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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추덕(七樞德, seven cardinal virtues)??? [용어번역오류] 969_토미즘학습 capital 겸손, 견화, 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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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4 ㅣ No.1569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다음은, 우리말 번역서 "칠극" [역자: 박유리 교수]의 부록에 수록된,  김승혜 교수 수녀님의 논문 (제목: '칠극에 대한 연구', 교회사연구 9 (한국교회사연구소, 1994.11)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발췌 시작)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신학대전" 2권에서 윤리 부분을 취급할 때 칠죄종 seven capital sins 과 칠추덕 seven cardinal virtues 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데, 토마스 아퀴나스가 분류한 칠추덕은 신중, 정의, 자비, 강건, 절제, 순결, 온유로, 빤또하의 칠추덕과 표현상의 차이가 있을 뿐 내용은 같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

(1) 위의 제1항에서 말씀드리고 있는 논문은, "일곱 가지의 덕행 (七樞德)" 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다음에 있는, 경향잡지 1993년 5월호에 게재된 논문 [제목: 하느님 중심의 새로운 윤리관 : 칠극(七克), 저자: 조광 교수]의 게재 이후인, 1994년 11월에 게재된 논문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http://pds.catholic.or.kr/attbox/bbs/attboard/read.asp?maingroup=1&gubun=
100&seq=201&table=gnattboard&group_id=8&sub_id=5&ReadFlag=T&bbscode=
&id=335&keyfield=&key=&page=&getSeq=201&getID=336&strmember=jpatrick&menunm=
%C7%D1%B1%B9/%BC%BC%B0%E8%20%B1%B3%C8%B8%BB%E7&ctxtMember=
jpatrick&ctxtAuth=R

 

(2) 따라서, 위의 제(1)항의 논문도 또한 우리말 번역서 "칠극" [역자: 박유리 교수]의 부록으로 게재 연대순으로 수록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끝)

 

1-1. 우선적으로, 위에 우리말 단어들로 나열된 일곱 개의 덕들을, 대응하는 영어 용어들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신중 = prudence, 정의 = justice, 자비 = mercy, 강건 = fortitude, 절제 = temperance, 순결 = chastity, 온유 = meekness.

 

1-2. 그리고, 일곱 개의 특정한 죄들을 나열하면서 "칠죄종"이라고 처음으로 불렀던 분은 그레고리오 1세 대교황님이었다고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는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예를 들어, 다음의 글의 제4-2항을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77.htm

 

1-3.

질문 1: 위의 제1항에 발췌된 논문에서 제시한 분류인 "'신중, 정의, 자비, 강건, 절제, 순결, 온유'가 칠극의 원저자인 빤또하 신부의 칠추덕(七樞德)과 표현상 차이가 있을 뿐 내용은 같다" 라는 위의 논문에서의 주장은 사실인지요? 혹시라도 사실이라면, 그 출처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십시오.

 

질문 2: 더 나아가, 빤또하 신부가 "천학초함"에 실려있는 자신의 저술인 "칠극" 본문 중에서 혹시라도 "七樞德"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경우가 있다면, 또한 "천학초함"에 실린 "칠극" 본문 중의 해당 페이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십시오.

 

질문 3: 다른 한편으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본문 어디에, 위의 제1항에 발췌된 논문에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칠추덕(七樞德, seven cardinal virtues)으로서 분류하였다고 주장하는 '신중, 정의, 자비, 강건, 절제, 순결, 온유'가 한 개의 전후 문맥 안에 나열되어 있는지요? 혹시라도 있다면, 그 출처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십시오.

 

질문 4: 더 나아가, "seven cardinal virtues" 이라는 표현 혹은 이 표현에 논리적으로 등가인 표현이 실제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본문 중에 단 한 번이라도 등장하는지요?

 

2.

2-1. 질문 4에 대한 답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등장하지 않습니다. 혹시 이 답변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한 분께서는 저에게 즉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구체적으로 확인 후에 바로잡도록 하겠습니다.

 

2-2. 질문 3에 대한 답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뿐만이 아니라, 다음의 홈페이지에 나열되어 있는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다른 저술들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혹시 이 답변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한 분께서는 저에게 즉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구체적으로 확인 후에 바로잡도록 하겠습니다.:

http://dhspriory.org/thomas/

 

2-3. 질문 2에 대한 답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전혀 없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이 답변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한 분께서는 저에게 즉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구체적으로 확인 후에 바로잡도록 하겠습니다.

 

2-4. 질문 1에 대한 답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사실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혹시 이 답변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한 분께서는 저에게 즉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구체적으로 확인 후에 바로잡도록 하겠습니다.

 

3.

상식의 선에서 생각하더라도, 아마도 다음의 질문 5는 위의 질문들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일 것입니다:

 

질문 5: 언제, 누구가 "칠추덕(seven cardinal virtues)"라는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사용하지 않는 표현을 처음으로 만들어내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는지요?

