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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은 하느님의 목소리라는 주장에 대하여... [교리용어_양심] 969_토미즘학습 1089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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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4/4 [175.115.220.*]

2011-08-22 ㅣ No.1097

 
 
게시자 주:
 
각자의 양심은 그 형성 과정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기에, "각자의 양심은 하느님의 목소리이다"라는 주장이 어불성설임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자가 "양심은 하느님의 목소리이다" 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누구의 양심이 하느님의 목소리입니까?" 라고 그에게 질문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기를 클릭하시면, 이 글을 포함하여, 올해 사순 시기 이후로 올려드린 "양심(conscience)" 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글들을 모두를 손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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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이 글은, 여기 1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양심이 신앙에 항상 우선할 수 있을까요?" 라는 제목의 글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들어와 어떤 자가, 여기 2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 대사전"의 한 구절에서 그렇게 말한다면서, "양심이 하느님의 목소리"라는 주장이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이라고 말을 하는데, 이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1. 우선적으로, "양심이 하느님의 목소리"라는 주장은, 양심의 정의(definiton)에 대하여 매우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위의 여기 1을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글[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서인 신학 대전에서의 양심의 정의(definition)포함]의 어디에서도 그러한 언급이 없습니다.
 
오히려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에 주어진 양심의 정의에 의하면 양심은 어떤 습관(a habit)이며(synderesis일 경우) 그리고 어떤 행위(an act)이므로(엄격한 의미에서의 양심), 양심이란 개인에 따라 형성되는 어떤 습관/행위이기에, 사람에 따라 양심이 좋은 습관/행위일 수도 있고 또 나쁜 습관/행위일 수도 있기에, 그 결과, 비록 이들 습관/행위 자체를 선천적으로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는 동일하나, 그러나 이들 내용에 있어서는 결코 동일할 수가 없기에, 즉 사람에 따라 양심이 좋은 습관/행위일 수도 있고 또 나쁜 습관/행위일 수도 있기에, 따라서, 하나일 수 밖에 없음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대단히 자의적/작위적 강조인 "(한 분이신) 하느님의 목소리"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 너무 심하여 도저히 말이 되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다음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윤리 신학을 수용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83-1785항의 가르침입니다. "양심은 형성되어야 하고 도덕적 판단은 계발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바로 이 가르침은, 양심이 하느님의 목소리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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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II. 양심의 형성
 
1783  양심은 형성되어야 하고 도덕적 판단은 계발되어야 한다. 잘 형성된 양심은 바르고 진실하다. 잘 형성된 양심은 이성에 따라, 창조주의 지혜가 원하는 참된 선에 맞는 판단을 내린다. 부정적 영향을 받기 쉽고, 자신의 판단을 앞세우며 권위있는 가르침을 거부하도록 죄의 유혹을 받고 있는 인간에게는 양심 교육이 필요하다.
 
1784  양심 교육은 온 생애에 걸친 일이다. 양심 교육은 어렸을 때부터 어린아이에게 도덕적 양심으로 깨닫게 된 내적 법을 인정하고 실천하도록 일깨운다. 현명한 교육은 을 가르치며, 인간의 약함과 잘못에서 생기는 공포, 이기심, 교만, 죄책감과 자기 만족에 대한 충동 등에서 보호하거나 이를 치유해 준다. 양심 교육은 자유를 보장해 주며 마음의 평화를 준다.
 
1785  양심의 형성에서 하느님 말씀은 우리의 길을 비추는 빛이다. 우리는 신앙과 기도 안에서 하느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그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양심을 성찰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께서 주신 선물의 도움을 받고, 다른 이들의 증언이나 충고로 힘을 얻으며, 교회의 권위 있는 가르침의 인도를 받는다.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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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종교 자유 선언, 14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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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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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다른 한 편으로, 교도권의 정의(definition)도 모르기에, 그리고 이미 몇 년 전에 교도권의 정의를 정확하게 전달해 주어도, 자신의 신념을 계속 내세우면서, 받아들이기를 지금까지 속하여 거부하기에, 우리나라 지역 교회에서 발행한 가톨릭 대사전의 권위보다 가톨릭 보편 교회가 공포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권위가 훨씾 더 높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자에게야, 이 글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만,
 
