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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질문들이 과연 백해무익한 말장난이었을까요??? 1035_시기vs질투 [성경해석] [번역오류] 78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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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vs질투 -7 [175.115.219.*]

2011-12-28 ㅣ No.1148


게시자 주: 이 글은, 아래에 << 부록 1 >>으로 첨부한 글의 한줄답변들을 읽고서, 원 게시자인 ㅂㅈㅇ 형제님에 의하여 이미 삭제된, 제가 말씀드렸던 한줄답변들을 기억에 근거하여 복원한, 내용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전달하고자 노력한, 글입니다. 정성을 담아 드렸던 한줄답변들에 대하여, 전혀 예상밖으로 이들 모두를 삭제한 후에, 다음과 같은 한줄답변들을 남기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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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ㅈㅇ ( (2011/12/28) : 소순태님... 차단합니다.

ㅂㅈㅇ ( (2011/12/28) : 제가 가장 싫어하는 백해무익한 말장난에 섞이고 싶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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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다음의 한줄답변은, 하루 뒤에 위의 두 개의 한줄답변들의 삭제 및 저에 대한 차단 초지를 해제하고 올린 새로운 한줄답변인데, 이제는 "수준 이하의 수다쟁이들"이라고까지 첨언하셨군요. "인간"에 대하여 대단히 실망하여 여쭙니다만, 혹시 이러한 조치(즉, 저에 대한 차단 및 저의 한줄답변들의 삭제 후의 위의 두 개의 한줄답변)들 그리고 저에 대한 차단 조치의 해제 및 아래의 추가 한줄답변이, 주변의 지인들의 조언 때문입니까? :

ㅂㅈㅇ ( (2011/12/29) : 이 글 어디에 아퀴나스 성인을 폄훼한 부분이 있나요? 지식에 더하여 은총이 덧붙어 지상의 계시가 되었다는 말을 한 것이지요. 지식의 전제는 사랑이어야 하고.. 지식의 평가는 그 열매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수준 이하의 수다쟁이들의 접근을 정중히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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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에 대한 차단이야 본인 고유의 판단에 따라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니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그러나, 제가 정성을 담아 드렸던 한줄답변들을 두고서, 일방적인 삭제 이후에 다른 분들이 오해/곡해하기에도 충분한 표현인, "백해무익한 말장난" 혹은 "수준이하의 수다장이들"이라고 주장한 것은, 상당히 아니라는 생각이며, 따라서 제가 드렸던 한줄답변들이 과연 "백해무익한 말장난" 혹은 "수준이하의 수다장이들"이었는지 다른 분들께서도 또한 살펴볼 수 있도록 하고자,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상대방의 처신에 대한 판단의 글이 아니라, 실망과 유감의 글이니, 부질없는 판단이나 오해 없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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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 예수님!

1.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러한 말, 즉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말을, 자기 자신 및 자신의 후학들에게 "겸손하라고" 하였던 것이지, 자신의 저술인 신학 대전에서 어떠한 주제가 어떻게 설명되고 있는지를 모르는 분들에게, 자신의 신학대전이,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으니, 학습할 필요도 없다" 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의 학습을 저지 혹은 방해하고자 하는 자(여기에는, 예를 들어, 자신들이 인간적으로 고안한 교리와 충돌하는 이유 때문인 개신교측의 일부 사람들 포함)들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그러한 일화를 자주 사용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1-1)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의 저술 이후에 가톨릭 교회의 교회법도 비로소 제대로 확립이 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1-2) 최근의 여러 교황님들의 문헌들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고자 한다면, 특히 성 토마스의 신학 대전에 어떠한 신학적 설명들이 주어져 있는지를 사전에 잘 학습하는 것이 꼭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리고

(1-3) 다음의 주소에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출처 찾아보기"를 살펴보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술들을 상당히 많이 인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http://ch.catholic.or.kr/pundang/4/references2ccc.htm

특히,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주어진,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의(즉, 믿을 교리, dogma)인, 통공 교리에 대한 가르침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의 내용들이,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을 수"가 있겠는지요?

