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의 순교자들이 외친/부르짖은 마지막 소리 기도인 예수 마리아!(呼耶穌瑪利亞) 의 출처는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의 저서인 성모행실 이다 1242_

인쇄

. [121.190.18.*]

2019-01-17 ㅣ No.1977

 

게시자 주: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77.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1. 들어가면서

 

1-1.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의 다수의 순교자들이 외친/울부짖었던 마지막 소리 기도가 "예수 마리아!"였음은, 다음의 파란색칠의 굵은 글자들을 클릭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 마리아" "순교" <----- [구글 검색 결과] 클릭하여 꼭 확인하도록 하라

 

1-2.

1-2-1. 바로 위의 구글 검색 결과에는 또한, 예를 들어, 충남 서산 해미순교성지의 생매장 자리가 "여숫골"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 생매장 장소로 이동하면서 다수의 순교자들이 외친/울부짖었던 마지막 소리 기도가 "여수 마리아!"였기 때문에, 당시의 듣는 이들에게 "여수 머리"로 들렸기 때문이라는 글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2-2. 그리고 또한 다음의 파란색칠의 굵은 글자들을 클릭하면, 소위 말하는 "진산 사건"을 야기한 당사자인 윤지충 등이, 1791년 12월 8일(음력 11월 13일)에, "예수 마리아!"를 부르짖으면서/외치면서 순교하였다는 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 마리아" "순교" "윤지충" <----- [구글 검색 결과] 클릭하여 꼭 확인하도록 하라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들에 있는 글들을 읽도록 하십시오:

http://www.paxkorea.kr/bbs/view.php?id=1001&no=201 <----- 필독 권고

http://www.cbck.or.kr/page/blessed_kr_list.asp?p_code=k3401 <----- [첫 번째 글] 필독 권고

 

게시자 주 1-2-2: (1) 만약에 바로 위의 제1-2-2항에서 알게 된 바가 우리나라 조선의 교회사 연구자들에 의하여 이미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었다면, 윤지충 등이 이 기도문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와 관련하여, 크게 다음의 두 가지 가능성(two possibilities)들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i) 윤지충이 1783년 봄에 진사 시험에 합격하여 서울에 머물고 있을 때에 윤지충에게 천주교 교리를 가르친, 고종 사촌들인 그리고 특히 이벽 성조(1754-1785년)로부터 이미 교리 교육을 받은정약용 형제들로부터, 혹은

 

(ii) 이승훈이 북경에서 구입하여 1784년에 귀국할 때에 우리나라 조선으로 반입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로부터. 

 

(2) 그리고, 만약에 바로 위의 제1-2-2항에서 알게 된 바가 우리나라 조선의 교회사 연구자들에 의하여 이미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었다면, 윤지충 등이 이 기도문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와 관련한 이들 두 경우들 모두는, 시기적으로, 1794년 12월에 중국인 주문모 신부(1752-1801년)가 우리나라 조선에 입국함으로써 이분이 조선에 입국한 첫 번째 그리스도교 선교사 사제가 되기 이전의 시점에 해당하기 때문에,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 신부님들에 의하여 중국의 예수회가 해산당한 1775년 이전의 시기까지 약 200년의 오랜 기간 동안에 지속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전개되었던, 적응주의 문서 선교 방식의 결과로서, 우리나라 조선의 거의 대다수의 유학자들이 오로지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을 입수하여 학습함으로써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또 실천하였던 1794년 12월 이전의 시기에 발생하였음에,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1-2-2 끝)

 

