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부활 제2주간 수요일 ’21/04/14

인쇄

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04-09 ㅣ No.4623

부활 제2주간 수요일 ’21/04/14

 

주일학교 교사 때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말씀으로 신나게 아이들과 율동을 했던 생각이 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하느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희생마저도 허락하시고 받아들이셔야만 했던, 인간적인 감정으로는 그야말로 안타깝고도 찢어질 듯한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외 아드님의 죽음을 앞에 두고, 차마 찬미와 영광을 올려드린다는 입발림 말씀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아드님의 희생과 아드님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셨던 주 하느님의 사랑에 진정 찬미와 영광을 돌려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에 반하여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하도록 하셨는데, 과연 우리가 주님을 믿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속에 갇힌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이러한 송구한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아시는 주 예수님께서는 미리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17)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무조건 다 용서받고 용인받는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를 지으면 스스로 양심의 가책으로 괴롭고 힘겹기 때문입니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20) 악을 찾는 사람이라면,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18-19) 라는 말씀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주님을 믿는다는 우리도 스스로 거룩해지지 못한 아쉬움으로 조급하고 목말라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조급함과 목마름은 악이 아니라 주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길에 생겨나는 과도기의 갈증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21) 부족하면서도 모자라면서도 거룩함을 향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은 주님 사랑 안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주 하느님의 분에 넘친 사랑에 감사드리며, 주님 사랑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결심과 노력을 기울입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57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