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동성당 게시판

모든 좋은 것들 (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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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길 [region] 쪽지 캡슐

1998-12-19 ㅣ No.284

  그는 내가 가르치던 미네소타 주의 모리스에 있는 성모 마리아 학

교 3학년 학생이었다. 우리 반 학생 34명 모두가 사랑스런 아이들이

었지만, 그 중에서도 마크 에클런드는 무척 특별한 아이였다. 얼굴

도 잘생겼고 특유의 낙천적이고 밝은 성격 때문에 이따금 짖궂은 장

난을 쳐도 밉지 않고 모두를 즐겁게 만들었다.

  마크는 또한 늘 떠드는 학생이었다. 나는 수업중에 허락 없이 말

을 해선 안 된다고 마크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주곤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내가 잘못을 지적할 때마다 마크는 매번 이렇

게 말하는 것이었다.

  "제 잘못을 바로잡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수녀님!"

  처음에는 그런 말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지만 하루에도 몇

차례씩 그 말을 듣다 보니 머지않아 나도 익숙해졌다.

  한번은 오전 수업중에 마크가 너무 심하게 떠들어댔기 때문에 내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했다. 그 당시 나는 신참내기 교사였던 것이

다. 나는 마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분명히 말하는데, 만일 한 마디만 더 떠들면 너의 입을 테이프로

봉해버리고 말 테다."

  그런데 10초도 지나지 않아서 처크가 일러바쳤다.

  "선생님, 마크가 또 떠들었대요."

  물론 나는 다른 학생들에게 마크를 감시하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내가 한 말을 행동으로 옮겨야만 했다.

  그날의 일을 나는 마치 오늘 아침에 일어났던 것처럼 생생히 기억

하고 있다. 나는 교실 앞쪽에 있는 내 책상으로 걸어가 신중하게 서

랍을 열고 넓은 접착 테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한 마디 말도 없이 마

크의 책상 앞으로 걸어가 테이프를 크게 두 조각으로 잘라서는 마크

의 입에다 엑스(X)자로 붙였다. 그런 다음에 나는 다시 교탁 앞으

로 돌아갔다.

  나는 마크가 어떻게 하고 있나 보려고 슬쩍 곁눈질을 해서 쳐다보

았다. 그랬더니 그 순간 마크는 내게 윙크를 던지는 것이었다. 늘 그

런 식이었다!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화난 내 행동에 주

눅이 들었던 반아이들도 모두 박수를 쳐대며 웃어댔고, 나는 다시

마크의 책상 앞으로 걸어가 입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냈다. 내가 어

깨를 으쓱해 보이자 마크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제 잘못을 바로잡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수녀님."

  그해가 다 지나갈 무렵쯤에 나는 중학교로 옮겨가서 수학을 가르

치게 되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크가 다

시 내 수업을 듣고 있었다. 마크는 훨씬 더 미남이 되어 있었고 공손

했다. 내가 가르치는 중3의 '어려운 수학'에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

했기 때문에 마크는 전처럼 떠들 수도 없었다.

  어느 금요일이었다. 수업 분위기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우리

는 일 주일 내내 난해한 수학 공식에 매달려 씨름을 했으며, 내 느낌

에 학생들은 자포자기 상태인 것 같았다. 그리고 서로에게 잔뜩 신

경이 곤두서 있었다. 나는 사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이 살벌한 분

위기를 어떻게든 바꿔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

모두에게 백지 두 장 씩을 나눠주며 적당한 간격으로 급우들의 이름

을 전부 적게 했다. 그런 다음 그 이름 옆에다 자기가 생각하는 그

사람의 좋은 점과 멋지고 훌륭한 점 모두를 적으라고 말했다.

  그날의 수업은 그것을 작성하는 것으로 다 흘러갔다. 수업이 끝나

고 학생들은 자기들이 작성한 용지를 나한테 제출하면서 교실을 나

갔다. 처크는 미소를 지어 보였고, 마크는 이렇게 말했다.

  "저를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수녀님. 좋은 주말을 보내세요."

  토요일과 일요일 내내 나는 별도의 백지들을 가져다가 한 장에 한

명의 학생들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그 학생에 대해 다른 학생들이

말한 내용을 거기에 전부 적어내려갔다. 월요일이 되었을 때 나는

그 리스트를 남학생과 여학생 각자에게 나눠주었다. 어떤 아이는 두

장이나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 오래 가지 않아서 아이들의 입가

에 미소가 번졌다.

  "정말로 내가 그렇단 말야?"

  아이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내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이토록 멋있게 보일 줄은 몰랐는걸!"

  "다른 아이들이 날 이렇게 좋게 생각하고 있는 줄 정말 몰랐어!"