더 나아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에 실린 내용들은, 13세기 당시까지의 교부들과 교회 학자들의 저술들의 내용을,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 안에서, 논리적으로 철저하게 비교/분석/검토하여, 공리적으로, 즉 연역적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므로, 예를 들어, 그 이전의 교부들 및 교회 학자들의 저술들을, 심지어 그리스 시대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학습하기 위하여서도, 성 토마스의 신학 대전을 먼저 학습하는 것은 꼭 필요한 줄로 알고 있습니다.

2. 다른 한 편으로, 창세기 3,19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만약에 어떤 분이 경건하고 그리고 진실한 마음과 함께, 성경을 창세기 1,1부터 읽어 내려가다가, 창세기 3,19에 있는 이 말씀을 읽고는,

"어? 어짜피 먼지로 돌아간다는군!"

라고 하면서 성경 읽기를 그만두었을 때에, 이 분의 어디에서, 어떠한 잘못이 발생한 것일까요?

3. 사실 우리말본 성경 본문 중의 형용사, 명사들 모두는 번역 용어들인데,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우리말 단어들에 대한 설명만으로, 성경으로 불리는 번역서에 주어진 번역 용어들의 의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동일한 하나의 신앙을 고백한다면서, 그 내용이 달라서야 되겠는지요?

인문학을 전공하신 듯하여 여쭈어 봅니다:

질문: "시기(猜忌)와 질투(嫉妬/嫉?)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요?"

그러나 매우 실망스럽게도, 저의 이 진지한 질문에 대하여 일리있는 답변 대신에, 형제님께서는 스스로 삭제하셨던 한줄답변에서,

"시기와 질투에 개인적 관심이 있으시면..." 

라고 말씀하셨더군요.

그런데 만약에 오직 개인적 관심 때문이었다면, 제가 왜 이러한 질문을 드렸겠는지요?

예를 들어,

탈출기 20,5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주어져 있습니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많이 부족한 죄인인 저처럼, 만약에 자신이 "먼지"에 불과함을 알고 있다면, 이 말씀이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고민하면서, 실제로 어떤 지푸라기를 잡을지는 나중에 결정하더라도, 우선적으로, 혹시하는 생각과 함께, 어떤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요?

아니,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어찌하여 기껏해야 "먼지"에 불과한 인간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실까요?

그리고 국내의 개신교측 우리말 성경의 탈출기 20,5 번역문에서도 "질투하는"으로 번역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라도 ,저처럼 많이 부족한 죄인이, 이 번역이 번역 오류라는 지적을 한다면, 어떻게 답변하실런지요?

4. 사실 하느님께서는 탈출기 제20장에서 십계명을 내리고 계시는 중이신데, 형제님께서는 여태까지,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번역 오류가 우리말본 성경의 탈출기 20,5에 실제로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이라도 해 보셨는지요?

하기사, 여기를 클릭하면 확보할 수 있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질투라는 단어의 설명으로, 탈출기 20,5의 말씀이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는 분들이야, 여기서 멈출 것이지만, 그러나 저처럼 그렇지 않은/못한 분들은, 이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기 위하여, 어떤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고 노력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5. 지금까지 제가 위에서 드린 질문들이, 저의 정성어린 한줄답변들을 일방적으로 삭제하면서 형제님께서 자신의 한줄답변으로 주장하셨듯이, 과연 "백해무익한 말장난"인지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십시오.

적어도 최근 수십 년간의 고뇌를 담은, 많이 부족한 죄인이 드렸던, 위의 질문들이, 형제님께는 여전히 "백해무익한 말장난" 혹은 "수준이하의 수다쟁이들" "백해무익한 말장난"으로 생각되시는요? 
 
