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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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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린 [dlchang] 쪽지 캡슐

2007-12-28 ㅣ No.6284

 

 느티나무 아래에서 몇 번을 더 맥없이 서 있던 할머니가 이제 보이 지 않습니다.
 
느티나무도 몇 날을 목을 빼고 기다려 보았지만 할머니의 모습을 다시는 보지 못합니다.

 며칠이 지난 후, 할머니의 집 마당에 불이 환하게 켜졌습니다. 전에 는 보지 못 했던 풍경입니다.
 
집 앞 골목까지 백열등이 나란히 켜졌습니다. 외딴 동네가 오랜만에 눈이 부십니다.

 이토록 환하게 불 밝힐 일 없는데, 더군다나 새 생명이 태어날 일은 더욱 없는데,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푹 가라앉은 공기는 마을 앞 연못 속 같습니다.

 잡초하나 없이 잘 손질된 마당에 흰 무명천막이 여러 개 쳐집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무명천막은,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하얀 손짓인가 봅니다.

 할머니의 기다림이 계속 되었으면 평생 한 번도 들이밀지 않았을 얼굴들이 부랴부랴 찾아와서
 
고양이 같은 눈물을 흘리고 사라집니다. 죽어서야 만날 수 있는 그리움이 벌떡 일어 납니다.
 
할머니의 미처 감지 못한 눈은 마당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마저 감겨집니다.

 언제나 손님 같았던 아들이 오늘은 주인이 되어, 먼 길 가는 노모를 배웅합니다.
 
상두꾼이 메기는 구슬픈 소리가 노모를 손님으로 떠나보내는 아들의 마음을 되새김질 시킵니다.
 
그의 슬픔을 끓임없이 일으켜 세우는 건 노모의 긴 기다림과 외로움입니다.
 
기다림도 나이가 들고. 병이 들고, 죽는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는 이제 외롭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지 못합니다.

 나란히 줄 선 백열등 차례로 꺼지고 나면 이제 마당에 풀 뽑을 일 없습니다.
 
텃밭에 상추 심을 일도 없습니다. 장독대에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를 닦을 일은 더욱 없습니다.

 외딴 집의 역사는 손님이 떠나는 날 끝이 납니다.

 어느 시인은 노래합니다. 

 시골집  환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  마지막 불빛입니다.

  느티나무는 굽은 허리로 올려다보는 동무를 잃어, 이제 기다릴 일 없습니다.

 하늘은 할머니를 품에 그러안아  더 이상 안타까울 일 없습니다.

 한 기다림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손님이 되어 먼 길을 떠났습니다.

 손님이 떠난 빈 집에는 이제 이끼만 무성할 것입니다.



 임이송, ,<현대수필>, 0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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