그러나, 오로지 자신 고유의 주장을 정당화 하고자 그러한 인용을 하는 자를 탓하거나 나무라기 전에,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 대사전에 있는 바로 그 구절은,
 
(i)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기에, 그리고 더 나아가 
 
(ii) 실제로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찾아 보았더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들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회칙들 등의, 가톨릭 보편 교회의 핵심 문헌들에서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기에,
 
(단, 아래에서 말씀드리겠지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1986년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영어본 본문 제43항에 번역자의 판단/해석/의지가 개입된 번역문이 한 개 있음), 그러나,
 
(iii) 따라서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 쪽은 가톨릭 측이 아니고 주로 일부 "개신교측" 인 것으로 보이기에.
 
이러한 몇 개의 관점들에서 볼 때에, 조금 더 들여다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함께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양심이 하느님의 목소리이다" 라는 주장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에 주어진 양심의 정의(definition)로부터는 연역적 추론에 의하여 도출할 수 없는 어떤 주장이기에, 가톨릭 교회의 역사 안에서 어찌된 영문인지를 좀 더 알아 보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2-1.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영국의 The Royal Latin School 홈페이지 제공의 자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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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1. Conscience as the voice of God.

St Augustine of Hippo and John Henry Newman both thought that
Conscience was the voice of God, speaking within the individual.
 
(졸번역)
1. 하느님의 목소리로서 양심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와 John Henry Newman 둘 다는 양심을, 개인의 안쪽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목소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thought).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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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구체적인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서, 그러한 생각을 그들이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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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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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자료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에 대한 설명을 또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바로 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에 대한 설명을 가톨릭 보편 교회는 받아 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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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Thomas Aquinas (1224 – 1274)
토마스 아퀴나스(1224 - 1274)

Whereas the Early Church Fathers tended to think of the Conscience as
the Voice of God, Aquinas nothing more than the rational mind making
moral decisions.
 
초기 교회의 교부들이 양심(Conscience)을 하느님의 목소리로 생각하는 경항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아퀴나스는 윤리적 결정들을 내리는 이성적 마음보다 더한 어떤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Thus, Synderesis is the basic and practical use of human reason, pointing
out the right course of action. It is an intellectual activity.
 
따라서, 신데레시스(Synderesis)는, 행위의 올바른 진로를 가리키는, 인간의 이성의 기본적이며 실제적 사용을 말합니다. 그것은 어떤 지성적 활동(an intelletual activity)입니다.

"By conscience the knowledge given through synteresis is applied to
particular actions".
"De Verit.", Q. xvii, a. 2.;
 
"양심에 의하여 신데레시스를 통하여 주어지는 지식은 특정 행동들에 적용됩니다"
"De Verit.", Q. xvii, a. 2.;

Aquinas argued that there is a “Synderesis Rule” – Do Good and Avoid
Evil. The conscience is binding – it is wrong to disobey the dictates of
your conscience. This applies, even if the conscience makes a mistake.
 
아퀴나스는,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고 하는"신데레시스 규칙(Synderesis Rule)" 이 있다고 주장였습니다. 양심은, 그대의 양심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속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심지어 양심이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적용됩니다.

     § If your conscience (after proper reflection) tells you that a particular action is wrong (even if the Church should say otherwise) it would be wrong to carry out that action.
 
      §만약에 (합당한 숙고 이후에) 그대의 양심이 그대에게 (심지어 교회는 그와 달리 말하더라도) 어떤 특정 행동이 잘못이라고 말한다면 바로 그 행동을 실행하는 것은 잘못일 것입니다. 

     § In the same way, if your conscience tells you that you must do
something which the Church forbids, you would commit a sin if you
failed to obey your conscience.
 
     § 꼭 같은 방식으로, 그대의 양심이 그대에게 교회가 금지하는 어떤 것을 그대가 하여야만 할 경우에, 만약에 그대가 그대의 양심에 복종하는 데에 실패한다면 그대는 어떤 죄를 범하는 것일 것입니다.

