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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교회에서 누군가 상처받았을 때-----로레인 H. 드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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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67.182.215.*]

2014-06-18 ㅣ No.10640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교회에서 누군가 상처받았을 때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거룩함으로 공고한 교회는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과거와 현재에 교회의 자녀들이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해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우리는 종종 교회에서 일 또는 사람으로부터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상처받은 사람들은 미사 참례하는 것을 그만두거나 다른 종교로 개종하기까지 한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분노와 화, 배신감에 쌓여 괴로워한다.

♡ 상처의 유형 ♡


0 어떤 상처는 오해나 개인적 다툼에서 일어난다. 본당의 새로운 신자들은 기존의 본당 조직 안으로 들어가기가 어렵다.

0 자발적 봉사자들은 때로 그들의 봉사를 너무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에 허탈감에 빠지기도 한다. 농담으로 한 이야기가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다.

  0 어떤 사람은 본당 신부가 바빠서 함께 이야기 나눌 시간을 갖기 어려울 경우 거부당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0 또한 원하고 필요로 할 때 교회에서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할 경우에도 사람들은 상처받기 쉽다.

0 때로 규칙과 규정들이 상처를 유발한다.

- 부모가 미사 참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 아기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 경우,

  - 어떤 사람이 대부모가 되도록 하는 추천서를 써 주지 않는 경우,

- 장례식이나 결혼식에 사용되는 음악이 논란이 되는 경우,

- 혼인 무효 소송이 통과된 경우 또는 거부된 경우에 상처를 받는다.

0 변화가 충돌과 대립을 일으킨다. 본당에 새 신부가 온 후에 의견의 불일치가 분출된다.

  0 어떤 사람의 아이디어가 거부된다.

- 본당에서 운영하는 학교나 유치원이 문을 닫는 경우,

  - 일부에서 본당의 모금 활동에 심하게 반대하는 경우,

- 제의실의 리모델링 계획에 반대하는 경우,

  -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실망감을 드러내게 된다. - 피로와 스트레스 그리고 건강의 문제 때문에 성급함, 부적절한 판단, 왜곡된 행동이 나타난다. 매일 밤낮을 임종 환자들에 시달리는 신부는 아주 단순한 문제나 불평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수녀가 당뇨병에 걸렸다면 예상치 못한 본당의 분위기를 접할 수도 있다. 가정이 위기에 직면한 성당 직원은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어떤 사안은 인간적 약점의 부분을 넘어서 죄의 영역에까지 이른다. 누군가가 전체의 필요나 복지보다 자신의 이익이나 권위, 우월감을 우선시 한다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은 고통을 겪게 된다. 신체적, 성적, 감정적 남용의 경우는 가장 극악한 죄의 행위이다

♡ 상처받는 이유 ♡


0 상처의 발생은 교회가 부족함을 지닌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데서 비롯한다. 우리가 교회에 대해 갖는 이상은 매우 높지만 현실은 교회가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0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오해하고 부인하며 배반하는 제자들, 당신께서 기도할 것을 요청했을 때 잠을 자고, 붙잡혀 가실 때 도망가는 제자들과 함께하셨다.

0 초기 그리스도 공동체에서도 신앙과 그 실천에 관한 논쟁이 잦았다. 역사를 통해서도 거룩한 사람들이 교회의 일부 사람이나 어떠한 사건 때문에 고통을 겪었음이 증명된다.

0 마돈나 하우스의 창시자인 캐더린 도허티(Catherine de Hueck Doherty, 1896-1985년)는 1940년대에 미국의 흑인들을 위한 그의 활동 때문에 공산주의자로 몰려 가톨릭 신자들에게 고소를 당했었다.

0 자비의 수녀회 창시자인 캐더린 멕올리(Catherine McAuley, 1778-1841년)는 부자 동네인 더블린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집을 설립한다는 이유로 사제들의 비판과 박해를 받았다.

0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1491-1556년)는 위험한 교리’를 가르친다는 이유로 교회에 의해 두 번이나 감옥에 갇혔었다.

0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1-1226년)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거부당하기도 했다.