1-2-3. 이번 항에서는, 바로 위의 제1-2-2항에서 알게 된 바가 우리나라 조선의 교회사 연구자들에 의하여 이미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었음을,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실증적으로(positively) 재 입증/고증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발췌된 바는, 이미 우리말로 번역이 되어 국내에서 출판된, 프랑스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의 달레 신부님(1829-1878년)의 저서로서 1874년에 초간된, "Histoire de l`eglise de Coree"(한국 [천주]교회의 역사; 우리말 번역서 제목: 한국천주교회사), 제54쪽 전문인데, (i) 위에서부터 네 번째 줄부터 여섯 번째 줄에서, 권상연예수님의 그리고 마리아의 이름들을 발음하였다(prononcer), 즉, "예수 마리아!"를 부르짖었다/외쳤다고 기술하고 있고, (ii) 위에서부터 열일곱 번째 줄부터 열여덟 번째 줄에서, 윤지충이 자신의 목이 잘리기 직전에 예수님의 그리고 마리아의 거룩한 이름들을 여러 번 반복하였다(répéta), 즉, "예수 마리아!"를 여러 번 부르짖었다/외쳤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그리고 (iii) 위에서부터 스무 번째 줄부터 스물한 번째 줄에서, 권상연이 자신의 목이 잘리기 직전에 예수님과 마리아[의 도움]를 간구(懇求)하였다(invoquer), 즉, "예수 마리아!"를 부르짖었다/외쳤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29-1878_달레/1874_권1_histoiredelgli01dall.htm [주: 권1]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29-1878_달레/1874_권2_histoiredelgli02dall.htm [주: 권2] 

(출처 1로부터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이 글의 결론 1) 따라서, 바로 위의 제1-2-3항에 발췌된 바에 의하여, 1791년에 소위 말하는 "진산사건"[즉, 신해 박해]을 야기한 당사자들인 윤지충권상연이, 순교당하기 전에, "예수 마리아!" 기도문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2) 따라서, 위의 게시자 주 1-2-2에서 이미 지적한 바에 의하여, 아무리 늦더라도 1784년 경에 이르면,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 중의 일부는 "예수 마리아!" 기도문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3) 달레 신부님(1829-1878년)의 저서로서 1874년에 초간된, "Histoire de l`eglise de Coree"(한국 [천주]교회의 역사; 우리말 번역서 제목: 한국천주교회사)의 서문과 본문 전체에 걸쳐, 짧은 기도 "예수 마리아!"의 외침/부르짖음은, 위의 제1-2-3항에 발췌된 본문 제54쪽에서 처음으로 기술되어 있고 그리고 나머지 두 번은 제238쪽과 제322쪽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달레 신부님"한국천주교회사"에 따르면, 윤지충과 권상연이 짧은 기도 "예수 마리아!"를 외쳤던/부르짖었던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들에 포함됨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1-3. 이번 글에서는 또한, 윤지충 권상연이 순교당하기 직전에 외친/부르짖은 "예수 마리아!"라는 대단히 짧은 염경 기도(즉, 소리 기도)문의 출처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의 한문본 천주교 신심 문헌인, 1616년부터 1624년 사이에 저술되어 1631년 경에 초간된 것으로 알려진, "성모행실"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도록 하겠습니다.

 

게시자 주 1-3: (1) 위의 제1-1항에서 말씀드린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에 대한 박해사라는 역사적 배경 아래에서 이러한 실증적(positive) 입증/고증이 유의미한 이유는, 2015년 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들여다본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 중에서, '마귀의 끌어당김'이라는 대단히 위급한 상황에서, 마귀를 쫓아버림으로써 바로 이 끌어당김을 단호히 뿌리치기 위하여, 짧은 기도 "예수 마리아!"부르짖었음/외쳤음(呼耶穌瑪利亞) 본문 중에 명기된 문헌은 오로지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성모행실" 하나 뿐인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입니다.

 

(2)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耶穌會文獻匯編 홈페이지 서버 제공의 방대한 분량의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에는 "呼耶穌瑪利亞"라는 표현이 없음을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ctext.org/wiki.pl?if=en&res=804348&searchu=%E5%91%BC%E8%80%B6%E7%A9%8C <----- 여기를 클릭한 후에 필히 확인하라

 

(3) 그리고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하는 한, 피조물인 성인(Saints)들 중에서 으뜸 공경, 즉, 상경(上敬, hyperdulia)을 받는 성인인, 성모님의 성인전(聖人傳)/성인전기(聖人傳記)은,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 중에서, 오로지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성모행실" 하나 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상, 게시자 주 1-3 끝)

 

2. 사료 분석 I

 

2-0.