While this might seem a recipe for anarchy, Aquinas believed that the conscience derives its authority from God. Only an erring conscience would demand that a Christian should defy the authority of the Church.
 
이것이 혼란을 가져올 어떤 처방(recipe)인 것처럼 보이는 반면에, 아퀴나스는 양심이 자신의 권위(authority)를 하느님으로부터 끌어낸다고 믿었습니다. 오로지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양심(an erring conscience)만이 그리스도인이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여야만 한다고 요구할 것입니다. 

Aquinas believed that wrongdoing came from ignorance, or from ignoring
the dictates of the conscience. Where a person knows what they should be
doing, but fails to do so, is doing wrong.
 
아퀴나스는 잘못된 행위가 무지(ignorance)로부터, 혹은 양심의 명령을 무시하는것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한 인격(a person)이 그들이 행하여야만 할 바를 알고 있는, 그러나 그렇게 행하는 데에 실패할 경우에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This failure can be due to a failure to develop those virtues that enable a
person to make appropriate judgements based on an evaluation of the
situation and careful reflection.
 
이러한 실패는, 한 인격이 상황에 대한 평가 및 조심스러운 숙고에 근거한 적합한 판단들을 내리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바로 그 덕(virtues)들을 개발하지 못한 것에, 기인할 수 있습니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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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결론 1)
이상, 제2-1항에서 살펴 본 바에 의하여, 궁금한 점이 상당히 해소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즉, 그동안에 양심에 대하여 살펴 본 글들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도권에서는. 적어도 14세기 이후부터.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심의 정의(definition)를 받아들였으며, 이에 따라, 초기 교회 시절의 교부들이 생각하였다는 "양심이 하느님의 목소리이다" 라는 생각(thought)을 글자 그대로 받아 들인 것이 아니라. 이 표현에 있어서의 "하느님의 목소리"를, 윤리적으로, 어떤 "자연법" 혹은 "첫 번째 진리들(first truths)" 혹은 "첫 번째 원리들(first principles)"로 이해하며, 그리고 "이 자연법"을, 양심의 두 양상(aspects)들 중의 하나인, "신데레시스(synderesis)"의 대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2-2. 가톨릭 측에서는 양심의 대상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78항에서
 
"이 법은 인간이 자신에게 부여한 법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이 거기에 복종하여야 할 법이다. 그 소리는 언제나 선을 사랑하고 실행하며 악을 피하도록 부른다. 필요한 곳에서는 마음의 귀에 대고, ‘이것을 하여라.’ , ‘저것을 삼가라.’하고 타이른다.  이렇게 인간은 하느님께서 자기 마음 속에 새겨 주신 법을 지니고 있으므로`…….  "
 
라고 말하고 있는 "자연법(natural law)"을 양심이라고 잘못 부르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것은. 이미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자신의 저술인 신학 대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양심의 정의(definition)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 때문일 것입니다.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76항인데, 이 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네 개의 핵심 문헌들 중의 하나인 "사목 헌장"에서의 가르침을 발췌 인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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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1776  “인간은 양심의 깊은 곳에서 법을 발견한다. 이 법은 인간이 자신에게 부여한 법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이 거기에 복종하여야 할 법이다. 그 소리는 언제나 선을 사랑하고 실행하며 악을 피하도록 부른다. 필요한 곳에서는 마음의 귀에 대고, ‘이것을 하여라.’ , ‘저것을 삼가라.’하고 타이른다.  이렇게 인간은 하느님께서 자기 마음 속에 새겨 주신 법을 지니고 있으므로`…….  양심은 인간의 가장 은밀한 핵심이며 지성소이다. 거기에서 인간은 홀로 하느님과 함께 있고 그 깊은 곳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영어본)
1776 "Deep within his conscience man discovers a law which he has not laid upon himself but which he must obey. Its voice, ever calling him to love and to do what is good and to avoid evil, sounds in his heart at the right moment. . . . For man has in his heart a law inscribed by God. . . . His conscience is man's most secret core and his sanctuary. There he is alone with God whose voice echoes in his depths."
 
