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이름을 불러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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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monicacho033] 쪽지 캡슐

2001-01-11 ㅣ No.2430

"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누가 나에게 알맞는 이름을 불러다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김춘수의 꽃의 의미> 중에서  

 

 

사람들은 각자 고유의 이름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정신적인 형제 자매라고 하는 한 성당의 신자들간에도 몇년이 지나도록  서로의  이름을  모른채 지내는 경우가 많다(옛날에는  한 집안에 사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이름을 모르고  살았다고도 하지만 ...).  성당에 와서는 모두 익명성에 만족하는듯하다. 차가운 얼굴로 와서 익명의 신자로 덤덤히  앉았다가 감동없이 돌아간다.  같은 믿음의 "형제 자매 "들이라지만 이름조차  모르니 좀처럼  마음을 열기 어렵고  곁을 주지 않는다.

 사귐과 섬귐과 나눔의 공동체라는 것도 구호에 그친다. 미사가 끝나기 무섭게 쏜살같이 돌아가고 외부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을 차다고 평한다.

 

미사중 평화의 인사시간이 있다.  그런데 형식적이다. 고개나 허리만 까닥 하는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신부님은 평화의 인사때 충분히 시간을 주시고 나서 주위사람과 덕담과 인사를 나눌 것을 말씀하시지만 소용이 없다. 번번이 귀찮은듯 서로  눈길도 마주치려 하지않고  허리만 굽히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리거나 미사수건을 쓰고 있는 여성신자들은 더하다. 정말 운좋게 눈을 마주쳐서 인사를 하지않는한 한시간동안 바로  옆에서 미사를 했으면서도 어떤 얼굴인지 누구인지 미사가 끝나고나면 그만이다.

 신앙생활이 하느님과의 관계만 중시하고 개인적인 차원의  신앙고백으로 끝나던 때는 분명히 지났다.  생활속에서 사귐과 섬귐과 나눔이 활발히 일어나야 기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살아있는 신앙 공동체가 된다.

신자수 5천명이 넘는 대공동체에서는 이미 자연스럽게 사귀는 일이란 불가능해진다.이러기 위해서는 신자들간에 서로를 알려는 관심의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서울의 일부 성당에서 파티에 참석하듯 주일 미사시간에  이름과 본명을  적은 명패를 목에 걸고 미사를 하는 것을 보았다. 자연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은 옆사람과 통성명을 하는 시간이 된다. "저는 아무개입니다. 평화를 빕니다" 이렇게 되니 모르던 이를 알게되고  그의 기쁨,소망, 고민이 무엇인지를 알고나면  점차  진정한  평화의 인사까지 우러나와지는 것이다.

 친구는 "우리 성당은 명찰 없으면 미사에 못간다" 고 농담 할 정도로 미사중 평화의 인사 시간을  중시하고 있다. 성당마당에서도 명패를 걸고 서로 먼저 인사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때 존중감을 느낀다한다. 자기가 존중되고 인정되는 환경에서 평화롭게 지낼 수 있고 사랑과 행복감을 느낀다.  진정한 평화의 인사를 나눌 수 있게 우리 성당에서도  올해 명찰 걸고 미사 드리기를 고려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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