 

질문 5에 대한 답변 시작: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나름대로 열의를 내어 위의 제2항에서 말씀드린 바를 확인하고 난 후에, 더 나아가 위의 질문 5와 동일한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는데, 다음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확인한 바입니다:

 

3-1. 다음은 Wikipedia에 주어진 "seven virtues"에 대한 설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내용을 신뢰할 수 있다면, 누구가 처음으로 "seven cardinal virtues" 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만들어 내어 사용하였는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Seven_virtues
(발췌 시작)
After the New Testament was written, these four virtues became known as the cardinal virtues, while faith, hope and charity were referred to as the theological virtues. But Stalker, in his book The Seven Cardinal Virtues, says, "It is of distinct advantage to be reminded that the Christian character has a natural foundation... but certainly the latter are cardinal also--that is, hinge virtues; and it is convenient to have a single adjective for designating the whole seven".

 

신약 성경이 저술된 후에, 이들 네 개의 덕들은 추덕(cardinal virtues)들로서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와는 달리 믿음(faith, 신덕), 희망(hope, 망덕), 사랑(charity, 애덕)은 향주덕(theological virtues)들로서 언급되었습니다. 그러나 [영국 스코틀란드 장로파 개신교 신자로 알려진] Stalker(1848-1927년)는, 자신의 책 The Seven Cardinal Virtues(칠추덕) (1902년)에서, "그리스도교 특징이 한 개의 자연적 기초를 가지고 있음을 상기하게 되는 것은 뚜렷한 이점이며 ... 그러나 확실하게 후자는 또한 주되며(cartinal), 즉, 추덕(hinge virtues)들이며, 그리고 이 전체 일곱을 나타내기 위하여 한 개의 단수의 형용사를 가지는 것은 편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상, 발췌 끝)

 

3-2. Stalker의 1902년 출판된 책인 "The seven cardinal virtues"은 다음에 있으며, 그리고 위의 제3-1항에 발췌된 문장은 본분 제 4쪽에 있습니다:

출처 1: https://ia600307.us.archive.org/attachpdf.php?file=%2F27%2Fitems%2Fsevencardinalvir00staluoft%2Fsevencardinalvir00staluoft.pdf

출처 2: https://archive.org/stream/sevencardinalvir00staluoft#page/4/mode/2up

 

3-3. 그러므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자신의 저술인 "신학 대전"에서 분류하고 있는 바를 수용한 가톨릭 그리스도교 윤리 신학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i) 하느님에 의하여 세례 시에 세례를 받는 자의 영혼에 성화 은총과 함께 주입되는 또다른 특별한 은총들인, 따라서 사람이 자신의 인간적이 노력만으로는 조금도 습득할 수 없는, 초자연덕(supernatural virtues)들인 향주삼덕[the three theological virtues, 즉 신덕(faith, 믿음), 망덕(hope, 희망), 애덕(charity, 사랑)](ii) 그렇지 아니한, 즉 사람이 자신의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도 일정 수준까지 습득할 수 있는 덕들, 즉, 습득덕(the acquired virtues)들이라는 자연덕(the natural virtues)들로서, 주된 윤리덕들인 사추덕[the four cardinal virtues, 즉 현명(prudence), 정의(justice), 절제(temperance), 굳셈(fortitude)]로 구분하여 불러온, 이들 일곱 개의 덕들을 두고서 어떤 가톨릭 신자가, 예를 들어, 위의 제1항에서 말씀드린 한 편의 논문에서처럼, 개신교 신자인 Stalker의 주장에 동조하여 "칠추덕(the seven cardinal virtues)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보통 수준의 가톨릭 교우들을, 동일한 단어들을 사용하나 그러나 통상적으로 그 교리적 의미가 가톨릭측과 다른 경우가 더러 있는 그리하여 개신교측의 용어들과 뒤섞었을 경우에 발생하게 되는, 중대한 개념 혼란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역할을 하기 떄문에, 결과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윤리신학 용어들을 훼손하는 행위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3-4. 그리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자신의 저술인 "신학 대전"에서 분류하고 있는, 그리고 바로 위의 제3-3항에 구체적으로 나열해 드린, "향주삼덕들 + 사추덕들" 은, 위의 제1항에서 발췌된 문장 중에서 "칠추덕"이라고 불리면서 나열되고 있는 일곱 개의 덕들, "신중, 정의, 자비, 강건, 절제, 순결, 온유"과 결코 동일하지 않습니다.

 

3-5.

3-5-1.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교회의 천사적 박사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은 13세기 중반쯤에 저술되었고 그리고 이 문헌에 담긴 내용들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1323년 7월 18일자로 시성(諡聖)된 이후,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수용되었기 때문에,(*) 명나라 말기(16세기말 - 17세기 초)에 예수회 소속 사제로서 중국에 와 선교 활동을 하면서 중국어로 "칠극"을 저술하였던 빤또하 신부가 자신의 저술인 "칠극"에서 사용한 일곱 개의 덕들을 나타내는 용어들 각각의 의미/정의(definition)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자신의 신학 대전에서 사용하고 있는 동일한 용어의 의미/정의(definition)와 동일하였을 것임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하더라도,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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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예를 들어, 다음의 글의 부록 2를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19.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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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에 주어진 내용들의 전개 방식 전반을 고찰할 때에,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에 의하여 처음으로 일곱 가지로 나열된 것으로 알려진(*), 소위 말하는 칠죄종(the seven capital sins)들을 극복하기 위한 일곱 개의 덕들을 서술하는 것을, 빤또하 신부님의 저서인 "칠극"에서처럼 자신의 저술의 주된 목적으로 삼고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 대전을 저술하지 않았다는 것도,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하더라도, 또한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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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여기서, "교만(pride)"과 "허영(vainglory)"을 구분할 경우에는 일곱 개가 아니고 여덟 개이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지료들에 있다:
http://www.sjc.ox.ac.uk/5921/Path_That_Sinners_Handlist.pdf.download

