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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손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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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규 [marco1998] 쪽지 캡슐

2007-12-29 ㅣ No.6289

         어느 작은 시골 동네에 한 가난한 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갓난아이와 젊은 아내를 남겨 두고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 
         여인 홀로 아이를 기르며 어렵게 삶을 꾸려갔습니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밤...
         젊은 여인은 외로울 때마다 아이를 꼭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죽은 남편을 생각하며 조용히 흐느끼곤 했습니다.

         여인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살 자신이 없었지만,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아들의 얼굴이 
         그의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 주었고,
         힘없는 그의 다리를 일으켜주었습니다. 

         여인에게 있어 아들은 유일한 소망이며 기쁨이었습니다.
         아니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아들이 잘 되는 그 하나만을 마음에 담고 
         아들만을 위해 살기로 여인은 마음을 정했습니다. 
         자신은 어떤 희생을 당하더라도 
         아들이 미소를 잃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족했습니다.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이 밑거름이 되어 
         해가 갈수록 아이는 건강하게 성장했습니다. 
         건강한 아이의 모습은 어머니의 자랑이었습니다. 

         때때로 동네 사람들이 힘겹게 살고 있는 
         젊은 여인이 보기 안쓰러워 재혼을 권했지만 
         그때마다 여인은 거절했습니다. 

         "성의는 고맙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아, 지금이야 그렇다고 해도 나이 들면 어쩌려고?" 

         "그때는 우리 아들도 다 컷을 텐데요." 

         "아이고 손 안에 자식이지..." 

         "아니예요. 우리 아들은 달라요." 

         "쯧쯧 과부댁의 인생이 아까워서 그래요." 

         여인의 마음에는 아들 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의 행복이 자신의 전부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아들은 받을 마음이 모자랐습니다. 

         "엄마 오늘 반찬은 왜 그래요?"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의 짜증 섞인 말입니다. 

         "아니 왜 그러니?" 

         "제 짝 영섭이는 쇠고기 장조림으로 바뀌었는데 
         저는 늘 오뎅 볶음이나 계란 후라이니..." 

         "그래, 그래... 다음에는 쇠고기 장조림을 싸주마" 

         "에이, 오늘 얼마나 창피했는지 알아요? 
         참 그리고 신발도 새로 사주세요." 

         "아니 신발은 왜? 사준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이 신발은 시대에 뒤쳐졌어요. 지금은 나이키가 유행하는데..." 

         "그래 네가 원한다면 그러렴... 
         하지만 조금만 참아라. 지금은 돈이 부족해서..." 

         "에이 영섭이 엄마는 돈이 많던데..." 

         아들은 자주 불평스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하며 돈을 버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 일찍 장에 가서 품팔이를 하고 지친 몸을 끌고 집에 와서는
         늦은 밤까지 호롱불 밑에서 삯바느질을 해야만 했던 
         어머니의 지친 표정은 아들에게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탈 없이 자라는 아들을 볼 때마다 기뻤고, 
         밤늦게 삯바느질을 하면서 한숨을 돌릴 때

         잠든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아들은 성장했고, 어느 새 대학 졸업을 앞두었습니다.
         어머니의 눈가에도 깊은 주름이 패였습니다. 
         아들의 사각모를 감격스럽게 만지작거리는 늙은 어머니에게
         아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어머니 오늘 졸업식에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니 애야, 그게 무슨 소리냐?" 


         "사실 오늘 제 여자 친구가 부모님을 모시고 온 댔거든요." 
 
         "그래... 그래도 졸업식인데..." 

         어머니는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지만 이번에도 양보했습니다. 
         아들의 학창시절 자주 겪었던 일이었습니다. 
         아들은 공부를 잘 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아들을 칭찬했고, 
         그러한 사실은 어머니에게 큰 기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자라갈수록 어머니의 초라한 모습이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오고,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졸업생들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가족들로 분주한 졸업식. 
         하지만 어머니는 나무 그늘에서 아들을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아들은 예쁜 아가씨 앞에서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는 점잖은 신사와 귀부인이 서 있었습니다. 
         아들은 그들과 함께 멋진 자가용을 타고 졸업식장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와 아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아들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정성껏 끓였습니다. 
         하지만 괘종시계가 열두 번을 울릴 때까지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자가용을 탄 아들의 뒷모습이 아련한데... 

         그리고 여러 해가 흘렀습니다. 
         어머니는 기력이 많이 쇠해졌습니다. 
         하지만 밤마다 대문을 열어놓고 아들을 
         기다리는 버릇은 여전했습니다. 
         늘 밤 12시가 될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렸던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아들을 잊으라고 했습니다. 
         그런 불효자식이 뭐 좋다고 미련을 못 버리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에는 아들이 너무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꼭 돌아 올 거야. 암 누구 아들인데...'' 
         그리고 또 몇 해가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어머니 앞으로 편지가 한 통 왔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어머니는 궁금한 
         마음으로 편지를 받아들었고, 아들의 글씨를 확인하고는 
         미친듯이 편지 봉투를 뜯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읽어가는 어머니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고였고, 잠시 후 편지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어머니.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진수입니다. 
         죄송합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왜 어머니를 말없이 떠났는지 궁금하시겠지요? 
         어머니 저는 출세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게 기회가 왔습니다. 


         어느 대기업의 회장 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잘 보여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가정 형편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아버지 없이 제가 성장했다는 사실이 걸렸습니다. 
         고민하던 중 결국 거짓말을 했습니다. 
         친구의 부모님께 대신 부모 노릇을 해달라고... 
         그래서 그분들을 모시고 결혼식도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부러울 것이 없는 위치에 올라섰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회사가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부도가 났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자 아내는 훌쩍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이제는 약을 먹지 못하면 잘 수가 없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현기증이 납니다. 
         이제 며칠 후면 출소가 되지만 갈 곳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제가 한 일을 생각하면 도저히 어머니를 뵐 면목이 없습니다. 
         어머니. 저를 아직도 사랑하고 계시는지요? 
         아니죠? 이제는 버리셨지요?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 이제는 왜 그렇게 그리워지는지... 

         어머니, 어머니가 받아주지 않아도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냥 정처없이 살다가 발길이 머무는 곳을 제 무덤으로 삼겠습니다. 
         다만 제 마음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만일 어머니께서 아직도 저를 사랑하시고 받아주려 하신다면 
         집 앞에 있는 느티나무에 노란손수건 하나를 걸어주세요. 
         손수건이 없다면... 저는 제 길을 가겠습니다." 

         어머니는 그만 편지를 움켜지고 통곡을 했습니다. 

         병에 걸려 폐인처럼 된 아들이 어둔 감옥에서 나오는 날이었습니다. 
         밝은 태양빛 앞에 눈을 잘 뜨지 못하던 아들은 갈등했습니다. 

         ''나 같은 놈을 받아주실까?''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던 아들의 기억 속에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자는 척 실눈을 뜨고 있던 자기를 바라보며 미소 짓던 어머니의 얼굴... 
         그 얼굴이 그의 발걸음을 인도했습니다. 

         집 앞으로 난 기차길... 
         그 길을 따라 기차를 타고 가는 아들의 가슴이 두근거렸고. 
         집이 가까울수록 더욱 요동쳤습니다. 
         아들은 집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용기를 내어 바라봤습니다. 
         갑자기 아들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고, 
         어느 새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아들은 기차에서 내려 집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집 앞에서 한숨도 자지 않고 기다렸던 어머니를 부둥켜안았습니다. 
         그 위로 느티나무 가지가지마다 노란 손수건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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