위의 제3항에서 드린 질문은, 아래의 << 부록 2 >>에서처럼, 아주 최근인 이틀 전에도 다른 분이 게시한 본글의 한줄답변 대화 중에, 제3자의 한줄답변에 대한 답변으로 드렸던 저의 한줄답변들에서 다루었던 주제의 연장선상에서 드렸던 동일한 질문이었습니다. 만약에 형제님 판단에 진실로 "백해무익한 말장난" 혹은 "수준이하의 수다쟁이들""백해무익한 말장난"으로 생각되셨더라면, 다른 분들도 또한 읽고 판단할 수 있도록, 이 << 부록 2 >>에서처럼, 저의 한줄답변들을 일방적으로 삭제하지 말고 남겨두면서, 한줄답변들로 그러한 말씀을 하셨어야지요. 그렇게 하셔야만, 다른 분들이 부질없는 오해/곡해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그리고, "백해무익한 말장난"이라고 주장하셨던 위의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그동안 추가적인 자료 조사도 진행하고 또 고귀한 견해들도 말씀해 주셨던 인문학 분야의 여러 교수님들이 과연, 형제님에 의한 이번의 주장대로, "수준이하의 수다장이들"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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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유불급 [過猶不及]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음.
《논어(論語)》의 <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 말로,
중용(中庸)의 중요성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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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인문학을 전공하였다고 생각하는 분들께 정중하게 여쭙니다:

질문: "시기(猜忌)와 질투(嫉妬/嫉?)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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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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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 록 1 >>

열심히 공부하라.. 그리고...
 
작성자    번  호   183365
 
작성일   2011-12-28 오후 4:37:43 조회수   86 추천수   
 


가톨릭 교회사에서 가장 큰 학자를 들라면.. 역시 토마스 아퀴나스일 것입니다.
그분의 저술의 양과 질을 생각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하느님의 존재 증명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랬던 그분이 신학대전 3부 중 속죄에 대해 쓰고 계시던 1273년 12월 6일 미사 중에
하느님의 계시로 무엇인가를 보게 됩니다.  

계시를 받은 후.. 토마스 성인은 절필을 하게 됩니다. 
"내가 본 것에 비하면 내가 쓴 것들은 모두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아..."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절필 선언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침대에 눕고 일어나 앉는데도 도움이 필요했던 성인께서는...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하느님이 내 저술활동에 종지부를 찍으셨듯 내 인생도 끝내 주시는 것"이라고
힘겹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듬해인 1274년 3월 7일 성인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인간이 쌓아올린 최고의 지식이 하느님 앞에서는 지푸라기라는 깨달음이
성인께서 세상에 남기신 마지막 교훈이었던 셈입니다.

신학대전의 지식에 더하여.. 토마스 성인이 아니고서는 줄 수 없었던 가장 그윽한 가르침이었고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하느님의 경륜이며 섭리였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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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 록 2 >>

게시자 주:

이하는 위의 게시글보다 이틀 전에 올려진 다른 분의 글에 단 저의 한줄답변들입니다. 보시다시피, 동일한 질문을 하고 있으나, 이 "백해무익한 말장난"에 무엇이 섞이기나 하였는지요? :

소순태 (sunsoh) (2011/12/26) : + 찬미 예수님! 미사성제가 피조물들의 성화 그리하여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에 의하여 제정되었기에 하느님과 피조물 모두를 위한 것이며 그리고 특히 "경건하고 엄숙한 침묵" 중에 하느님께서 미사성제 참례 중인 우리들 각자에게 "작용"하심을 모르기 때문에, 즉 하느님에 대한 무지 때문에, 그러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생각입니다.    
 
ㅅㅁㅇ (2011/12/26) : 그쵸^^   
 
소순태 (sunsoh) (2011/12/26) : 지금 말씀드린 바는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므로, 초등학생들의 교리 교육시에 반드시 잘 숙지시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ㅅㅎㅇ (2011/12/26) : 저도 비슷한 생각이지만 학생들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든 천주교의 현실에 대해 같이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순태 (sunsoh) (2011/12/26) : 지금 말씀하신 부분은, 이공계 대학 진학을 하고자 하는 고등학생들의 경우에 있어, 철학, 윤리, 세계사 등의 인문학 관련 학습을 거의 전혀 하지 않고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되어 있는 현재의 고등학교 교육 과정부터 개선하여야 할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이러한 최소한도의 인문학 관련 교육을 받지 못한 청소년 및 청년들의 교리 교육은, 참으로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몇 년이 지났습니다만, 이 문제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사무총장 신부님께 제가 직접 말씀을 드렸던 적이 있는데, 단지 천주교의 현실이 아니라, 인문학 소양이 결여된 자들이 많은 이 나라의 장래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셔야 할 것입니다.    
 
