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필독] (i) 인내(patience), (ii) 끈기/항심(恒心)(perseverance), (iii) 또다른 종류의 끈기/항심의 커다란 차이점들 [번역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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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2 ㅣ No.2796

게시자 주: (0) 평소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필수적인 용기들인 인내(忍耐, patience)와 끈기/항심(恒心)(perseverance)의 커다란 차이점 등에 대하여 말씀드리므로, 되도록 많은 분들[주: 여기에는 성직자 및 수도자들 포함]께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i) 본글의 제3항 전문, 즉, 3. 인생 전반에 걸쳐, 바로 위의 제2항에서 고찰한 바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바들에 대하여 전문, 그리고 (ii) 제4-5항 전문을 꼭 필독하실 것을 권고드립니다. 

 

(1)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796.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이번 글에 서술된 바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2017년 3월 중순부터 4월 말 기간 동안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따라서 그 저작권(著作權, Copyright)이 필자에게 있는, Data Mining 기법을 적용한, "AI 기반, 한시(漢詩) 표준 해석법 [A Standard Method of Interpretation of Chinese Poems(漢詩), Based on AI(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또한 사용하여 분석하고, 이 분석의 결과에 따라 도출된 바들/결론들입니다.

(이상, 게사자 주 끝)  

 

 

1. 들어가면셔

 

1-1. 우선적으로,

1-1-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굿뉴스 서버 제공의 우리말 "가톨릭대사전"에 영어로 'patience'로 번역되는 용어에 대응하는 번역 용어 '인내'(忍耐)가 수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maria.catholic.or.kr/dictionary/term/term_search.asp?smethod=keyword&group=all&keyword=patience

 

1-1-2. 그러나, 전혀 예상밖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굿뉴스 서버 제공의 우리말 "가톨릭대사전" 등에 영어로 'perseverance' 번역되는 용어의 우리말 번역 용어가 표제어로서 전혀 수록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https://maria.catholic.or.kr/dictionary/term/term_search.asp?smethod=keyword&group=all&keyword=perseveance 

 

그리고 또한, 개정판 우리말 "가톨릭대사전"에도 영어로 'perseverance' 번역되는 용어의 우리말 번역 용어가 표제어로서 전혀 수록되어 있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1-2.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파란 색칠을 한 굵은 글자들을 클릭하면, "patience""perseverance"라는 두 용어들이 결코 동일한 의미를 지닐 수 없음을, 예를 들어,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베네딕토 16세 교황님,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등의 다수의 교황 문헌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patience and perseverance" site:vatican.va <----- 여기를 클릭하여 확인하라

  

1-3.

1-3-1. ["patience"의 우리말 번역 용어 선정] 본글에서는, 위의 제1-1-1항에서 함께 고찰한 바에 따라, 교회의 라틴어 단어 "patentia" 및 교회의 영어 단어 "patience"에 대응하는 우리말 번역 용어로서 "인내"(忍耐)를 선정하여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 선정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사전인 漢典 에서의 설명과도 일치하고,

https://www.zdic.net/hans/忍耐 [인내: patience]

 

그리고 특히, 바로 이 선정은, 아래의 제1-5-1항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하듯이,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의 용어 선정과 일치합니다.

 

1-3-2. [주의 사항 한 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는데, 이와 같이, 교회의 라틴어 단어 "patentia" 및 교회의 영어 단어 "patience"에 대응하는 우리말 번역 용어로서 "인내"(忍耐)를 선정한 것만으로는, 바로 이 번역 용어가 전달하여야 하는 성경적, 교리적, 혹은, 영성적 등의 신학적 의미를 우리가 곧바로 잘 알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씀인고 하면, 세속의 영어 사전들에 제시된 이들 두 단어들 "patience""perseverance"의 의미들에만 오로지 의존하여 바로 위의 제1-2항에 안내된 교황 문헌들에서 사용된 이들 용어들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제대로 된 이해를 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것임을 예상하여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톨릭 교회 안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은 세속의 영어 사전들 만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성경적, 교의적, 혹은, 영성적 등의 신학적 의미들을 전달하는 단어들로서 사용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1-4. 특히 위의 제1-1항제1-2항에서 함께 고찰한 바에 의하여, 영어로 'perseverence'로 번역되는 용어 자체가, 우리말 가톨릭 교회의 핵심 문헌들에서 어떻게 번역이 되었고 그리고 어떠한 의미로 이해해 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4-1. 혹시라도, 영어로 'patience"로 번역되는 용어에 대응하는 우리말 번역 용어인 '인내'(忍耐)의 의미로서 'perseverance'가 그동안 국내의 천주교회 안에서 이해되어 왔다면, 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에 빠져 있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4-2. 혹은, 영어로 'perseverance'로 번역되는 용어를, '인내'(忍耐)아닌 혹은 '인내'(忍耐)와 논리적으로 등가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어떤 특정한 단어로 번역을 하였으나, 그러나 바로 이 어떤 특정한 번역 용어의 의마/정의(definition)가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고 있다면, 이 또한 심각한 번역 오류의 한 종류이라 아니 지적할 수 없습니다.

 

게시자 주 1-4: 그리고 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서도 또한 구체적으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문제는 아래의 제4항에서 별도로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1-5. 이번 항에서는, 이어지는 제2항의 한 개의 입문(an introduction)으로서, (i)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본문 중에 'patience'라는 용어가 사용된 항들 및 'perseverance'라는 용어가 사용된 항들과, (ii)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중의 대응하는 항들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언뜻 살펴보더라도, 어떠한 차이점들이 눈에 들어오는지 바로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1-5-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본문 중에 'patience'라는 용어가 15번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www.vatican.va/archive/ENG0015/_FAH.HTM 

(발췌 시작)

   15 patience
    8 patient
    5 patiently 

(이상, 발췌 끝)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s://cbck.or.kr/Documents/Catechism 

제55항: 선업(善業)(patientiam), ??? 의역 번역한 듯.

제227항: 인내(patientia)

제736항: 인내(longanimitas)

제854항: 인내(patientiam)

제1466항: 인내로이(poenitentem; 영어본: with patience) ???

제1832항: 인내(patientia)

제2046항: 인내(patientia)

제2104항: 인내(patienter)

제2219항: 인내심(longanimitate)(에페소 4,2)

제2522항: 인내(patientiam)

제2533항: 인내(patientia)

제2613랑: 인내(patientia)(루카 18,1-8 참조)

제2688항: 인내로써(in constantia; with patience)

제2772항: 인내(patientiae)

제2811항: 인내(patienter)

 

1-5-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본문 중에 'perseverance'라는 용어가 14번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www.vatican.va/archive/ENG0015/_FAH.HTM 

(발췌 시작)

14 perseverance 

  7 persevere
  2 persevered
  3 persevering 

(이상, 발췌 끝)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s://cbck.or.kr/Documents/Catechism 

제161항: 끝까지 견디지(perseveraverit usque in finem) (마태오 10,22; 24,13)

제165항: 꾸준히(patientiam) (주: 영어본 의역 번역 혹은 번역 오류 ???)

제1810항: 끈기(perseverantia)

제1839항: 꾸준한(perseverantia)

제2016항: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은총(gratiam perseverantiae finalis; the grace of final perseverance) (주: 의역 번역한 듯). 

제2573랑: 끈기(perseverantiae)

제2592항: 약속된 승리를 확신하기 위하여 겪어야 하는(victoria perseverantiae promissa; 영어본: the victory promised to perseverance) (주: 의역 번역 한 듯).

 

게시자 주: (i) 위의 항들을 초벌 번역한 분(들)과 (ii) 아래의 항들을 초벌 번역한 분(들)이 결코 동일할 수 없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였다는 생각임.

 

제2728항: 인내(perseverantia) (주: 바로 위의 제1-2-2-1항에서 이미 고찰하였듯이 'patience'와 논리적으로 등가의 의미를 가진 '인내'(忍耐)라는 번역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면에서 심각한 수준의 번역 오류).

