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동성당 게시판

[선교]에 관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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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학 [yhim] 쪽지 캡슐

1999-08-17 ㅣ No.1113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1세대 1예비자 봉헌을 위한 준비가 한창인 요즘

박한채 선교분과장님을 비롯한 선교분과 위원님, 꾸리아 단장님외 여러분께서 선교를 위한 방안을 검토중에 있으리라 생각되어지기에 동참하는 뜻에서 글 올립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네티즌 여러분들께 제안을 하나 드립니다. 인터넷 바다속을 샅샅히 뒤져 선교관련 [퍼온글]모음집을 하나 만들어 봅시다.

우리 네티즌도 선교를 위해 그리고 운동의 확산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 선교를 위한 회의시간에 드린 말씀입니다만 이를 정리한 것이니 본당차원에서 진행되는 선교정책 수립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순전히 제 개인 생각임을 전제하옵고, 또한 많은 분들의 의견이 이 곳 게시판에 올려져 토론되었으면 좋겠다고 빡빡머리가 외칩니다.  퀙-퀙-.

 

1. 근본적인 선교정책 없는 외형적 성장을 과시하는 선교는 위험합니다.

   선교가 마치 교구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전락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불쾌함을 드린 선교행사는 되지 말아야 겠기에 체면선교, 전시선교, 돈 선교, 프로젝트선교에 빠지지

   말고, 먼저 무엇이 선교인지, 선교의 동기가 무엇인지, 선교의 영역은 어디까지, 선교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

   인지 정립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2. 선교 전략이 수립되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합니다.

   그저 선교라는 흐름에 떠 밀려 가고 있는 실정은 아닌지 생각해 보고 효과적인 선교전략을 수립하여야 할

   것입니다. 선교전략은 시대마다, 지역마다, 사목의 종류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특성을 잘 연구 검토하여야

   하고 여건에 맞는 전략을 준비하되 그 과제는 명확해야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지혜로 무장하지 않으면 더더욱 안되겠죠.

   참고로 21세기를 보는 시각에 이런 것도 있습니다.

   -폭력의 시대 : 학원폭력, 성폭력 테러 확산

   -마약의 위험 : 마약으로 인한 인격 파손 중남미의 마약 천지

   -성적문란 : 가정파괴, 결손가정 증가, 고아의 증가, 이혼율 증가 AIDS의 가공함

   -민족전쟁 : 민족간의 분쟁과 비극은 쉬지 않고 있음.

   -뉴에이지 운동 : 다수가 선이라는 논리로 예수만이 유일한 구세주라는 옹고집은 통하지 않는 위협에 직면함.

3.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돌이켜 보아야 하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자세와 물량주의, 기복주의를 극복하고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서 탈바꿈 하여야 할 것입니다.

   구원의 예수님을 전하려면 구원의 확신과 구원에 대한 감격과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환경과 조건을 전혀  

   따지지 않는 믿음의 선교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4. 우리의 선교대상이 누구인가를 파악해야합니다.

   우리나라는 최대의 종교국가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개신교를 포함한 불교, 타종교의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논증과 대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지요.

   선교전략에 있어서도 비 가톨릭에 대항하여 가톨릭 진리를 변증하고 적극적으로 제시할  때에 이른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주의 교회는 타종교를 마귀와 우상으로 생각하는 공격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것은 용기로는 100점

   이지만 방법은 0점입니다

   복음을 증거하기 보다 무엇을 해서는 안된다는 "부정"의 복음을 전함으로, 교회 스스로가 철조망을 치는 잘못

   된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선교에서 "사상은 강하게 방법은 부드럽게"라는 말이 어울릴 것입니다.

   대상에서 검토되어야할 내용으로 연령층, 직업, 취미, 생활수준, 가족상황, 종교, 주된 일과 등 세분화하고

   다양한 검토가 뒤따라야 하는 것 처럼 종로성당, 명동성당, 개포성당, 문산성당, 가락시장과 문정성당이 각각

   다른 사목여건을 갖고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잠실성당은 주일 밤9시 미사도 있습니다)  

5.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한 가두선교에 대해

   우리나라에 책이나 신문, 메스컴이 발달되지 못했던 해방후 특히 6.25 전쟁후 개신교의 외국선교사들이 많이

   이용한 방법으로, 큰 길거리에서 전도지를 배포하고 공연(음악,연극등)을 함으로써 볼거리와 다소의 먹거리를

   통한 선교는 가장 초보적인 것이지만 대단히 성공적인 선교방법 이었습니다. 유교와 불교문화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구요, 그 방법이 수년을 되풀이해 왔습니다.

