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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이야기13 [사제 지정환]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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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보나 [sanghoo] 쪽지 캡슐

2002-04-18 ㅣ No.3216

 

 

 내가 그를 만나러 새벽길을 떠난 것은 5.18 광주 항쟁이

 

일어난지 한달이 채 안되는 때였다.

 

호남고속도로로 들어서자 중간 중간에 세워진 임시

 

경비 초소에서는 헌병들이 버스에 올라 타 여행객들을

 

일일이 검문을 하는 살벌한 분위기였다.

 

 

나는 그때 5.16민족상을 탄 한 수상자를 만나러

 

전북 임실이라는 곳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는 벨기에 출신인 사제였다.

 

 

"내 성은 지랄할 "지"자요, 바를"정" 불꽃"환"입니다."

 

 

 검소한 생활을 한 눈에 알게 하는 볼품없는 한 작은 집에서,  

 

벽안의 사제는 방문객에게 서슴없이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사제 지정환.

 

 전쟁의 상처와 그늘이 채 가시지않은 60년대초에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와서 농촌 사목을 해 온 그는  

 

가난한 전북 임실 지역의 실정을 외면할 길 없어 이 마을에

 

국내 최초의 치즈공장을 세워, 농민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한

 

"새마을 운동가"였던 것이다.

 

 

 초행길의 내 눈에 비친 임실 지역은 들도 별로 없고,  

 

척박한 시골, 바로 그것이었다.  

 

임실에 부임한 지신부는 숙명처럼 가난을 대물림 하는 농민들을 일깨웠다.  

 

쓸모 없는 바위산으로 둘러쌓인 지역 실정을 두루 살핀 뒤

 

종자돈을 내어 농민들에게 염소를 사서 나눠주고 키우게 했다.

 

그리고 고국인 벨기에에 들어가 스스로 치즈 제조기술을 배워왔다.  

 

 

야산에 염소를 놓아 키우게 하고 농민들에게서  

 

매일 아침 신선한 우유를 납품 받았다.

 

처음엔 "신선한 우유만 납품하도록" 가르쳐도

 

농민들은 잘 따라 주지 않았다.

 

우유는 신선해야 잘 엉기고 치즈 숙성이 된다.

 

그러나 염소가 병 들어 항생제를 투약했을 때 우유에는 항생제

 

성분이 그대로 잔류하게 되고 그런 우유로는 치즈를 만들 수 없다.

 

한 사람만 그런 우유를 납품해도 그날 집유된 우유를

 

몽땅 쏟아버려야 하는 일이었다.

 

 

그는 농민들에게 개인의 작은 욕심보다는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협동하는 삶을 가르쳤다.  

 

80년 당시만 해도 "피자"는 흔치않은 음식이었다.

 

피자를 만드는데 쓰는 치즈는 미군 피엑스에서나 구입할 수 있던 때였다.  

 

거듭된 실패를 딛고 마침내 임실치즈는 피자에 쓰이는

 

모짜렐라 치즈등 각종 치즈를 만드는데 성공했고 그는 이익금을

 

농민들에게 분배 할 수 있었다.

 

 

농민들에게 삶의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 임실치즈의 성공 이후 국내기업들도 비로소 용기를 얻어  

 

치즈생산에 뛰어 들게 된다.

 

 

 임실치즈가 본 궤도에 오르자,  

 

농민조합원들 스스로 운영하게 넘겨 주고 자신의 손으로 일궈온

 

치즈공장에서 과감히 손을 떼었다.

 

 

당시 지정환신부는 내게 광주에서 얼마전 발생한

 

그 엄청난 일들을 담은 외국 잡지를 보여주었다.

 

그 시사잡지들에는 국내언론에서는 볼수 없는 사진들이 실려 있었다.  

 

국내에 반입되는 책들은 검열이란 미명하에 광주 관련 기사가  

 

면도칼로 도려져 볼 수 없던 때였다.

 

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현실에 분노하고 가슴 아파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한 사제로서

 

단순히 교회안에 머무는 제사장의 모습만이 아닌,

 

삶 전부를 던져  가난한 이들, 정의를 위해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

 

행동하는 진취적인 모습을 느끼게 했다.

 

 

 지난주의 신문들에서 지정환신부가 올해의 호암상 사회봉사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음을 읽었다.

 

 

 그는 임실치즈를 농민들에게 넘겨준 뒤,

 

다발성 신경경화증이란 병으로 다리를 못써서 휠체어를 타고

 

간신히 움직이는 몸을 이끌고 버림받은 이들,  

 

가난한 중증의 장애인들을 부축해서

 

장애인 복지시설 "무지개 가족"을 일구어냈다.  

 

장애인들을 교육시켜서 일자리를 주고 가정을 꾸려 주었다.

 

 

인간의 품위와 존엄성을 거스리는 일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이 땅에서 평생을 바친 이방인 노사제의 모습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복음적 가치관을 실천하며 과감히 도전하고  

 

봉사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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