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주님 승천 대축일]승천 (마르 16,15-20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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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승천 대축일]승천 (마르 16,15-20ㄴ) 오늘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 사업을 완수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음을 기리는 주님 승천 대축일이다. 교회는 이 주님 승천 대축일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40일째 되는 부활 제6주간 목요일에 지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부활 제7주일로 옮겨 지낸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하시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신다.(사도 1,1-11). 1 테오필로스 님, 첫 번째 책에서 저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처음부터 다 다루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다고 한다 (에페 1,17-23). 형제 여러분,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시고 승천하신다.(마르 16,15-20ㄴ).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주님 승천 대축일 제1독서(사도1,1~11)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눈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9~11)
사도행전 1장 9절에서 11절까지는 예수님의 승천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강생하신 후 성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명하신 인류 구속 사업을 완전히 마치신 후 다시 하늘 옥좌로 돌아가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심판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하늘 옥좌에서 계속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 여기서 '보는 앞에서'로 번역된 '블레폰톤'(bleponton)은 현재 능동태 분사로서 '보고 있을 때'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승천이 제자들이 보고 있을 때 이루어졌다는 것은 승천이 꾸며 낸 일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임을 보여준다. 또한 '오르셨는데'에 해당하는 '에페르테'(eperthe; he was taken up)는 사도행전 1장 2절의 '승천하신'에 해당하는 '아넬렙테'(anelepthe)처럼 수동태이다. 예수님의 승천은 바로 예수님의 지상의 모든 활동을 기쁘게 여기신 성부 하느님의 장엄한 역사적 행위였다.
예수님께서 구름에 싸여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은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인간이 되어 탄생하신 사실 만큼이나 신비한 일이었다 (루카 2,5~7). 이 세상에 신비하게 오신 예수님께서는 신비하게 이 세상을 떠나가셨고, 또한 재림 때에도 천군 천사와 함께 심판주로서 신비하게 오실 것이다.
한편, 루카복음 24장 50절과 51절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셨다. 루카 복음은 예수님을 제자들을 축복하는 대사제의 모습과 제자들이 예수님을 예배하는 모습으로 승천 기사를 다루었다. 사도행전 1장의 승천 기사가 역사적 측면을 강조했다면, 루카 복음 24장은 예배적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9) 직역하면 '구름이 그들의 눈(시야)으로부터 그를 붙잡아 데려갔다'이다. 성경에서 '구름'은 예수님의 신적 권세를 나타내는 데 자주 사용된다. 예수님께서 타볼산에서의 변화(마르 9,7; 루카 9,34.35), 올리브산에서의 승천과 재림에 대한 말씀(마태26,64; 마르13,26)이라는 중요한 사건들에 있어서 구름과 함께 등장하시는 모습은 과거 하느님께서 모세의 만남의 천막에 영광으로 임재하셨던 일을 상기시킨다(탈출40,35).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본문에서 '하늘'은 물론 공중을 의미하지만,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하늘은 반드시 장소적 개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라논'(uranon)의 원형 '우라노스'(uranos)는 신약 성경에서 272회나 사용된 단어로서 다양한 용례로 사용되었다. 천사들과(마태18,10; 에페3,15) 하느님의 옥좌(묵시11,13)가 있는 곳이며,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곳이며(마르1,11; 히브12,25) 성령이 내려오는 곳이고(사도2,2; 마태3,16), 진노와 심판이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루카17,29).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주권을 행사하시는 곳이다(히브8,1). 이처럼 성경에서 '하늘'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신성(神性)과 관련된 신학적 개념으로 자주 등장한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셨다는 승천의 의미는 장소적 이동의 개념을 넘어서 인간이 받는 제약이 없는 세계, 물리적 법칙이나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초월한 차원(세계)에로의 이동을 말한다.
'그들이 ~유심히 바라보고'로 번역된 '아테니존테스'(atenizontes)는 '~에 눈을 고정시키다', '응시하다'라는 뜻을 지닌 '아테니조'(atenizo)의 현재 능동태 분사 복수형으로서, '있는데'로 번역된 미완료 동사 '에산'(esan)과 더불어 '그들이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즉 본문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리워지고 구름 사이로 들어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기까지, 잠시라도 그들의 눈을 떼지 못한 채로 보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흰 옷을 입은 두 사람' '사람'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가리키는 대상은 분명히 천사들이다. 사실 흰 옷 차림은 천사들의 상징이기도 하다(마태28,3; 요한20,12). '흰'으로 번역된 '류카이스'(leukais)는 성경에서는 빛이 날 만큼 흰 상태나 광채가 나는 상태(마르9,3)를 나타내며, 주로 하느님이나 천사들의 신비스런 모습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마태17,2; 묵시1,14). 천사들은 예수님의 승천과 함께 재림에 관한 사실까지 제자들에게 선포했다. 이처럼 루카는 예수님의 사적을 역사적 관점에서 철저히 기록함과 동시에, 예수님의 하느님의 아들되심을 보다 설득력있게 전하기 위하여 천사와 관련된 사건도 매우 자세하게 기록에 남겼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천사들이 제자들을 향해 부른 이 호칭은 그들의 신분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즉 제자들이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망각하면, 갈릴래아의 일개 평범한 사람에 불과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요한 복음 7장 52절을 보면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날 수 없다고 단정할 정도로 그곳은 영적으로 소외된 지역이고 보잘것 없는 지방에 불과했다. 천사들은 앞으로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땅끝까지 용감한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을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별볼일 없는 갈릴래아 촌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복음의 능력자가 될 것인가?
