언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the world" "the flesh" "the devil" site:ch.catholic.or.kr/pundang/4/navarre

 

(이 글의 결론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매년 12월 30일에 미사 중에 제1독서로 봉독되는, 요한 1서 2,12-17이, "세속", "육신", 그리고 "마귀"로 구성된 삼구들의 성경 출처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Dec30.htm <----- 필독 권고

 

게시자 주 3-3: 이어지는 제4항부터는,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둘 혹은 넷 혹은 다섯 종류들도 아니고, 왜 굳이 "세속", "육신", 그리고 "마귀" 이들 셋으로 귀착되는지에 대하여,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of Hippo, 354-430년)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4.

이번 항에서는, 중세 윤리 신학의 근거로 알려져 있는,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of Hippo, 354-430년)의 가르침인, "caritas"(애덕, agape, charity) 와 그 complement인 "cupiditas"(cupidity, 애덕이 아닌 사랑) 용어들의 그리스도교 전통적 정의(definitions)들과 이들과 관련된 내용들을 먼저 학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항에서 말씀드리는 바의 출처들/근거들은, 다음의 주소들에 있는 졸글들 및 이들에서 안내되어 있는 출처들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3.htm <----- 필독 권고

[제목: 사람에게 있는 분노와 질투는 원죄의 결과들; 작성일자: 2012년 1월 21일; 게시자 주 7-2-1 참조]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37.htm <----- 필독 권고
[제목: 애덕의 결여/부재(cupiditas)는 모든 죄의 뿌리 - 1티모테오 6,10; 1요한 2,15; 최초 작성일자: 2012년 1월 21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75.htm <----- 필독 권고

[제목: 완미한 회개/참회[상등통회]의 성경근거 -루카 7,47 [번역오류]; 게시일자: 2014년 9월 21일]

 

4-1. 하느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A) 우리들 눈과 귀 등의 오감으로써 느낄 수 있는 것들, 즉, 형이하학적인 사물(physical things)들 만을 오로지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B) 비가시적인 사물들인 영(spirits)들인 천사들 등을 창조하셨고 그리고 또한 (C) 하느님 당신 자신과 피조물들 사이의 [형이상학적(metaphysical)] 관계(relations)들, 질서/순서(orders)들뿐만이 아니라, 또한 이들 피조물들 사이의 [형이상학적(metaphysical)] 관계(relations)들, 질서/순서(orders)들도 창조하셨기 때문에,

 

피조물인 인간(human beings)들이 어떤 [형이상학적(metaphysical)] 관계(relations)들을 형성할 수 있는 대상(objects)들은, 크게 (i) 창조주이신 하느님, (ii) 비가시적 피조물(invisible creatures)들인, 천사들과, 타락한 천사들을 말하는, 마귀(demons)들과 그들의 우두머리인 악마(devil, Satan), 그리고 또한, (iii) 가시적 피조물(visible creatures)들인, 영혼을 가진 인간들과 영혼을 가지지 못한 생명체들 그리고 무생물들로 구분될 것입니다.

 

4-2. 따라서, 우리의 사랑(love)의 대상(objects)들은, (i) 하느님과 (ii) 피조물들로 구성된 세상, 이렇게 크게 둘로 구분되고,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아담과 하와의 원죄의 결과로 인한, "현재의 나약하고 부패한 세상"(이사야 13,11)을 말합니다. 

 

4-3. 그리고 1요한 2,15-17은 다음과 같은데,

 

(발췌 시작)
15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the love of Father)없습니다
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 눈의 욕망 삶의 교만(the pride of life)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17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이상, 발췌 끝)

 

4-3-1. 우선적으로, 1요한 2,15에서, "세상에 대한 사랑(the love of the world)" "하느님에 대한 사랑(the love of God)" 이라는 언급과 함께, 이들 두 종류의 사랑(loves)들이, 곧바로 이어지는 1요한 2,15의 마지막 문장에서, 논리적으로 서로를 포함하지 않는, 서로 배타적임을 밝히고 있음에 크게 주목하십시오.

