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성당 게시판

푼글 우연 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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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범 [john27] 쪽지 캡슐

1999-07-18 ㅣ No.156

<<<1부>>> - 우연을 믿는가? -

 

 

>철이: 오늘도 난 도서관의 이젠 내 자리로 정해져 버린 좌석에 앉았습니다.

 

                이곳을 내 자리로 만든 건 며칠째 내 옆에 앉고 있는 한 여학생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녀는 내 옆 좌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많은 시간을 도서관 내 옆 자리에서 보냈습니다.

 

 하하... 이 정도 시간이 되면 그녀는 항상 날 미소 짓게 합니다.  또 엎드려

 

 자는군요. 그 모습이 참 귀엽습니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여름방학을 맞이한

 

 학교 분위기로 한산한 도서관에서 그녀는 오후를 열람석에 엎드려 잠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멀쩡하게 생긴 이 아가씨가 이제는 침까지 조금

 

 흘렸습니다. 뽀얀 그녀의 목덜미가 아름답습니다. 두껍기만 한 일본어 책을

 

 베개 삼아 그녀는 어딘가 꿈 나들이를 떠났습니다.

 

 

>민이: 오늘도 그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나와 눈이

 

 마주친 멀쩡하게 생긴 남학생 하나가 내 기억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매일 도서관을 나왔고 이제는 일정하게

 

 정해진 좌석에 앉고 있습니다. 그의 옆 자리는 내 자리입니다.  오후가 되면

 

 전 항상 졸음이 옵니다.  오늘 같이 방학이라  한산한 도서관 열람석은

 

 잠자기에 너무나 좋습니다. 잠에서 깨어보면 그는 항상 나에게 미소를

 

줍니다. 호호...  오늘도 그는 내가 잠에서 깨었을 때 속된말로 머리를 쳐

 

 박고 자고 있었습니다. 책상 바닥이 상당히 딱딱 할 텐데 그는 책도 안

 

받치고 그냥 바닥에 머리를 붙이고 잠들어 있습니다.  호호... 그의 목에는

 

 제법 큰 점이 두개가 있군요. ^^

 

>철이: 오늘은 그녀가 자리를 오랜 시간 비우는군요. 하기야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공부가 잘될 리 없지요. 나도 커피나  한 잔 마시고 와야겠습니다.

 

 아. 그녀가 저기 오는군요.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의 잠든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옵니다. 그녀도 커피를 한잔 할려나 봅니다. 내 뒤에 섰군요.

 

 밀크커피를 눌렀습니다. 그러나 커피 색깔만 흉내낸 그냥 물이었습니다.

 

 그녀가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습니다. 말리고 싶었습니다만 잘 알지 못하는

 

 사이였기에 그냥 말없이 자판기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녀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자기 바로 앞에도 휴지통이 있었는데 그녀는

 

 애써 내 쪽에 있는 휴지통에다 그 컵을 버리고 가더군요. 그리고 나에게 못

 

 마땅한 눈짓을 보내고 도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

 

 

 

>민이: 오늘은 날씨가 참 더웠습니다. 도서관에는 나왔지만 공부는 되질

 

 않는군요. 이런 날 애인이라도 있으면 어디 놀러라도 갈텐데 아쉽게도

 

 없네요. 공부는 잘되지 않았습니다. 에어콘이 시원하게 틀어져 있는

 

 커피숍에서 책이나 읽고 와야겠습니다. 옆자리의 남학생은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는 척을 하는군요. 하지만 전 알지요. 오전부터 펴져 있는 연습장은

 

 아직 한 장도 넘겨지지 않았다는 것을... ^^  커피숍에서 홀로 냉커피를

 

 마셨습니다. 다시 도서관에 오니 그가 나와 있었습니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실려나 봅니다. 그래 더운 커피도 한잔 더 하지 뭐. 그의 뒤에 섰습니다.

 

 목에 점이 또 보이길래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가 컵을 뽑고 자판기에서

 

 멀어졌습니다. 밀크커피를 눌렀는데 커피를 가장한 맹물이더군요. 그도

 

 맹물인 걸 알았을텐데 나에게 그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100원이었지만 아깝더군요. 일부러 그 녀석 앞에 있는 휴지통에다 따지듯

 

 들고있던 컵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웃어 버리더군요.

 

 

 

>철이: 그녀는 일어교육과 학생인 것 같습니다. 일본어인 듯한 말을

 

 중얼거리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중얼거리면 실례가 되지만 뭐

 

 주위에 공부하는 학생도 별로 없었고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기에 내

 

 좌석 칸막이에 귀를 대고 그녀의 음성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나보다

 

 고학년이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일본어 솜씨는 유창해

 

 보였습니다. 나도 뒤지기 싫었습니다. 연습장에 나조차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전공 공식들을 그려놓고 담배나 피려고 자리를 떴습니다.

 

 

 

>민이: 괜히 앉아 있으니까 또 잠이 오는군요. 책을 폈지만 일본어 단어들이

 

 생소했습니다. 재수를 했지만 난 아직 일학년이기 때문에 이런 문장들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히라가나, 가타가나 첨부터 다시 외어보기로 결심을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주위에 사람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맘 놓고 중얼거릴 수

 

 있었습니다. 중얼거리다가 책장도 넘겨보았습니다. 그가 좀 내 중얼거림이

 

 시끄럽게 느껴졌나 봅니다. 못 참겠다는 듯 책상 칸막이 사이로 머리를

 

 박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치~ 자기는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그가 자리를 비운 책상의 연습장을 보았습니다.

 

 몰래 넘겨보기도 했습니다. 글씨는 예쁘게 쓰더군요. 무슨 과인지 짐작도

 

 되지 않는 어려운 공식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연습장 앞에는 9012**

 

전자공학과 성혜철 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삼학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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