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당동성당 게시판

짧은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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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일 [felixyiyi] 쪽지 캡슐

2000-03-22 ㅣ No.771

전옥주 가타리나 자매님의 소설집 <꽁보리밥과 풀빵>에 묶어진 짧은 소설입니다. 읽어 보셨을 것 같

전옥주 가타리나 자매님의 소설집 <꽁보리밥과 풀빵>에 묶어진 짧은 소설입니다. 읽어 보셨을 것 같기두 하네요. 좋아서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지금, 세상에 태어난 지 15개월 만에 내가 태어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 이 세상을 하직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너무나 짧았던 일생을 생각해보니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나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형제들과 헤어져서 사람들에 의하여 이리저리 끌려다녀야 하는 슬픈 운명이었습니다.

번잡한 시장바닥에서, 기차역에서 이곳저곳 잡아당기는 대로 끌려다니다가 지친 밤을 보내는가 하면, 그나마 밤을 잊은 사람들 틈에 끼이게 되면 밤에조차 쉬지 못하는 고달픈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여러 곳을 끌려다니다가 때로는 같은 날 함께 태어난 형제를 만나 기뻐한 적도 있지만, 우리는 곧 사람들에 의해서 격리 수용되어 또다시 이별의 슬픔을 겪으면서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거개의 사람들이 내 앞에서 사족을 못 쓰기도 하고 심지어는 내가 세상에서 최고라면서 숭배까지 하는데 어쩐 일인지 나를 사랑할 줄은 몰랐습니다.

애완동물이나 관상수 따위며 애장품들은 애지중지하면서도, 그것들을 소유하게 만들어주는 나에 대해서는 끝없는 소유욕만 가질 뿐 함부로 다루고 있어서 가끔 도망 치고 싶을 때가 있지만 불행하게도 내겐 다리가 없습니다. 만약 다리가 있다면 정말 나를 필요로 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내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으로 달려가 이 한 몸 다 바쳐서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었을 테지만 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건을 교환하는 데 제일의 가치가 인정되고 있는 나의 존재는 위풍 당당하고 더없이 존귀한 몸이긴 해도 사람의 성품에 따라 나를 아주 추하게 변질시키고 해악의 존재로 변화시킬 수도 있어서 그런 때는 정말 화가 나서 도망 가고 싶지만 말했던 것처럼 나는 타의에 의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처량한 신세입니다.

내 뜻과는 상관없이 사람에 끌려 이곳 저곳 전전하면서 보고 느낀 것은 기쁜 일보다 괴롭고 슬픈 일이 더 많았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를 지나치게 탐한 끝에 형제간의 의절과 부모 자식 간의 천륜을 저버리는 일을 보았는가 하면 부정한 일을 꾸미는 데 나를 이용하여 멀쩡한 사람을 불행의 늪으로 빠지게도 하고 어떤 때는 노름판에서 밤새껏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해서, 내 신세가 마치 개천 웅덩이에서 썩어가고 있는 오물같이 지저분하고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어 혐오감이 일게도 했습니다.

나는 진정 나를 아낄 줄 알고 귀하게 여겨주는 사람 곁에 있고 싶었습니다. 코 푼 휴지처럼 앞뒤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다니는 사람은 나를 지닐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그곳에선 절대로 머무르고 싶지 않았답니다. 요즈음엔 어찌된 일인지 나를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나의 존재는 더욱 비참해지고 점점 가치를 잃게 됩니다. 항간에선 나의 사용가치가 떨어졌다고 아우성인데 나를 이 꼴로 만든 원흉이 누구일까요?

"바로 여러분입니다."

분수에 맞지 않은 과소비와 무턱대고 욕구충족만을 탐하는 행위들이 나를 평가절하하는 게 아닙니까?

균등한 배분을 실현하여 복지국가 건설을 이룩하자고 외치고 있지만 우리가 태어나서 이렇듯 고통스럽게 끌려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그건 구호에만 그치는 ’보기 좋은 개살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 어찌하겠습니까?

한쪽에서 흥청망청하면 반비례로 하루 세 끼 연명하는 데도 허우적거리며 힘겨워하는 한쪽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곧 사라져야 할 처지에 놓인 내가, 태어나서 일년 삼 개월 동안에 가졌던 인간관계를 생각해보니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도 많습니다만 시간이 없습니다. 생을 마치는 마지막 순간이니만치 그간에 있었던 불안하고 불쾌하고 아팠던 일들은 묻어두고 가장 편안하고 아늑했던 때를 간직하고 가려 합니다.

자식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고 홀로 시골에 남아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할머니! 이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내 일생은 일년도 채우지 못하고 끝났을 것이며 우리도 소중한 대접을 받으며 편안하게 쉴 때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일생을 마칠 뻔했으니 제게 있어서 할머니의 존재는 생각하면 할수록 고맙고 고마운 분입니다.

어느 시골 5일장에서 잡곡 서너 됫박을 이고 나오신 할머니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갈 때의 내 몸뚱아리는 많은 사람들의 손때로 해서 해졌고 몸 군데군데에 낙서 따위가 어지럽게 있었으며 허리가 동강 나서 떨어져 나가기 직전으로 나는 이미 생기를 잃어버린 파초처럼 축 늘어져 겨우 생명을 부지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할머니는 나를 반갑게 맞이했음은 물론, 소중하게 다루어 동강 나려는 허리를 붙여주었고 주름진 내 얼굴과 몸을 곱게 쓰다듬어서 성경책 갈피에 끼워서 피로에 지친 나를 푹 쉬도록 했습니다.

성경책 갈피 속에는 미리 와서 안주하고 있는 젊은 동생들도 있었습니다. 여럿 중에서 내가 제일 늙었으며 세파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동생들을 만나고서 비로소 내 자신을 훑어보니 어느덧 기력이 쇠잔할 대로 쇠잔하여 임종이 가까워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내가 할머니를 만나서 생전 받아보지 못한 소중한 대접을 받으며 보살핌을 받기를 3개월여. 책갈피 속에 있던 동생들과 나는 몽땅 서울에 있는 할머니의 손자 대학 등록금에 끼여들기 위해 상경했습니다. 등록금에 끼여든 것이 내 마지막 일이었습니다. 그러고는 나만 곧장 내가 태어난 이곳으로 와서 어떤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던가요?

우리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죽을 때는 태어난 곳으로 돌아옵니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보고서 이제 고달픈 일생을 끝내도 좋다는 표시로 몸에 두 개의 구멍을 뚫어줍니다. 천공(穿孔)이라고 하지요. 구멍 난 몸으로는 어디에도 갈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만날 수 없답니다.

지금 내 몸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습니다. 기쁘고 아름다운 일보다 괴롭고 추한 일을 더 많이 보아서 마음을 심히 앓았기에 마지막 가는 길에 이렇듯 푸념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금 푸념을 늘어놓고 있는 나에게 "당신은 누구십니까?"하고 묻는다면, 그리고 "당신의 일생은 왜 그렇게 짧습니까?"하고 재차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나는 돌고 도는 ’돈’입니다. 육체가 돌고 돌아 내 일생이 짧아진 건 개의치 않습니다만 내가 다시 태어날 때는 정신이 돈(미친) 상태로 일생을 보내게 될 것 같아 두렵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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