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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프란체스코와 복음 삼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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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SokKu,Lee [nikolas9] 쪽지 캡슐

1999-10-19 ㅣ No.1532

 방에 돌아다니는 비디오 테이프들을 정리하다  한국에 있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작은  형제

회)의 생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발견했다. 지난 여름  TV에서 방영한 내용을 주일학교 교

리수업을 위해 녹화해 두었던 것이었다. 당시 프란체스코 성인과 그가 강조한 ’청빈·정결·

순명’의 정신에 대해 함께 묵상했던 기억이 난다.

 

 흔히 서양 사람들 이름 가운데 프란체스코, 프란시스,  프랑수아, 프랑코 등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미테랑 前 프랑스 대통령이 그랬고 여류 작가 사강, 영국 철학자 베이컨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모두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인 프란체스코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아씨시의 유복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깡패 두목으로 옥살이까지 했던 프란체스코는 어느

날 폐허가 된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그림판의 그리스도가  걸어나와 ’무너져가는 나의

집들을 다시 세우라’는 계시를 받는다.(계시를 준 그 그림판은 지금 아씨시의 성키아라 성당

에 가면 볼 수 있다고 한다)

 

 이에 프란체스코 성인은  갈색의 농민복장에 ’청빈-정결-순명’을  상징하는 세개의 매듭을

한 새끼 허리띠를 두르고 맨발에 샌들 차림으로 탁발을 시작, 교회재건을 시작한다. 그 연장

으로 프란체스코회를 설립, 전도에 나선다. 그가 44세로 흙침대위에서 죽었을 때에는 전세계

에 3만명의 수도사가 1천1백개소의 수도원에서 활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프란체스코와 한국의 관계도 유구하여 그리스도교와  한국인의 최초 만남이 프란체스코를

통해 이루어졌다. 1253∼1255년 기욤이라는 프란체스코 수도사는  몽골 전도를 자청하고 죽

음의 대륙을 신앙심으로 횡단, 몽골의 서울에 이르고 그곳에서 고려인의 추장을 만났었다는

기록을 남겼는데 당시 몽골이 고려를 침략했음을 생각하면 아마도 인질로 잡혀 있던 고려의

왕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의 만남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잡혀간 한국인으로 프란체스코회에 입신한  복자

가요의 순교를 들 수 있다. 그는 나가사키에서 서양  선교사들을 숨겨주고 지하교회를 영위

했다하여 두 손이 묶인 채 화형을 당했다.

 

 청빈·순결·순명...

 예수님의 복음에 나타난 이 완전한 덕(德)을 ’복음 삼덕’ 또는 ’복음의 권고’라고도 한다.

 복음서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의미인 물욕, 육신의 쾌락의 추구, 개인주의적 자유를 끊고 오

로지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생활이야말로 당신의 제자가 되는 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나를 따르려고 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백 배의 상

  을 받을 것이며 또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마태19,29)

 

 나 자신을 비롯한 우리 현대인들은 청빈·순결·순명의 프란체스코 삼계를 얼마나  몸소

 실천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반성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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