2-0-1. 우선적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의 한문본 천주교 신심 문헌인, 1616년부터 1624년 사이에 저술되어 1631년 경에 초간된 것으로 알려진, "성모행실"에 어떠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한, 실증적(positive) 사료 분석의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75.htm <----- 필독 권고

 

바로 위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를 들어, 초판 "가톨릭대사전"개정판 "가톨릭대사전"에 표제어로 수록된 "성모행실"의 본문 내용에 대한 안내에 대단히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 그리고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이 우리나라 조선에 얼마나 전래되었는지는,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들에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듯이, 1782년 이전에 마련된 강화도 소재 외규장각 도서 목록에 나열된 총27권의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 중에서, 1/3인, 무려 9권이 이 분의 저서들임으로부터, 그리고 이 분의 18권의 총 저서들 중에서, 1/2인, 무려 절반인 9권임으로부터, 짐작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66-1640_알퐁소_바뇨니/1630_수신서학.htm <----- 클릭한 후에 이 지적을 꼭 확인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8.htm <----- 클릭한 후에 제1-4항과 제1-5항을 계속하여 필독할 것을 권고드립니다

 

2-1. 다음은, "성모행실", 권3, [제21장] 성모제궁진란, 제59b-60a쪽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세 번째 열(column)부터 일곱 번째 열까지 보라.

 

(유관 부분 발췌 및 우리말 졸번역 시작)

一賢婦者 僅育小女 以所習欽崇聖母實學訓之 女外美內鈍 難習神業 荒嬉自如 賢母屢責以正訓 姑令聊居末功 耶穌瑪利亞二句 必將有益無悔也

 

한 어진 며느리(賢婦)가 나이어린 딸(小女)을, 성모님을 상경함(上敬, hyperdulia, cultus dulia)이라는(*) 실학(實學)[즉, 성모신학, 성모론, Mariology]의 가르침(訓)을 익히는 바로써, 단지(僅, merely) 길렀는데(育), 이 소녀(女)는 겉은 아름다우나 속이 둔하여(外美內鈍), 영적인 일(神業)을 익힘을 어려워하고 허황되게(荒) 즐거워함(嬉)이 평소와 같고 변함이 없어서(自如), 어진 어머니(賢母)는 올바른 가르침(正訓)으로써 여러 번 되풀이하여 책망하였으나, 시어머니()가 명하기를(令), "부족한 도(道)의 공적(末功)에 다소(聊, somewhat) 놓여 있다고(居) 하더라도. 다만(但) 두 개의 구절 '예수 마리아'를 읊기만(耶穌瑪利亞) 한다면, 필히 장차 유익할 것이며 결코 후회가 없을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
(*)
번역자 주: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께서 "성모행실"을 저술할 시기인 1616년부터 1624년 사이의 기간은, 아직까지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의 차용 번역 용어들이 확정되지 못한 시기였는데, 이 시기에 바뇨니 신부님께서는 성모님께 표하는 공경(hyperdulia), 즉, 성인들 쪽으로 표하는 공경(veneratio, cultus dulia)들 중의 으뜸 공경을, 요즈음의 우리나라 천주교회에서처럼 "상경(上敬)"이라는 용어 대신에, "欽崇(흠숭)"이라는 용어로써 표현하였기에, 국내의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한문 본문 중의 "欽崇"을, 그 이후에 그리고 요즈음의 우리나라 천주교회에서 성모님께만 오로지 사용하는 용어인, "상경(上敬)"으로 번역하였다.
-----

 

女以為易 從而習之 日後女閑戱園中 魔至其牽 將推入幽獄 加永僇焉 女時見迫 耶穌瑪利亞聖母 魔驚惶釋放  恨怨而去 [...]

