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바람의 시인을 보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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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 오시는 길에 꽃처럼 날리던 눈을 타고 미당(未堂)이 겨울 하늘로 떠났다. 그가 소망했던 대로 영원히 묶이지 않는 떠돌이로...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었다."고 했듯이 그는 바람의 시인이었다.
해질녘의 노을빛이 묘하게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던 강의실에서 평상어도 시처럼 읊조리던 김남조 시인의 인도로 만난 이래 가슴에 품고 아끼던 미당의 시 한 수를 소개할까 한다. 나를 어여삐 봐 주시는 지인들에게 준비해 놓은 카드도 보내지 못한 나의 게으름을 송구스러워하며...
연(蓮)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ㅎ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나도 그대에게 잔향(殘香)이 오래 남는 바람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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