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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dies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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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학 [yhim] 쪽지 캡슐

2007-09-17 ㅣ No.6150

 
 새마을 운동으로 시골동네에 딸딸이(경운기)가 들어오기 전에는 누렁소 한 마리가 노동력을 대신했습니다.  
소가 있는 집은 그 동네의 중산층에 속했는데,  밭을 일구어 곡식을 거둬들이면 크게 끼니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누렁소는 그 집의 재산1호 이거나, 아니더라도 꽤 위세가 높은 편이었지요.

   언젠가 이웃집 아저씨가 집을 비운 사이 외양간에 불이 나, 누렁소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주인어른께서 며칠을 “어이구 불쌍한 놈“ 하시면서 대성통곡을 하시기에,    “소 한 마리 잃은 것치고는 너무 서러워하시네, 가족들이 다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시고 이제 그만 울음을 멈추실 때가 되었는데 좀 심하다” 하고 어린 나이에 이해를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 누렁이는 재산의 가치로 계산되어지는 물건이 아니라 바로 그 댁의 구성원으로써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을 몰랐습니다.   끼니때마다 아저씨가 쇠죽을 챙기고, 밤중에 손님이 찾아오면 소리를 내어 주인을 깨우고, 추울 때 덮어주고, 더울 때 씻겨주고, 큰 짐도 옮겨주고, 같이 농사일을 하면서 짧은 언어이지만 이랴! 이랴! 서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던 아저씨의 분신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정든 식구를 잃은 아저씨의 슬픔을 감히 제가 몰랐던 것이지요. 

바꾸어 생각해 보면 “외양간을 잘 보살피라”는 이 짧은 속담에는 한 식구이든, 직장 동료이든 나아가 늘 만나는 이웃이든, 무리를 이루어 함께 의지하고, 기뻐하며 더불어 사는 모두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파라다이스(Paradies)를 염원하는 모두를 향해 던지는 말이라 여겨집니다.

아끼는 물건을 잘 지키라는 뜻으로만 알아들었던 속담이었는데 그 속에 담겨진 깊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봄이 되어 동네 뒷산 풀밭에 송아지 뛰놀 때, 그 송아지를 돌보는 어미 소의 목청 높은 “음-매-” 소리를 지금은 들을 수 없음이 아쉽습니다.     고향에서 가족 친지들 만나시면 "울타리 되어 주어서 고맙다"고 한 말씀 나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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