0 가톨릭 교회가 인간적 약점에도 2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성령께서 교회를 이끌고 성장시키셨기 때문이다.

0 2000년 3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의 이름으로 과거와 현재에 교회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공식적으로 용서를 청했으며, 다른 많은 주교들도 그들 교구에서 벌어지는 인간적 잘못들에 대해서 용서를 청했다.

0 가톨릭 신자로서 우리들은 상처를 바로 보고, 용서를 청하며, 이를 바로잡아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이는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다.

 ♡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


☞ 상처를 입은 사람이 그의 상처와 분노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독려하라. 대화야말로 상처를 드러내고 감정적 에너지가 사라지도록 하는 좋은 방법이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은 ― 아는 친구, 친척, 신부 또는 본당의 다른 신자가 될 수 있다 ― 상처받은 사람이 고통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 교회의 구성원, 곧 사람에 대한 분노와 거룩함의 끊임없는 원천인 교회의 신적 부분에 대한 분노를 분리하도록 도우라.

☞ 문제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라. 실수로 생긴 문제인지 아니면 오해로 생긴 문제인지 알아본다. 문제의 시작으로 돌아가 사태를 더욱 명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사목자나, 주교와 같은 상급 직권자에게 보고할 필요가 있는지 살핀다.

☞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라. 상처받은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사과인가, 타협인가 단순한 싸움 중지인가를 파악하도록 한다. 만일 사건이 학대나 남용에 관한 것이라면 상황에 대한 자세한 조사와 보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경우 전문적 상담이 필요하다.

☞ 당사자가 미사와 성사에서 제공하는 교회의 영적 풍요 속에 머물러 있도록 독려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필요하다면 다른 새로운 본당을 찾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부디 교회를 떠나지는 마십시오.”라고 조언한다.

☞ 용서가 중요함을 깨닫도록 돕는다.

♡ 용서의 치유 능력 ♡


0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가르치신다. 또한 우리가 용서하면 우리 자신도 용서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신다. 또한 주님께서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34)라고 기도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용서하는 방법을 보여 주셨다.

0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때, 우리는 상처를 덮어 버리고 지나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용서하는 데에는 우리가 옳은지 그른지, 상대가 그 용서를 바라는지, 그가 용서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의 여부는 상관이 없다.

0 우리는 분노와 화, 좌절, 배신감 등의 감정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용서할 필요가 있다. 용서를 통해 영적, 정신적, 감정적 충만함을 회복할 수 있다.

0 용서가 없으면 고통이 우리 삶을 지배할 것이다. 이는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하고, 기도 생활과 인간 관계, 우리의 사고,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0 두말할 나위 없이 용서는 우리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용서하는 것이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며,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용서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인내와 끈기를 지녀야 할 것이다.

☞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용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청하면서 용서를 시 작하라.

☞ 그 내용을 종이에 써서 태운다. 그리고 그것을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으로 삼는다.

☞ 산상 설교에서 하신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 본당 사제와 면담하거나 고해성사를 보면서“저는 오랫동안 화나고 상처받은 마음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제 이를 떨쳐 버리려 합니다.”라고 말하라.

☞ 교회와 상처를 입힌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입힌 상처에 대해서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라.

☞ 분노의 마음이 다시 찾아온다면, 당신이 이미 용서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상기하라. 하느님께 고통과 분노의 상태로 다시 떨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도움을 청하라.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로마 8,28 참조)라고 우리를 확신시킨다. 교회에서 누군가 상처를 받았을 때 과연 어떻게 이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의심스려울 것이다. 그러나 용서의 길을 묵묵히 걷다 보면 고통이 가라앉고, 깊은 평화가 우리의 영혼을 감싸게 됨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영적 치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세상은 줄 수 없는 평화이며, 사랑이신 하느님께 받는 은총의 선물인 것이다.

“잘못이 없으면, 용서도 없습니다. 용서가 없으면, 사랑도 없습니다.” - 마더 데레사

“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나의 반응으로 만들어 진다.” - 십자가의 성 요한


(원문:Lorene Hanley Duquin, “When Someone Is Hurt by the Church”, OurSundayVistor 발행 리플릿, 이준혜 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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