(졸번역)
1776. "사람은 자신의 양심 안쪽 깊숙히, 그가 자기 자신에게 마련한 것이 아니라 그가 복종하여야만 하는, 어떤 법을 발견합니다. 선한 바를 사랑하며 행하라고 그러나 악을 회피하라고 그를 부르는, 이 법의 목소리는 적절한 때에 그의 심장에서 소리를 냅니다. ... 이는 사람이 자신의 심장에 하느님에 의하여 새겨진 어떤 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의 양심은 사람의 가장 비밀스러운 중심부이며 그리고 그의 지성소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그는 홀로, 그분의 목소리가 그의 한가운데에서 울려 퍼지는, 하느님과 함께 있습니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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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오류 한 개: 영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78항에서 "heart"로 번역된 표현을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는 "마음"으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상당히 심각한 번역 오류라는 생각입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글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32.htm
 
또한 다음의 성경 구절에서는, 분명히 NAB 에서 "heart"으로 번역된 표현이 새 번역 성경에서 "심장"으로 번역된 것도 또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서 20,9 [가해 연중 제22주일 제1독서(예레미야 20,7-9)] 
 
(NAB) 
I say I will not mention him, I will no longer speak in his name. But then it is as if fire is burning in my heart, imprisoned in my bones; I grow weary holding back, I cannot!
 
 
(새 번역 성경)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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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1. 다음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1986년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영어본 본문 제43항에 번역자의 판단/해석/의지 등이 개입된 것에 대한 글입니다.
 
이 회칙은 1983년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회칙인 "진리의 광채"에서 다루고 있는 교회가 가르치는 "양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해당 부분만을 뽑아보면 다음과 같으며,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 제43항 전문은 아래에 있습니다. 
 
참고: 영어본 제43항에 대한 비교/검토:
Ea est ≪ vox Dei ≫
Essa e ≪la voce di Dio≫
Et c'est la ≪voix de Dieu≫,
The conscience is "the voice of God"
그것은 결국“하느님의 목소리” 입니다.
 
(라틴어)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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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Concilium Vaticanum II, de vocatione hominis agens et praesertim de humanae personae dignitate, doctrinam catholicam de conscientia memoravit. Ipsa conscientia modo peculiari est huius dignitatis condicio. Ea enim ≪ est nucleus secretissimus atque sacrarium hominis, in quo solus est cum Deo, cuius vox resonat in intimo eius ≫. Ea ≪ Ilare auribus cordis sonat : fac hoc, illud evita ≫. Haec facultas iubendi bonum et prohibendi malum, in hominem a Creatore immissa, est potissima proprietas cuiusque personae. Sed, eodem tempore, ≪ in imo conscientiae legem homo detegit, quam ipse sibi non dat, sed cui obedire debet ≫ (165). Quare conscientia non est fons aptus ex sese et unicus ad statuendum quid bonum sit quidque malum; est, contra, in ea penitus insertum principium oboedientiae erga normam obiectivam, quae substruit et condicionibus adstringit eius consiliorum probitatem per iussa et prohibitiones, quae vitae humanae rationem regunt, ut patet ex pagina libri Genesis, de qua iam mentionem fecimus (166). Prorsus hac significatione conscientia est ≪ intimum sacrarium ≫, in quo ≪ vox Dei resonat ≫. Ea est ≪ vox Dei ≫, vel cum homo agnoscit eam solam esse principium ordinis moralis, de quo humanitus dubitari non potest, etiam sine expresso Dei respectu: in hoc ipso vero respectu conscientia semper suum fundamentum suamque rationem habet, ex qua exsistat.
 