http://www.ecatholic2000.com/job/untitled-47.shtml#_Toc385932161 [제87항]

http://www.lectionarycentral.com/GregoryMoralia/Book31.html [제87항의 뒤에서 두 번째 문장을 꼭 읽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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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예를 들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에 담긴 전반에 걸친 내용이, 전통적인 가톨릭 그리스도교 윤리 신학 분야에만 오로지 국한되지 않고, 훨씬 더 포괄적으로, 자연법(the natural law)의 범주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대폭 수용하면서, 그 위에다, 그 당시까지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도권에서 신앙의 유산(the deposit of faith)으로서 잘 보존해 오면서 또한 가르쳐 온 계시 진리들, 즉, 하느님의 법(the divine law), 즉, 계시된 법(the revealed law)의 범주를, 특히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of Hippo, 354-430년)의 가르침들을, 결합시키는 방식의 근본적 서술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5-3. 더 구체적으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본문에서, "향주삼덕들 + 사추덕들" 에 반대되는 여러 악덕들은 다음에 나열되어 있는데, 이들은 결코 "칠죄종들"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지 않습니다:

http://www.newadvent.org/summa/3.htm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고찰의 결과, 이제 우리가 다음의 질문 6을 하게 되는 것은, 우선적으로, "칠극"의 저술 정신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나름대로 유의미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질문 6: 빤또하 신부가 자신의 중국어 저술인 "칠극"의 구조, 즉, "칠극"의 저술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지중해 지역에서 저술된, 저서들이 혹시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4.

4-1. 다음에 접속하면, 칠죄종들을 극복하게 하는 일곱 개의 덕들을 알 수 있는데, 특히 이들 일곱 개의 덕들이, "the cardinal virtues" 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라"the contrary virtues(상반덕들)" 라고 불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에 발췌된 표에서 괄호 안의 우리말 번역문 표기는, 이 글의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삽입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fisheaters.com/lists.html#9

(발췌 시작)

The 7 Capital Sins and their Contrary Virtues

Capital Sin

Definition

Contrary Virtue

Pride (교만) 

Unrestrained appreciation of our own worth

Humility (겸손)
Greed (탐욕)  

Immoderate desire for earthly goods

Liberality (관대)
Lust (음욕)

Hankering for impure pleasures

Chastity (정조, 금욕)
Anger (분노)

Inordinate desire for revenge

Meekness (온유)
Gluttony (식탐)  

Unrestrained use of food and drink

Temperance (절제)
Envy (질투)

Sorrow over another's good fortune

Brotherly Love [형제애, 서(恕)] 
Sloth (나태)

Laxity in keeping the Faith and the practice of virtue

Diligence (성실, 근면, piety)

 

 

Note:
The 7 Capital Sins, also known as "The 7 Deadly Sins," are those sins that give rise to other sins. They were first enumerated by Pope St. Gregory the Great in "Moralia in Job."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4-1: (중간 결론 1) "칠극"에서 칠죄종들을 극복하게 하는 덕들로서 제시되고 있는 일곱 개의 덕들과 위의 표에 제시된 일곱 개의 덕들을 비교/검토하면, 위의 표에서, 질투(envy)를 극복하게 하는 덕으로 제시된 "형제애(brotherly love)" [주: 이 덕을 "칠극"의 저자인 빤또하 신부는 "恕(서)"로 차용 번역한 후에 본문 중에서 자신이 차용 번역 용어로서 선택한 "恕(서)"의 의미는 다른 이들에 대한 자연적 애덕(natural charity)의 사랑인 "형제간의 우애"를 말함을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또한 아래의 제4-3항에서 "kindness"에 주어진 설명을 읽도록 하라] 을 포함하여, 이들이 "칠극"에서 칠죄종들을 극복하게 하는 덕들로서 제시되고 있는 일곱 개의 덕들과 대동소이함을 알 수 있습니다.

 

4-2. 바로 위의 제4-1항에서 말씀드린 바는 또한 다음의 Wikipedia에 주어진 "seven virtues"에 대한 설명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일곱 개의 덕들이 또한 "the heavenly virtues(하늘에 있는 덕들)" 라고 불림을 알 수 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Seven_virtues

http://en.wikipedia.org/wiki/Seven_deadly_sins

 

4-3.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위의 제4-1항제4-2항에 안내된 바들에 근거하여 작성되었다는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aquinasandmore.com/catholic-articles/the-seven-capital-virtues/article/247/sort/relevance/productsperpage/12/layout/grid/currentpage/1/keywords/capital%20virtues

(발췌 시작)
The Seven Virtues

(Also called the Seven Contrary Virtues or Seven Heavenly Virtues)

 

일곱 개의 덕들

(또한 일곱 개의 상반되는 덕들 혹은 일곱 개의 하늘에 있는 덕들로 불림)

 

The concept of the seven capital virtues has been an aspect of Catholic Faith for several centuries, having gained recognition and popularity in the middle ages. This list of seven virtues is a set of virtues which are to counter the temptation to succumb to the seven capital sins. For this reason, they are sometimes also called the seven contrary virtues; they represent the opposite of the seven sins.

