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대림 제2주간 토요일 ’20/12/11 미사의 영성 1 미사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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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12-01 ㅣ No.4866

대림 제2주간 토요일 ’20/12/11

미사의 영성 1 미사일반

빵을 떼어 주시자 예수님을 알아보았는데

 

 

말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다(루카 24,13-35)

24 13바로 그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7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19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33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 합니다.

 

 

나눔

오늘 성시간부터 예수님이 세우신 성체성사의 의미와 영성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루카 복음 2413절부터 35절에 나오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 관한 성경구절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주님 자신에 대해 설명해 주시고 성체성사를 통해 증명해 보이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럼으로써, 제자들은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과 주님이 누구이시며 그분의 사명이 무엇이고 왜 돌아가셔야 했는지를 깨닫게 되어, 다시 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주님의 부활을 선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다란 이 성경구절은 우리에게 미사의 분위기와 구조를 연상하게 합니다. 첫째, 13절과 14절에 나오는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마을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고 한 묘사는 주일 (아침) 미사에 참례하러 오는 길에서 서로 만나 인사하고 자신들의 안부와 공통 관심사를 나누면서 성당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또 다소 어수선하고 혼란스런 분위기 안에서 사제가 입당하는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15) 미사가 시작되었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지만, 아직 신자들은 그 주일의 의미나 미사 전례의 내용을 깊이 알지 못합니다. 또한 자신들이 겪고 있는 사실들에 대한 신앙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16)

 

둘째, 참회 시간을 갖기 위하여 사제가 형제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반성합시다.” 하고 말하면서 침묵에 들어가면, 신자들은 자신들의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들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 순간은 마치 미사에 참례한 신자 각자에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17)시는 것 같습니다. 신자들은 각자 자신들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17) 우리는 이처럼 자신의 현실을 돌이켜보면서 주님께 우리의 애로사항과 바람을 합쳐 미사 지향으로 보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나는 이런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왜 내게 닥쳐왔는지, 그리고 이 문제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지, 그리고 정작 어떻게 이것에 대처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18-19)

 

우리가 겪는 우리의 현실은 다름 아닌 갈등입니다. “관한 일입니다. 셨습니다. 그런데 들과 들이 하였습니다. 우리는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됩니다.”(19-21) 어떤 일이 생겼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반면에 다른 이들은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과 삶의 진행상황들입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황이 반전되면서 입장도 바뀌어 웃음이 울음으로, 때로는 사건자체가 미궁으로 빠져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는 상황 속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더랍니다. 그래서 그대로였고, 였습니다.”(22-24)

 

셋째, 이제 이러한 갈등 속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말씀 전례. 구약과 신약의 5개의 독서와 응송들 안에서 우리는 우리 문제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 말씀은 그날 그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혼의 양식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성경 전체에 걸쳐 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25-27) 말씀 전례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비춰주시는 신앙의 빛으로 우리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게 됩니다.

 

넷째, 주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는 우리의 삶 속으로 주님을 초대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초대하는 우리의 청원은, 미사 성제 안에서 우리가 주님께로 나아가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겠다.”는 봉헌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29) 우리가 주님께 매달리고, 주님께 다가서는 자세는 다른 한편으로는 주님께 자신을 내맡기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봉헌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감사 기도의 시초에 성령께서 오십니다.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감사기도 제 2 양식)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29)

 

다섯째, 감사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성변화의 순간에, 주님께서는 친히 당신의 말씀을 온전히 이루시고 완성시키십니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30) 그럼으로써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에게 확실히 드러납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31) 우리는 성체를 영함으로써 주님과 하나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 안에 스며들어 없어져 버리십니다. 사랑은 스스로 녹아드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31)

 

그분은 말씀 전례에서 우리가 들어서 깨닫게 된 말씀을 성찬 전례에서 증거하심으로써 우리를 확신으로 불타오르게 하고 우리도 그 말씀을 살도록 북돋우십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32)

 

여섯째,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 문제의 해답을 찾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그대로 사신 십자가상의 제사, 즉 성찬을 통해 우리도 그 길을 걸어갈 힘을 얻습니다. 이는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얻게 되는 우리 제자됨의 시작이요, 제자가 사도로서의 사명을 실천해 나갈 수 있는 힘입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일치된 우리는 교우 형제자매들과 함께 세상으로 복음을 선포하러 나아갑니다.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33-35)

 

우리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기사에서 미사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첫째, 우리는 이 기사에서 우리에게 대한 주님의 지극한 사랑을 느낍니다. 주님은 동틀 무렵 여자들에게 나타나신 후, 바로 이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당신 자신을 성경의 말씀과 연관시켜 설명해 주시고 빵의 나눔을 통해 깨닫도록 하십니다. 이렇게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루 종일, 제자들을 직접 가르쳐주시고 먹여주시면서 키우시느라 애쓰십니다. 똑같이 우리는 십자가상 제사를 기억하고 재현하는 미사 성제를 통해 이 사랑의 절정과 완성을 봅니다. 오늘 미사를 봉헌하는 바로 여기서 다시 주님 구원이 계속됩니다.

 

둘째, 제자들은 주님께서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봅니다. 주님은 빵의 나눔이라는 표징을 통해 자신을 알아보도록 계시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미사 성제(성체성사)를 통해 주님을 만납니다. 이러한 깨달음과 만남이 바로 미사에서 얻게 되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이 생명의 양식이 우리의 힘입니다. 우리는 그 힘으로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의 흐름에 휘말리지 않고 주님의 가르침을 지키고 따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거듭 생명의 양식을 얻기 위하여 깨어 기도하면서 미사에 참례함으로써, 우리 삶의 방향과 방법을 교정하고 주님의 안배하심과 보호하심과 이끄심 안에서 주님과 점점 일치되어 갑니다.

 

셋째, 우리가 주님을 만난다는 표현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다.”(31)는 사실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주님께 대한 기억이 나고’, ‘생각이 나며’, ‘느낌이 들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또한 우리가 미사 중에 주님을 만난다!”는 표현 역시 주님과 주님께 대한 직접적인 대면만을 의미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 우리는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14)이라는 자신의 현실을 일어난 사건과 현상 그대로만 알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18) 그 사건과 현상 너머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미사의 독서와 강론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25-27) 그뿐 아니라 그 깨달음을 지식이나 지적인 흥분에 그치지 않고, 받아 들이며, 믿고,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성체성사를 영함으로써 확고히 심게 됩니다. 성체성사는 바로 십자가상의 제사로서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주님을 통해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미사가 우리 생명의 양식인 것입니다.

 

이는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주님께서 십자가상 제사를 바치심으로써명백히 드러났고 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성령께서 성체성사(미사)를 통해 일러주시고 심어주셔서 우리를 살리시는생명의 양식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우리 생명의 양식을 얻게 됨으로써 우리는 신앙의 신비를 살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가 받아들인 만큼밖에 숨쉬지 못하지만, 지속되는 우리의 활동과 미사 참례를 통해 교정되고 다시 심화된 우리의 활동 속에서 완전해집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코린 13,11-12)

 

그러므로 미사는 우리가 주님과 만나고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는 신앙의 원천이며, 주님은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키는 일을 함께 하자고 미사를 통해 우리를 부르시고 파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루카 24,30-31)

 

 

 

성찰

·주님은 왜 우리를 미사(성체성사)에 부르십니까?

·미사에서 얻어야 할 생명의 양식을 받아 나누고 있습니까?

·오늘 미사를 참례하고 나서 나는 어떤 식으로 주님께서 주신 생명의 양식을 나누시렵니까?

·누구와 함께 누구에게 내 생명의 양식을 나누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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