소순태 (sunsoh) (2011/12/26) : 예를 들어, 제가 질문을 하나 드릴까요? 우리들이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인, "시기"와 "질투"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소순태 (sunsoh) (2011/12/26) : 참고입니다만, 고대 그리스 시대에, 요즈음의 학원/과외에 해당하겠습니다만, 철학, 윤리, 세계사 등의 인문학 과목들을, 시험을 목표로 하여 가르치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았던 "소피스트"로 불리는 집단이 있었는데, 이렇게 불릴 수 있는 집단이 지금의 우리들 주변에 없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이공계가 아닌 대학을 진학하더라도, "이런" 인문학 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이 알고 있는 인문학적 소양이,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들을 위한 기본/기초 소양이 될 수 있을 것 같읍니까? 아마도 상당히 아닐 것입니다.    
 
소순태 (sunsoh) (2011/12/26) : 좀 비관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요즈음의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몸은 성인으로 다 성장하였는데, 고등학교 시절에 인문학 관련 소양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인성"은 초등학교 5학년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결혼하고 독립할 생각이 늦어지거나 혹은 아예 없을 것입니다.    
 
소순태 (sunsoh) (2011/12/26) : 지금 말씀드린 것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 세대의 잘못일 것입니다. 그 결과, 지금의 청소년, 청년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자신들의 잘못이 전혀 없는 문제이나, 결국에 자신들이 직접 바로잡아야 하는가??? 하는, 이해/납득하는 것부터가 대단히 힘든, 한 종류의 "영적 혼란"의 상태에 빠져 있다는 생각입니다.    
 
소순태 (sunsoh) (2011/12/26) : 질문: "시기"와 "질투"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소순태 (sunsoh) (2011/12/27) : 위의 질문에 대하여, 특히 "자기 자신을 인문학 전공자로 생각하는 분"들의 답변을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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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록 3 >>

게시자 주:

다음의 한줄답변들은 위의 본글에 대한 한줄답변들입니다


소순태 ( (2011/12/30) : [ㅂㅈㅇ (2011/12/30) : 어휴.. 이 글을 읽어서 뭘 얻을 수 있을까요? 저는 그냥 위에서 아래로 쭈욱 훑어만 봐도 아니올시다 입니다.]
 
소순태 ( (2011/12/30) : [ㅂㅈㅇ (2011/12/30) : 그리고... 제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뭘 그리 주절주절 떠드나요? 제가 게시한 글과 관련이 없이 님이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님이 따로 작성해야지요.]
 
소순태 ( (2011/12/30) : [ㅂㅈㅇ (2011/12/30) : 그리고 무슨 아무나 붙잡고.. 시기와 질투 차이가 뭐냐니..... 제 정신입니까? 남이 다 초딩 중딩도 아니고.. 님이 무슨 대단한 성서학자도 아니고.. ㅎㅎ]
 
소순태 ( (2011/12/30) : [ㅂㅈㅇ : 그리고 제 글에 붙인 댓글을 제가 평가하여... 차단했고... 질 낮은 수다라고 했으면... 좀 새기면 안됩니까? 무슨 대단히 깊고 그윽한 댓글 쓰셨나요? 제가 보기엔 주제 넘은 시비 맞습니다.]
 
소순태 ( (2011/12/30) : [ㅂㅈㅇ : 이 댓글들도 곧 지우겠습니다. 본글 내리세요. 주접입니다.]
 