 

일곱 개의 주된 덕(the seven capital virtues)들에 대한 개념은 [그리스도교 초기의] 여러 세기들 동안 가톨릭 신앙의 한 양상이 되어 왔으며, 그리하여 그 결과 중세 시기에 인정과 대중성을 이미 획득하였습니다. 일곱 개의 덕들로 이루어진 바로 이 목록은 칠죄종(the seven capital sins)들에 굴복하라는 유혹에 대항하기 위한 덕들로 이루어진 한 개의 집합입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그들은 때로는 일곱 개의 상반되는 덕(the seven contrary virtues)들이라고 또한 불리며, 그리고 그들은 이 일곱 개의 죄들에 대한 반대(opposite)를 나타냅니다.  

 

The list of seven capital virtues stems from the subject matter of an epic poem written by an early Christian poet, Aurelius Prudentius Clemens, at the end of the 4th century. The poem, Psychomachia (meaning Battle of Souls), is an allegory which describes seven virtues defeating seven vices.

 

일곱 개의 주된 덕들의 목록은, 4세기 말에, 초기의 그리스도인 시인이었던 [스페인에서 출생한 로마인인] Aurelius Prudentius Clemens(*)에 의하여 저술된 한 개의 서사시적인 시의 주제로부터 유래합니다. 이 시 (영혼들의 전투를 의미하는) Psychomachia 는 일곱 개의 악덕들을 패배시키는 일곱 개의 덕들을 서술하고 있는 한 개의 풍유(allegor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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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스페인에서 출생한 로마인인 Aurelius Prudentius Clemens(348-413년경) 에 대한 기록은 다음에 있으니 또한 참고하라:
http://en.wikipedia.org/wiki/Prudentius


(**) 번역자 주: 칠죄종들이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에 의하여 지금의 칠죄종들로 처음으로 나열된 것이 6세기였으므로, 4세기 말에 저술된 시 Psychomachia 에 대한 이 마지막 문장에 주어진 바로 이 언급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며, 이에 대하여, 이 글의 별도의 항에서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생각이다. 이 오류에 대하여서는 이어지는 제5항을 필독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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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ven contrary or capital virtues are as follows:

 

일곱 개의 상반되는 혹은 주된 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게시자 주: 아래의 일곱 개의 덕들에 대한 설명에서, 괄호 안에 표시한 성경의 근거 구절들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기입한 것입니다.

 

Humility – Humility is the virtue that counters pride. As pride leads to other sin, true humility clears a path for holiness. Pride is a sin based on undue and inappropriate appreciation of one’s self worth. Conversely, the virtue of humility is about modest behavior, selflessness and the giving of respect.

 

겸손(humility, 콜로새 3,12) -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가 영적 가난에 근거하여 이해한(understand by poverty of spirit)] 겸손은 교만(pride)에 대항하는 덕입니다. 교만이 다른 죄로 인도하므로, 참된 겸손은 거룩함(holiness)을 위한 한 개의 길을 깨끗하게 합니다. 교만은, 자신의 고유한 가치에 대한 정당하지 않은 그리고 부적절한 평가에 근거하는, 한 개의 죄입니다. 역으로, 겸손이라는 덕은 온건한(moderate) 처신, 사심 없음(selflessness) 그리고 존경의 제공 행위에 관한 덕입니다.

 

Liberality – Liberality, or generosity, is the virtue that is counter to greed – the sin of immoderate desire for earthly things. The virtue of liberality is focused not merely on the appropriate concern regarding one’s earthly things, but furthermore on generosity and a willingness to give, freely and without request for commendation.

 

너그러움(liberality, 갈라티아 5,22) - 너그러움 혹은 관대함(generosity)은, 세속의 사물들에 대한 지나친(immoderate) 욕먕이라는 죄인, 탕욕(greed)에 대항하는 덕입니다. 너그러움이라는 덕은 단지 당사자의 세속의 사물들에 관한 적합한 관심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무료로 그리고 칭찬(commendation)에 대한 요구 없이, 제공하고자 하는 관대함과 어떤 기꺼이 행하고자 함에도 촛점이 맞추어집니다.

 

Chastity – Chastity is the counter-virtue to the sin of lust. Chastity embraces moral wholesomeness and purity, and in both thought and action treats God’s gift of sexuality with due reverence and respect.

 

순결/정조(chastity, 2코린토 6,6; 1티모테오 4,12) - 순결/정조는 음욕(lust)이라는 죄에 대항하는 덕입니다. 순결/정조는 윤리적 건전함(wholesomeness)과 순수성을 포함하며, 그리고 생각과 행위 둘 다에 있어 성(sexuality)이라는 하느님의 선물을 정당한 존중 및 존경으로써 대우합니다.

 

Meekness – Meekness, or patience, is the virtue that counters the sin of unjust anger, also called wrath or rage. Where the sin of wrath is about quick temper and unnecessary vengeance, the virtue of meekness focuses on patiently seeking appropriate resolution to conflicts, and on the ability to forgive and show mercy.

