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게시판

[중고등부] 조랑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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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SokKu,Lee [nikolas9] 쪽지 캡슐

1999-10-20 ㅣ No.1535

 ’심축(心畜)을 준다’는 말이 있다.

 설날 세배를 하면 어른들의 덕담을 들을 수  있는데 "소 한 마리를 주니 끌고가거라", "닭

한 마리를 주니 안고 가게나" 등의 덕담을 일컫는 것이다.  실제로 소나 닭을 주는 것이 아

니라 그 짐승의 심성을 준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게으른 사람에게는 닭을 주고, 조심성이

없는 사람에게는 거위를 주고, 제  꾀에 넘어가는 사람에게는 돼지를 주었다.

 심축 가운데 빈도수가 높은 것으로 조랑말이 있다.  조랑말은 선사시대부터 있었던 한국

고유의 과하마(果下馬)다. 키가 석 자밖에 되지 않아 과실나무 아래를 지나다닐 수 있다 하여

과하마라 한다. 과하마가  빈도 높게 오르는 이유는 겸허하고 성실하고 꾸준하다는 장점 때문

이다.

 

 한말에 과하마를 타고 금강산을 탐험했던 영국의 여류탐험가 이사벨라 비숍은  기행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왜소한 체구에 유럽식 말안장을  얹었더니, 마치 어린아이에게 아버지  옷을 입혀놓은 것

  같고 복대는 아래로 늘어 처진 몰골이 꼴불견이었다. 다만 놀라운 것은 비록 소인국의 말

  같지만 그 강인한 내핍성과 인내력과 운송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먹이라고는

  겨우 짚 썬 것이 고작인데 200파운드가 넘는 무거운 짐을 지고 피로한 기색 없이 하루 30

  마일을 걸어낸다. 서양 말 같으면 몇십 번 주저앉았을 돌길이며, 무릎까지 빠지는  수렁길

  이며, 구불구불한 산길을 아랑곳없이 걸어내는 데는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수평이동에는 과하마가 서양 말을 못 따라가지만 수직이동에는 서양 말이 과하마를 못 따

라간다. 높은 산길이며 고갯길도 넘어가는 과하마는 좌절 없는 상승의지의 표상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편 제주도에 유배 갔던 김정(金淨)이 수십 필의 과하마가  일렬종대로 땅을 다지는 모습

에 "조선사람이 저 조선 말만 같았더라면..."하며 그 집단질서를 부러워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약해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강인하고 끈기 있는,  그러면서도 투철한 공동체 질서의식을

갖춘 우리 고유의 조랑말...

 그 성실함과 인내심은 언제나 쉽게 싫증을 느끼고 개인적 자유만을 외치는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비롯한 일상의 매 순간마다 가슴 깊이 새겨야 할 심축(心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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