(이탈리아어)
출처: 
http://www.vatican.va/edocs/ITA1216/__PD.HTM
43. Il Concilio Vaticano II ha ricordato l'insegnamento cattolico sulla coscienza, parlando della vocazione dell'uomo e, in particolare, della dignita della persona umana. Proprio la coscienza decide in modo specifico di questa dignita. Essa, infatti, e ≪il nucleo piu segreto e il sacrario dell'uomo, dove egli e solo con Dio, la cui voce risuona nell'intimo≫. Essa chiaramente ≪dice alle orecchie del cuore: Fa' questo, fuggi quest'altro≫. Una tale capacita di comandare il bene e di proibire il male, inserita dal Creatore nell'uomo, e la principale proprieta del soggetto personale. Ma, al tempo stesso, ≪nell'intimo della coscienza l'uomo scopre una legge che non e lui a darsi, ma alla quale deve invece obbedire≫. La coscienza, dunque, non e una fonte autonoma ed esclusiva per decidere cio che e buono e cio che e cattivo; invece, in essa e inscritto profondamente un principio di obbedienza nei riguardi della norma oggettiva, che fonda e condiziona la corrispondenza delle sue decisioni con i comandi e i divieti che sono alla base del comportamento umano, come traspare fin dalla pagina del Libro della Genesi, gia richiamato. Proprio in questo senso la coscienza e l'≪intimo sacrario≫, in cui ≪risuona la voce di Dio≫. Essa e ≪la voce di Dio≫ persino quando l'uomo riconosce esclusivamente in essa il principio dell'ordine morale, di cui umanamente non si puo dubitare, anche senza un diretto riferimento al Creatore: proprio in questo riferimento la coscienza trova sempre il suo fondamento e la sua giustificazione. L'evangelico ≪convincere quanto al peccato≫ sotto l'influsso dello Spirito di verita non puo realizzarsi nell'uomo per altra via se non per quella della coscienza. Se la coscienza e retta, allora serve ≪per risolvere secondo verita i problemi morali, che sorgono tanto nella vita dei singoli quanto in quella sociale≫; allora ≪le persone e i gruppi sociali si allontanano dal cieco arbitrio e si sforzano di conformarsi alle norme oggettive della moralita≫. Frutto della retta coscienza e, prima di tutto, il chiamare per nome il bene e il male, come fa ad esempio la stessa Costituzione pastorale: ≪Tutto cio che e contro la vita stessa, come ogni specie di omicidio, il genocidio l'aborto, l'eutanasia e lo stesso suicidio volontario; tutto cio che viola l'integrita della persona umana, come le mutilazioni, le torture inflitte al corpo e alla mente; gli sforzi di costrizione psicologica. tutto cio che offende la dignita umana, come le condizioni di vita infraumana, le incarcerazioni arbitrarie, le deportazioni, la schiavitu, la prostituzione, il mercato delle donne e dei giovani, o ancora le ignominiose condizioni di lavoro, con le quali i lavoratori sono trattati come semplici strumenti di guadagno, e non come persone libere e responsabili≫; e, dopo aver chiamato per nome i molteplici peccati, cosi frequenti e diffusi nel nostro tempo, essa aggiunge: ≪Tutte queste cose e altre simili sono certamente vergognose e, mentre corrompono la civilta umana, inquinano coloro che cosi si comportano ben piu di quelli che le subiscono; e offendono al massimo l'onore del Creatore≫. Chiamando per nome i peccati che piu disonorano l'uomo, e dimostrando che essi sono un male morale che grava negativamente su qualsiasi bilancio del progresso dell'umanita, il Concilio insieme descrive tutto cio come una tappa ≪della lotta drammatica tra il bene e il male, tra la luce e le tenebre≫, che caratterizza ≪tutta la vita umana, sia individuale che collettiva≫. L'assemblea del Sinodo dei Vescovi del 1983 sulla riconciliazione e la penitenza ha precisato ancor meglio il significato personale e sociale del peccato dell'uomo.
 
