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부끄러운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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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남 [obbji] 쪽지 캡슐

2004-12-31 ㅣ No.3842

    부끄러운 고백 일 때문에 시내에 나갔습니다. 은행 앞에서 노숙자인 듯한 분이 검정 비닐봉지에 구걸한 듯한 김치와 밥이 섞여 있는 찬밥을 손으로 드시고 있었습니다. 총총걸음으로 옷깃을 여미고 지나치는 무수한 시민들 틈에 끼여 그 곁을 지나가며 마음이 조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주머니를 뒤적이며 있는 돈을 다 털어보지만 짜장면 한 그릇 값도 되지 않는 천 팔백 원, 주머니안에서 만지작거리며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다가 반질반질한 소매 끝으로 입을 닦으시는 형제 앞으로 가려는 참에 누군가 수녀님, 뭐하세요. 하며 가볍게 어깨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있던 본당 자매로 엉겁결에 “으- 응 그냥요”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자매의 손에 이끌려 커피숍이라는 곳에 갔습니다. 커피를 두잔 시켜놓고 앞에서 반갑다고 수녀님이 기도를 많이 해줘서 남편의 일도 잘되고 아이들도 건강하다는 자매의 말을 들으며 매뉴판을 보니 커피 한잔에 사천 원.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가슴이 메어져 커피를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제 머리 속에는 누구의 관심도 없이 검정비닐봉지에 담긴 밥을 묵묵히 먹던 형제와 수도복을 입은 저 모습이 교차되며 떠오르는 또 하나의 얼굴이 있어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무게에 짓눌리는 듯한 아픔이 밀려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래전 서울에서 수원 가는 직행을 탄 적이 있습니다. 과천에서 젊은 청년이 차를 타고는 출발과 동시에 주섬주섬 가방을 열더니 크리넥스 박스 하나와 작은 종이 한 장을 승객들 무릎위에 올려놓기 시작했습니다. 청년이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뛰며 가슴이 조마조마 해지고 내 무릎위에도 놓으면 어떻게 하나, 되돌아올 차비 밖에 없는데......., 기도해준다고 할까? 생각하는 동안 청년이 제 무릎위에 크리넥스 박스하나와 사유를 적은 종이 한 장을 놓고 자신이 속하여 있다는 재활 단체 사진이 들어있는 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카드에는 자신은 고아로 00재활원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말과 들을 수 없는 중증장애인으로 자립생활을 하고자 하오니 크리넥스를 사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씌여 있었습니다. 승객들은 이미 익숙해져 있는 듯 자신의 무릎위에 놓여진 크리넥스와 종이 한 장을 가져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거나 창밖을 보고 있었지만 저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했습니다. “미안해요. 제가 가진 돈이 없어요. 그 대신 기도 중에 기억할께요.” 그런데 청년은 비양거리듯 웃음을 흘리며 제 얼굴을 향해 침을 뱉었습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옆에서 계시던 할머니가 청년을 야단치며 꾸짖는 동안 손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닦으며 청년을 다시 보았습니다. 힐끔 뒤를 돌아보던 청년은 버스를 세우며 재수가 없다는 말을 하며 내렸습니다. 수도원에 돌아와 꼬박 몇 시간을 성당에 앉아 묵상을 했습니다. 억울한 것도 아니고 분한것도 아닌데 눈물이 났습니다. 나는 그 청년을 위해 무슨 기도를 해준다는 것이었을까? 자신에게 반문하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돈이 없어서 그 위기를 벗어나려는 하나의 방법으로 주님을 팔아먹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너무나 괴로웠답니다. 어색할 때, 할말이 없을 때, 환자를 방문하거나 상담을 할 때 너무나 쉽게 기도해 준다는 말로 나를 포장하며 기도라는 말을 남용한 것 같아서......, 그 뒤 기도라는 말을 많이 아끼고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말보다는 기도를 먼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자매는 제 기도 덕분에 남편 사업이 잘되고 아이들도 건강하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 자매에게 기도 해준다고 한 적은 없었지만 매일 아침 그 가정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이름모를 그 청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살면서 하느님 앞에 생활속에서 끊임없이 내, 외적으로 들려오는 소음의 한가운데서 내면적으로나 외형적으로 고요한 상태에 머물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기도의 가장 본질적인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의 확신이 은총이라는 선물임을 알면서도 오로지 하느님만을 생각할 수 없을 때가 참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또 받아주심을 알기에 오늘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노숙자들을 위해서, 위정자들을 위해서, 곳곳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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