제2742항: 인내를 다하고(???; 영어본: with all perseveance) (주: 바로 위의 제1-2-2-1항에서 이미 고찰하였듯이 'patience'와 논리적으로 등가의 의미를 가진 '인내'(忍耐)라는 번역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면에서 심각한 수준의 번역 오류이며, 에페소 6,18의 우리말 번역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임)  

제2753항: 인내(perseverantia) (주: 바로 위의 제1-2-2-1항에서 이미 고찰하였듯이 'patience'와 논리적으로 등가의 의미를 가진 '인내'(忍耐)라는 번역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면에서 심각한 수준의 번역 오류).

제2849항: 마지막까지 항구하게 하는 은총(perseverantiam finalem) (주: 의역 번역한 듯).

제2854항: 꿋꿋한 인내 은총(gratiam perseverantis) (주: 바로 위의 제1-2-2-1항에서 이미 고찰하였듯이 'patience'와 논리적으로 등가의 의미를 가진 '인내'(忍耐)라는 번역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면에서 심각한 수준의 번역 오류이며, 또한 꿋꿋한 인내가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음).

제2863항: 끝까지 항구하게 하는 은총(finalem perseverantiam) (주: 'finalem perseverantiam'이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여 의역 번역한 듯).

 

게시자 주 1-5: (1)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왜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였는지에 대하여 정밀하게 들여다보았더니, 특히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윤리학"(Ethica Nicomachea, 주: 영어본 소장 중임)에 제시된 사추덕들이 그리스도교 교회의 교도권에 의하여 수용되기 이전의 시기였을, 4세기 말, 즉, 380년대에성 예로니모께서 기존의 라틴어본 신약 성경에 교정 작업을 진행하여 자신의 라틴어본 신약 성경을 마련할 때에, (i) 자연법(natural law)의 범주에 속하는 영어 성경 용어 "patience"(A)에 대응하는 그리스어 신약 성경 용어(A)와, (ii) 또한 자연법(natural law)의 범주에 속하는 또다른 영어 성경 용어 "perseverance"(B)에 대응하는 그리스어 신약 성경 용어(B), 이들 둘 다를, "patience"(A)에 대응하는 한 개의 라틴어 성경 용어 "patientia"(A)로 번역한 것이 바로 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 근본 원인(cause)이었음을, 본글을 작성하기 위한 유관 사료들에 대한 정밀한 분석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되었다는 생각이며, 이유 불문하고, 바로 이러한 종류의 번역 오류는 매우 심각하다고 아니 지적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설상가상으로, 1979년에 개정된 "Nova Vulgata"가 출판될 띠에, 성 예로니모에 의하여 야기된 바로 이 명백한 번역 오류기 바로잡히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2) 바로 위의 제(1)항에서 지적한 바는, 본글의 제4항에서 구체적으로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이 문제는 교황청 성서위원회에 보고가 되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상, 게시자 주 1-5 끝) 

 

 

2. 유관 자료들에 제시된 이들 두 용어들의 그리스도교 신학적 정의(definitions)들

 

게시자 주 2: 본글에서 영어로 "perseverance"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를 (i) "끈기"로 번역한 것은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810항제2573항의 용례(usage examples)들을 따른 것이고, 그리고 또한 (ii) "항심"(恒心)으로도 번역한 것은 다음의 중국어 사전 "漢典"의 설명들을 따른 것이다:

 

참고 1: https://www.zdic.net/hans/忍耐 [인내: patience]

참고 2: https://www.zdic.net/hans/恒心 [항심: perseverance]

참고 3: https://www.zdic.net/hans/%E6%81%86 [恒心(항심): perseverance]

참고 4: https://www.zdic.net/hans/%E6%9C%89%E6%81%92 [有恒(항심이 있는): persevering]

(이상, 게시자 주 2 끝)

 

2-1. 다음은, 사추덕(the four cardinal virtues)들 중의 한 개인 '용덕'/'용기'(courage)에 부속되는 덕(virtues)들인데, 필자가 "신학 대전에서 덕(virtues, 德)들과 다른 개념들과의 관계는?"의 제목으로 작성한 졸글[게시일자: 2010-11-11]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영어 "가톨릭대사전"에 수록된 바이며, 특히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을 학습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우리말 번역을 하였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72.htm <----- 되도록 전문 필독 권고

(발췌 시작)

Virtue
덕(德)

The subject will be treated under the following heads:

이 주제는 다음의 항목들 아래에서 다루어질 것입니다:

I. Definitions;
I. 정의들;
II. Subjects;
II. 주체들;
III. Divisions;
III. 구분들;
IV. Causes;
IV. 원인들;
V. Properties.
V. 고유의 성질들

 

[...]

 

Divisions of virtue
덕들의 구분들

 

Virtues may be divided into intellectual, moral, and theological.

덕들은 지성적(intellectual), 윤리적(moral), 그리고 신학적(theological)으로 분류될 것입니다.

 

[...]

 

Moral virtues
윤리덕들(윤리적 덕들)

 

[...]

 

Fortitude 
용기(용덕)


As temperance and its annexed virtues remove from the will hindrances to rational good arising from sensuous pleasure, so fortitude removes from the will those obstacles arising from the difficulties of doing what reason requires. Hence fortitude, which implies a certain moral strength and courage, is the virtue by which one meets and sustains dangers and difficulties, even death itself, and is never through fear of these deterred from the pursuit of good which reason dictates. (See FORTITUDE.)


절제(temperance)이 덕에 부속되는 덕들이 감각적 즐거움(sensuous pleasure)으로부터 일어나는 이성적 선(rational good)에 대한 방해(hindrances)들을 의지(the will)로부터 제거하듯이(remove), 마찬가지로 [용기의 정의(definition)] 용기(fortitude)는 이성(reason)이 요구하는 바를 행함에 있어서의 어려움들로부터 일어나는 장애(obstacles)들을 의지(the will, the rationall appetite)로부터 제거합니다. 따라서 특정한 윤리적 굳셈(stength)과 격려(courage)를 의미하는 용기(fortitude)는, 그것에 의하여 우리가 위험들과 어려움들을, 심지어 죽음 그 자체를, 맞이하고 견디는, 그리하여 이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성(reason)이 명령하는 선(good)의 추구를 결코 단념하지 않게 되는, 바로 그러한 덕입니다. [용기(FORTITUDE)를 보라].

 

The virtues annexed to fortitude are:

 

용기(fortitude)에 부속되는(annexed) 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Patience, which disposes us to bear present evils with equanimity; 
       for as the brave man is one who represses those fears which make
       him shrink from meeting dangers which reason dictates he should
       encounter, 
so also the patient man is one who endures present
       evils in such a way
       as not to be inordinately cast down by them.
     - Munificence, which disposes one to incur great expenses for the 
       suitable doing of a great work. It differs from mere liberality,
       as it has reference not to ordinary expenses and donations, but to
       those that are great. Hence the munificent man is one who gives
       with royal generosity, who does things not on a cheap but
       magnificent scale, always, however, in accordance with
       right reason.
     - Magnanimity, which implies a reaching out of the soul to great 
       things, is the virtue which regulates man with regard to honours.
       The magnanimous man aims at great works in every line of virtue,
       making it his purpose to do things worthy of great honour. 
       Nor 
is magnanimity incompatible with true humility. "Magnanimity",
       says St.
Thomas, makes a man deem himself worthy of great honours
       in consideration of the Divine gifts he possesses; whilst
       humility makes him think little of himself in consideration of his
       own short-comings".
     - Perseverance, the virtue which disposes to continuance in the 
       accomplishment of good works in spite of the difficulties
       attendant upon them. As a moral virtue it is not to be taken
       precisely for what is designated as final perseverance, that 
       special gift of the predestined by which one is found in the state
       of grace at the moment of death. It is used here to designate that
       virtue which disposes one to continuance in any virtuous work 
       whatsoever.