(프랑스어)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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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Le Concile Vatican II a rappele l'enseignement catholique sur la conscience, en parlant de la vocation de l'homme et en particulier de la dignite de la personne humaine. C'est precisement la conscience qui determine d'une maniere specifique cette dignite. Elle est en effet ≪le centre le plus secret de l'homme, le sanctuaire ou il est seul avec Dieu et ou sa voix se fait entendre≫. C'est clairement qu'elle ≪dit dans l'intimite de son cœur: "Fais ceci, evite cela"≫. Cette capacite de commander le bien et d'interdire le mal, inscrite dans l'homme par le Createur, est la propriete caracteristique du sujet personnel. Mais en meme temps, au fond de sa conscience, l'homme decouvre la presence d'une loi qu'il ne se donne pas lui-meme, mais a laquelle il est tenu d'obeir≫165. La conscience n'est donc pas une source autonome et exclusive pour decider ce qui est bon et ce qui est mauvais; au contraire, en elle est profondement inscrit un principe d'obeissance a l'egard de la norme objective qui fonde et conditionne la conformite de ses decisions aux commandements et aux interdits qui sont a la base du comportement humain, comme il apparait des la page du Livre de la Genese deja evoquee166. En ce sens precis, la conscience est le ≪sanctuaire secret≫ ou ≪la voix de Dieu se fait entendre≫. Et c'est la ≪voix de Dieu≫, meme quand l'homme reconnait exclusivement en elle le principe de l'ordre moral dont on ne peut douter humainement, fut-ce sans reference directe au Createur: la conscience trouve toujours son fondement et sa justification dans cette reference.
 
(해당 부분에 대한 졸번역)
바로 이러한 의미로 양심은 그 안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반향하는 "감추어진 지성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심지어 사람이 그것의 안에서, 심지어 창조주에 대한 아무런 직접적 언급 없이, 인간적으로 의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윤리적 명령의 원칙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알아차릴 때에도, "하느님의 목소리"입니다: 양심은 바로 이러한 언급 안에서 그 근거와 정당성의 기초를 항상 발견합니다. 
 
(영어)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43. The Second Vatican Council mentioned the Catholic teaching on conscience when it spoke about man's vocation and in particular about the dignity of the human person. It is precisely the conscience in particular which determines this dignity. For the conscience is "the most secret core and sanctuary of a man, where he is alone with God, whose voice echoes in his depths". It "can... speak to his heart more specifically: do this, shun that". This capacity to command what is good and to forbid evil, placed in man by the Creator, is the main characteristic of the personal subject. But at the same time, "in the depths of his conscience, man detects a law which he does not impose upon himself, but which holds him to obedience".[165] The conscience therefore is not an independent and exclusive capacity to decide what is good and what is evil. Rather there is profoundly imprinted upon it a principle of obedience visa-vis the objective norm which establishes and conditions the correspondence of its decisions with the commands and prohibitions which are at the basis of human behavior, as from the passage of the Book of Genesis which we have already considered.[166] Precisely in this sense the conscience is the "secret sanctuary" in which "God's voice echoes". The conscience is "the voice of God" even when man recognizes in it nothing more than the principle of the moral order which it is not humanly possible to doubt, even without any direct reference to the Creator. It is precisely in reference to this that the conscience always finds its foundation and justification.
 
(우리말)
43.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인간의 소명과 특히 인격의 존엄성에 대해 언급하는 기회에 양심에 관한 가톨릭의 가르침을 상기시켰습니다. 이 존엄성을 특별한 방법으로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 양심입니다. 실상, 양심은“인간의 가장 내밀한 중심이며, 인간이 하느님과 일대일로 대면하고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 지성소” 입니다. 양심은“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이것은 하고 저것은 피하라고 말해 줍니다.” 창조주께서는 인간 속에 선을 명하고 악을 금지시키는 능력을 심어주셨는데,  이 능력이야말로인격 주체의 가장 고유한 특성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동시에 “자기 양심 속 깊은 데서 법을 발견한다. 이 법은 인간이 자신에게 준 법이 아니라 인간이 거기에 복종해야 할 법이다.” 165)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선과 악을 결정하기 위한 어떤 자주적이고 배타적인 원천이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양심 안에는 어떤 객관적 규준에 대한 순종의 원리가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객관적 규준이, 인간의 심층에 있는 명령이나 금령(禁令)에 비추어 자신의 결정이 거기에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판결하고, 그럴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례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창세기의 대목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166) 바로 이
런 뜻에서, 양심은“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 “가장 내밀한 지성소” 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양심을 두고 창조주와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인간적으로 도저히 의문에 붙일 수 없는 그 실체 안에서 단순히 윤리적 원리만을 본다 해도, 그것은 결국“하느님의 목소리” 입니다. 양심은 그 근
거와 정당화의 바탕을 항상 거기서만 발견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언급하고 있는 진리의 영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이루어지는 “죄를 들어 밝히는 일” 은, 인간에게 양심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됩니다. 양심이 바르게 섰을 때, 그것은“진리를 따라서,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야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해줍니다.”그렇게 될 때, “개인이나 집단이 맹목적 방종에서 더욱 멀어지고 객관적 윤리 기준에 더욱 부합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167) 
 
