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바람의 시인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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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호 [cary] 쪽지 캡슐

2000-12-26 ㅣ No.2378

아기 예수 오시는 길에 꽃처럼 날리던 눈을 타고 미당(未堂)이 겨울 하늘로 떠났다.

그가 소망했던 대로 영원히 묶이지 않는 떠돌이로...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었다."고 했듯이 그는 바람의 시인이었다.

 

해질녘의 노을빛이 묘하게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던 강의실에서

평상어도 시처럼 읊조리던 김남조 시인의 인도로 만난 이래

가슴에 품고 아끼던 미당의 시 한 수를 소개할까 한다.

나를 어여삐 봐 주시는 지인들에게 준비해 놓은 카드도 보내지 못한

나의 게으름을 송구스러워하며...

 

 

      연(蓮)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ㅎ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나도 그대에게

        잔향(殘香)이 오래 남는

        바람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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