 

     - 인내(忍耐, patience), 이 덕은 우리로 하여금 당면한 악(present evils)들을(*1)
       침착과 함께(with equanimity) 견디어 내도록 하는데, 이는 용감한 사람
       이 그가 직면하여야 하는 이성이 명령하는 위험들을 맞이하는 것으로
       부터 그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두려움들을 누르는 자이듯이, 마찬가지로 
       또한 인내심 있는 자는 당면한 악들을 그들에 의하여 지나치게 의기소침
       하게 되지(cast down) 않는 방식으로 견디는 자를 말합니다.

     - 아낌없이 줌(munificence), 이 덕은 적합한 자(the suitable)들이 훌
       륭한 일을 하기 위한 커다란 비용들을 우리로 하여금 지불하도록 만듭니
       다. 이 덕은 단순히 인색하지 않음(liberality)과 다른데, 이는 일상적
       인 비용들과 기부들에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비용들과 기부
       들에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낌없이 주는 사람은 황실의 관
       대함과 함께(with royal generosity), 값싼 규모가 아니라 장대한 규모
       로, 그러나 올바른 이성과 일치를 이루면서, 베푸는 자입니다.
     - 도량(Magnanimity), 훌륭한 것들로 영혼이 접근함을 뜻하는 이 덕은 명
       예(honours)들과 관련하여 사람을 규제하는 덕입니다. 도량 있는 사람
       은 덕의 모든 선상에 있어 훌륭한 일들을 추구하여, 그리하여 이것을 훌
       륭한 명예의 가치가 있는 일들을 하고자 하는 자신의 목표로 삼습니다. 
       도량은 참된 겸손(true humility)과 결코 상반되지(incompatible) 않습
       니다. 성 토마스(St. Thomas)는 “도량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소유한 하느님의 선물(Divine gifts)들을 고려하여 (in 
       consideration of), 스스로를 훌륭한 명예들의 가치가 있는 자로
       만들며, 이에 반하여 겸손(humility)은 그로 하여금, 자신 고유의
       부족한 점(shortcomings)들을 고려하여, 스스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도록(think little of) 만듭니다”
라고 말합니다. 
     - 끈기/항심(恒心)(perseverance), 이 덕은 [윤리적으로] 선한 일/선행
       ([morally] good works)들(*2)
의 수행에 있어, 이 일들에 따르는
       (attendant upon)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계속할 마음이 내키게
       하는 덕입니다.
 윤리덕으로서 이것은, 예정된 자(the predestined)들
       을 위한, 그것에 의하여 죽음의 순간에 그가 은총의 지위에 있게
       되는, 바로 그 특별한 선물인, 최후의 끈기/항심(恒心)(final perseverance)이라
       고 정확히 불리는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이 덕은 우리
       로 하여금 덕을 가지고 있는 일(virtuous work) 무엇이든지에 있어
       계속하고자 하는 성향을 당사자에게 제공하는(dispose) 바로 그 덕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됩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11월 14일]

-----

(*1) 번역자 주: 여기서 말하는 악(evils)들에는 (i) 윤리적 악(moral evils)들, 즉, 죄(sin)들과, (ii) 형이하학적 악(physical evils)들이 포함된다.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윤리적 악(moral evil), 즉, 죄(sin)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84.htm <----- 필독 권고

 

(ii)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를 들어, 배고픔(hunger), 질병(sickness), 몸의 죽음(bodily death) 등과 같은 것들이 포함되는, 형이하학적 악(physical evil)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hysical_evil_2548.htm <----- 필독 권고

 

(*2)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윤리적 선"(moral good)", "[윤리적으로] 선한 일/선행"(morally good work)이라는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morality.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morality_1284.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33.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ood_works.htm <----- 한가할 때에 필독 권고

-----

[이상, 2022년 11월 14일자 내용 추가 끝]


(For a more detailed treatment of the four principal moral virtues, see CARDINAL VIRTUES.)

[네 개의 주된 윤리덕들에 대한 더 자세한 취급에 대하여서는, 추덕(CARDINAL VIRTUES)를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1: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 의하여, 본글의 제목에서 말씀드린 바에서, (i) 인내(忍耐, patience), (ii) 끈기(perseverance)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하여서는 이제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다.

 

2-2. 다음에 발췌된 바는,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patience"(인내, 忍耐))에 대한 설명 전문이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p/p113.htm 

(발췌 시작)

PATIENCE

 

A form of the moral virtue of fortitude. It enables one to endure present evils without sadness or resentment in conformity with the will of God. Patience is mainly concerned with bearing the evils caused by another. The three grades of patience are: to bear difficulties without interior complaint, to use hardships to make progress in virtue, and even to desire the cross and afflictions out of love for God and accept them with spiritual joy. (Etym. Latin patientia, patience, endurance; from patiens, suffering.)

 

인내(忍耐, patience)

 

[사추덕(the four cardinal virtues)들 중의 한 개인] 용기/굳셈/용덕(fortitude)이라는 윤리덕의 한 형태를 말합니다. 이 덕은 당면한 약(present evils)들을,(*) 하느님의 의지(the will of God)와 일치의 상태에서 슬픔(sadness) 혹은 분개(resentment) 없이 견디어내는 것을 허락합니다. 인내(忍耐, patience)는 다른 이에 의하여 야기된 악(the evils)들을 견디어냄(bearing)과 주되게 관계됩니다. 인내(忍耐)의 세 등급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면의 불평 없이 어려움들을 견디어냄, 덕에 있어 전진하기 위하여 고난(hardships)들을 사용함, 그리고 심지어 하느님을 위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와 고난들을 욕망함 및 그들을 영적 기쁨과 함께 받아들임. [어원. Latin patientia, patience, endurance; from patiens, suff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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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여기서 말하는 악(evils)들에는 (i) 윤리적 악(moral evils)들, 즉, 죄(sin)들과, (ii) 형이하학적 악(physical evils)들이 포함된다.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윤리적 악(moral evil), 즉, 죄(sin)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84.htm <----- 필독 권고

 

(ii)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형이하학적 악(physical evil)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hysical_evil_2548.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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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3.

2-3-1.다음에 발췌된 바는,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perseverence"에 대한 설명 전문이며, 본글의 제목에서, (iii) 또다른 종류의 끈기(perseverance)의 의미/정의(definition)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r_perseverance.htm 혹은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p/p196.htm 

(발췌 시작)

PERSEVERANCE

 

Remaining in the state of grace until the end of life. The Church teaches that it is impossible, without the special help of God, to persevere in the state of grace to the end. Thus the Second Council of Orange, in A.D. 529, teaches, in opposition to the Semi-Pelagians, that the justified also must constantly pray for the help of God so that they may attain to a good end (Denzinger, 380). And the Council of Trent in 1547 calls perseverance "a great gift" and says that those in the state of grace cannot persist in God's friendship without special divine aid (Denzinger, 1572). Final perseverance cannot be strictly merited, as though a person had a claim on dying in grace because he or she had been faithful all through life. Nevertheless it can, with unfailing success, be achieved by proper prayer, offered regularly and earnestly, in the state of grace. The certainty of the prayer being heard is based on the promise of Jesus (John 16:23). Since, however, the possibility of a fall always remains, one cannot know with infallible certainty whether one will, in fact, persevere unless one receives a special revelation to that effect (Council of Trent, Denzinger, 1566).