3-2. 또한 여기를 클릭하면, 위에서 한 종류의 번역 오류라고 지적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 영어본 제43항 이외에,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문헌들 중에서 "conscience is the voce of God"라는 표현이 있는 자료는 없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 검색 결과는, "양심은 하느님의 목소리" 라는 표현이 가톨릭 보편 교회의 핵심 문헌들에서 언급되지 않고 있음을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3-3.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양심"에 대한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게시자 주: 이 pdf 파일은 상당히 유익한 자료이니 영어 자료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분들의 필독을 권고합니다:
 
(발췌 시작)
A famous passage from a Vatican II document Gaudium et Spes (Joy and Hope) is often used to misrepresent the Church’s position. People conclude that conscience=Voice of God. What they should conclude is that conscience is one’s perception of that Voice in the core of one’s being.
 
(졸번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으로부터 유명한 구절[제16장]은 교회의 입장(position)을 잘못 나타내는 데에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양심 = 하느님의 목소리 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들이 결론지어야만 할 바는 양심이란 자신의 있음(one's being)이라는 핵심 안에 있는 바로 그 하느님의 목소리에 대한 자신의 인지(one's perception)이다 라는 것입니다.
(발췌 끝).
 
즉,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1986년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영어본 본문 제43항에서의
 
The conscience is "the voice of God"
 
라는 영문 번역이, 번역자의 판단/해석/의지 등이 개입된 번역 오류임을 또한 매우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중간 결론 2) 
이상 살펴본 바로부터, 라틴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그리고 우리말본에서 앞의 어떤 것을 가리키고 있는 대명사 "Ea/Essa/c'/그것"을 영어본에서 "the conscience"로 구체적으로 번역한 것은, 직역 번역을 함으로써 이 대명사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독자들로 하여금 판단하게 하지 않고,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번역자가 "the conscience"라고 해석을 해 버린, 소위 말하는, 번역자의 판단/해석/의지 등이 개입되었기에, 한 종류의 번역 오류임을 우리는 확인하였습니다.
 
이는, 교황님의 1986년 회칙보다도 훨씬 더 상위 문헌인, 1997년에 라틴어 정본이 공포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의 하느님의 목소리에 대한 가르침들과 비교/검토를 해 보아도, 이 회칙의 제43항에서의 "대명사"를 "the conscience"로 번역하는 것은 전후 문맥상으로도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보다도 더 분명한 것은, 가톨릭 교회의 역사에 있어 5세기경을 전후하는 오래 전과는 달리, "양심이 하느님의 목소리"라는 비유적 혹은 우의적 표현은, 1997년에 라틴어 정본이 공포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중에 없으며, 위의 제2-2항에서 이미 말씀드렸듯이 신학적으로 좀 더 명쾌하게 그리고 변별력있게,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76항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76항인데, 이 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네 개의 핵심 문헌들 중의 하나인 "사목 헌장(기쁨과 희망, 제16항)"에서의 가르침을 발췌 인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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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1776  “인간은 양심의 깊은 곳에서 법을 발견한다. 이 법은 인간이 자신에게 부여한 법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이 거기에 복종하여야 할 법이다. 그 소리는 언제나 선을 사랑하고 실행하며 악을 피하도록 부른다. 필요한 곳에서는 마음의 귀에 대고, ‘이것을 하여라.’ , ‘저것을 삼가라.’하고 타이른다.  이렇게 인간은 하느님께서 자기 마음 속에 새겨 주신 법을 지니고 있으므로`…….  양심은 인간의 가장 은밀한 핵심이며 지성소이다. 거기에서 인간은 홀로 하느님과 함께 있고 그 깊은 곳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영어본)
1776 "Deep within his conscience man discovers a law which he has not laid upon himself but which he must obey. Its voice, ever calling him to love and to do what is good and to avoid evil, sounds in his heart at the right moment. . . . For man has in his heart a law inscribed by God. . . . His conscience is man's most secret core and his sanctuary. There he is alone with God whose voice echoes in his depths."
 
