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성당 게시판

우연 제3부

인쇄

홍성범 [john27] 쪽지 캡슐

1999-07-18 ㅣ No.158

<<<3부>>>- 그대를 나만의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

 

 

>철이: 학기 초라 들뜬 기분 때문에 도서관을 가지 못했지요. 그래서 그녀를

 

 일주일동안 보지를 못했습니다. 교양시간이 많이도 기다려지더군요. 그

 

 교양수업이 시작하기 20분전 쯤에 강의실로 갔습니다.  앞자리 쪽에 가방을

 

 던져 놓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얼마 후면 그녀가 나타나 제 근처에 자리를

 

 잡을거라 기대를 했습니다. 강의실 앞 문쪽에 시선을 두고 그녀만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냐구요? 그녀의 모습이 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침에 얼룩져 버렸던 그녀의 책도 새로 하나 샀습니다. 생각보다 비싸더군요.

 

 한참을 기다렸는데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혹 수강변경이나 해버리지

 

 않았나 걱정도 되었습니다. 결국 그녀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강의는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그녀를 못보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수업이 끝났을 때

 

 복도에서 그녀를 보았습니다. 친구와 같이 있더군요. 친구와 같이 가는

 

 그녀에게 말을 걸어 책을 주기는 그랬습니다. 더군다나 그녀의 책이 아니라

 

 새로 산 책이니 말입니다. 할수 없습니다. 다음에 보게되면 주어야 겠습니다.

 

 미안하다는 글도 하나 적어 같이 주어야 겠습니다.

 

 

>민이: 학기초라 여기저기 불려 다녀 도서관을 가지 못했답니다. 이번주

 

 전공수업은 책 없이 강의를 들어야 했습니다. 드디어 한민족의 역사라는

 

 교양과목이 있는 날이 돌아 왔습니다. 그 교양은 그와 같이 듣는 수업이지요.

 

 기대가 됩니다. 교양수업이 시작하기 30분전쯤에 강의실로 갔습니다. 친구가

 

 앞자리도 많이 비었는데 왜 굳이 뒤에 가 앉느냐고 따지더군요. 그럴 일이

 

 있단다. 이 기집애야... ^^ 친구와 커피를 한잔 뽑아 강의실 뒷문 계단쪽으로

 

 가 잠시 수다를 떨었습니다. 수업이 시작할 무렵 약간은 설레이는 맘으로

 

 강의실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내 근처에 앉아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 그가 수강변경이나 해버리지 않았나

 

 걱정이 되더군요. 하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수업이 끝났을 때 저기 앞쪽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도서관에서처럼 일정한

 

 자리에 앉지 않았습니다. 복도에서 그와 마주쳤는데 또 횡하니 가버렸습니다.

 

 아주 모르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분명히 날 알텐데 말입니다. 진짜로 날

 

 모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에이 설마 방학때 그렇게 도서관에서 자주

 

 보았는데... 책은 그래서 받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그 책은 새로

 

 사야겠습니다.

 

 

 

>철이: 오늘 우연찮게 그녀를 만났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친구를 붙잡아

 

 뒷자리를 신세졌었습니다. 사대앞 내리막 길을 신나게 내려 갔었지요.

 

 지나치는 가을냄새가 상큼했습니다. 그런데 자전거 모는 놈이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더니 헨들 한 쪽을 홱 틀었습니다. 어떤 여학생이 갑자기 튀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하. 그 여학생은 바로 그녀더군요. 다행히 그녀를

 

 치인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자전거 운전한 친구에게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단지 멋모르고 뒷좌석에서 손놓고 있던 나만 공중에

 

 붕~ 떴다가 한바퀴 굴렀지요. 속력 때문에 난 그녀가 서있던 바로 앞에까지

 

 굴러가 쳐 박혔습니다. 치마 입은 그녀의 다리가 참 예쁘더군요. 손바닥에서

 

 피가 났습니다. 하지만 아픈 줄을 몰랐습니다. 왜냐면 쪽팔렸기 때문입니다.

 

 주위에 사람들까지 모여들었습니다. 얼굴을 못 들겠습니다. 그녀가 보는

 

 앞에서 이 무슨 창피냐...  저기 떨어진 내 가방을 주워 들고는 차마 그녀의

 

 얼굴은 쳐다보지 못하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날 보고 있는 자전거 운전수

 

 놈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죽어라 뛰었습니다.

 

 

>민이: 오늘은 큰일날 뻔했습니다. 사대 앞 내리막 길에서 길건편 친구가

 

 부르길래 무심결에 길을 건너다 급히 내려오는 자전거에 치일 뻔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그 자전거는 내 바로 앞에서 멈추었지만 윗 자석에 타고

 

 있던 남학생 한 명이 날라서 내 바로 앞에 떨어졌습니다. 이런! 내 앞에

 

 떨어진 남학생은 바로....그였습니다.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 정도로 그는

 

 각하게 자전거에서 떨어져 굴렀습니다. 갑자기 맘이 아프더군요. 손을 잘못

 

짚었는지 손바닥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그는 많이 아팠는지 한동안 얼굴도 못

 

 들었습니다. 난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에게 줄려고 했습니다. 근데 그는

 

 자기와 같이 떨어진 가방을 들고는 단지 주먹만  쥐어 보이고 뭐가 급한지

 

 엄청 빠르게 뜀박질하여 멀리 사라져 갔습니다. 손수건을 들고 한동안

 

 멀어지는 그의 뒷 모습을 쳐다봤습니다.