 

4-3-2. 그리고 이들 두 종류의 사랑(loves)들이, 논리적으로 서로를 포함하지 않는, 서로 배타적임은 다음에 발췌한 야고보서 4,4의 두 번째 문장이 또한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발췌 시작)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는 자는 하느님의 이 되는 것입니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4-3: 이 글의 제4-2항제4-3항에서 언급되고 있는 "세상(world)" 이라는 차용된 번역 용어의 의미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의 결과로 인한, "현재의 나약하고 부패한 세상" (이사야 13,11) 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더 자세한 글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84.htm <----- 필독 권고

  

4-4. 이성적 피조물들의 사랑(愛, love)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어떤 대상(an object)에 대한 어떤, 통제를 벗어난, 욕망(a desire)인데 [주: 인간들의 경우에 있어, 사랑(love)이,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정(情, passions)들 중의 하나임을 상기하라], 아담(Adam)하와(Eve)원죄를 범한 이후부터, 원죄의 즉각적인 한 결과로서, 이 사랑(love)의 대상 자체가 크게, "하느님(God)""세상(the world)", 이렇게 둘로 그리고 서로 배타적으로 구분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4-5. 그리고 이성적 피조물들의 사랑(love)은, Denzinger(DS) 1938(1038)에 기록되어 있는, 교황 성 비오 5세(재위 기간: 1566-1572년)[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 직후인] 1567년 10월 1일자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i)
 하느님이 사랑받게 되는 "애덕(charity)"이라는 사랑(love),


(ii) 애덕이 아닌 사랑(love), 즉 "cupiditas",세상이 사랑받게 되는 사랑(love)[즉, 나머지 3개: 자연적/본성적 amor(형이하학적 사랑), amicitia(우의), directio(선호)]

이렇게 비 이원론적으로(non-dualistically), 논리적으로 서로 배타적인, 둘로 구분되는, 두 종류의 사랑(love)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1153번글 참조] 

 

4-6.

4-6-1.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1요한 2,15에서 언급되고 있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 을 우리의 심장(heart)에 품게 되는 성경 근거는, 다음에 발췌한 로마서 5,5 의 두 번째 문장에 주어져 있습니다: 

 

(발췌 시작)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느님의 사랑(the love of God)이 우리 심장(heart)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상, 발췌 끝)

 

4-6-2. 우리가 "하느님에 대한 사랑", 즉 "애덕(charity)"을 우리의 심장(heart)에 가지게 되는 성경 근거가 왜 로마서 5,5인지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가해 사순 제3주일 제2독서(로마 5,1-2.5-8)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읽도록 하십시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of Hippo, 354-430년)의 가르침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lent_3.htm <----- 필독 권고

 

4-6-3. 그리고 바로 이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의 심장(heart) 안쪽에 하느님에 의하여 부어지게 됨으로써, 즉, 주입됨으로써 비로소 우리가 "하느님이 사랑받는 사랑", 즉, 애덕(caritas, charity)을 우리의 심장(heart) 안에 갖게 되는데, 그런데 바로 이 사랑, 즉, 애덕(caritas, charity)이 하느님에 의하여 우리의 심장(heart) 안에 부어지게 되는 이유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의 결과로서 발생한,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우리의 심장 안에 마땅히 가득 차 있어야 하는 애덕의 결여/부재"를 말하는, "하느님이 사랑받지 않는 사랑", 즉, "세상이 사랑받게 되는 사랑", 즉, cupiditas(cupidity)바로 이 유한한 크기의 우리의 심장(heart) 안에 현실태적으로(actually) 존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바로 이  "하느님이 사랑받지 않는 사랑", 즉, "세상이 사랑받게 되는 사랑", 즉, cupiditas(cupidity)을 우리의 심장 안에서, 애덕(caritas, charity)으로써 태워서, 깨끗이 제거하고자/없애버리고자(to take away) 하는 하느님의 일(Opus Dei)을 하느님께서 수행하시기 위하여서임에 또한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4-7.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의 원죄의 결과로 인하여, 이들 두 종류의 서로 배타적인 사랑(mutually exclusive loves)들으로 채워지는 바는, 다름 아닌, 바로 유한한 크기의 우리의 심장(heart)임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5.

