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계동성당 게시판

하늘나라 우체부님 제마음을 실어 어머니께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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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박 [ad1004] 쪽지 캡슐

2002-08-30 ㅣ No.3382

 

 

 

 

마음을 담았더니

 

너무 무거웠나 봅니다

 

오늘 아침 채 배달되지 않은 편지 한 통

 

머리맡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습니다

 

 

그 속에 너무 슬펐던 이야기

 

너무 기뻐 엉엉 울었던 이야기

 

너무 그리워서 가슴 시린 이야기

 

이것저것 가득히 담아

 

엄마계신 하늘나라로 보냈습니다

 

 

어쩜 되돌아온 게 퍽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엄마는 아마 기쁜 이야기보다는

 

제 가슴시린 이야기에 더 마음이 쓰였을 테고

 

그럼 분명 눈시울이 붉어지셨을 테니까요

 

이렇게 돌려 보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구름 가득한 하늘에 자꾸 눈길이 머뭅니다

 

이 넓은 어느 곳에 엄마가 계신건지

 

우체부님은 어떻게 우리 엄마를 찾으시는지

 

그리고 편지를 받으실 때 뭐라 하시는지

 

참 많이도 궁금합니다

 

혹시 제게 전하라는 말씀은 없으셨는지

 

 

세상의 모든 딸들이 다 이렇게 엄마가 그리운 건지

 

보내드리고 뒤돌아서는 일이 유독 나만 이리 힘든 건지

 

자꾸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일이 내게만 있는 건지

 

 

여름날 울타리로 키워진 나무에 기어오르며 피워내는

 

보랏빛 나팔꽃을 제일 먼저 만나시던 우리 엄마

 

나뭇잎들 헤치고 애기 주먹만한 여린 호박 따오시던

 

매끼니 마다 어쩜 그리 살뜰한 먹을거리를 주셨던지

 

 

지금도 아침에 엄마는 또 그렇게 일찍 나팔꽃을 만나고 계신지

 

마당에 조금이라도 얼굴 내민 돌멩이 파내고 다듬고 계신지

 

물뿌리개에 물 담아 훌훌 뿌리고 쓸고 계신지

 

문턱 옆에 앉아 계시다가 내가 오면 활짝 웃으실 때처럼

 

그렇게 우체부님을 맞이하시는지

 

 

이번 편지에는 마음담지 말고 그냥 보내볼까 합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인가 해서 엄마 달려오실지 몰라서

 

그렇게라도 꼭 한번 엄마 얼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편대금은 아주 많이 비싸도 괜찮습니다

 

 

하늘나라 우체부님 수고하세요

 

 

 

- 좋은생각 강은희님의 글 -

 

 

 

글로리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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