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동성당 게시판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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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순 [bejoyful] 쪽지 캡슐

2000-02-23 ㅣ No.1306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 어느 호스피스 병실에서.....

 

오늘도, 익숙한 계단을 올라 병실 앞에 섰습니다.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얼굴에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줍니다. 때때로 마주치는 비어 있는 침대에도 익숙해 질만한데 이것만은 영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끔히 정돈된 침대 앞에 설때면 떠나간 사람의 절망과 슬픔을 읽습니다. 선명한 그의 얼굴,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 해맑게 웃던 그의 아이들......

모든 것이 이토록 생생한데 나에게 자신을 맡겼던 그는, 이제 더 이상 이곳에 없습니다.

 

짧고 서러운 인연.........

 

그렇습니다. 차라리 그를 몰랐더라면,

나의 오늘은 더 평안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수만 있었다면.........

오늘 하루도 낯익은 모습으로 사라져 갔을 것을........

 

누군가를 잃는 다는 것,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눈물 흘리던 많은 시간들을 추억으로만 남겨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도, 여전한 하느님의 침묵 앞에 마주서야 한다는 것,

한 사람의 떠남이 남긴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뒤흔듭니다.

 

하지만, 내게는 지켜야할 약속이 있고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떠나가지만, 살아 남은 사람들이 있고

떠나간 사람의 자리를 채우는 아픈 이웃이 있기에,

내게는 아직 남은 일들이 있습니다.

 

흔들리고 갈라진 마음도,

또다른 이별의 두려움도,

나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날,

그분께서 우리의 눈물을 다 씻어 주시고 죽음과 슬픔, 울부짖음......

이전의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그때까지(요한묵시록 21, 4)

함께 견디고 더불어 이겨내야할 것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이별도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목숨보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가슴 찢는 이별이 어찌 아름다울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 한 순간까지 사랑하고 희망할 수 있을 때....

서럽기만 한, 이별의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리고, 새로운 만남이 움터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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