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동성당 게시판

연중 제2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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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1999-09-11 ㅣ No.239

                          연중 제24주일(가해, 1999. 9. 12)

                                                 제1독서 : 집회 27, 30 - 28, 9

                                                 제2독서 : 로마 14, 7 - 9

                                                 복   음 : 마태 18, 21 - 35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어느 날 저녁 때, 미국의 황야에 살던 어느 개척자의 집에 지치고 허기진 인디언 한 사람이 와서 그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개척자는 "네게 줄 것은 아무 것도 없어"하고 거칠게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인디언은 우유 한 잔만이라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개척자는 또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인디언은 냉수를 조금만 달라고 사정했으나 개척자는 "가라! 인디언 개놈아!"하고 거칠게 대할 뿐이었습니다.  인디언은 잠시 그 개척자를 흘겨보고서는 가 버렸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며칠이 지나서 그 개척자는 사냥을 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깊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저녁이 되어 나무 사이로 희미한 불빛을 보고 그곳을 향해 갔습니다.  그는 그 불빛이 어떤 인디언의 막사 안에서 비쳐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막사에 가서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인디언은 "길이 아주 멉니다.  그리고 밤이 너무 어둡고요.  만일 당신이 숲 속에서 헤매면 굶주린 늑대들의 밥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저의 집에서 머물고 내일 떠나도록 하십시오"하고 말하였습니다.  개척자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인디언은 그를 위해 사슴 고기를 굽고 마실 물을 주고, 잠자리까지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인디언은 그 개척자를 깨우며 "해가 떴습니다.  당신의 집이 머니 제가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둘은 길을 떠났습니다.  개척자의 집이 가까워지자 인디언은 그에게 "당신은 나를 기억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하고 말하자 "그렇습니다.  당신은 당신 집 문간에서 저를 보았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당신에게 한마디 충고를 하겠습니다.  다시는 당신에게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을 조금만 달라고 청하는 사람에게 ’가! 인디언 개놈아!’하고 말하지 마십시오"하고 말했습니다.  개척자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는 슬픈 경험을 하였지만 슬기로운 사람이 되어 자기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용서해 보신 적 있습니까?  내 자신의 억울함을 이기고 손해를 보면서까지 용서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라는 동태복수법을 이용해서 꼭 복수를 해야 겠다는 마음을 정리하고 사랑을 전해 주신 적이 있으십니까?  흔히 우리들은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고 나에게 빚진 것을 갚지 않는다고 그들을 미워하고 증오합니다.  어떤 억울함을 당하면 우리는 재물이나 신분, 지위 혹은 권력 그리고 경험 등을 사용하여 앙갚음을 하려 합니다.  돈 때문에 서러움을 당해본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어서 남보란 듯이 한번 떵떵거리며 살겠다고 벼릅니다.  아무리 못난 남자라도 여종 하나는 거느리고 산다는 말처럼 가정 안에서 남편은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려 합니다.  우리는 쉽게 남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나에게 부당한 해를 입힌 사람이라면 더더욱 용서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왕은 일만 달란트를 빚진 사람의 빚을 탕감해 줍니다.  일만 달란트가 얼마나 될까요.  한 달란트가 6천 데나리온이고 헤로데 왕의 연간 수입이 9백 달란트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일만 달란트의 빚이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빚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6천만 데나리온의 빚을 탕감 받은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가난한 사람의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움직이는 자비로운 분이심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와는 다른 하느님 나라의 원리를 예수님께서는 끝없이 용서하라는 말씀으로 우리를 깨우쳐 주십니다.  끝없이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을 깨달음으로써 우리의 닫혀진 마음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용서하시기에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우리는 용서하게 됩니다.  그런데 6천만 데나리온의 엄청난 빚을 탕감받은 그 사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6천만 데나리온의 엄청난 빚을 탕감받은 그 사람은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밖에 안 되는 돈을 빚진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하느님께 용서받은 것에 비하면 우리가 용서하는 것은 거의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합니다.  용서받은 내가 먼저 사랑해야 하고 그 사랑의 구체적인 첫 걸음이 바로 다른 이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우리 마음에 복수심이 일어날 때면 반드시 "주님의 용서를 받으려거든 형제와 자매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내용을 명심하도록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오로 사도의 제2독서의 로마서 말씀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도 죽음도 모두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하고 주님을 위해 죽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주님은 죽은 자의 주님이시며 산 자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받았기에 그리고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어놓아 우리을 구원으로 이끄시기에 우리는 그분의 삶을 찾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이웃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기에 우리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 아니더라도 단 열 번이라도 용서하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힘들다면 우리가 주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라도 형제, 자매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용서해보도록 이해 해보도록 기도하며 노력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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