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동성당 게시판

낙화 (이형기)

인쇄

라충희 [rch1104] 쪽지 캡슐

2005-02-17 ㅣ No.3236

낙화


이 형 기(요셉)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낙화(洛花)」는 이형기 시인(1933.6.6-2005.2.2)의 대표시 중의 하나로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대세(代洗)’를 받아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로 시작되는 이 시는 봄에 지고 있는 벚꽃의 모습을 시로 형상화한 것이지요. 그러나 떠남이 그저 단순한 떠남이 아닌 까닭은 그것이 바로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 다시 말씀드리면 ‘무성한 녹음’과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떠나기 때문이겠지요. 세상살이의 모든 이치가 그렇듯이 이 시에서도 계절의 순환에서 비롯되는 영원한 진리와 우리들의 범속한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것을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라는 하나의 명제로 수렴시키고 있습니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부분이지요. 봄날을 화사하게 장식했다가 아무 미련 없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벚꽃을 보면서 시인은 문득 자신의 젊은 날을 되돌아보게 되고 그것을 ‘내 영혼의 슬픈 눈.’이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형제들한테서도 그는/ 사흘 만에 잊혀져 버렸다/ 죽음보다 허망한/ 이 차가운 기류를 타고/ 휴지로 날리는 부고 한 장”이라고 끝맺는「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름 한번 불러보자/ 아아 박재삼!/ 이왕 갔으니/ 내 자리도 네 가까이 하나 봐다오”라고 끝맺는「이름 한번 불러보자 박재삼」에서 죽음의 세계를 노래했던 이형기 시인의『낙화: 이형기 고희 시선집』(연기사, 2002)을 꼭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윤호병 빈첸시오, 문학평론가, 추계예술대학교 교수)



60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