'왜 하늘만 쳐다보며 서 있느냐?' (11) '쳐다보며'로 번역된 '엠블레폰테스'(emblepontes)는 현재분사로서 진행적 의미를 나타낸다. 이런 뉘앙스를 살려 번역하면, '어찌하여 너희는 계속해서 서서 '하늘을 향해 쳐다보고만 있느냐?'이다. 즉 그들은 예수님께서 사라지고 없는 하늘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또한 초대 교회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루카가 천사의 말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 교회 신도들 가운데서는 그리스도의 재림만 기다리며, 현실적인 이 땅에서의 하느님의 일과 사명을 소홀히 하는 자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육체를 입은 몸으로 구름과 함께 영광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듯이, '그대로'에 해당하는 '호 트로폰'(ho tropon; in like manner)처럼 육체를 입은 몸으로 큰 영광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가시적으로 재림하실 것을 가리킨다.
주님 승천 대축일 복음(마르16,15~20)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5)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르코 복음 16장 15절보다 앞선 부분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불신앙적 모습으로 보여 주면서 역설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 16장 15절 이후부터는 이렇게 믿기 어려운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이후에 제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복음 전파의 명령을 받고, 능력있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가 부활의 종교이고, 그리스도교인들은 그 부활에 대한 증인으로서 그 부활을 증거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 의무가 믿는 이들에게 수행하기 힘든 무거운 짐이 되지 않는 것은 그것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약속되었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전파하기만 한다면, 복음을 전하는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 16장 15절에서의 강조점은 복음 전파의 대상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에 복음 전파의 대상으로 삼으신 것은 제자들을 중심한 유대인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제자들은 집중적인 교육을 받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무지와 불신앙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제자들은 이방인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 현존은 제자들의 무지와 불신앙을 깨뜨리기에 충분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는 순간에 기존의 무지와 불신앙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부터 깊이 구세주로 영접하게 했던 것이다. 이것은 복음 전파의 대상에서 이방인들도 제한되어야 할 이유가 없음을 반증하고, 이방인들도 부활의 복음 앞에서 무지와 불신앙의 틀을 깨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여기서 '온 세상'으로 번역된 '톤 코스몬 하판타'(ton kosmon hapanta; all the world)는 '세상'(세계)을 뜻하는 '코스모스'(kosmos; world)와 '온', '모든 것'을 뜻하는 '하파스'(hapas)를 사용해서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당대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세상(세계) 뿐만 아니라 오고 가는 세대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 곳을 가리킨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로 번역된 '파세 테 크티세이'(pase te ktisei; to every creature)는 보통 만민으로 번역이 되었는데, 복음이 어느 특정 지역과 민족에게 제한되지 않고, '모든 곳',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어야 함을 이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승천, 재림>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사도 1,8-9).” 예수님의 ‘승천’은 사람이 되시어 지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사셨던 예수님께서 당신의 임무를 완수하시고 하느님의 영광 속으로 들어가신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분께서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분께서 아주 낮은 곳 곧 땅으로 내려와 계셨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내려오셨던 그분이 바로 만물을 충만케 하시려고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가신 분이십니다(에페 4,9-1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에페 1,20-23).” 승천하신 예수님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게 되셨지만, 성령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에 살아 계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승천’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신 일이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당신의 존재 방식을 변화시키신 일입니다.)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세상 모든 곳으로 가서 나의 증인이 되어라.”, 즉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이니까 신앙인들은 당연히 실천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라는 말씀은, 신앙인들이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할 때, 성령을 통해서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선교활동은 ‘사람의 힘’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성령의 힘’으로 하는 ‘하느님의 일’입니다. (겉으로는 우리가 일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일하시고, 우리는 그 일을 도와드릴 뿐입니다.) 마르코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승천과 그 뒤에 이루어진 제자들의 활동을 이렇게 요약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마르 16,19-20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일은 제자들이 눈으로 보았지만,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신 일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영광 속으로 들어가셔서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께서 누리시는 영광과 같은 영광을 누리신다고 믿는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할 때, 예수님께서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을 통해서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는 말은, 제자들이 하는 일을 예수님께서 협력자로서 도와주셨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제자들이 협력자로서 도와드렸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표징’은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증명하는 놀라운 기적입니다. 기적은 사람이 일으키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예수님)께서 꼭 필요한 경우에 예외적으로 일으키시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10-11)” 여기서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자기들 곁을 떠나시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서 제자들이 인간적인 아쉬움, 서운함 같은 것을 느꼈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루카복음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루카 24,50-53).” (더 이상 예수님이 보이지 않게 되어서 제자들은 인간적으로는 아쉽고, 서운하고, 조금은 슬펐겠지만, 그래도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서 제자들이 얻게 된 ‘큰 기쁨’ 자체가 약해지거나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라는 천사들의 말은, 뜻으로는 “왜 ‘하늘만’ 쳐다보며 서 있느냐?”이고, ‘땅도’ 보라는 뜻이 들어 있는 말입니다. 하늘만 쳐다보지 말고 땅도 보라는 말은, 지상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도들과 신앙인들은, 또는 교회는,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이어받아서 계속 실행해야 합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 마귀들을 쫓아내는 일, 그리고 이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들... 예수님께서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말은, 지상에서 제자들과 함께 지냈던 그 예수님이, 또 수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신 그 예수님이, 종말의 날에 재림하실 것이라는 예고입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테니 서운해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해도, 그날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만물의 주님으로, 또 심판관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재림하시는 주님을 잘 맞이하려면, 각자 자신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예수님의 승천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셨다는 것은 오늘 복음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지상에서의 사명을 다 마치시고,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하셨다는 뜻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