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게시판

김 승훈 신부님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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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홍렬 [hrfbaek] 쪽지 캡슐

2003-09-03 ㅣ No.473

  어쩌면 이 게시판을 보시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은 김 승훈 신부님의 추모글이 왜 이곳에 씌여 지는지 의아해 할 분도 계실 것이지만, 제가 고등학교 시절인 72년부터 주임신부로 계셨고 지금의 붉은 벽돌 성당을 지을 당시에 주임신부님이셨으니까 이곳에서 그 분의 추억을 더듬어 봅니다.

 

  자그마한 벽돌 성당에서 지금의 붉은 벽돌 성당을 지을 때, 카톨릭 대학을 헐었던 벽돌을 공짜로 받아와서, 그래서 여름 방학 때 학생들이 줄을 서서 벽돌을 나르곤 했었답니다.(그 무렵에 국수를 삶아 주시던 분이 지금의 제 장모님이시기도 합니다.)

(참고로 지금의 성당은 나중에 류 영도 주임신부님 때 증축했고, 처음에는 지금 도로를 바라보는 벽 쪽이 출입문이 있었습니다.)

 

  유신 시절, 그 암담하던 시절에 성당에서 민주전선(당시 야당인 신민당 기관지)을 무상으로 돌리곤 하셨고, 훗날에 정의구현 사제단으로 많은 활약을 하셨지만 신림동에서는 성당을 짓는데 모든 열정을 바치시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 제 아버지와 함께 시흥본당으로 찾아 뵙고 점심을 함께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만, 이미 그 때 건강이 많이 나빠졌었던 것으로 생각납니다.

 

  그 당시에는 조그만한 성당이었기에 신부님께서는 신자 대부분을 알고 계셨고, 어쩌다 새로 전입온 분이 계시면 늘 성당 마당에서 팔짱을 끼고 계시다가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당신 누구요?" 하며 물어 보시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아무리 신부님이라고 아무에게나 반말을 쓰는 지 의아해 했던 기억도 납니다.

 

  하지만 언제나 소탈하셨고 제가 신혼 때 종로 어떤 술집에서 마주 쳤을 때 "너, 돈 있으면 계산 좀 해라."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어느날 "너, 학생회 만들어."하셔서 지금의 새수풀 주일학교의 전신인 새수풀 학생회를 발족시켰고, 덕적도로 MT를 떠났다가 "너, 그만 둬."하시며 화를 내셨던 기억도 새롭습니다.(당시 사목회에서 고등학교에서 덕적도로 가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며 신부님께 장소를 바꿀 것을 건의하셨지만, 저희는 막무가내로 갔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곳에서 많은 삶을 마무리하셨지만 신부님께서는 하늘나라에서도 신부가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하는 삶을 계속하실 것으로 미루어 짐작합니다. 신부님께서 정의구현 사제단을 이끌었지만 그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신부로서 양심에 맞는 행동을 할 뿐이고 겸손해 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신부님 하늘나라에서도 지난 시절 보여 주셨던 정의와 진리를 위해 용기와 행동을 계속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도 아마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아 일찍 불러 올리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부님 늘 건강하십시오.

 

  말썽꾸러기 프란치스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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