5-1. 다른 한편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찾아 읽을 수 있습니다:

 

출처: "the three enemies" "Summa theologiae" "The triple enemy" [Ars Componendi Sermones]

(발췌 시작)

The triple enemy - the world, the flesh, and the devil - was not commonly cited in the theological and monastic writings before 1000; championed by several prestigious churchmen, however, it becamess a topos current from the twelfth century onward; see Siegfried Wenzel, "The Three Enemies of Man," Mediaeval Studies 29 (1967), pp. 47-66.

 

3중의 원수 - 세속(the world), 육신(the flesh), 그리고 악마(the devil) - 는 기원후 1000년 이전의 신학적 및 수도원의 저술들에서 상례로(commonly) 인욛되지 않았으나, 그러나, 그것은 12세기와 그 이후부터, 여러 명의 명성 있는 성직자들에 의한 옹호를 받게되어,(*) 한 개의 유행하는 전통적 주제/공식(topos)이 되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보도록 하십시오: Siegfried Wenzel, "The Three Enemies of Man," Mediaeval Studies 29 (1967), pp. 4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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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바로 아래에 이어지는 항들에서 고찰하듯이, 이들 성직자들 중에는, "신학 대전"에을 저술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윤리 신학(Moral Theology)을 집대성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포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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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5-2. 지금까지, 위의 제4-1항부터 제4-7항에서 말씀드린 바를,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가 자신의 저서인 "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을 통하여 제시한 사변적 서술(speculative description)의 방식을 적용하여,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5-2-1. "하느님이 사랑받게 되는 사랑"대상(objects)들에는,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하느님(God)"과 피조물인 "천사(angels)들"이 있는데, 여기에 "천사들"이 포함됨은, 왜냐하면,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그들이 당사자의 영혼(soul)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윤리적으로 선한 영(morarlly good sprits)들이기 때문에, 그 결과로(consequently), 그들의 인도를 받은 당사자의 영혼(soul)이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5-2-2. 그리고 "세상이 사랑받게 되는 사랑"에서 말해지고 있는 세상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i) 피조물인 당사자의 "육신(the flesh)"이라고 통상적으로 불리는 대상(object), (ii) 당사자를 제외한 피조물인 "너", 즉, 통상적으로 "세상(the world)"이라고 불리는 바, 즉, 예를 들어, "음식", "재물(wealth, riches)" 등과 같은 피조물들을 말하는, 형이하학적 대상(objects)들 및 이들에 1대1 대응하는 형이상학적 대상(objects)들과, 그리고, 예를 들어, "명예(honor)", "권력(power)" 등과 같은 인간들이, 고유한, 그러나 자신들의 경험들에 근거한 귀납적 추론(inductive reasonings)들의 결과들이기에 오류(errors)들일 수도 있는, 판단들에 따라,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들을, 예를 들어, "필요 악(necessary evils)들"로까지 불릴 수도 있는 바들을, 만들어내는 바들을 가리키는/일컫는, 또다른 종류의 형이상학적 대상(objects)들(iii) 피조물인 영(spirits)들 중에서 타락한 영들, 즉, 윤리적으로 악한 영(morally evil/bad spirits)들, 즉, 통상적으로 "마귀(demons)들"과 "악마(the devil)"로 불리는 대상(objects)들과, 그리고 (iv) "당사자의 영혼(soul)/심장(heart)과 이미 말씀드린 이들 세 개의 대상(objects)들 (i), (ii), 그리고 (iii) 사이의 관계(relations)들", 그리고 "이들 관계들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과거에 형성되었거나 혹은 앞으로 형성될 수도 있는, 가능한 관계들(possible relations among relations)"을 말함에 주목하십시오.