 

"삶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은총의 지위에 머물러 있음"이라는 끈기/항심(恒心)(perseverance)

 

삶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은총의 지위에 머물러 있음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특별한 도우심 없이, 삶의 끝(the end)까지 은총의 지위에 계속 머물러 있는(persevere) 것은 불가능하다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따라서 제2차 오랑주 공의회는, 529년에, 반 펠라기우스 주의자(Semi-Pelagians)들에 반대하여, 의롭게 된 자(the justified)들이 또한, 어떤 선종(善終)(a good end)을 획득할 수도 있도록(so that ... may ...), 하느님의 도우심을 지속적으로 기도하여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덴칭거, 380). 그리고 트리엔트 공의회는 1547년에 "삶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은총의 지위에 머물러 있음"이라는 끈기/항심(恒心)(perseverance)"한 개의 커다란 선물"이라고 부르면서 은총의 지위에 있는 자들도 특별한 신성적 도움(special divine aid) 없이 하느님의 벗의 신분/상태(friendship)에 계속 머물러 있을(persevere) 수 없다고 말합니다 (덴칭거, 1572)최후의 끈기/항심(恒心)(final perseverance)는, 마치 한 명의 인격이, 왜냐하면 그가 혹은 그녀가 전체 일생을 통하여 믿음이 충만하였기 때문에, 은총 안에서 죽음에 대한 어떤 주장을 하듯이, 엄밀하게 공로로서 받을 만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끈기는, 은총의 지위에서 규칙적으로 및 진솔하게 봉헌되는 고유한 기도(proper prayer)에 의하여,(*) 실패없는 성공과 함께, 성취될 수 있습니다. 이 기도가 [하느님께] 들리게 됨에 대한 확실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요한 복음서 16,23)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왜냐하면 어떤 실패의 가능성이 항상 남아있기 때문에, 기도의 당사자는, 만약에 그가 바로 이 결과 쪽으로 어떤 특별한 계시를 받지 않는다면, 그가 장차, 실제적으로(in fact), 삶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은총의 지위에 계속 머물러 있을지(persevere) 여부를 무류한 확실성(infallible certainty)과 함께 알 수 없습니다(트리엔트 교리서; 덴칭거, 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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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1) 여기서 말하는 고유한 기도문 한 개로서, 1823년판 한문본 기도서인 "수진일과"에 수록된 "日備善終經"(일비선종경)의 우리말본 기도문인 "선종하기를 날마다 예비하는 경"은 아래의 제2-4항에서 안내하였다.

 

(2) 또한 바로 이 최후의 끈기/항심(恒心)(final perseverance)을 베풀어 주시기를 천주께 간청하는 "선종하기를 날마다 예비하는 경"의 간결한 요약 기도문인 "예수! 마리아!" 외침 기도문에 대하여서도, 아래의 제2-4항에서 안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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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3-2. 다음에 발췌된 바는,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final perseverence"(최후의 끈기/항심(恒心))에 대한 설명 전문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r_final_perseverance.htm 혹은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f/f068.htm 

(발췌 시작)

FINAL PERSEVERANCE

 

Man’s steadfastness in good up to the moment death. It is the work of actual grace. Although man himself cannot merit the gift of final perseverance, he can, by earnest prayer and faithful co-operation with the manifold graces given him during life, secure from God’s mercy this most important grace on which eternal happiness depends.

 

최후의 끈기/항심(恒心)(FINAL PERSEVERANCE)

 

죽음의 순간에게 이르기까지 선(good) 안에 있는 사람의 꿋꿋함/항심(恒心)(steadfastness)을 말합니다. 이것은 조력 은총(助力恩寵, actual grace)의 일(work)입니다. 비록 사람 스스로가 최후의 끈기(final perseverance)라는 선물을 공로로서 받을 만할 수 없으나, 그는, 진지한 기도와 생애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다중의 은총들과의 열심한 협조에 의하여, 영원한 행복이 달려있는 바로 이 가장 중요한 은총을 하느님의 자비(mercy)로부터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상, 발췌 밍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2-3-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트리엔트 공의회 문헌에서 말하는 "perseverance"는, 전후 문맥 안에서, "final perseverance"(최후의 끈기/항심(恒心))를 말함을 알 수 있다:

 

출처: http://www.intratext.com/IXT/ENG0432/__PJ.HTM 

(발췌 시작)

DECREE ON JUSTIFICATION

 

[...]

 

CHAPTER XIII.
On the gift of Perseverance

 

So also as regards the gift of perseverance, of which it is written, He that shall persevere to the end, he shall be saved:-which gift cannot be derived from any other but Him, who is able to establish him who standeth that he stand perseveringly, and to restore him who falleth:-let no one herein promise himself any thing as certain with an absolute certainty; though all ought to place and repose a most firm hope in God's help. For God, unless men be themselves wanting to His grace, as he has begun the good work, so will he perfect it, working (in them) to will and to accomplish. Nevertheless, let those who think themselves to stand, take heed lest they fall, and, with fear and trembling work out their salvation, in labours, in watchings, in almsdeeds, in prayers and oblations, in fastings and chastity: for, knowing that they are born again unto a hope of glory, but not as yet unto glory, they ought to fear for the combat which yet remains with the flesh, with the world, with the devil, wherein they cannot be victorious, unless they be with God's grace, obedient to the Apostle, who says; We are debtors, not to the flesh, to live according to the flesh; for if you live according to the flesh, you shall die; but if by the spirit you mortify the deeds of the flesh, you shall live.

(이상, 발췌 끝)

(이상, 게시자 주 2-3-2 끝)

 

2-4. 이번 항에서는,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가 박해를 받는 기간 중에 형성된 최후의 끈기/항심(恒心)(final perseverance)을 베풀어 주시기를 천주께 간청하는 기도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2-4-1. 1791년에 발생한 진산사건의 결과, 윤지충권상연이 형장에서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에 "예수 마리아!"라는 호칭 기도를 외쳤음은 널리 잘 알려진 한 개의 역사적 사실인데, 바로 이 기도야말로, 최후의 끈기/항심(恒心)(final perseverance)을 베풀어 주시기를 성부께 간청하는 기도이었음은 매우 분명합니다.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이것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졸고[제목: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의 순교자들이 외친/부르짖은 마지막 소리 기도인 예수 마리아!(呼耶穌瑪利亞) 의 출처는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의 저서인 성모행실 이다"; 게시일자: 2019-01-17]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필독을 강력하게 권고 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77.htm <----- 꼭 필독 권고

 

이와 관련하여, "예수 마리아!"라는 호칭 기도를 두고서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졸고에서 필자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발췌 시작)

(이 글의 결론 6)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사에 있어, 1791년 이후 조선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순교당한 신앙의 선조들 중의 상당수가 순교당하기 직전에, "예수!" 혹은 "예수 성모!"를 부르짖은/외친 것이 아니고, "예수 마리아!"를 부르짖은/외친 이유는, 이분들이 다음의 내용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i)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의 한문본 저서인 "성모행실"을 학습한 유식한 교우들로부터 물려받은 구전(口傳) 전통의 교리 교육을 통하여, 짧은 기도 "예수 마리아!"부르짖으면/외치면(呼耶穌瑪利亞), 심지어 배교(背教)도 포함되는, '마귀의 끌어당김'이라는 대단히 위급한 상황에서, 마귀를 쫓아버림으로써 바로 이 끌어당김을 단호히 뿌리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ii) 1801년 이전의 시기부터 이미 입수 가능하였던 우리말본 "성년광익", 추, 8월23일, 성 필립보 베니시오 현수를 읽고서, '예수와 마리아(耶穌瑪利亞)께서 사마(邪魔)를 쫓아 물리치심(逐退)'을 또한 잘 알고 있었다.