 

온유함(meekness, 콜로새 3,12) - 온유함, 혹은 인내(patience)는, 또한 분노(wrath) 혹은 격노(rage)라고 불리는, 불의한 노여움(unjust anger)이라는 죄에 대항하는 덕입니다. 분노라는 죄가 성급함과 불필요한 복수(vengeance)에 관한 것인 데에 비하여, 온유함이라는 덕은 다툼(conflicts)들에 대한 적절한 해결을 인내하면서 모색하는 데에, 그리고 용서하고 그리고 자비를 베푸는 능력에, 촛점을 맞춥니다.

 

Temperance – The virtue of temperance or abstinence counters the sin of gluttony. To be gluttonous is to over-indulge. On the opposite hand, the virtue of temperance is centered on self-control and moderation.

 

절제(temperance, 1테살로니카 5,22) - 절제 혹은 자제(abstinence)라는 덕은 탐도(gluttony)라는 죄에 대항합니다. 음식에 욕심이 많은 것은 지나지게 탐닉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반대의 편에서, 절제라는 덕은 자제(self-control)와 중용(moderation) 위에 중심이 잡혀있습니다.

 

Kindness – Kindness, or brotherly love or love for one’s neighbor,(***) is the virtue which counters the sin of envy. Envy, in contradiction to God’s law of love, is manifest in a person’s sorrow and distress over the good fortune of another person. Conversely, kindness and brotherly love is manifest in the unprejudiced, compassionate and charitable concern for others.

 

자애(慈愛, kindness, 갈라티아 5,22; 콜로새 3,12; 2코린토 6,6) - 자애, 혹은 형제애 혹은 자신의 이웃에 대한 사랑(***)질투(envy)라는 죄에 대항하는 덕입니다. 애덕(love)이라는 하느님의 법에 상반되는 질투(envy)는 다른 인격의 행운에 대한 한 인격의 슬픔과 비통에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역으로, 자애(慈愛, kindness)와 형제애는 다른 이들에 대한 편견이 없는(unprejudiced), 동정심 있는(compassionate) 그리고 다른 이들에 대한 사랑과 선의로 가득찬(charitable) 관심에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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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중간 결론 2) 중국어로 저술된 "칠극"의 저자로서 스페인 출신의 예수회 소속의 빤또하 신부는, 성령의 열두 개의 열매들 중의 한 개로 나열되고 있는, 초자연덕들인 향주삼덕들 중의 하나인 애덕(charity)에 포함되는, "타인들에 대한 애덕이라는 사랑"을 말하는 이 덕 kindness 을 중국어 단어 "서(恕)"로 차용 번역하였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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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igence – Diligence, or persistence, is the virtue which acts as a counter to the sin of sloth. Sloth, as a capital sin, refers to laziness in matters of Faith. Diligence in matters of the spiritual combat laziness and this virtue is manifest in appropriately zealous attitudes toward living and sharing the Faith.

 

성실/근면[diligence, 로마 12,11,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 근면, 혹은 끈기(persistence)나태(sloth)라는 죄에 대한 한 개의 대항으로서 작용합니다. 한 개의 죄종으로서 나태(sloth)는 신앙(Faith, 신덕)의 사안(matters)들에 있어 게으름(laziness)에 대한 언급입니다. 영적 투쟁에 있어서의 게으름의 사안들에 있어 근면 그리하여 이 덕은 신앙(Faith, 신덕)을 실천함과 함께 나눔을 향하는 적절하게 열의있는(zealous) 태도들 [즉, 성실(faithfulness), 즉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에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4-4. 다음은 Psychomachia 라는 저술의 내용에 대한 글입니다: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Psychomachia

(발췌 시작)

Characters

 

특징들

 

Chastity is assaulted by Lust, but cuts down her enemy with a sword.
Anger attacks Patience, is unable to defeat her and destroys herself instead.
Greed is portrayed against Love, but is unable to obtain what it cannot coexist with.

 

애덕(Charity)는 음욕(Lust)에 의하여 공격을 받으나, 그러나 그녀의 원수를 한 칼로써 베어 넘어뜨립니다.

분노(Anger)가 인내(Patience)를 공격하나, 그녀를 패배시킬 수 없으며 그리고 대신에 그녀 자신을 파괴합니다.

탐욕(Greed)은 사랑(Love)에 반하여 묘사되나, 그러나 그것은 함께 상호 존재할 수 없는 바를 회득할 수 없습니다.


In a similar manner, various vices fight corresponding virtues and are always defeated. Biblical figures that exemplify these virtues also appear (e.g. Job as an example of patience).

 

어떤 유사한 방식으로, 다양한 악덕(vices)들은 대응하는 덕들과 싸우고 그리고 항상 패배당합니다.(*) 이들 덕들을 예시하는 성경의 표상들이 또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인내의 모범으로서 욥(J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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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이 문장으로부터 우리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바은 거의 없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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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pite the fact that seven virtues defeat seven vices, these are not the canonical seven deadly sins, nor the three theological and four cardinal virtues.

 

일곱 개의 덕들이 일곱 개의 악덕들을 패배시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통상적인(canonical) 칠죄종들이 아니고, 또한 세 개의 향주덕들과 네 개의 추덕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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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칠죄종들이 성 그레고리고 1세 대 교황에 의하여 지금의 칠죄종들로 처음으로 나열된 것이 6세기였으므로, 4세기 말에 저술된 시 Psychomachia 에 대한 바로 이 언급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며, 이에 대하여, 이 글의 별도의 항에서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생각이다. 이 오류에 대하여서는 이어지는 제5항을 필독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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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5.