 

5-2-3. 그런데 "당사자의 영혼(soul)/심장(heart)과 이들 세 개의 대상(objects)들 사이의, 다양할 수 있는, 윤리적으로 악인(morally evil) 관계(relations)들의 형성(formation)"을 두고서,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이들 세 개의 대상(objects)들이 당사자의 영혼(soul)를 유혹하고(tempt), [그리하여 당사자의 영혼마저도, 바로 이 대상들을 소유하고자 함에 당사자의 의지(will. rational appetite)까지 동의함으로써 발생하게 되는 죄(sins)들을 말하는, 과도한 욕망(inordinate desires)들을 가지게 됨, 즉,] 그리하여 그 결과, 당사자의 영혼이 이들 세 개의 대상(objects)들의 다양한 유혹들에 넘어감"이라고 통상적으로 말함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게시자 주 5-2: 이번 항에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말씀드린 바는, 예를 들어, 성 아우구스티노의 저술들로부터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술들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 문헌들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5-3. 다음의 굵게 파란색칠이 된 바를 클릭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술들의 다수의 영문본들 중에서, "the world" "the flesh" "the devil" "temptation" "cross" "Christ" 단어들 모두가 포함된 책들의 유관 부분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the world" "the flesh" "the devil" "temptation" "cross" "Christ" site:dhspriory.org <--- 클릭하여 꼭 살펴보라

 

5-3-1. 다음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주님의 기도 해설"로부터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1: https://dhspriory.org/thomas/PaterNoster.htm  

출처 2: https://dhspriory.org/thomas/english/PaterNoster.htm

(발췌 시작)

THE SIXTH PETITION: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There are those who have sinned and desire forgiveness for their sins. They confess their sins and repent. Yet, they do not strive as much as they should in order that they may not fall into sin again. In this indeed they are not consistent. For, on the one hand, they deplore their sins by being sorry for them; and, on the other hand, they sin again and again and have them again to deplore. Thus it is written: "Wash yourselves, be clean. Take away the evil of your devices from my eyes. Cease to do perversely."[1]


We have seen in the petition above that Christ taught us to seek forgiveness for our sins. In this petition, He teaches us to pray that we might avoid sin--that is, that we may not be led into temptation, and thus fall into sin.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2]


Three questions are now considered: (1) What is temptation? (2) In what ways is one tempted and by whom? (3) How is one freed from temptation?


WHAT IS TEMPTATION?


Regarding the first, it must be known that to tempt is nothing other than to test or to prove. To tempt a man is to test or try his virtue. This is done in two ways just as a man's virtue requires two things. One requirement is to do good, the other is to avoid evil: "Turn away from evil and do good."[3] Sometimes a man's virtue is tried in doing good, and sometimes it is tested in avoiding evil. Thus, regarding the first, a person is tried in his readiness to do good, for example, to fast and such like. Then is thy virtue great when thou art quick to do good. In this way does God sometimes try one's virtue, not, however, because such virtue is hidden from Him, but in order that all might know it and it would be an example to all. God tempted Abraham in this way, and Job also.[4] For this reason God frequently sends trials to the just, who in sustaining them with all patience make manifest their virtue and themselves increase in virtue: "The Lord your God trieth you, that it may appear whether you love Him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or not."[5] Thus does God tempt man by inciting him to good deeds.


As to the second, the virtue of man is tried by solicitation to evil. If he truly resists and does not give his consent, then his virtue is great. If, however, he falls before the temptation, he is devoid of virtue. God tempts no man in this way, for it is written: "God is not a tempter of evils, and He tempteth no man."[6]


HOW IS ONE TEMPTED?


The Temptations of the Flesh.--Man is tempted by his own flesh, by the devil and by the world. He is tempted by the flesh in two ways. First, the flesh incites one to evil. It always seeks its own pleasures, namely, carnal pleasures, in which often is sin. He who indulges in carnal pleasures neglects spiritual things: "Every man is tempted by his own concupiscence."[7]


