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한 여름의 성탄 미사-순례의 여정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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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철 [ch033] 쪽지 캡슐

2000-07-25 ㅣ No.1660

 

 성지 순례 중 받는 은총은  매일 미사를 바친다는  것이다.

 일행중에 신부님이 계셔서 매일 미사를 드릴 수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호텔 한편에서 미사를 드렸지만 신비한 정기가 감도는  시나이 산 정상에서 해돋이를 본 직후에  정상 부근에서  드린 미사는 평생 간직할 매우 벅찬 감회를 주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예수님의 생애와 관련이 큰 곳에 세워진 기념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첫날은 베들레헴의 "성탄 교회"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예수님이 탄생한 자리에 세운 교회는 십자군 시대에 보존, 수리한 것으로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요새처럼 꾸며져 있다. 예수님이 태어난 당시에는 집이나 가축의 우리가 대부분 동굴 속이었다. 그래서 교회당 계단을 내려가면 탄생의 동굴로 들어간다. 그 작은 동굴 안의 예수님이 태어난 지점에는 돌 바닥에  은으로 별을 조각해 놓아 특별한 곳임을 알린다. 우리는 그 바닥에  경배하고 유명한 성서학자인 히에로니무스가 성서를 번역하기 위해 머물던 바로 옆에서  미사를 드렸다. 히에로니무스는(약 347∼419년) "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건은 늘 일정한 공간에서 일어났다. 그런 만큼  장소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는 성경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며 "아테네를 본 사람은 헬라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 마찬가지로 유대를 보고 그 옛 장소와 지역을 알게 되면 성경도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 고 말한 사람이다.  교황이 되기를 원했던 그는 교황 선출에서 좌절을 겪고 자신의 소임을  성서 번역에서 찾아 평생에 걸쳐 라틴어로 성서 번역을 완성시킨 인물이다.

 예수님의 탄생 장소에서  드리는 미사는 언제나 "성탄 미사"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뜨거운 한 여름에 성탄 미사를 드린 것이다.

 

 다음 날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성 무덤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이곳은 예수님이 처형된 골고다 언덕 아래의 무덤이 있던 곳이다. 이곳을 골고다라고 한 것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이다.  헬레나 성녀는 AD.326년 여기서 예수님의 십자가 파편을 찾아내었고 성당을 세웠다.  입구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골고다 언덕이다. 로마시대에는 높은  언덕이었던 것이  많이 깎여 지금은  4m 남짓한  계단에 불과했다. 그 위가 예수님이 처형당한 장소이다.  입구에서  왼쪽으로 가면 예수님 무덤이 있다. 순례객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차례대로 무덤 안에 들어가 조배하고 나왔다. 무덤 안은 한번에 겨우 3~4명 정도나 들어가 조배할 수 있는 넓이이다. 무덤 성당지역은 여러 종파의 이해가 겹쳐지는 곳으로 이곳의  문을 여닫는 권한은 이슬람에서 갖고 있고 무덤을  관리하는 것은 그리스 정교회이다. 우리는 그 성당내 가톨릭 구역의 한 소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여기서 드리는 미사는 항상 "부활 미사"이다. 하루 간격으로 성탄에서 부활 대축일 미사까지 전 전례 코스를  잇달아  마친 셈이다.

 

 순례중 예수님의 전교 활동의 주무대였던  갈릴리 호숫가  가파르나움의 성당에서 드린 미사도 은혜로왔다. 이곳에는 " 가난한 자는 복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이렇게 가난한 자를 축복해 주시고 가르치신  산상수훈(마태복음 5장-7장) 성당을 비롯,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이신 자리의  5병2어 성당, 베드로 수위권성당 등이 있다. 이들 성당은  갈릴리 호수와 조화되어 빼어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가파르나움의 성당은 옛 유태교 회당이 있던 곳이다. 성경에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악령 들린 사람을 고쳐주셨다는 기록이 있다. 바로  그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 성당이  세워져있다. 가파르나움의 성당은  갈릴리 호수가 성당 창 밖으로 펼쳐져  미사중 경치에 한눈을 팔게 되면 분심을 일으키므로 미사 장소로는 적합치 않다는 말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스라엘에서의 끝 미사는  나자렛의 성모영보성당에서 드렸다. 성모님이 사시던  집터에는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었으며 그 위에 성당이 지어졌다.  성당은  326년에 헬레나 성녀가 처음 봉헌한 것으로, 이슬람의 침입을 당하고 또 십자군의 입성 , 다시 이스람의 역습 등 붕괴와 재건을 되풀이하다 17세기 프란치스코 수사들이 이곳에 살며 지킨다. 성당은 1966년에 완공된 것으로 중근동에서 최대의 것이라 한다. 성당 제대 중앙은 위까지 뻥 뚫려있어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즉시 받아들인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성당 2층과 성당의 담 벼락에는 세계 각국에서 봉헌한 성모자상 그림이 걸려 있다.  한복을 입으신 성모자상은 작고한 이남규 화백의 솜씨로 봉헌되었다. 이날 성모영보성당의 미사는 이탈리아어로 봉헌됐다. 미사중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세계 어디서나 꼭 같은 전례인지라 빙 둘러선  우리는 얼굴 까만 수녀님과 그리고 이슬람처럼 보이는 사람과도 진정한 평화의 축복을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하느님 백성의 유대와 사랑을 일깨워주고 다양함속에 형제적 일치를 느끼게 해주는 잔치임을 실감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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