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5주간 금요일 ’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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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2-02 ㅣ No.4928

연중 제5주간 금요일 ’22/02/11

 

언젠가 한 번 무연고 어린아기의 장례미사를 봉헌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방송사에서 실황중계를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는데, 저는 그 제안을 들으면서 어린아기가 이렇다 한 병명도 모른 채 죽어간 것만 해도 안타까운데, 그것마저도 장사하려고 하느냐?”고 반대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십니다. 그랬더니 마치 마을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님께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마르 7,34) 열려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립니다. 치유 기적을 겪은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을 주고받습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37)

 

예수님께서는 오늘 환우를 고치려고 하시면서, 많은 군중에게 둘러싸여 있는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서이신지, 아니면 여러 사람 앞에서 쇼를 하듯이 치유하시는 장면을 보여 주고 싶으시지 않으셔서 그런지, 그를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고쳐 주십니다. 오늘날 같으면 방송에서 실황중계라도 하면서, 더 널리 퍼뜨리고 싶어 할 텐데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환우의 고통이 안쓰럽고, 그를 고쳐서 그가 다시 듣게 되고 말을 정상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 중요하지,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으셨는가 봅니다. 사람을 살게 해주는 것 자체로 치유의 기적은 빛나는 것이고, 그 치유 사실이 자연스럽게 알려져서 예수님의 업적이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치유 사실을 떠벌리고 그 사건과 상황을 또 다른 선교의 기반을 세우고자 하시지는 않으십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 치유 장면을 바라보면서, 조금 더 잘하려는 마음으로, 뭔가 보여 주려고 하고, 또 뭔가 드러내 증명해 보이려고 함으로써, 믿게 하고 믿음을 더 굳세게 해주고자 하는 우리의 조급하고 현세적인 마음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우리의 선교가, 진정 선교 대상자의 구원을 위한 진실한 복음의 기쁨이기를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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