5-1. 다음은 4세기 말에 Aurelius Prudentius Clemens에 의하여 저술된 시 Psychomachia 의 영어본입니다. 이 자료 1은, 미국 Richmond 대학교 Walt Stevenson 교수의 홈페이지에 안내된 개설된 강좌에서 읽어야 하는 자료들 중의 한 개로서 올려졌던 자료이므로, 이 영어본의 번역은 신뢰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자료 1: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70.htm

[참고 자료: https://facultystaff.richmond.edu/~wstevens/grvalsyl_00.html]

 

5-2. 다음은 4세기 말에 Aurelius Prudentius Clemens에 의하여 저술된 시 Psychomachia 의 라틴어 원문 및 영어본입니다:

 

자료 2: https://archive.org/download/prudentiuswithen01pruduoft/
prudentiuswithen01pruduoft.pdf
 [제274-343쪽]

 

5-3. (중간 결론 3)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위의 제5-1항제5-2항에 안내해 드린 자료들을 들여다 보았더니, 위의 제4-3항에 구체덕으로 나열된 "칠죄종"들과 동일한 죄들 전부가 아닌 일부만이 Aurelius Prudentius Clemens에 의하여 저술된 시 Psychomachia 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을 뿐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이 시에는, "질투(envy)" 가 끼치는 해악에 대한 설명과 그리고 이에 반하는 덕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제4-3항에 발췌된 문장들 중의 일부는, 이미 게시자 주로서 지적하였듯이, 결코 신뢰할 수 없습니다

 

5-4. (중간 결론 4)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본문에서, "칠죄종"들과 이들에 상반되는 덕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문장들을 발췌한 것이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이들 덕들은 "칠극"에서 제시하는 "상반되는 일곱 개의 덕들"과 대동소이하다는 생각입니다:

 

Whether the seven capital vices are suitably reckoned?:

http://www.newadvent.org/summa/2084.htm#article4

 

Sloth and envy, which are opposed, respectively, to our own joy and the joy of our neighbor:

http://www.newadvent.org/summa/3.htm

 

The contrary virtues of gluttony and lust are abstinence (1테살로니카  5,22) and chastity (2코린토 6,6; 1티모테오 4,12):

http://www.newadvent.org/summa/3015.htm#article3


Sloth is opposed to the precept about hallowing the Sabbath day:

http://www.newadvent.org/summa/3035.htm#article3

 

Envy is contrary to pity and charity:

http://www.newadvent.org/summa/3036.htm#article3

 

Just as sloth is grief for a Divine spiritual good, so envy is grief for our neighbor's good:

http://www.newadvent.org/summa/3036.htm#article4

 

Covetousness is opposed to liberality (갈라티아 5,22):

http://www.newadvent.org/summa/3118.htm#article3

 

Anger is moderated by meekness (콜로새 3,12):

http://www.newadvent.org/summa/3136.htm#article2

 

Humility (콜로새 3,12) is opposed to pride:

http://www.newadvent.org/summa/3161.htm#article2

 

게시자 주 5-4: 따라서, 6세기에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에 의하여 처음으로 나열되었던 "칠죄종"들을 극복할 수 있는, 그리고 다음의 주소 및 위의 제4-1항에서처럼 현재에도 받아들여지고 있는, 일곱 개의 덕들이, 적어도 13세기 중반쯤에 이르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여 그의 "신학 대전"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http://www.holyspiritinteractive.net/features/catholichandbook/37_ofvirtuesandvices.asp

 

질문 6: "칠죄종"들을 패배시키는 바로 이 일곱 개의 덕들 모두가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여 "신학 대전"에서 처음으로 체계적인 윤리 신학적 설명과 함께 제시된 것인지요?

 

5-5. 질문 6에 대하여 답변하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중세에 신학 교재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하는, Peter Lombard(1096-1164년)의 네 권의 저술인 the Book of the Sentences 을 들여다보고 싶은데, 유감스럽게도 다음의 주소에서 라틴어본의 극히 일부만 허용하고 있습니다:

http://www.hs-augsburg.de/~harsch/Chronologia/Lspost12/PetrusLombardus/pet_s000.html

 

다음과 같은 언급때문에, Peter Lombard의 네 권의 저술인 the Book of the Sentences 에서, 특히, Sent. 2 Dist., 42, 8 을 꼭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출처: http://www.forgottenbooks.com/readbook_text/The_American_Ecclesiastical_
Review_v49_1000581497/563

(발췌 시작)

Peter Lombard (Sent. 2 Dist., 42, 8) made one sin of accedia and tristitia, and since his time all theologians speak of only seven capital sins [그의 시기 이후로 모든 신학자들은 오로지 칠죄종들에 대하여 말합니다]. (Cf. Rauschen, Eucharistie und Busssakrament in den ersten 6 Jahrhunderten, Freiburg, 1910, p. 190.)