 

(iii) 교리적으로 달리 말하여, 예를 들어, 1791년에 소위 말하는 "진산사건"[즉, 신해 박해]을 야기한 당사자들인 윤지충권상연처럼, 신앙을 증거하기 위한 순교의 순간에, "예수!" 혹은 "예수 성모!" 대신에, "예수 마리아!"를 외침으로써/부르짖음으로써 천주로부터 초자연적 용덕(勇德)/굳셈(supernatural strength)을 받아, 용감하게 순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상, 발췌 끝)

 

2-4-2. 그리고 이벽 성조가 전적으로 주관하여 가시적으로 형성된,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의 신앙의 선조들 제1세대에 포함되는, 이승훈1801년에 발생한 신유 박해의 결과로서 형장으로 끌려가 목이 떨어지는 순간이 다가오자, 다음의 유시(遺詩)유언(遺言)을 후손들에게 남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조선시대에 순교하신 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위"[주: 책 제목], 제1부 천진암 성지에 묻히신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 하느님의 종 4위, 제57쪽 - 집필: 김학렬 요한 사도 신부, 천주교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 하상출판사, 초판 1쇄 발행일: 2022년 9월 20일; 전화: 031-243-1880.

(발췌 시작) 

[이승훈의 유시(遺詩)] "달(머리)는 비록 지더라도 하늘에 그저 있고, 물(피)는 치솟아도 그 못 속에 온전하다(月落在天 水上池盡). 

[이승훈의 유언(遺言)] "수확의 때가 왔다. 잘 깨어 있어야 할 때다." 

(이상, 발췌 끝)

 

비록 바로 위에 발췌된 이승훈의 유언은 최후의 끈기/항심(恒心)(final perseverance)을 베풀어 주시기를 천주께 간청하는 기도인 것은 아니나, 그러나 위의 유언을 남긴 직후부터 이승훈이 최후의 끈기/항심(恒心)(final perseverance)을 베풀어 주시기를 천주께 간청하는 기도를 나름대로 천주께 바쳤을 것임은 매우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이승훈윤지충권상연이 10년 전인 1791년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예수 마리아!"라는 호칭 기도를 최후의 끈기/항심(恒心)(final perseverance)을 베풀어 주시기를 천주께 간청하는 기도로서 바쳤음을 익히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왜냐하면, 십자가 위에서 수난을 겪으시면서 예수님은 시편 기도를 바치셨다고 알려져 있는데, 바로 이 때 예수님께서 바치신 기도가 최후의 끈기/항심(恒心)(final perseverance)을 베풀어 주시기를 성부께 간청하는 기도이었음을, 한문본 "천주강생성경직해"의 학습을 통하여, 이승훈은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4-3.

2-4-3-1. 다음은, 1862년경에 초간되었다고 알려진, 최양업 신부님께서 주되게 번역 작업을 수행하여 마련해 주신 우리말본 첫 기도서인 "텬쥬셩교공과", 권4에 수록된, 1823년판 한문본 기도서 "수진일과"[주: 아래의 게시자 주 2-4-3 참조]에 수록된 "日備善終經"(일비선종경)의 우리말본 기도문인 , 최후의 끈기/항심(恒心)(final perseverance)을 베풀어 주시기를 천주께 간청하는 기도인, "선종하기를 날마다 예비하는 경" 전문입니다. 왜냐하면, 연로하신 분들의 경우에 밤에 주무시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62_텬쥬성교공과/선종하기를_날마다_예비하는_경_in_1862_텬쥬셩교공과_권4_제37쪽.pdf  

(발췌 시작)

선종하기를_날마다_예비하는_경_in_1862_텬쥬셩교공과_권4_제37b-38a쪽.jpg

선종하기를_날마다_예비하는_경_in_1862_텬쥬셩교공과_권4_제38b-39a쪽.jpg

선종하기를_날마다_예비하는_경_in_1862_텬쥬셩교공과_권4_제39b쪽.jpg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4-3: (1) 다음은, 1823년판 한문본 기도서인 "수진일과"(*)에 수록된 "日備善終經"(일비선종경) 전문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23년판_수진일과/1823_수진일과_상권.htm

(발췌 시작)

日備善終經_in_1823년판_수진일과_상권_제107b쪽.jpg

日備善終經_in_1823년판_수진일과_상권_제108쪽.jpg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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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위에 발췌된 기도서의 앞 표지에 명기된, "總牧 光方濟各 准"에서, "方濟各"이 중국 마카오(오문) 교구의 주교이었던, 예수회 소속이 아니었던, "Francisco de Nossa Senhora da Luz-Cachim O.F.M." 을 말함을 알 수 있으며,

http://heron-net.be/pa_cct/index.php/Detail/objects/821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중국 오문 교구 홈페이지 제공의 이분의 생평에 대한 간략한 글을 읽을 수 있다:

https://www.catholic.org.mo/list-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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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로 위에 발췌된, 1823년판 한문본 기도서인 "수진일과"에 수록된 "日備善終經"(일비선종경) 전문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학습할 수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2018년 10월 중에 입수하여 소장 중인, 최윤환 신부님의 1976년 논문[제목: 천주성교공과의 원본]을 조금 전에 읽고서 찾아내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30-1793_모예/1976_천주성교공과의_원본_최윤환_신부.htm  

(이상, 게시자 주 2-4-3 끝)

 

2-4-3-2. 다음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최된 해인 1963년 12월 20일에 발행된 우리말 기도서인 "천주성교공과"에 수록된, 최후의 끈기/항심(恒心)(final perseverance)을 베풀어 주시기를 천주께 간청하는 기도인, "선종하기를 날마다 예비하는 경" 전문입니다:

 

출처: 1963년판 천주성교공과[주: 김학렬 신부님 제공]

(발췌 시작)

선종하기를_날마다_예비하는_경_in_1963년판_천주성교공과_제626쪽.jpg

선종하기를_날마다_예비하는_경_in_1963년판_천주성교공과_제627쪽.jpg

선종하기를_날마다_예비하는_경_in_1963년판_천주성교공과_제628쪽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4-3: 최후의 끈기/항심(恒心)(final perseverance)을 베풀어 주시기를 천주께 간청하는 기도문으로서 바로 위에 발췌된, "선종하기를 날마다 예비하는 경" 기도문이, 예를 들어, 바로 아래에 발췌된, 현재 사용 중인 가톨릭 기도서에 제시된, 특히,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의 참혹한 박해의 역사를 전혀 연상할 수 없는 "선종기도"/"선종을 위한 기도"보다 얼마나 더 탁월한 내용의 기도문인지를 구체적으로 인지하기 위하여, 이들 두 기도문들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도록 하라:

 

출처: https://maria.catholic.or.kr/mi_pr/prayer/prayer.asp?menu=prayer&pgubun=6&ingId=34 

(발췌 시작)

선종을 위한 기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
저에게 선종하는 은혜를 주시어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영원한 천상 행복을 생각하고
주님을 그리워하며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멘.

(이상, 발췌 끝)

 

2-4-4.

2-4-4-1. 특히, 위의 제2-4-3항에 발췌된 "선종하기를 날마다 예비하는 경" 기도문 중에, "예수 마리아의 거룩하신 이름을 입에 외우고 죽으며" 하는 고백에 이어, 바로 이 기도문의 마지막 문장에서  "'예수여 마리아여' 내 영혼을 네 손에 맡기나이다"라는 외침, 즉, "예수여 마리아여"라는, 매우 짧은 그러나 매우 강력한, "예수! 마리아!"을 불러내는 호칭 기도가 등장하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2-4-3-2. 따라서,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 바로 이 "선종하기를 날마다 예비하는 경" 기도문은, 최후의 끈기/항심(恒心)(final perseverance)을 베풀어 주시기를 천주께 간청하는 기도인, 1791년윤지충권상연이 목이 베여 떨어지는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중에 이미 바쳤음이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의 한 개의 역사적 사실인, 매우 강력한 기도인 "예수! 마리아!" 호칭 기도가 최후의 끈기/항심(恒心)(final perseverance)을 베풀어 주시기를 천주께 간청하는 기도인 "선종하기를 날마다 예비하는 경" 기도문에 포함된 핵심이고 중심 기도, 즉, 기도들 중의 기도임을 우리나라 조선의 그리스도교 신자들 모두에게 널리 '지속적으로 끊임 없이 전달하는'[즉, '나누어 주는'](communicate) 부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따라서 바로 이 매우 짧은 호칭 기도를 그 근본 핵심으로 가지는, 한 개의 기도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2: (1) 위의 제2항에서, (i) 사추덕들에 포함되는 용덕/용기에 부속되는 자연덕(natural virtue)"인내"(忍耐, patience)"라는 번역 용어, (ii) 용덕/용기에 부속되는 자연덕인  "끈기"/"항심(恒心)"(preserveranche)라는 번역 용어, 그리고 (iii) 한 개의 초자연적 커다란 선물(a supernatural great gift)인, 조력 은총인, "최후의 끈기/항심"(恒心)(final perseverance)이라는 번역 용어의 의미/정의(definition)들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였다.