 

이 소녀(女)는 [핳머니의 명령이] 쉽다고 생각하여(以為, think, consider) [이 명령을] 쫓아서 익혔는데, 뒷날(日後) 이 소녀(女)가 한가한 희원(戱園, 극장) 한 가운데에 있을 때에, 마귀(魔)가 다가와서 그 팔을 끌어서(牽), 또한(將, further) 유옥(幽獄, 지옥)으로 밀어 넣어, 영원한 욕보임/죽임(僇)을 더하고자(加) 하였습니다. 이 소녀는 바로 이 때에 위급함을 보고서(見), "예수 마리아 성모님!" 부르짖었는데/외쳤는데(耶穌瑪利亞聖母), 마귀는 놀라고 두려워하면서(驚惶) [그녀를] 석방하였고, 한탄과 원망을 하면서(恨怨) 물러갔습니다.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2. 다음은,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 등에 의하여 저술된 "구탁일초", 권8, 제17b-18a쪽[1639년(숭정12년) 7월 17일(양력: 8월 15일) 성모승천 첨례일 강론]에서 발췌한 바인데, 그러나 여기에 서술된 바는 위의 게시자 주 1-3에서 말씀드린 바와는, 즉,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의 순교자들처럼, 마귀의 끌어당김이 분명한, 배교(背教)를 강요당하는 상황과는, 전혀 다름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부터 일곱 번째 열까지 보라.

(이상, 발췌 끝)

 

2-3. 다음은, 아무리 빠르더라도 1738년 이후에 그리고 아무리 늦더라도 1748년 이전에 저술된, 메야/마이야 신부님(1669-1748년)개정판 "성년광익", 추, 8월23일, 성 필립보 베니시오 현수, 제58a쪽에서 발췌한 바인데, '다행히(幸) 예수와 마리아(耶穌瑪利亞)께서 사마(邪魔)를 쫓아 물리치시고(逐退)'라는 표현이 있으나, 그러나 전후 문맥 안에서, "예수 마리아!"(耶穌瑪利亞)라는 염경 기도(즉, 소리 기도)를 부르짖었다/외쳤다(呼)는 것이 아님,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3: (1) 1738년에 초간된 메야/마이야 신부님(1669-1748년)의 "성년광익", 추, 8월23일, 성 필립보 베니시오 현수, 제187b쪽에서도 또한 동일하게 '다행히(幸) 예수와 마리아(耶穌瑪利亞)께서 사마(邪魔)를 쫓아 물리치시고(逐退)'라는 표현이 있으나, 그러나 전후 문맥 안에서, "예수 마리아!"(耶穌瑪利亞)라는 염경 기도(즉, 소리 기도)를 부르짖었다/외쳤다(呼)는 것이 아님,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2) 그리고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1738년에 초간된 메야/마이야 신부님(1669-1748년)의 "성년광익"에서, '耶穌瑪利亞' 등이 아닌, 단순히 '耶穌瑪利亞'라는 표현은 오로지 추, 8월23일, 성 필립보 베니시오 현수에서 단 한 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2-4. 다음은, 아무리 빠르더라도 1738년 이후에 그리고 아무리 늦더라도 1748년 이전에 저술된, 메야/마이야 신부님(1669-1748년)개정판 "성년광익", 동, 12월3일,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제708a쪽에서 발췌한 바인데, 적대자에 의하여 순교당하는 대단히 위급한 상황이 아닌, 병사로 인한 선종 직전'耶穌瑪利亞'를 여러 번 외쳤다/부르짖었다(呼)는 기술이 있습니다: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여덟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4: 그리고 1738년에 초간된 메야/마이야 신부님(1669-1748년)의 초판 "성년광익", 동, 12월3일,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제208b쪽에서도, 마찬가지로, 적대자에 의하여 순교당하는 대단히 위급한 상황이 아닌, 병사로 인한 선종 직전'耶穌瑪利亞'를 여러 번 외쳤다/부르짖었다(呼)는 기술이 습니다.

 

2-5. 다른 한편으로, '耶穌瑪利亞'(예수 마리아)라는 표현과 논리적으로 등가인(logically equivalent) 표현인 '耶穌聖母'(예수 성모)라는 표현은, 예를 들어, 다음에 발췌된 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738년 이후에 개정된 메야/마이야 신부님(1669-1748년)의 개정판 "성년광익", 하, 6월16일, 성 요한 프란치스코 레지스 현수, 제85a쪽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일곱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5: 그리고 '耶穌瑪利亞'(예수 마리아)라는 표현과 논리적으로 등가인(logically equivalent) 표현인 '耶穌聖母'(예수 성모)라는 표현은 또한, 1738년에 초간된 메야/마이야 신부님(1669-1748년)의 초판 "성년광익", 하, 5월24일, 성 요한 프란치스코 레지스 현수, 제168a쪽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3. 이 글의 결론들

