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일반 게시판

아주 멋진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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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2000-08-11 ㅣ No.738

저희 가족은 지난주 금요일부터 5일간의 휴가를 보냈습니다.

매년 휴가의 기억이 그리 즐겁지 않았기에 (지극히 엄마인 나만의 느낌이지만...)

사실 휴가를 앞두고 올해는 또 어떻게 보낼까 내심 걱정이 많았었지요.

근데, 뜻밖에 아주 멋진 휴가를 보냈답니다!!!

올해는 기필코 휴가를 알차게 보내리라는 야무진 꿈을 안고, 우선 출발부터 시작되는 교통체증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 보고자 우리는 낮동안 준비를 완벽하게 해놓고는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곧바로 출발하기로 했지요.

’아~ 올해는 뭔가 되는구나’ 하는 뿌듯함과 스스로의 대견함으로 신나게 강원도 홍천으로 출발하여 상큼하게 OO농원에 도착했는데... 이게 웬걸!... 기대했던 한적한 시골 정취와는 전혀 거리가 먼, 우리를 맞이하는 번쩍번쩍한 등, 분위기가 묘한 젊은이들, 그리고 비위생적인 숙소와 장사속인 주인...,

에구 에구 ~ 이를 어쩌나 ~ 올해도 역시 !!

김빠진 우리 가족은 허탈감에 젖어 억지로 하루 밤을 잤지요. 설상가상 날이 밝아 눈을 떴는데 밖에는 억수같이 비가 내리더라구요.

어떡할까 생각 끝에 잘못됐다 싶을땐 미적거리느니 미련없이 털고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게 현명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서울로 올라 가기로 했습니다.

근데, 순간 아주 멋진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늘 말로만 듣던 ’풍수원 성당’이 지역상으로 이 근처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 지도를 펴놓고는 찾아가기로 결정을 본 뒤 그곳으로 출발!!

와 ~ 풍수원 성당... 너무 너무 예쁜 성당이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오랜 세월의 신앙의 향기를 간직한 멋진 성당이었고 교회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성당이었습니다.

초기의 박해를 피해 교우들 스스로 이곳 척박한 산간 강원도 땅에 모여들어 교우촌을 이루어 신앙생활을 하고, 성직자를 영입하고, 또한 교우들이 직접 벽돌도 만들고 나무도 해와서 강원도의 첫번째 성당인 이 풍수원 성당을 건립했다는군요. 정말 대단한 우리 조상들이셨습니다.

그분들의 신앙에 머리가 숙여질뿐...

그곳엔 유물 전시관도 있었지요. 저는 그 안을 둘러보며 그토록 어려운 시절에 온 마음을 다해 오롯이 주님만을 갈망하며 신앙을 지켜온 우리 선조들의 열정에 다시금 머리가 숙여지며 한편,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반추되어 부끄러움마저도 느껴졌습니다.

성당 마루 바닥에 넷이 함께 앉아 성가도 부르고 교황님 지향대로 기도도 하고... 참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린 내친김에 ’배론성지’까지 한번 가보자며 다시 출발했지요.

가는 차 안에서 문득 그 시간에 한창 도보성지 순례중일 주일학교 중고등부 순례팀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은 지금 힘들게 걷고 있을텐데 우린 편히 차를 타고 가니 괜시리 미안함도 들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들과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차안에서 열심히 열심히 걸었다는 사실!...믿거나 말거나!!! 호호호.

여하튼 늘 한번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면서도 그렇게 기회가 안닿던, 한국의 까따꼼바, 배론성지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더 더욱 좋았던 배론! - 고즈넉한 모습의 차분함과 초록빛 자연 경관은 매력 만점이었지요. 그러나. 더 나를 매료시켜 버린 것은 우리나라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에 대한 새로움이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얼마전에 평화 신문에서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을 함께 다룬 특집기사를 읽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빛에 가려 조금은 슬픈 위치에 계신 최양업 신부님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는데, 배론에 최양업 신부님 기념성당이 있어서 매우 반가왔습니다.

"땀의 순교자"라 불리시는 최신부님을 기억하며 우리는 기도를 올렸지요 - 아! 그리고 같은 본명을 갖으신 우리 주임신부님과 토마스 아저씨도 생각했습니다. (웬 아부 ?? !! - 혹 주임 신부님과 토마스 아저씨가 이 글을 읽으신다면?... 믿을실까요?... 근데, 진짜로 기억했음을 믿어 주세용~!)

그곳엔 또한 황사영이 백서를 썼다던 토굴도 있었구요,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신학당터’도 있었습니다. 저는 ’신학당터’라고 쓰여진 기념비 앞에 슬며시 큰아이 준우를 세워놓곤 사진을 찰칵! (이 담에 커서 신학교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램을 은근히 숨기고... 호호호.)

성지를 돌고 나오는 길에, 입구에는 아마도 어느 성당에서 도보 성지 순례를 왔는지 중고등부 학생들이 서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지쳐보였지만 참으로 장하고 예뻐보였습니다.

아마도 다음주엔 우리 성당의 청년들도 이곳에 도착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아주 좋은 몫을 선택한 그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있기를 빌어봤습니다.(아... 지금쯤 도보순례중이겠군요. 청년분들! 화.이.팅!!! 보좌신부님, 수녀님, 학사님도!)

성물 판매소에 들러 아주 근사한 화병을 하나 사고, 초도 사고, 책도 사고... 어느 부자 안부럽더라구요.

무언가 뿌듯함을 가득 안고 집으로 출발! - 충청도의 국도를 따라 펼쳐지는 그윽한 경관들의 아름다움에 황홀해 하며 하마터면 망칠뻔 했던 휴가를 이토록 멋진 휴가로 바꿔버려주신 주님께 감사. 감사하며 룰루랄라!!

서울로 올라오는 길엔 강이 있어 다리도 건너게 되고, 터널도 몇개 지나게 되고, 길이 막혀 서있게도 되고, 그러나 때로는 길이 뚫려 쌩쌩 달리게도 되고, 그렇더군요. 우리들 신앙의 길도 이와 비슷하지 않나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서울이라는 이정표를 바라보며 꾸준히 나아가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듯이 우리들 또한 주님을 바라보며 꾸준히 나아가면 언젠가 그분께 도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풍수원성당’과 ’배론성지’ - 여러분들도 꼭 한번 다녀 오시길 권해 드립니다.

 

기쁨과 평화의 오늘이 되세요.!

 

                                             - 선우 경 세실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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