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성당 게시판

엄마 마음 흉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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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bkkim] 쪽지 캡슐

2000-09-16 ㅣ No.470

추석 연휴에 조카들이 다녀갔다. 세살배기와 육개월된 아기가 며칠 함께 지냈는데 말이 늘어 자신의 의사표현이 확실해진 형과 재빨리 기어 다니기 시작한 아기를 보니 새삼 신기했다. 감기 기운이 있었지만 낮에는 말썽없이 놀던 큰애가 한밤중에 갑자기 열이 올라서 신새벽에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해열제를 먹이고 찬물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며 열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열에 시달리는 조카를 보며 애가 타는건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옆에서 함께 울먹이는 언니를 보니 이모의 정은 명함도 내밀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단호하게 찬물수건을 자식의 뜨거운 몸에 얹어주는건 또다른 모정의 강한 모습이었다. 아직 뭐 결혼도 안했고 아기도 없으니 자식과 다름없는 조카의 드문 앓음에 애가 닳는 심정을 엇비슷하게 느낀 셈이지만 달아난 잠을 다시 청하며 외동을 기르는 엄마들보다 다섯배는 더 마음을 졸이는 일이 많으셨을 엄마를 생각하니 흰머리며 얼굴에 주름을 세월이 아닌 자식들이 만들어 드린 것 같아 송구스러웠다. 때로는 내 취향과 달라서 내 뜻과 달라서 또 때로는 귀찮아서 자식 잘되라고 하시는 말씀을 못들은체 했던 때도 있었고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알아듣지 못했던 때도 많았을 것이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다,라는 뜻을 조금만 기억하고 있어도 부모님의 넘치는 욕심일지라도 매정하게 굴지는 않을 텐데... 어쩌면 지금도 성모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며 가슴 아파하고 계실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영혼을 위해 죄를 짓지 말라고,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라고 가르치고 계시는데 우리는 잔소리라고 적당히 외면하며 사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식들을 위해 지금도 눈물 짓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자식을 반도 못치웠다고 걱정하시며 생신을 맞으신 우리 엄마와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전구해 주실 성모님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것으로 말을 맺음은 내 자신에 대한 불신의 다른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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