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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연 [theresa429] 쪽지 캡슐

2000-04-02 ㅣ No.313

오늘 내 생애

세 번째로

화장터에 다녀왔다.

 

언제까지 나의 이 헤아림이 이어질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너무 많은 숫자가 오기 전에

나도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

 

할머니를 뵌 지가 너무 오래 되어서

마지막 뵈었던 할머니의 모습보다는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에 오실 수 있을 만큼 정정하셨을 때의 모습들이 생각난다.

 

나란히 누워 잠들기 전에

늘 우리들을 쓰다듬어 주시고

’예쁘다, 예쁘다, 착하다, 착하다’고 이야기 해주셨다.

 

고민거릴 말씀드리면 항상

좋은 방향과 착하게 살 것을 일러주셨고

하느님께 항상 감사드리며 기도하라고 하셨었다.

 

완고한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우리 가족들이 힘들어할 때에도

아빠 앞에선 우리 편이셨지만 항상 아버지를 이해하라고 하셨었다.

 

열 두 살 차이나는 할아버지와 결혼하셔어

4남 3녀를 낳으시고,

둘째 아들을 신혼 첫날밤 먼저 보내신 우리 할머니는

여든 다섯의 나이로 돌아가셨지만

5년 전만해도 정정하셨고

움직이실 수 있을 때까진 집안일을 계속 도우셨고

10년 전까지는 우리 집에서 늘 김장을 담그러 자주 왕래하셨었다.

더 이상 우리 집에 못 올 것 같다고 하시며

"내가 우리 주연이 결혼식 때까지 살 수 있을까?..."

하셨었는데,

너무 오래 기다려주셨지만,

나는 그 모습은 못 보여드렸다.

 

오늘의 할머님의 영정은 20년 전의 사진이었는데

피부가 좋고 예쁜 모습이셨다.

103세에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일흔이 넘도록 모시었던 할머니.

 

 

....

사람들이 그랬다.

"노인은 빨리 탄다"

할머니의 뼛가루를 보면서

"할머닌 양도 얼마 안된다"......

 

우리 할머닌 키가 원래 작은 분이셨고

연로해지시면서 키가 점점 작아지셨다.

그리고 몸이 너무 말랐다고

엄마가 지난 주에 다녀오신 후 이야기하셨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를 가장 옆에서 많이 챙겨드렸던 막내 이모가 할머니 관이 나가는 것을 보고 그랬다.

"이제 나가시는구나. 그렇게 나가고 싶어하셨는데......"

자식들은 할머니께 휠체어를 구해드리지 못했다.

 

 

무심했던 나.

마음은 있으되 가지 않았고

나중엔 마음마저 잃어버린 나....

 

 

그러나 친조부모가 안계신 내겐

외할머니의 존재는 소중했다.

 

"할머니, 결코 잊지 않을께요.

이제 할머니를 가장 사랑해주신 할아버지 곁에서 편히 쉬세요."

그리고 할머니 손녀답게 바르고 멋있게 살께요.

제가 서운하게 해드린 거 용서해주세요"

 

 

....

 

우리 엄마는 다음엔 엄마 차례라고 하셨다.

....

 

오늘 할머님의 죽음으로

가족들이 화해했으면 좋겠다.

40년간 모시고 살아온 큰 숙모의 고된 얼굴과

자식노릇 못한다고 괴로워하던 이모들의 얼굴과

할머니가 진정 원하시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가족들의 얼굴이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웃음지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죽음, 그 끝이 아닌 시작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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