Secondly, the flesh tempts man by enticing him away from good. For the spirit on its part would delight always in spiritual things, but the flesh asserting itself puts obstacles in the way of the spirit: "The corruptible body is a load upon the soul."[8] "For I am delighted with the law of God, according to the inward man. But I see another law in my members, fighting against the law of my mind, and captivating me in the law of sin, that is in my members."[9] This temptation which comes from the flesh is most severe, because our enemy, the flesh, is united to us; and as Boethius says: "There is no plague more dangerous than an enemy in the family circle." We must, therefore, be ever on our guard against this enemy: "Watch and pray that ye enter not into temptation."[10]


The Temptations of the Devil.--The devil tempts us with extreme force. Even when the flesh is subdued, another tempter arises, namely, the devil against whom we have a heavy struggle. Of this the Apostle says: "Our wrestling is not against flesh and blood, but against principalities and powers, against the rulers of the world of this darkness, against the spirits of wickedness in high places."[11] For this reason he is very aptly called the tempter: "Lest perhaps he that tempteth should have tempted you."[12]


The devil proceeds most cunningly in tempting us. He operates like a skillful general when about to attack a fortified city. He looks for the weak places in the object of his assault, and in that part where a man is most weak, he tempts him. He tempts man in those sins to which, after subduing his flesh, he is most inclined. Such, for instance, are anger, pride and the other spiritual sins. "Your adversary the devil, as a roaring lion, goeth about seeking whom he may devour."[13]


How the Devil Tempts Us.--The devil does two things when he tempts us. Thus, he does not at once suggest something that appears to us as evil, but something that has a semblance of good. Thereby he would, at least in the beginning, turn a man from his chief purpose, and then afterwards it will be easier to induce him to sin, once he has been turned away ever so little. "Satan himself transformeth himself into an angel of light."[14] Then when he has once led man into sin, he so enchains him as to prevent his rising up out of his sin. The devil, therefore, does two things: he deceives a man first, and then after betraying him, enthralls him in his sin.


Temptations of the World.--The world has two ways of tempting man. The first is excessive and intemperate desire for the goods of this life: "The desire of money is the root of all evil."[15] The second way is the fears engendered by persecutors and tyrants: "We are wrapped up in darkness."[16] "All that will live godly in Christ Jesus shall suffer persecution."[17] And again: "Fear not those that slay the body."[18]


How Is One Freed from Temptation?--Now we have seen what temptation is, and also in what way and by whom one is tempted. But how is one freed from temptation? In this we must notice that Christ teaches us to pray, not that we may not be tempted, but that we may not be led into temptation. For it is when one overcomes temptation that one deserves the reward. Thus it is said: "Count it all joy when you shall fall into divers temptations."[19] And again: "Son, when thou comest to the service of God, . . . prepare thy soul for temptation."[20] Again: "Blessed is the man that endureth temptation; for when he hath been proved, he shall receive the crown of life."[21] Our Lord, therefore, teaches us to pray that we be not led into temptation, by giving our consent to it: "Let no temptation take hold on you, but such as is human."[22] The reason is that it is human to be tempted, but to give consent is devilish.


But does God lead one to evil, that he should pray: "Lead us not into temptation"? I reply that God is said to lead a person into evil by permitting him to the extent that, because of his many sins, He withdraws His grace from man, and as a result of this withdrawal man does fall into sin. Therefore, we sing in the Psalm: "When my strength shall fail, do not Thou forsake me."[23] God, however, directs man by the fervor of charity that he be not led into temptation. For charity even in its smallest degree is able to resist any kind of sin: "Many waters cannot quench charity."[24] He also guides man by the light of his intellect in which he teaches him what he should do. For as the Philosopher says: "Every one who sins is ignorant."[25] "I will give thee understanding and I will instruct thee."[26] It was for this last that David prayed, saying: "Enlighten my eyes that I never sleep in death; lest at any time my enemy say: I have prevailed against him."[27] We have this through the gift of understanding. Therefore, when we refuse to consent to temptation, we keep our hearts pure: "Blessed are the clean of heart, for they shall see God."[28] And it follows from this petition that we are led up to the sight of God, and to it may God lead us all!

(For "Questions for Discussion" see Chapter 6.)