(이상, 발췌 끝)

 

5-6.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문헌[제목: Editorial Commission of the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가톨릭 교회 교리서 편집 위원회), INFORMATIVE DOSSIER(정보를 제공하는 관련 서류)]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faith/ccc_documents/
rc_con_cfaith_doc_19920625_informative-ccc_en.html

(발췌 시작)

In the XII century we read in the Book of the Sentences of Peter Lombard(7) that, the book which contained the basic interrogation for baptism or for the subsequent formation, was called "catechism"; but still the word did not enter current use.

 

12세기에 우리는 Peter Lombard의 the Book of the Sentences에서, "교리 교육(chtechism)" 이라고 불렸던, 세례를 위한 혹은 그 후의 형성을 위한 질문을 포함하는 책을 읽었습니다만, 그러나 여전히 이 단어는 현행의 사용(current use)으로 들어오지 못하였습니다.

 

Other works, such as the "Lucidari" and "Septenari"(8), adopted different schemes but they aimed always at the same aim: catechizing. These latter works spread widely and made use of the original method of comparing or contrasting seven parts: the seven requests of the Our Father, in relation to the seven Beatitudes and to the seven Gifts of the Holy Spirit. Or else, the seven principal virtues contrasted to the seven capital vices.

 

"Lucidari" 와 "Septenari" 등과 같은 다른 저술들은 서로 다른 도식(schemes)을 채택하였으나 그러나 그들은 교리 교육(catechizing)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항상 겨냥하였습니다. 이들 이후의 저술들은 널리 퍼졌으며 그리고 일곱 개의 부분(seven parts)들을 비교하거나 혹은 대조하는 다음과 같은 원래의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일곱 개의 참행복들에 대한 그리고 칠죄종들에 대한 관계 안에서, 주님의 기도의 일곱 개의 청원들. 혹은 그렇지 않으면. 일곱 개의 주된 덕(the seven principal virtues)(*)이 칠죄종들에 대조되었습니다.

 

-----
(*) 번역자 주: 다음의 자료에 의하면, 여기서 말하는 일곱 개의 주된 덕(the seven principal virtues)은 "향주삼덕"들과 "사추덕"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위의 제4-3항에 나열된 일곱 개의 덕들을 말한다는 생각이다:
http://catholic-resources.org/Bible/Epistles-VirtuesVices.htm

-----

 

In the middle of the XIII Century St Thomas Aquinas - widely known for this theological works - preached in a simple style and in a popular language. Thus short works with a scheme which will be proper of catechisms cropped up: that which one is to believe (Creed); that which one is to hope (Our Father); that which one is to do (the Commandments); grace for all the Christian life (the Sacraments)(9).

 

13세기 중반에, 다음과 같은 신학적 저술들 때문에 널리 알려진,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한 개의 단체적 양식(a simple style)으로 그리고 한 개의 대중적 언어로 설교하였습니다. 따라서 교리 교육(catechisms)들에 장차 고유하게 될 한 개의 도식(a scheme)을 가진 다음과 같은 간결한 저술들이 예상밖으로 갑자기 나타났습니다(cropped up):(*)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신앙 고백, Creed), 우리가 희망하여야 하는 것(주님의 기도, Our Father), 우리가 행하여야 하는 것(계명들, the Commandments),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삶 모두를 위한 은총(성사들, the Sacraments).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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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다음에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서인 "교리 교육 지침들(The Catechetical Instructions)" 을 말한다는 생각이다:
http://www.intratext.com/IXT/ENG0029/_INDE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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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2015년 10월 24일자 내용 추가 끝]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질문 6에 대한 답변:

(1) 위의 제4-3항제5-5항 그리고 제5-6항에 의하여, 칠죄종들에 대항하는 일곱 개의 덕들을 처음으로 제시한 자가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니었을 것임은 상당히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 본문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자 누구든지, 위의 제4-3항에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괄호 안에 표기한 것처럼, 이들 일곱 개의 덕들의 성경의 근거 구절들을 직접 찾아내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그러나, 이들 일곱 개의 덕들의 성경 근거 구절들을 찾아내었다고 하더라도 이들 일곱 개의 덕들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이 주어진 문헌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에 주어진 체계적인 설명에 필적할만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문헌은 성 토마스 아튀나스의 신학 대전이 저술된 시기보다 더 이전의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입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특히 위의 제5-6항에 발췌된 문장에서 세 번째 단락을 읽도록 하십시오.

 

(3) 사실, 이들 칠죄종들 각각은 사람들의 세속의 경험들로부터 인지되므로 자연법(the natural law)의 범주에 속하고, 그리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가르침에 의하면 십계명들은 자연법을 포함하므로,(*) 십계명들의 범주 내에서 이들 칠죄종들에 대항하는 일곱 개의 윤리덕들을 단순히 찾아 내는 것 그 자체는 그리 힘든 일이 아닐 것이며, 특히 다행스럽게도 이들 일곱 개의 덕들에 대한 언급들이 신약 성경 본문 중에 제시되어 있음도, 이 글에서, 이미 확인하였습니다. 