 

(2) 그리고,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 박해사 안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따라서, 우리나라 천주교회에 고유한, (이 글의 결론 1)을 도출하였다.

(이상, 게시자 주 2 끝) 

 

 

3. 인생 전반에 걸쳐, 바로 위의 제2항에서 고찰한 바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바들에 대하여

 

3-1.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살아있는 동안에 그리스도교 신앙 생활을 충실하게 하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나약하기 때문에, 영혼의 세 가지 원수들인 세속, 육신, 그리고 마귀, 이들 셋으로 구성된 삼구(三仇, three enemies)들[주: 천주교요리문답 제179항]의 유혹(temptations)들을 항상 받고 있는데, 이들의 유혹을 벗어나는 데에 필수적인 것이 바로, 통상적으로 "인내와 끈기"("patience and perseverance")로 불리는 자연덕(natural virtues)들[즉,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약간의 경험하기만 하면 직접 체험들을 통하여 다 알 수 있고 또 다 실천할 수 있는 덕(virtues)들]임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따라서, 위의 제2항에서 전달해드린 의미/정의들을 수용한 상태에서, 예를 들어, 위의 제1-2항에 안내해 드린 교황 문헌들 그리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의 천주교 핵심 문헌들을 학습하면, 그 내용 이해의 깊이가 상당히 달라질 것입니다.

 

다음은, 위의 제2-1항과 이어지는 항들에서 이미 전달해드린 유관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 입니다:

 

[용기/용덕/굳셈의 정의(definition)] 용기(fortitude)는 이성이 요구하는 바를 행함에 있어서의 어려움들로부터 일어나는 장애(obstacles)들을 의지(the will, the rationall appetite)로부터 제거합니다. 따라서 특정한 윤리적 굳셈(stength)과 격려(courage)를 의미하는 용기(fortitude)는, 그것에 의하여 우리가 위험들과 어려움들을, 심지어 죽음 그 자체를, 맞이하고 견디는, 그리하여 이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성(reason)이 명령하는 선(good)의 추구를 결코 단념하지 않게 되는, 바로 그러한 덕입니다.


[인내의 정의(definition] 인내(忍耐, patience), 이 덕은 우리로 하여금 당면한 악(present evils)들을(*1) 침착과 함께(with equanimity) 견디어 내도록 하는데, 이는 용감한 사람이 그가 직면하여야 하는 이성이 명령하는 위험들을 맞이하는 것으로부터 그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두려움들을 누르는 자이듯이, 마찬가지로 또한 인내심 있는 자는 당면한 악들을 그들에 의하여 지나치게 의기소침하게 되지(cast down) 않는 방식으로 견디는 자를 말합니다.


[끈기/항심(恒心)의 정의(definition)] 끈기/항심(恒心)(perseverance), 이 덕은 [윤리적으로] 선한 일/선행([morally] good works)들(*2)의 수행에 있어, 이 일들에 따르는(attendant upon)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계속할 마음이 내키게 하는 덕입니다. 윤리덕으로서 이것은, 예정된 자(the predestined)들을 위한, 그것에 의하여 죽음의 순간에 그가 은총의 지위에 있게 되는, 바로 그 특별한 선물인, 최후의 끈기/항심(恒心)(final perseverance)이라고 정확히 불리는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이 덕은 우리로 하여금 덕을 가지고 있는 일(virtuous work) 무엇이든지에 있어 계속하고자 하는 성향을 당사자에게 제공하는(dispose) 바로 그 덕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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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자 주: 여기서 말하는 악(evils)들에는 (i) 윤리적 악(moral evils)들, 즉, 죄(sin)들과, (ii) 형이하학적 악(physical evils)들이 포함된다.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윤리적 악(moral evil), 즉, 죄(sin)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84.htm <----- 필독 권고

 

(ii)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를 들어, 배고픔(hunger), 질병(sickness), 몸의 죽음(bodily death) 등과 같은 것들이 포함되는, 형이하학적 악(physical evil)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hysical_evil_2548.htm <----- 필독 권고

 

(*2)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윤리적 선"(moral good)", "[윤리적으로] 선한 일/선행"(morally good work)이라는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morality.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morality_1284.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33.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ood_works.htm <----- 한가할 때에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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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특히, 지금 지상에서 순례자의 삶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즉, 죄(sins)들과 형이하학적 악(physical evils)들로 가득찬 "진세(塵世)"인, 비로 이 "슬픔의 골짜기"[the vale of tears; 출처: 살베 레지나(Salve, Regina) 기도문](*)를 걸어가고 있는, 하와(Eve)의 추방당한 자녀들인, 그리스도교 신자들 모두에게, 언제, 어디서에서나, 항상 우리들 각자에게 지상에서의 삶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자연덕(natural virtues)들인 바로 이 "인내와 끈기"("patience and perseverance")는, 우리들 각자가 세상의 삶을 마칠 때까지, 본향(本鄕)인 주님을 지복직관하는 천당(天堂, 하늘)에 돌아가고자 갈망하는 자 누구에게든지(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33항 및 제1024항 참조), 항상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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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모 찬송 기도문의 유래 외" 제목의 졸고[게시일자: 2012-11-30]을 읽고 묵상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34.htm <----- 필독 권고

 

(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참으로 존경하옵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시편 84 해설을 학습할 수 있는, "시편 84 와 성모 찬송 기도문" 제목의 졸고[게시일자: 2012-12-11]를 읽고 묵상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08.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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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바로 위의 제3-2항에서 한 개의 예(example)로서 말씀드린 일상의 신앙 생활 삶 속에서의 "인내와 끈기"("patience and perseverance")를 발휘하기 위하여 노래하는 바가 "슬픔의 골짜기"[the vale of tears; 출처: 살베 레지나(Salve, Regina) 기도문]로 불리는 기도문이라면, 바로 이 "인내와 끈기"("patience and perseverance")의 마지막을 구성하는, 최후의 끈기/항심(恒心)(final perseverance)을 베풀어 주시기를 천주께 간청하는 기도인 "선종하기를 날마다 예비하는 경", 그리고 바로 이 기도의 핵심인 매우 짧은 "예수! 마리아!" 호칭 기도, 이들 둘 다는, 매우 참혹한 박해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순교 영성"의 핵심이라 아니 지적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2) [순교 영성 강학/교육의 목표는 "예수! 마리아!" 외침으로 이어지는 "인내와 끈기"의 고취에 있다]  참혹한 박해의 역사를 경험한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의 신앙의 선조들이 증거하는 본글의 제목으로 제시된 세 종류의 용기/용덕/굳셈들의 차이점들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피부에 와 닿아 체험할 수 있도록 "순교 영성 강학"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하여, "예수! 마리아!" 외침으로 이어지는 "인내와 끈기"가 각자의 심장의 한 가운데에 자리잡도록 지속적으로 고취, 교육하는 것은, "슬픔의 골짜기"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정체성 확립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3) 초기 교회의 시기 이후에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선교사의 도움 없이 이벽 성조에게 내린 진리의 영인 성령 강림에 의하여 개시된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의 역사와 전통을 "인내와 끈기"로써 항구적으로 보존하면서 지켜나가기 위하여, "선종하기를 날마다 예비하는 경", 그리고 바로 이 기도의 핵심인 매우 짧은 "예수! 마리아!" 호칭 기도, 이들 둘 다를, 현재 우리나라 천주교회에서 사용 중인 "가톨릭 기도서"에 조속한 시일 내에 추가해 주실 것을 요청함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12월 3일]