   지금 이런 방법의 선교는 곰곰히 생각해 봐야할 대목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밀리니엄시대입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미 선교의 대상이 바뀌었다는 것과, 한 집 멀다하고 건물마다 서 있는 십자가들은

   무엇을 말하는지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늘어나는 십자가 수 만큼 범죄도 늘었다면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의 선교는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저희 시골에서 성당 다니는 학생은 반에 한명 있을까 말까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

   때에도 가톨릭의 선교방법은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선교방법을 최우선으로 하였습니다. 이웃사랑,

   죽은이들에 대한 극진한 기도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교회를 번성케 한 밑거름이었다는 것을 밝혀

   두고자 합니다. 그 사랑이 없는 공허한 선교를 혹자는 세자 요한의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강변하는 분

   이 계시지만 마태오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산상설교"후 행적들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림만으로 일관하는 가두선교의 획일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행적에서처럼 길거리에서부터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이웃이 감동하여 스스로 예수님께 나아와 무릎을 꿇게 할 방안이 무엇인가를 심사숙고하자는

   것이지요. 그렇지 못하면 일년에 수백명이 새로 태어난들 또 그 수백명이 쉬는 교우로 악순환만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해외선교에 가혹하리만큼 미온적인 한국천주교의 반성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6.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

   "교우의 집" 문패 밑에 "무료로 이사를 도와 드리겠습니다"  "무료로 애기를 돌봐 드리겠습니다"  "청소를,  

   설거지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노인과 함께 있어 드리겠습니다"  "컴퓨터를 손 봐 드리겠습니다"  "인터넷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보일러를 손 봐 드리겠습니다" "무료 세무상담"  등등 생활속의 작은 실천에서부터

   "김치를 바꾸어 먹읍시다"  "장난감을 바꾸어 씁시다"  "동화책 빌려 드립니다"  "종이 봉투를 드립니다" 등

   환경친화적인 것,을 찾을 수 있겠고

   공동체가 할 수 있는 것으로는  "이번 수해에 아픔을 같이 하지 못한 반성으로 9월 18일까지 상가 주변 청소를

   하겠습니다  -문정성당 교우일동- "

   "씨랜드 참사를 우리의 아픔으로 알고 9월 18일까지 교통봉사를 하겠습니다  -문정성당 교우일동-" 등을

  생각해 봄직하며

  단순한 선교지 배포 보다는 가정용품과 선교를 접목하는 방법 : 전화카드를 이용한 선교문, (아이디어가

  있으리라고 봄)  

  가게 홍보와 선교를 접목하는 방법 :  교우 운영 주유소의 1회용 티슈에 선교문 추가 인쇄

  환경보호와 선교를 접목하는 방법 :  종이봉투를 제작하여 각 상가에 무상 배포(선교문 인쇄)   

  또는 가게를 운영하는 교우로 하여금 비닐 빽 대신 종이 봉투 사용을 권장(상가명과 선교문 동시 인쇄)  하는

  방안도 있겠지요

 

  수백년동안 선교의 중요한 동기로 작용했던 것은 순종, 사랑,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헌신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발단된 선교가 우리에게 명령으로 위임된 것입니다. 사랑의 동기가 앞서고 순종이 뒤따르는 것이지요.

순종 :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18-20)

사랑 :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요한 3:16)

      또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마태 9:36)

열정 :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1로마 8:35)

겸손 : 허물과 약함으로 어쩔 수 없는 이 벌레는 주님의 친절한 팔에 안깁니다.

      나의 예수, 나의 전부이신 당신이 나의 힘과 의가 되소서.

 

      마지막의 겸손에 관한 내용은 유명한 개신교 선교사 윌리엄 케리의 묘비문에 적힌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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