 

 

>철이: 오늘은 교양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자전거에서 떨어져 생긴 손의

 

 상처는 거의 아물었지만 창피 당했다는 마음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볼일이 막막합니다. 그래도 수업은 들어가야겠지요.  

 

 하지만 책은 주지 못하겠습니다. 강의실 앞좌석 한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내 앞자리에는 가방 몇 개만 남겨놓고 주인들은 어디를 나갔나 봅니다. 앗,

 

 그 가방들의 자리는 그녀 일행들의 자리였습니다. 수업이 시작할 무렵 그녀와

 

 그녀친구가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와 그 자리에  앉더군요. 좀 머쩍어

 

 했습니다. 제법 긴 머리 때문에 그녀의 하얀 목은 볼 수가 없었지만 대신

 

 그녀 머리결의 향기를 맡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큰 실수는 하긴

 

 했나봅니다.  그녀가 시위를 하듯 이 수업과 전혀 상관없는 전에 내가 베고

 

 잠이 들어 침으로 얼룩지게 만들었던 그 책과 같은 책을 꺼내어 놓았습니다.

 

 책표지사이에는 크게 9243** 일교과 소수민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소수민은

 

 그녀의 이름인가 봅니다. 하하.  그녀는 약간 공주병이 있나봅니다. 저렇게

 

 크게 자기이름을 광고하는걸 보면 말입니다.  내가 사 놓은 책과 또한 그녀의

 

 예전 그 책은 이젠 어떡하지요?  이름도 그녀처럼 예쁩니다. 소수민. 소수민?

 

 소수민... 근데 속으로만 중얼거린다는 게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더니 "예?"라고 그랬습니다. 하하.. 그것이 그녀와의 첫

 

 대화였습니다. 때마침 교수가 우리민족은 동북아의 소수민족 만주족이 한반도

 

 쪽으로 남하하여...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난 그녀에게

 

 "족."이라고 대답해 주었지요. ^^  뭔가 기분 나쁘다는 인상을 나에게 주더니

 

 아까 그녀의 이름이 적힌 그 책에다 무언가 적고는 나에게 잘 보이는 쪽으로

 

 옮겨놓더군요. 그 책을 보았습니다. 그 책에는 새로이여덟자가 적혔

 

 있었습니다. "할 수없이 새로 산 책" 책 내놔란 무언의 시위란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책을 안 들고 왔는데 어떡하지요? 그렇게 그날은

 

 그녀의 바로 뒷 자리에서 교양수업 강의를 들었습니다. 이제 도서관 처럼 이

 

 자리를 제 고정자리로 할렵니다.

 

 

>민이: 오늘은 교양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그때 자전거 사건 이후로 아직

 

 그를 못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를 볼 수 있겠군요. 손은 괜찮을까요?

 

 이번엔 혹시나 하고 앞 자리에다 자리를 맡았습니다. 그가 저번에 앉았던

 

 바로 앞 자리입니다. 그에게 내가 그가 앉았던 자리근처에 자리를 잡았다는

 

 인상은 주기 싫었기에 친구를 꼬셔서 커피를 마시러 나갔습니다. 강의실로

 

 돌아와 보니 반갑게도 그는 내 바로 뒷 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오늘도 이

 

 교양수업은 출석을 부르지 않는군요. 수강생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교수는

 

 출석 부를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는 아직 내 이름을 모를것입니다.

 

 난 책에다 이름을 적지 않습니다. 단지 글자를 알아볼수 없는 사인만

 

 해놓지요. 그러나 난 그에게 내 이름을 알리고 싶었습니다.교수가 출석을

 

 불렀다면 굳이 이런 짓을 하지 않아도 될텐데... 그가 주지 않아 새로 산

 

 책에 다 크게 이름을 적어 밖으로 내어 놓았습니다. 충분히 그가 이 책의 내

 

 이름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호호.. 역시 그는 내 이름을 보았나봅니다.

 

 소리는 작았지만 분명 그의 입에서 내 이름 석자가 불리어졌습니다. 나도

 

 모르게 뒤돌아 "예?"라고 답해 버렸지요. 에그 쑥스러워라... 근데 그는 약간

 

 멋적은 듯 멀뚱 거리더니 "족" 이라고 답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교수가 강의하는 내용에서 소수민족이라는 단어를 듣고서야 그가

 

 내 이름 가지고 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좀 분했습니다. 책도 안 돌려

 

 주고 그가 좀 얄밉더군요. 그래서 책에다 다시 열 네자를 썼습니다. "네가

 

 주지 않아 할 수 없이 새로 산책" 앞에 여섯 글자는 연필로 아주 작게

 

 썼습니다. 그리고 조금 지나 지워 버렸구요. 내가 무슨 짓하나 모르겠습니다.

 

 자기 이름은 뭐 그렇게 좋나? 혜철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구나. 그가 좀

 

 얄미웠던 건 사실이지만 다음 주부터 이자리는 제자리가 될것 같습니다.

 



11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