 

-----
(*) 게시자 주: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글들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07.htm [제목: 자연법과 계시된 법의 차이점]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62.htm [제목: 그리스도 안에 있는 도움들 두 개]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64.htm [제목: 법의 종류들]
-----

 

(4)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들 일곱 개의 덕들을 지칭하는 단어들을 단순히 성경 본문에서 찾아내었다고 함이 이들을 알게 된 당사자들이 칠죄종들을 확실하게 제압할 힘/능력들을 가졌음을 필연적으로(necessarily) 의미하는 것이 아님에 반드시 주목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이들 일곱 개의 덕들의 완미한(perfect) 획득을 위하여 원죄의 결과로 우리들 각자의 지성(intellect)에 있는 무지(ignorance)라는 어두움을 물리쳐야 하고, 그리고 [변성(變成)함에 있어 연(緣)의] 비필연적(非必然的, contingent)인(#) 상황/여건에서 이들 일곱 개의 덕들의 완미한(perfect) 실천을 위하여 또한 원죄의 결과로 병들어 있는 우리들 각자의 나약한 자유 의지(free-will)를 하느님의 뜻/의지에 합당하게 행사하여야 하므로(로마서 12,2), 이를 위하여 우리는 "초자연적 특별한 선물"인 "은총(grace)"이라는 "하느님의 도움"을 반드시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81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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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변성(變成)함에 있어 연(緣)의] 비필연적(非必然的)인" 으로 번역된 "contingent" 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에 있으니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5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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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따라서, "하느님의 섭리"라는 커다란 맥락 아래에서, 칠죄종들 서로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설명하는 일 그리고 이들에 대항하는 일곱 개의 덕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설명하는 일은, 이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연역적 추론(deductive reasoning)의 방식으로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적 논거들을 먼저 제시하여야 하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인데, 바로 이 부분을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예를 들어, 자신의 저술인 신학 대전에서 초자연덕(supernatural virtues)들인 "향주삼덕(the three theological virtues)"들과 자연덕(natural virtues)들인 "사추덕(the four cardinal virtues)"들, 즉, 소위 말하는 "일곱 개의 근본덕(the seven fundamental virtues)"들에 근거한 연역적 추론(deductive reasoning)의 방식으로 이들 일곱 개의 덕들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음을 볼 때에, 대단히 잘 체계화하였다는 생각입니다.

 

(6)  이제,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어 덕(virtue)의 의미]을 읽을 것을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70.htm <----- 필독 권고

이상, 질문 6에 대한 답변 끝)

 

이번 글은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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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들:

 

"seven principal virtues" "capital vices" "remedial virtues"

 

http://www.ocso.org/index.php?option=com_docman&task=
doc_download&gid=273&Itemid=147&lang=en

 

http://books.google.co.kr/books?id=x5FiMR3kd_8C&pg=PA1368&lpg=PA1368&dq=
%22seven+principal+virtues%22+%22contrary+virtues%22+%22Virtues+and+vices
%22&source=bl&ots=jQXv7OduGi&sig=-F7rzUuQkKartzgT8x9BddMnCnw&hl=ko&sa
=X&ei=n8QBVJfcBtPU8gWPi4GgAw&ved=0CBkQ6AEwAQ#v=onepage&q=
%22seven%20principal%20virtues%22%20%22contrary%20virtues%22%20%22Virtues
%20and%20vices%22&f=false

 

"Seven victories" "chinese" "Pantoja"

 

https://ia600305.us.archive.org/attachpdf.php?file=%2F10%2Fitems%2Fhandbookofmoralt01kochuoft%2Fhandbookofmoralt01kochuoft.pdf [Handbook of Moral Theology, Dominic M. Prummer, O.P.]

 

http://books.google.co.kr/books?id=wtUGwJwEQ7UC&pg=PA424&lpg=PA424&dq=
%22Seven+victories%22+%22chinese%22+%22Pantoja%22&source=bl&ots=
8gmgI1ljl1&sig=D70Y5uB-vcZnvoxmURq3AlIupCo&hl=
ko&sa=X&ei=elQCVPGqGoeE8gXAh4HICA&ved=0CBgQ6AEwAQ#v=onepage&q=
%22Seven%20victories%22%20%22chinese%22%20%22Pantoja%22&f=false

 

http://www.ces.org.tw/main/fcrc/fcrc_wksp/wksp-1b.htm

 

http://worldhistoryconnected.press.illinois.edu/10.3/forum_rausch.html

 

읽을꺼리 1: 최기섭 신부님의 칠극(七克) 이야기 [평화방송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 기고글들의 모음]

 

-----

http://www.secondspring.co.uk/books/Fruits%20and%20Gifts.pdf

주의 사항 한 개: 바로 위의 글 중에서 성령의 열매들은 덕(virtues)들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데, 이것은 오류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용어집"에 주어진 "chastity(순결/정조)"에 대한 설명을 읽도록 하십시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cc_glossary.htm#c

(발췌 시작)

CHASTITY: The moral virtue which, under the cardinal virtue of temperance, provides for the successful integration of sexuality within the person leading to the inner unity of the bodily and spiritual being (2337). Chastity is called one of the fruits of the Holy Spirit (1832).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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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필요: 

http://www.patheos.com/blogs/christophers/2013/12/video-father-jonathan-morris-on-the-fruits-of-the-holy-spirit/

 

위의 동영상 내용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의 글:
http://www.patheos.com/blogs/christophers/2013/10/gifts-of-the-holy-spirit/

-----

 

http://www.corneliusbiblecommentary.faithweb.com/galatians45.htm

 

http://www.newadvent.org/summa/207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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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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