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용구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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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남 [obbji] 쪽지 캡슐

2005-05-14 ㅣ No.4038





    용구삼촌
    - 권정생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 에서 - 안동 흙집에서 권정생 선생님과 강아지 두데기 그날, 용구삼촌이 소를 먹이러 갔는데 해질녘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얘가 왜 아직도 오지 않을까?” 할머니가 옥수수가 너울대는 텃밭 둔덕에 지팡이를 짚고 올라서서 담너머로 바라보았습니다. “이제 곧 오겠지요, 뭐.” 아버지는 들마루에 걸터앉아 별 걱정없이 담배를 피웠습니다. 어머니는 저녁상을 차리기 위해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인 경희누나가 돌아오고 용뿔골짜기로 올라가는 막버스도 지나간 지 오래였습니다. 샛들 산봉우리고 내가 넘어가고 이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상을 차라던 어머니도 용구삼촌이 오지 않아 좀더 기다리느라 서성대었습니다. “애비야, 못골 안으로 갔나 본데, 좀 내다보아라.” 할머니가 그래도 걱정이 되어 아버지께 참다못해 들먹거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암소 누렁이의 워낭소리가 어둑어둑한 골목길에서 들여왔습니다. “삼촌 온다!” 경희누나와 내가 먼저 사립문 밖으로 달려나갔습니다. 그런데, 누렁이는 길게 고삐를 땅바닥에 끌면서 혼자만 걸어오는 것이 아닙니까. “삼초온!” 내가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 삼촌은 대답도 없고 저쪽 못골 개울 언덕길은 까맣게 어둡기만 했습니다. “삼초온!” 경희누나가 점더 크게 길게 불렀습니다. 아버지가 누렁이 암소를 마당 귀퉁이 말뚝에 매어놓고 손전등을 들고 나왔습니다. 못골 개울 둑길로 아버지와 경희누나와 내가 함께 삼촌을 찾아 나섰습니다. (키지섬 / 러시아) 서른살이 넘었는데도 용구삼촌은 이렇게 모든 게 서툴렀습니다. 언제나 집안 사람들은 삼촌 때문에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건넛집 다섯살배기 영미보다도 용구삼촌은 더 어린애 같은 바보였습니다. 한가지 비교를 하면 영미는 마을 들머리 구멍가게에 백원짜리 동전으로 얼음과자도 사 먹을 줄 아는데, 용구삼촌은 그렇게도 못하니까요. 겨우 밥을 먹고 뒷간에 가서 똥누고 고양이처럼 입언저리밖에 씻을 줄 모르는 용구삼촌은, 언제나 야단만 맞으며 자라서인지 벙어리에 가깝게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 삼촌이 언제부터인지 누렁이를 데리고 못골 산으로 풀을 뜯기러 다니게 된 것입니다. 삼촌이 소를 데리고 간다기보다 누렁이가 섬촌을 데리고 간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삼촌이 누렁이의 고삐를 잡고 있으면 누렁이가 앞장 서서 가고 삼촌은 그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올 여름을 누렁이는 그렇게 탈없이 삼촌을 데리고 산에 갔다가 탈없이 데리고 왔던 것입니다. “용구도 이제 소를 다 뜯길 줄 알고, 색시감만 있으면 장가도 가겠구나.” 감나무집 할아버지가 우스개 말을 하고 껄걸 웃으며 삼촌을 칭찬까지 했는데, 오늘 이렇게 삼촌은 기어코 바보로 돌아간 것입니다. 못골 골짜기는 캄캄해지고 낙엽송 솔숲은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삼초온!” “용구참초온!” 용구야아!” 아버지과 누나와 나는 이렇게 삼촌을 부르며 두길이나 높은 못둑으로 올라갔습니다. 캄캄한 골짜기 봇물이 희끗희끗 움직이며 싸늘하게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왠지 오싹하게 무서워졌습니다. 아버지가 손전등으로 못물 위로 불을 비추었습니다. 불빛을 따라 물결이 좌르르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노브고르드 /러시아) “용구야아! 용구야아…!” “삼초온…!” 용구삼촌은 바로 앞에 두고 불러도 절대 다답을 할 줄 몰랐으니, 우리가 아무리 큰소리로 불러도 역시 대답할 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듭거듭 불렀습니다. 못둑을 한바퀴 돌아도 삼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무언가 불안스러웠는지, "얘들아, 그만 내려가자. 가서 이웃사람한테 도와 달래야겠다" 하면서, 나와 누나를 앞장 세워 골짜기를 내려왔습니다. 아버지는 이웃집을 다니며 동네 아저씨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용구가, 용구가 왜 어디서 뭘 하느라 안 오는 거야?" 할머니는 벌써 울먹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마당 안을 서성대며 안절부절 못하는 것입니다. "어머님, 걱정마세요. 삼촌이 아마 길을 잠깐 잘못 들었나 봐요. 곧 돌아올 거예요." 어머니가 할머니의 손을 잡고 그렇게 말은 했지만 역시 어머니도 밀려드는 불안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삼초온..." 경희누나가 찔끔찔끔 울기 시작했습니다. 내 눈에도 갑자기 눈물방울이 맺혀 떨어지며 콧등이 찡 해졌습니다. 