  그리고 나서 수업이 시작되었고, 수업중에는 누구도 더 이상 그것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들이 방과 후에 자기들끼리 혹은 부모에게

가서 그것에 대해 애기를 했는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으

니까. 어쨌든 내 시도는 성공을 거두었다. 학생들은 다시금 서로에게 우

정을 느끼게 되었고 수업 분위기는 훨씬 좋아졌다.

  학생들은 차츰 나이를 먹고 상급학교로 진학했다. 그로부터 여러 해

가 흘러서 어느 해 여름인가 나는 방학을 맞아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

아오는 길이었다. 나의 부모님이 공항까지 마중을 나와주셨다. 차를 타

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어머니는 늘상 하시는 대로 내 여행에 관해

물으셨다. 날씨는 어떠했느냐, 어디어디를 들렀느냐, 재미는 있었느냐

등등이었다. 그러다가 잠시 대화가 끊어졌다. 문득 어머니가 아버지에

게 곁눈질을 하며 단순히 "여보."하고만 말씀하셨다. 그러자 아버지가

목을 한번 가다듬고는 이렇게 입을 여셨다.

  "애야, 마크네 집에서 어젯밤에 전화가 왔더구나."

  "그래요?"

  나는 놀라서 말했다.

  "몇 년 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어요. 마크는 잘 지낸대요?"

  그러자 아버지가 나지막이 대답하셨다.

  "마크가 베트남에서 전사했단다. 장례식이 내일인데, 마크의 부모는

네가 꼭 참석해주길 바라더구나."

  오늘날까지도 나는 아버지가 차를 운전하고 가시면서 마크의 죽음을

전했던 1-494번지의 그 길목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다.

  나는 군대용 관 속에 누워 있는 병사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마크는 훨씬 더 미남이 되어 있었고 어른스러웠

다. 그 순간에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이것뿐이었다. 마

크, 네가 다시 입을 열어 말을 할 수만 있다면 세상에 있는 모든 접

착 테이프들을 다 내던져버릴 텐데.

  성당은 마크의 친구들로 만원이었다. 처크의 누이동생이 미합중

국 병사의 노래를 불렀다. 왜 장례식 닐이면 비가 내리는 걸까? 그날

도 비가 줄기차게 퍼부어서 무덤까지 걸어가는 데 애를 먹었다. 신

부님이 통상적인 기도를 하셨고, 나팔수는 영결 나팔을 불었다. 마

크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한 사람씩 다가가 마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관 위에 성수(聖水)를 뿌렸다.

  관 위에 마지막으로 축복을 내린 사람은 나였다. 내가 관 앞에 서

자 관을 메는 사람 중의 하나였던 군인 하나가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수녀님께서 마크의 수학 선생님이셨나요?"

  나는 관을 응시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이 말했다.

  "마크가 선생님에 대해 많은 애기를 하곤 했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뒤 마크의 동창생 모두가 처크의 농장으로 가서 점

심을 먹었다. 내가 그곳에 도착하니 마크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나를 기다린 눈치였다.

  "선생님께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마크의 아버지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면서 말했다.

  "마크가 죽었을 때 품 속에 이것이 있더랍니다. 우리는 선생님께

서 이것을 기억하고 계시리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가 꺼낸 것은 노트 용지 크기만한, 접혀 있는 두 장의 종이였

다. 접힌 자리가 닳아서 여러 번 테이프로 붙힌 흔적이 있었다. 나는

그 종이에 적힌 내용을 보지 않고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마크

의 급우들이 마크의 모든 좋은 점들을 적어낸 바로 그 종이였다. 마

크의 어머니가 말했다.

  "이런 일을 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보시다시피 마크는 이것을

늘 보물처럼 여겼답니다."

  마크의 옛 급우들이 우리 주위로 몰려왔다. 처크가 약간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햇다.

  "저도 아직까지 제 것을 갖고 있어요. 내 책상의 맨 윗서랍에 항상

간직하고 있지요."

  존의 아내가 말했다.

  "존은 그것을 우리의 결혼 앨범에 끼워놓았어요."

  마릴린이 말했다.

  "제 것은 언제나 제 일기장 속에 들어 있어요."

  그러자 또 다른 급우였던 비키는 작은 손가방을 열어 지갑을 꺼내

더니 그 안에서 너덜너덜해진 그 종이를 꺼내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전 언제나 이것을 갖고 다녀요."

  비키는 반짝이는 눈으로 모두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 각자의 것을 간직했군요."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

뜨렸다. 나는 마크를 위해, 그리고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할 그의 모

든 친구들을 위해 울었다.

               

                                                                                                         헬린 므로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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