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동성당 게시판

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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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숙 [woojuin114] 쪽지 캡슐

2001-05-18 ㅣ No.2184

아직도 목이타게 길을 걷다 잠시 쉬러 주막에 들렀습니다.  

즈믄의 번뇌가 흔들리는 나무잎의 소리와, 억겹의 강물의 소리없는 소리가 숨쉬고 있을 것만 같은 주막은 텅비어 있었습니다. 내 텅빈 호수위로 비치는 벌건 십자가처럼...

 

웅덩이가 작아도 흙가라 앉히면 하늘 살고, 구름 살고, 별이 살듯이

나무 키워 놓으면 새가 오고, 매미 오고, 바람이 오고 하는 우리집 작은 마당

언젠가는 대추나무, 강아지, 토끼, 병아리가 살고간

언젠가는 어린 우리들의 풀장이 되고, 분필로 나누어 청소를 하던 그때 그 추억이 되어버리기도 한

소복히 쌓인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의 이야기가 담긴, 하늘 살고 구름 살고 별이 사는 우리집 작은 마당...

 

건너편 집 아줌마의 꿈에 나타난 하느님의 계시에 의해 갑자기 솟아난 정육점 빛갈을 가진 십자가... 요즘은 그 십자가가 우리집 마당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다. 밤이 되면 그 진가를 더욱 발휘하는 십자가 덕분에 우리집 마당 검은 새벽엔 새가 숨고 매미가 숨고 바람이 숨어 겨울이 온듯 사방이 조용하다.

 

오늘밤 무심코 넘기는 책장속에

불덩이 시대의 사랑을 품고 이렇게 아프고 괴로운 사람

자기 성장의 강한 힘을 안으로 들이부어 희망 하나 키워가는 사람

미래를 낳고 기르기 위해 기꺼이 작아지고 낮아지는 사람이 여인이라는 시 구절 속에서

옹졸하게 앓고있는, 사춘기 소녀의 가슴을 가진 여인의 모습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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