바보 삼촌은 그래도 우리집에 없어서는 안되는 너무도 따뜻한 식구인 것입니다. 바보여서 그랬는지 삼촌은 새처럼 깨끗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먹을 것이 있으면 우리들 조카들에게 나눠주고 언제나 삼촌은 나머지만 먹었습니다. 그것이 버릇처럼 되어 으레히 삼촌은 찌꺼기만 먹는 것으로 길들여졌는지도 모릅니다. 새 옷 한벌 입지 못한 삼촌은 항상 헐렁하고 기워진 바지만 입고 머리가 덥수룩 했습니다. 까만 고무신만 신고 삼촌은 그래도 언제나 웃었습니다. 이웃 아저씨들이 손전등 하나씩을 들고 모여들었습니다. 열명이 넘었습니다. 웅성거리며 아저씨들은 아버지와 함께 못골 개울둑길로 몰려갔습니다. 경희누나가 따라나서자, 어머니가 붙잡았습니다. 나는 재빨리 사립문을 빠져나가 나저씨들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경식아! 안된다. 가지마!" 어머니가 한사코 불렀지만 나는 못들은 척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손전등 불빛이 이리저리 엇갈리며 비춰질 때면 숲속이 하양에 가까운 초록빛으로 섬뜩섬뜩 느껴졌습니다. "용구야!" "용구야!" 큰소리로 부르는 아저씨들의 목소리가 골짜기에 울리고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 왔습니다. 못물 위로 여러개의 불빛이 물속까지 휘젓듯이 비춰질 때는 가슴이 몹시 방망이질했습니다. 설마 삼촌이 저 물속에 빠지지야 않았겠지 하면서도, 역시 두렵고 떨려오는 가슴을 어쩌지 못했습니다. '삼촌 삼촌, 제발 어서 나타나 줘. 살아있어 줘.' 입속으로 자꾸 되뇌이며 나는 또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붉은 광장) 아저씨들은 세 무더기로 나뉘었습니다. 한 무더기는 양지산 비탈로 올라가고, 한편은 응당산으로, 한편은 골짜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들어있는 골짜기 안쪽 무더기를 따랐습니다. 펑퍼짐한 구릉지를 지나니까 오르막이었습니다. 가시덩국과 칡덩굴이 얽혀 있어 헤집고 나가기가 힘들었습니다. 한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어느 곳에서도 삼촌의 소식은 알려오지 않았습니다. 이따금 삼촌을 부르는 소리가 골짜기를 울릴 뿐 산속은 고요했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찾을 수 없을 만큼 샅샅이 뒤졌는데도 역시 삼촌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멀리 새까맣게 출렁이는 못물을 바라보았습니다. '삼촌은 역시 저 속에 뻐져버린 걸까?' 꾸역꾸역 목구멍에서 덩어리가 치밀어올랐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여깄다!" 양지쪽 산비탈에서 들여온 소리였습니다. "용구, 여기 있다!" 두번 거듭 그 소리가 들리자 우리는 일제히 돌아서서 그쪽으로 허덕허덕 달려갔습니다. 참나무 숲이 우거진 조금 위쪽 산비탈에 전등 불빛이 한자리에 모여있는 걸 보니 삼촌은 거기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삼촌은 거기서 무얼 하길래 여태 산을 내려오지 않았는지, 갑자기 또다시 불길해지는 것 이었습니다. 삼촌은 분명히 찾았지만 대체 어찌 되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쪽에서도 삼촌의 지금 사정을 물어볼 수 없을 만큼 애가 탔습니다. 응달쪽 사람들도 모두가 양지쪽 참나무 숲속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숨이 차는 것도 잊은 채 아버지와 함께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달려갔습니다. 억새풀이 우거지고 작은 소나무가 있는 조금 우묵한 곳에, 사람들은 모여앉아 있기도 하고 서있기도 했습니다. 여러개의 손전등이 쪼그리고 누워있는 삼촌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아아! 삼촌은 죽지 않았습니다. 다복솔 나무 밑에 웅크리고 고이 잠든 용구삼촌 가슴에 회갈색 산토끼 한마리가 삼촌처럼 쪼그리고 함께 잠들어 있었습니다. 귀머거리에 가깝도록 가는 귀가 먼 삼촌이 큰소리로 불렀는데도 깊은 잠에서 깨어니자 않는 건 이상하지도 안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동안의 걱정과 피로도 다 잊고 용구삼촌의 잠든 모습을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가엾은 삼촌, 그러나 누구보다 착하고 고운 삼촌은 이렇게 우리들이 애쓰는 줄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잠을 자다니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삼촌은 이렇게 사랑스럽게 우리들 눈 앞에 평화를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용구삼촌!" 나는 더 참을 수 없어 삼촌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곤히 잠들었던 멍청한 회갈색의 산토끼가 놀라 눈을 뜨더니, 축구공처럼 굴러가듯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삼촌! 일어나 집에 가." 그러면서 나는 삼촌의 얼굴에 뺨을 비비며 흐득흐득 흐느껴 울고 말았습니다. (훼라폰토프 수도원) ♬ 하늘 위에도 그대의 노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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