3-4. 그런데, 자연적 윤리덕을에 포함되는, 용기/굳셈/용덕의 두 종류들인 "인내와 끈기"를 지속할 수 있고 또 증강시켜 주실 것을, 기도 중에,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청하는데, 기도 중에 청하게 되는 "인내와 끈기"는,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느님께서, "성화 은총"과 함께, 세례를 받는 자의 영혼에 주입해 주시는, 따라서 초자연적 은총(supernatural graces)들인 "성령 칠은"들 중의 한 개인 용기/굳셈/용덕을 말합니다. 따라서, 바로 이 초자연덕인 용기/굳셈/용덕에 포함되어 있는 "인내와 끈기"도 또한 초자연적 은총인 "인내와 끈기"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바로 이 초자연적 은총인 "인내와 끈기"라는 도움을 우리가 지속적으로 받지 않으면, 죄(sins)들과 형이하학적 악(physical evils)들로 가득찬 "진세(塵世)"인, 비로 이 "슬픔의 골짜기"[the vale of tears; 출처: 살베 레지나(Salve, Regina) 기도문]를 걸어가고 있는, 하와(Eve)의 추방당한 자녀들인, 우리들이 자연적 윤리덕들인 "인내와 끈기"를, 자신의 고유한 노력에만 오로지 의존하면서, 지속하는 것은 참으로 힘들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령의 선물들과 성령의 열매들의 차이점" 제목의 졸글[게시일자: 2020-10-24]을 학습할 수 있는데, 초자연적 은총(supernatural graces)들인 "성령 칠은"용기/굳셈/용덕이, 한 개의 조차연적 덕으로서, 포함되어 있음을 결코 잊지 마시가 바랍니다.  필독을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69.htm <----- 꼭 필독 권고

[이상, 2022년 12월 3일자 내용 추가 끝]

 

 

4. 바로 위의 제3항에 제시된 결론들의 도출에 결정적인 걸림돌 한 개에 대하여

 

게시자 주 4: 위의 제1항에서 그 타당성과 함께 이미 말씀드렸듯이, 영어로 "patience"로 번역되는 라틴어 성경 용어 "patientia"는 이번 항에서 또한 "인내"(忍耐)로 번역하였습니다.

 

4-1.

4-1-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New American Bible 본문과 각주들에서, 'patience'(인내, 忍耐)라는 용어가 35번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www.vatican.va/archive/ENG0839/_FAH.HTM 

(발췌 시작)

35 patience [구약 성경 본문 6; 신약 성경 본문 14; 각주 15]
26 patient
  8 patiently 

(이상, 발췌 끝)

 

4-1-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New American Bible(NAB) 본문 과 각주들에서, 'perseverance'(끈기)라는 용어가 13번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www.vatican.va/archive/ENG0839/_FAH.HTM 

(발췌 시작)

13 perseverance [신약 성경 본문 7; 각주 6]
12 persevere
  4 persevered
  7 perseveres
  3 persevering 

(이상, 발췌 끝)

 

4-2. 다음은 "새 번역 성경" 중의 신약 성경 본문 중에서 "인내"(忍耐)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된 총 35 경우들인데, NAB(New American Bible)에서 대응하는 영어 단어, 그리고 그리스어 신약 성경에서 대응하는 단어기 각각 무엇인지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나열에서, 첫 번째는 "공동번역성서"에서의 대응하는 우리말 번역 용어이고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나열된 단어는 대응하는 그리스어 성경 용어인데, 특히 '이번 항에서 번역 오류에 대한 판단의 기준/잣대'는, 동일하지 않은 어근을 가지는, 두 개의 그리스어 성경 용어들 입니다. "새 번역 성경"에서, 밑줄이 그어진 경우들을 제외하고, "인내"(忍耐)로 번역된 경우들은 모두 번역 오류들임을 확인하였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1: https://maria.catholic.or.kr/bible/search/bible_search.asp?n=&p=&bb_no=&code=&JangNo=&JeolNo=&submit_root=&ctxtPlace=search&page=2&ctindex=new2&prindex=0&Keyword=%EC%9D%B8%EB%82%B4 

출처 2: https://www.vatican.va/archive/ENG0839/_FAH.HTM 

출처 3: https://biblehub.com 

  

루카 복음서 8,15: 꾸준히(공동번역성서), 인내(새 번역 성경), perseverance(NAB), ὑπομονῇ(그리스어 성경) [주: 번역 오류]

루카 복음서 21,19: 참고 견디면, 인내, perseverance, ὑπομονῇ [주: 번역 오류]

로마서 2,4: 인내, 인내, patience, μακροθυμίας

로마서 5,3: 인내, 인내, endurance, ὑπομονὴν [주: 번역 오류]

로마서 5,4: 인내, 인내, endurance, ὑπομονὴ [주: 번역 오류]

로마서 8,25: 참고, 인내심, patience, ὑπομονῆς [주: 번역 오류]

로마서 12,12: 참으며, 인내하며, persevere, ὑπομένοντες [주: 번역 오류

로마서 15,4: 인내, 인내, endurance, ὑπομονῆς [주: 번역 오류

로마서 15,5: 인내, 인내, endurance, ὑπομονῆς [주: 번역 오류]

코린토2서 6,6: 끈기, 인내, patience, μακροθυμίᾳ

코린토2서 12,12: 참고 견디면서, 인내하며, endurance, ὑπομονῇ [주: 번역 오류]

갈라티아서 5,22: 인내, 인내, patience, μακροθυμία

에페소서 4,2: 인내, 인내심, patience, μακροθυμίας

에페소서 6,18: 꾸준히, 인내, perseverance, προσκαρτερήσει [주: 번역 오류]

콜로새서 3,12: 인내, 인내, patience, μακροθυμίαν

테살로니카1서 1,3: 꾸준한, 인내, endurance, ὑπομονῆς [주: 번역 오류]

테살로니카2서 1,4: 잘 견디어 내며, 인내, endurance, ὑπομονῆς [주: 번역 오류]

테살로니카2서 3,5: 인내, 인내, endurance, ὑπομονὴν [주: 번역 오류]

티모테오1서 1,16: ???, 인내, patience, μακροθυμίαν

티모테오1서 6,11: 인내, 인내, patience, ὑπομονήν [주: 번역 오류]

티모테오2서 3,10: 참을성, 끈기, patience, μακροθυμίᾳ; 인내, 인내, endurance, ὑπομονῇ [주: 번역 오류] [주: 번역 오류]

티토서 2,2: 인내, 인내, endurance, ὑπομονῇ [주: 번역 오류]

히브리서 6,12: 인내, 인내, patience, μακροθυμίας

히브리서 10,36: 인내, 인내, endurance, ὑπομονῆς [주: 번역 오류]

야고보서 1,3: 인내력,  인내, perseverance, ὑπομονήν [주: 번역 오류]

야고보서 1,4: 인래력,  인내, perseverance, ὑπομονὴ [주: 번역 오류]

야고보서 5,11: 끈기있게 끝까지 견디어 낸, 끝까지 견디어 낸, persevere, ὑπομείναντας; 인내, perseverance, ὑπομονὴν [주: 번역 오류]

베드로2서 1,6: 인내(2), 인내(2), endurance(2), ὑπομονήν(2) [주: 번역 오류]

요한묵시록 1,9: 견디어 온, 인내하는, endurance, ὑπομονῇ [주: 번역 오류]

요한묵시록 2,2: 인내, 인내, enduance, ὑπομονήν [주: 번역 오류]

요한묵시록 2,3: 잘 참고, 인내심, endurance, ὑπομονὴν [주: 번역 오류]

요한묵시록 2,19: 인내, 인내, endurance, ὑπομονήν [주: 번역 오류]

요한묵시록 3,10: 참고 견디라, 인내하라, endurance, ὑπομονῆς [주: 번역 오류]

요한묵시록 13,10: 인내, 인내, endurance, ὑπομονὴ [주: 번역 오류]

요한묵시록 14,12: 인내, 인내, ???, ὑπομονὴ, [주: 번역 오류; NAB에서 의역 번역된 듯].