(졸번역)
1776. "사람은 자신의 양심 안쪽 깊숙히, 그가 자기 자신에게 마련한 것이 아니라 그가 복종하여야만 하는, 어떤 법을 발견합니다. 선한 바를 사랑하며 행하라고 그러나 악을 회피하라고 그에게 요구하는(calls), 이 법의 목소리는 적절한 때에 그의 심장에서 소리를 냅니다(sounds). ... 이는 사람이 자신의 심장에 하느님에 의하여 새겨진 어떤 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의 양심은 사람의 가장 비밀스러운 중심부이며 그리고 그의 지성소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그는 홀로, 그분의 목소리가 그의 한가운데에서 울려 퍼지는, 하느님과 함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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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항: 누구든지 가톨릭 보편 교회의 핵심 문헌들을 읽을 때에는, 이번의 경우에서처럼, 관련된 가장 최근의 핵심 문헌들을 먼저 읽는 것이 또한 중요할 것입니다. 즉 일단 가장 최근의 핵심 문헌들을 읽고, 이들에서 인용되고 있는 문헌들을 읽는 방식으로, 연대적으로 거꾸로 읽은 후에, 그 내용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고찰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의 결론)
따라서 위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76항의 가르침에 의하면, 하느님의 목소리는 각자의 비밀스러운 중심부이며 그리고 지성소인 양심으로 불리는 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러나 바로 이 가르침을, 위의 중간 결론 1 에서 이미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듯이, 상당히 극단적인 그리고 알게 모르게 오용마저도 있을 수 있는 비유적 혹은 우의적 표현인 "양심이 하느님의 목소리이다" 라는 수사학적 한 표현과, 등가(equivalence)로 동일시 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참고: 예를 들어,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신의 저서인 신학 대전, Ia, q1, a10 에서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톨릭 보편 교회의 핵심 문헌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성경과 마찬가지로, 이 글에서 발췌 인용하고 있는 바와 같이, "양심"이라는 신학적 용어의 자구적 어의(literal sense)를 분명하게 설명하여야할 이유가 충분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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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반대 1에 대한 답변. 이들 어의들의 다중성(multiplicity)은, 이들 어의들이 한 개의 단어가 여러 개의 사물들을 나타내기 때문에 증식되는(are multiplied) 것이 아니라, 이 단어들에 의하여 나타내어지는 사물들 그 자체들이 다른 사물들의 종류들일 수 있기 때문에 증식되므로, 다의(多義)의 허위(equivocation) 혹은 어떤 다른 종류의 다중성을 산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전(聖典, Holy Writ, 즉 성경)에 있어 어떠한 혼란도 야기되지 않는데, 이는 이 어의들 모두가, 아우구스티노(Augustine)가 말하듯이(Epis. 48), 우의/풍유(allegory) 안에서 의도된 것들로부터가 아니라, 거기로부터만이 어떤 논증이 도출될 수 있는, 한 개 - 자구적 어의(the literal) - 위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본문의 어떠한 것도 이것 때문에 소멸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믿음(faith)에 절대적으로 요구되는(necessary to) 어떠한 것도, 그 자구적 어의에 있어 성경 본문에 의하여 다른 장소에서 두드러지게 되지 않는, 영성적 어의 아래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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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성에 소요된 시간: 약7시간 (자료조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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