소순태 ( (2011/12/30) : [ㅂㅈㅇ : 어휴.. 그래도 수다 계속하시네요.. 그럼 맘대로 하세요.. 한심한 분이시군요.. ㅉㅉㅉ]
 
 ㅂㅊㅇ ( (2011/12/30) : 성토마스 아퀴나스의 글을 읽고, 현대에 들어와서 재조명되고 있는 신토미즘의 시각에서 이 성인을 재조명하는 학자들고 있습니다만, 이 성인의 글을 읽어야 한다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 이전의 교부들의 저작도 우리는 읽어야 합니다. 그 이전의 저작, 즉 성경은 물론 죽을 때까지 읽어야지요. 창세기의 어느 장에서 인간을 티끌이라고 지칭했다고 해서 성경 읽기를 그만두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공부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깨닫습니다. 그래도 공부합니다.(해야합니다.). 여기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씀, 즉 자신의 모든 저작은 지푸라기 만도 못하다는 말
 
 ㅂㅊㅇ ( (2011/12/30) : 씀은 이 모든 것을 성취한 후에 나온 말씀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그런 경지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성인께서 그런 말씀을 했다고 해서 "그렇다면 그 지푸라기같은 저작을 우리가 왜 읽어?" 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도 신학대전이 일부 번역되어 나오고 있고, 저는 그런 의미에서 그 책을 누군가 다만 몇 장이라고 같이 공부하는 뜻에서 이 게시판에 소개해 주기를(아니면 내가 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단지, 어떤 성인의 말씀이라도 그것을 자신의 어떤 생각을 변호하기 위한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좀 삼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질투에 관한 탈출기의 말씀은, 저 역시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비단
 
 ㅂㅊㅇ ( (2011/12/30) : 질투뿐이 아니라, 구약에 무수히 나오는 완전봉헌과 관련한 무수한 복수, 몰살, 증오, 그리고 근친상간, 약탈, 기만 등등을 다 이해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어떤 딱뿌러지는 한 방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읽고 또 읽을 수 밖에 없지요. 저 역시도 언젠가 정추기경님께서 "질투하시는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라는 취지의 말씀을 듣고, 그 의미를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가 나타나서 한 방에 모든 의문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ㅂ형제님의 글의 취지는 아마도 "그러니까 읽지 말자," 라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이야말로, 이런
 
 ㅂㅊㅇ ( (2011/12/30) : 시대에야 말로 성인과 교부들의 저작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ㅇㅅㄱ ( (2011/12/31) : 소순태 교수님의 많은 글을 보았습니다. 신학 대학 교수도 못하는 일, 진짜 수고 많으셨습니다. 본 업무도 아닌 것, 한곳에 열중 한다는 것이 사실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거 복사해서 같다 붙이는 거라고 아주 쉽게 말하지요. 열정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 아는 사람은 알고 아무런 말도 없이 읽고 지나 갑니다. 신앙의 교리 2012년 동안의 글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결론은 결국 이상[理想]을 글로서 정리 한 것, 그러나 세상의 현실과 많이 동 덜어져 있지요. 세계 역사는 지금 이 차이를 증명을 하고, 현실은 또 보여주고 있음. 올해는 유난히 세상에 많은 일들이 일어난 해, 새해도 건필 하시기를 바랍니다.
 
 ㅂㅎㅊ ( (2011/12/31) : 항상 정열적으로 이야기하고 답하는 소순태교수님 내년에 복많이 받으시고 오늘 천진암 에 오시어 지난 일년을 멋지게 마감하시고 막걸리 한잔 하세요 건강 하십시요
 
 소순태 ( (2011/12/31) :

+ 찬미 예수님!

많이 부족한 죄인인 저의 마음을 이해하셨는지 격려의 한줄답변들을 올려주신 ㅂㅊㅇ 형제님, ㅇㅅㄱ 형제님, 그리고 ㅂㅎㅊ 형제님들의 성가정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월1일, 주일)의 충만한 가내 평화와 함께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소순태 ( (2011/12/31) : 혹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학습을 위하여 제가 지난 여름부터 추진 중인 과제(Project, 즉 신학 대전의 약 600여 개에 달하는 각 문항(Questions)들에 대한 "압축된 바꾸어 말하기"인 Paul J. Glenn 몬시뇰(1893-1957)의 저서: "A Tour of the Summa(신학대전여행)"의 우리말 번역 작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여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살펴보실 때에, 왼쪽 메뉴판의 아랫부분에 있는 "사이트 링크" 아래에 링크되어 있는 저의 졸글들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club.catholic.or.kr/tourofsumma  <----- 클릭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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