ENDNOTES

1. Isa., i. 16. 2. "We should implore the divine assistance in general under all temptations, and especially when we are assailed by any particular temptation" ("Roman Catechism," "Lord's Prayer," Chapter XV, 15). 3. Ps. xxxiii. 15. 4. Gen., xxii: Job, i. 5. Deut., xiii. 3. 6. James, i. 13. 7. "Ibid.," i. 14. 8. Wis., ix. 15. 9. Rom., vii. 22-23. 10. Matt., xxvi. 41. 11. Eph., vi. 12. 12. I Thess., iii. 5. 13. I Peter, v. 8. 14. Cor., xi. 14. 15. Tim., vi. 10. 16. Job, xxxvii. 19. 17. II Tim., iii. 12. 18. Matt., x. 28. 19. James, i. 2. 20. Ecclus. ii. I . 21. James., 12. 22. I Cor., x. 13. 23. Ps. lxx. 9. 24. Cant., viii. 7. 25. Aristotle, "Ethics." III, 1. 26. Ps. xxxi. 8. 27. Ps. xii. 4-5. 28. Matt., v. 8.

(이상, 발췌 끝)

 

5-3-2. 다음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테살로니카 1서, 제3장 해설로부터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https://dhspriory.org/thomas/SS1Thes.htm 

(발췌 시작)

But on the contrary, both the world and the flesh also tempt, as is seed in James (1: 14): “Each person is tempted when he is lured and enticed by his own desire.” Also in Genesis (22: 1): “God tested Abraham.” It is necessary to point out that “to tempt” means to make a test of something. And in this matter the purpose must be considered for which one wants to test something, and in what manner one wants to test something. For this occurs in two ways: either so that the person testing may know about it, or so that he may make it known to another. God does not need to tempt in the first way, for He knows what is in man as is stated in John 2. Rather in the second way: for God tempted Abraham so that others might know of his faith. A temptation in the first manner may occur in two ways, that is, it leads towards some good, as when the bishop examines those to be promoted; or else, somebody tempts in order to deceive, and this is the work of the devil; for the devil tests the condition of men in order that he may lead them to the various sins to which they are prone in accordance with their various dispositions: “Your adversary the devil prowls around like a roaring lion, seeking some one to devour” (Pet. 5:8). Therefore, it is the devil’s business to tempt in order to deceive. The world and the flesh are said to tempt in a material way, for through them and the things to which they lead a knowledge is achieved about man as to whether he is really steadfast in God’s commandments and in the love of God. Because if concupiscence triumphs, the person does not love God in a perfect manner, nor does he love in a perfect manner when the concerns of the world either frighten him or exert an undue influence upon him.

(이상, 발췌 끝) 

 

5-3-3. 다음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사도신경", 서문(Prologue)으로부터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https://dhspriory.org/thomas/english/Creed.htm

(발췌 시작)

The fourth effect of faith is that by it we overcome temptations: “The holy ones by faith conquered kingdoms” [Heb 11:33]. We know that every temptation is either from the world or the flesh or the devil. The devil would have us disobey God and not be subject to Him. This is removed by faith, since through it we know that He is the Lord of all things and must therefore be obeyed. “Your adversary the devil, as a roaring lion, goes about seeking whom he may devour. Resist him, strong in faith” [1 Pet 5:8].The world tempts us either by attaching us to it in prosperity, or by filling us with fear of adversity. But faith overcomes this in that we believe in a life to come better than this one, and hence we despise the riches of this world and we are not terrified in the face of adversity. “This is the victory which overcomes the world: our faith” [1 Jn 5:4].The flesh, however, tempts us by attracting us to the swiftly passing pleasures of this present life. But faith shows us that, if we cling to these things inordinately, we shall lose eternal joys. “In all things taking the shield of faith” [Eph 6:16].We see from this that it is very necessary to have faith.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5-3: 따라서, 지금까지 제5-3항에서 고찰한 바로부터,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술 시기인 13세기 중반에 이르면, 우리들이 경험하게 되는 유혹들의 말단들로서 이들 삼구들(the three enemies)이 이미,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하게, 언급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작성 중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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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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