 

3-1. 다음은, 위의 제1-2-3항에서 이미 도출한 결론들입니다:

 

(이 글의 결론 1) 따라서, 바로 위의 제1-2-3항에 발췌된 바에 의하여, 1791년에 소위 말하는 "진산사건"[즉, 신해 박해]을 야기한 당사자들인 윤지충(1759-1791년)권상연(1751-1791년)이, 순교당하기 전에, "예수 마리아!" 기도문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2) 따라서, 위의 게시자 주 1-2-2에서 이미 지적한 바에 의하여, 아무리 늦더라도 1784년 경에 이르면,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 중의 일부는 "예수 마리아!" 기도문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3) 달레 신부님(1829-1878년)의 저서로서 1874년에 초간된, "Histoire de l`eglise de Coree"(한국 [천주]교회의 역사; 우리말 번역서 제목: 한국천주교회사)의 서문과 본문 전체에 걸쳐, 짧은 기도 "예수 마리아!"의 외침/부르짖음은, 위의 제1-2-3항에 발췌된 본문 제54쪽에 처음으로 기술되어 있고 그리고 나머지 두 번은 제238쪽과 제322쪽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달레 신부님"한국천주교회사"에 따르면, 윤지충권상연이 짧은 기도 "예수 마리아!"를 외쳤던/부르짖었던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들에 포함됨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2. 다른 한편으로, 예를 들어, 순조1년(1801년) 10월 9일자, "추안급국안", 권25, 제758쪽, 제2-6열에서이가환이, [1784년 말 혹은 1785년 초에이벽 성조(1754-1785년)로부터 한문본 "성년광익"을 빌려 보았다는, 신문/문초 기록이 아닌황사영 백서의 [전문이 아닌 일부] 사본에 의하여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고 있으므로, 따라서 "성년광익"은 아무리 늦더라도 1784년에 이르면 우리나라 조선에 이미 전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위의 제2-1항에서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4)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 초기의 신앙의 선조로서, 순교당하기 직전에, 적대자애 의한 배교(背教)라는 '마귀의 끌어당김'이라는 대단히 위급한 상황에서, 마귀를 쫓아버림으로써 바로 이 끌어당김을 단호히 뿌리치기 위하여, 짧은 기도 "예수 마리아!"부르짖었던/외쳤던(呼耶穌瑪利亞) 최초의 분(들)은,(*)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성모행실"을 순교당하기 이전의 시기에 입수하여 학습함으로써, 바로 이 짧은 기도가 그러한 효능을 가지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전능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이름만을 오로지 외치지/부르짖지 않고, 강생하신 성자 하느님의 이름인 "예수" 직후에 또한, "성모!" 대신에성모님의 이름인 "마리아!"까지 함께 외친/부르짖은 것은, 바로 이 짧은 기도 "예수 마리아!"를 외침/부르짖음이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은 대단히 위급한 상황에서 그러한 효능을 가지고 있음을 학습을 통하여 사전에 알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년광익"에 서술된 바만으로는,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은 대단히 위급한 상황에서, 이 부르짖음/외침이 그러한 효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

(*) 게시자 주: (이 글의 결론 1)에 의하여, 그러한 짧은 기도를 외쳤던/부르짖었던 순교자들에, 1791년에 소위 말하는 "진산사건"[즉, 신해박해]을 야기한 당사자들인, 윤지충권상연이 포함된다.

-----

 

게시자 주 3-2: 따라서, 이번 글은,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의 한문본 천주교 문헌인 "성모행실"이, 아무리 늦더라도, 1791년 진산사건 이전의 어느 시점에 우리나라 조선의 유학자들 사이에 이미 전래되었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지적과 관련하여, 위의 게시자 주 1-2-2를 추가적으로 꼭 읽도록 하십시오.

 

3-3.

