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위동성당 게시판

신유박해200주년2...소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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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simon] 쪽지 캡슐

2000-11-16 ㅣ No.1317

신유박해에 관해 말씀을 드리기전에 먼저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천주교는 다른 나라의 그것과 사뭇 다르게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이 전교되는 대부분의 상황을 보면 선교사들이 가톨릭을 모르는 나라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느님을 가르칩니다. 즉 선교사에 의한 종교가 시작되

는 경우이지요.. 다른 하나는 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물리적인 힘을 이용하여 나라를

개방하도록 하고 당연스럽게 강대국의 종교를 퍼뜨리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시작되는 1700년대에 이미 일본과 중국에는 그 복음의 씨앗이 시작되어

있었습니다. 특히나 임진왜란을 일으킨 원인중에 하나가 일본에 천주교를 없애기 위한 것이

었다는 것을 아는지요..풍신수길은 천주교를 미워해서 우리나라에 보낸 군인들중 많은

사람이 천주교 신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변에서는 이미 천주교를 받아들이며 서학을 접하고 있을때 우리나라는 그러한

학문에 대해 알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알 수가 없었다는 것보다 알려고 하지 않았지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천주교를 접했던 사람은 병자호란때 일종의 인질로 잡혀간 소현세자

였습니다. 청나라로 가게된 소현세자는 그곳사람들과 여러 관계를 갖게되면서 청나라의

사람들도 소현세자를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던중 소현세자는 북경에서 당시에 주교였던

아담 샬 신부를 만나게되어 서로 필담으로 많은 얘기를 나눕니다. 소현세자는 아담 샬신부

에게 서양의 학문을 배우기를 원했고 아담 샬 신부는 이기회를 이용하여 조선에 복음의

씨를 뿌리기를 원했지요...소현세자는 아담 샬 신부에게 마태오리치가 지은 ’천주실의’라는

책을 받아보며 천주교를 접했습니다. ’천주실의’는 천주교교리에 대한 내용을 문답식으로

역은 책이었는데 지금의 우리가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의 책입니다.

 

두달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친분을 쌓은 두사람은 소현세자가 조선으로 돌아가게 되자

소현세자가 아담 샬 신부에게 조선으로 신부를 보내줄 수 없느냐고 청을 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중국교회사정도 쉽지가 목자의 부재로 인해 어려웠기때문에 신부는 나중에

보내도록 하고 지금은 청나라의 교우이며 대신이었던 몇 사람과 함께 돌아가기를 청하지요

그리고는 여러 성물과 책을 소현세자에게 주며 둘은 헤어지게 됩니다.

 

이시절에 만약 뜻대로만 되었다하다라도 그렇게 많은 순교자들이 목숨을 받쳐가며 신앙을

지키지 않았어도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소현세자는 조선에 돌아와서 여러뜻을 실현하고 하지만 귀국 두달만에 갑자기 목숨을 거둡

니다. 독살되었다는 주장이 강한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조선은 다시 빛없는 어둠속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한동안 우리나라에는 복음의씨를 뿌리지 못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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