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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추기경도 연약한 인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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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동훈 [nextboss] 쪽지 캡슐

1999-10-19 ㅣ No.1529

『조선일보』

 

"추기경도 연약한 인간이지요"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신앙

갈등과 고민 솔직하게 고백

     

  •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
  •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1983년 9월 김수환 추기경은 로마에서 형님인 김동한 신부가 세상을 떠났다는

전갈을 받았다. 세살위인 형님은 어려서 함께 사제의 길을 들어선 후 늘 그가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신학교 시절 김 추기경은 방학이면 대부분 형님이 있는 본당에서 지냈다.

동생과 외모가 비슷해 ’추기경님’이란 인사를 받곤하던 김동한 신부는 대구 결핵요양원장으로 있다가 먼저 하느님 곁으로 간 것이다.

회의 기간 한달동안 공혀한 마음을 달래던 김 추기경은 귀국해서 형님묘소와

빈방을 둘러본 후 자신의 가슴에도 그처럼 빈 자리가 깊이 파여있음을 절감했다.

 

  김수환 추기경.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 30년간 서울대교구장을 역임하며 천주교인은 물론 한국인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던 거가 지나온 삶과 신앙을 털어놓았다.

’우리사 서로 사랑한다는 것’(도서출판 사람과 사람)에서 김추기경은 너무 빨리 출세한 사람이 느끼는 불편함과 외로움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가는 곳마다 꽃다발과 환영을 받지만 인간관계 면에서는 불모지대에 서 있는

것과 같아서 ’머리 둘 곳이 없다.’는 예수님 말씀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70,80년대 김 추기경은 전체주의 정권에 억눌리던 국민들이 바라보는 등불이었다.

그만큼 그가 느끼는 갈등과 고민도 클 수 밖에 없었다. 천주교 안팎에서 증폭되는 불화로 인해 몇번이고 교황에게 보내는 사표를 썼다가 찢어버렸고 정부에 대한 비판때문에 고향인 대구 사람들로 부터 소외감을 느껴야 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혼자라도 항의 성명을 발표하려다가 유혈사태를 유발할까봐

포기 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자리에서 30년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의 힘이었다. 그러나 "누가 나를 보고서 ’예수님을 보았느냐?’고 물으면 보았다거나 만났다고는 말할 수 없다."

고 고백한다. 한달의 피정기간 동안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얼굴이 까맣게 될 정도로 고민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추기경이 아닌 수도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김 추기경을 가장 안타깝게 하는 것은 자신이 서민 출신이면서도 어느덧 ’귀족’이 되어 예수님처럼 자신을 비우고 낮추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환갑을 맞돈 해 그는 "세상은 높이 평가할 지 모르지만 나는 참으로 질그릇같이 깨어지기 쉬운 인간이다. 거듭나기 위해서 ’묵은 인간 김수환’ 은 죽어야 한다."고 적었다.

함께 출간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는 천주교 신자를 위한 김추기경은 신앙고백록이다.

하느님과 성서를 둘러싼 신앙의 본질, 한국 천주교의 미래에

대한 그의 생각과 직접 지은 기도문, 어록이 답겨있다.

 

이상 조선일보에서 제가 본글을 올립니다. 생각같아선 이책사서

그글을 몽땅다 올려서 읽어보시도록 하고 싶지만 좀 어려운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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