3-3-1. 다른 한편으로,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의 다수의 순교자들이 외친/울부짖었던 마지막 소리 기도가 "예수 성모!"결코 아니었은, 다음의 파란색칠의 굵은 글자들을 클릭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 성모" "순교" <----- [구글 검색 결과] 클릭하여 꼭 확인하도록 하라

 

3-3-2. 따라서, 바로 위의 제3-3-1항, 위의 제2-3항, 제2-4항, 그리고 제2-5항에서 이미 지적한 바들로부터,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5)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 초기의 신앙의 선조들이 순교당하기 전에,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성모행실"의 입수 및 학습 혹은 교리 교육을 통한 내용 전달 없이적대자에 의한 배교(背教)라는 '마귀의 끌어당김'이라는 대단히 위급한 상황에서, 마귀를 쫓아버림으로써 바로 이 끌어당김을 단호히 뿌리치기 위하여, 짧은 기도 "예수 마리아!"부르짖는/외치는(呼耶穌瑪利亞) 것이 불가능하였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전능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이름만을 오로지 외치지/부르짖지 않고, 강생하신 성자 하느님의 이름인 "예수" 직후에 또한, "성모!" 대신에성모님의 이름인 "마리아!"까지 함께 외친/부르짖은 것은, 바로 이 짧은 기도 "예수 마리아!"를 외침/부르짖음이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은 대단히 위급한 상황에서 그러한 효능을 가지고 있음을 학습을 통하여 사전에 알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년광익"에 서술된 바만으로는,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은 대단히 위급한 상황에서, 이 부르짖음/외침이 그러한 효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3-4.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801년 신유박해의 문초 기록인 "사학징의"의 부록인 천주교 문헌들의 목록에 우리말본 "성년광익"이 포함되어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56-1819_이기경_et_al/요서사서소화기_in_1801_사학징의_부록.htm

 

따라서, 지금까지 이번 글에서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6)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사에 있어, 1791년 이후 조선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순교당한 신앙의 선조들 중의 상당수가 순교당하기 직전에, "예수!" 혹은 "예수 성모!"를 부르짖은/외친 것이 아니고, "예수 마리아!"를 부르짖은/외친 이유는, 이분들이 다음의 내용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i)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의 한문본 저서인 "성모행실"을 학습한 유식한 교우들로부터 물려받은 구전(口傳) 전통의 교리 교육을 통하여, 짧은 기도 "예수 마리아!"부르짖으면/외치면(呼耶穌瑪利亞), 심지어 배교(背教)도 포함되는, '마귀의 끌어당김'이라는 대단히 위급한 상황에서, 마귀를 쫓아버림으로써 바로 이 끌어당김을 단호히 뿌리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ii) 1801년 이전의 시기부터 이미 입수 가능하였던 우리말본 "성년광익", 추, 8월23일, 성 필립보 베니시오 현수를 읽고서, '예수와 마리아(耶穌瑪利亞)께서 사마(邪魔)를 쫓아 물리치심(逐退)'을 또한 잘 알고 있었다.

 

(iii) 교리적으로 달리 말하여, 예를 들어, 1791년에 소위 말하는 "진산사건"[즉, 신해 박해]을 야기한 당사자들인 윤지충권상연처럼, 신앙을 증거하기 위한 순교의 순간에, "예수!" 혹은 "예수 성모!" 대신에, "예수 마리아!"를 외침으로써/부르짖음으로써 천주로부터 초자연적 용덕(勇德)/굳셈(supernatural strength)을 받아, 용감하게 순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상, (이 글의 결론 6) 끝)

 

게시자 주 3-4: (제안 한 개) 지금까지 이번 글에서 고찰한 바에 의하여 그 문헌적 근거/출처가 실증적으로(positively) 밝혀진, 아무리 늦더라도, 1791년부터 지금까지도 바쳐지고 있는, 따라서 우리나라 지역교회의 오래된 구전(口傳) 전통이 이미 되어버린, 심지어 배교(背教)도 포함되는, '마귀의 끌어당김'이라는 대단히 위급한 상황에서, 마귀를 쫓아버림으로써 바로 이 끌어당김을 단호히 뿌리칠 수 있는 힘을 지닌, 바로 이 짧은 기도문 "예수 마리아!"를, 우리나라 지역교회의 공통 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s)에 추가할 것을 제안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작: 약110시간 (유관 사료 분석 포함)

 



428 3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