 

4-3. 그런데, 바로 위의 제4-2항에서 진행한 엄밀한 유관 용어들의 분석 결과를 들여다보면, "새 번역 성경"의 신약 성경에서, 유관 그리스어 단어들 두 개가 분명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두 "인내"로 번역되었으나, 그러나, NAB(New American Bible)"공동번역성서"의 경우에는 이와 다르게 번역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추가적으로, 연대순에 있어 거슬러 올라가면서, (i) 1611년에 그 초판이 줄판된 King James Version을, 1950-60년대에 영어권 개신교회 측과 영어권 천주교회에서 함께 공동 작업하여 20세기 현대 영어 어법에 맞게 개정된, RSV(Revised Standard Version)에 대하여 이들 두 개의 번역 용어들에 대한 분석 작업을 진행하고, 또한 (ii) 1611년에 그 초판이 줄판된 King James Version이 마련될 때에 상당한 영햘을 끼쳤다고 알려진, 그 번역 대본이 대중 라틴말 성경, 즉, [Clementine] Vulgate인, 1582-1610년에 영어로 번역이 된 Douay-Rheims Bible에 대하여 이들 두 개의 번역 용어들에 대한 분석 작업을 진행하였더니, 전혀 예상밖의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다음의 분석 결과들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하시기 바랍니다:

 

4-3-1.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1950-1960년대)의 경우: 

4-3-1-1.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여, 검색 결과를 직접 확인하십시오:

https://quod.lib.umich.edu/cgi/r/rsv/rsv-idx?type=simple&format=Long&q1=patience&restrict=All&size=First+100 

[주: RSV 본문 중 patience 검색 결과: 구약 성경 중 1건; 제2경전 등 6건; 신약 성경 중 17건, 총 25건임]


4-3-1-2.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여, 검색 결과를 직접 확인하십시오:

https://quod.lib.umich.edu/cgi/r/rsv/rsv-idx?type=simple&format=Long&q1=persever&restrict=All&size=First+100 

[주: RSV 본문 중 persevere 혹은 perseverance 검색 결과: 구약 성경 중 0건; 제2경전 등 2건; 신약 성경 중 3건; 총 5건뿐임]

 

게시자 주 4-3-1: 바로 위의 검색 결과들로부터 다음을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RSV 본문 중 persevere 혹은 perseverance로 번역된 경우가 매우 드물며, 신약 본문의 경우에 오로지 단 3건뿐임. 그런데,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1950-1960년대)의 마련에 영어권의 천주교 성서학자들이 함께 참여하였으므로, 바로 위의 검색 결과들은 상당히 심각할 수도 있음을 의미함. 

 

4-3-2. Douay-Rheims Bible(1582-1610년)의 경우:

4-3-2-1.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여, 검색 결과를 직접 확인하십시오:

http://www.intratext.com/IXT/ENG0011/UW.HTM 67

[주: Douay-Rheims Bible 본문 중 patience 검색 결과: 구약 성경 중 24건; 신약 성경 중 43건, 총 67건임]

 

4-3-2-2.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여, 검색 결과를 직접 확인하십시오:

http://www.intratext.com/IXT/ENG0011/_H7.HTM#8OV 1

http://www.intratext.com/IXT/ENG0011/4/97.HTM 5

[주: Douay-Rheims Bible 본문 중 persevere 혹은 perseverance 검색 결과: 구약 성경 중 2건; 신약 성경 중 4건; 총 6건뿐임]

 

게시자 주 4-3-2: 바로 위의 검색 결과들로부터 다음을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Douay-Rheims Bible 본문 중 persevere 혹은 perseverance로 번역된 경우가 매우 드물며, 신약 본문의 경우에 오로지 단 4건뿐임. 그런데, 충실하게 직역 번역되엇다고 알려진 Douay-Rheims Bible는 그 번역 대본이 대중 라틴말 성경, 즉, [Clementine] Vulgate인 이유 때문에, 바로 위의 검색 결과들은 상당히 심각할 수도 있음을 의미함. 

 

4-4.

4-4-1.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대중 라틴말 성경"([Clementine] Vulgate)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latinvulgate.com/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1979년에 개정된 "새 대중 라틴말 성경"(Nova Vulgata)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www.vatican.va/archive/bible/nova_vulgata/documents/nova-vulgata_vetus-testamentum_lt.html [주: 구약 성경 경전들의 목룩]

https://www.vatican.va/archive/bible/nova_vulgata/documents/nova-vulgata_novum-testamentum_lt.html [주: 신약 성경 경전들의 목록]

 

4-4-2. 다음에 제시된 복록은,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마련된 것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위의 제4-2항에 이미 제시한 유관 성경 절들의 목록에 있어, 추가적으로, "새 대중 라틴말 성경"(Nova Vulgata)"대중 라틴말 성경"([Clementine] Vulgate) 중의 대응하는 라틴어 단어들을, 바로 위의 제4-4-1항에 안내해 드린 사이트들로부터 필자가 직접 찾아서, 위의 제4-2항에 이미 제시한 유관 성경 절들의 목록 중의 그리스어 단어의 왼쪽에 필자가 추가한 것입니다. 그리고 위의 제4-2항에서와 마찬가지로, 바로 이 그리스어 단어들이, "공동번역성서" 및 "새 번역 성경"에 있어, 번역 오류의 판단의 근거/기준/잣대임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루카 복음서 8,15: 꾸준히(공동번역성서), 인내(새 번역 성경), perseverance(NAB), patientia(새 대중 라틴말 성경), patientia(대중 라틴말 성경), ὑπομονῇ(그리스어 성경) [주: 번역 오류]

루카 복음서 21,19:  참고 견디면, 인내, perseverance, patientia, patientia, ὑπομονῇ [주: 번역 오류]

로마서 2,4: 인내, 인내, patience, patientiae, patientiae, μακροθυμίας

로마서 5,3: 인내, 인내, endurance, patientiam, patientiam, ὑπομονὴν [주: 번역 오류]

로마서 5,4: 인내, 인내, endurance, patientia, patientia, ὑπομονὴ [주: 번역 오류]

로마서 8,25: 참고, 인내심, patience, patientiam, patientiam, ὑπομονῆς [주: 번역 오류]

로마서 12,12: 참으며, 인내하며, persevere, patientes, patientes, ὑπομένοντες [주: 번역 오류

로마서 15,4: 인내, 인내, endurance, patientiam, patientiam, ὑπομονῆς [주: 번역 오류

로마서 15,5: 인내, 인내, endurance, patientiae, patientiae, ὑπομονῆς [주: 번역 오류]

코린토2서 6,6: 끈기, 인내, patience, longanimitate, longanimitate, μακροθυμίᾳ

코린토2서 12,12: 참고 견디면서, 인내하며, endurance, patientia, patientia, ὑπομονῇ [주: 번역 오류]

갈라티아서 5,22: 인내, 인내, patience, longanimitas, longanimitas, μακροθυμία

에페소서 4,2: 인내, 인내심, patience, longanimitate, patientia, μακροθυμίας

에페소서 6,18: 꾸준히, 인내, perseverance, ???, ???, προσκαρτερήσει [주: 번역 오류]

콜로새서 3,12: 인내, 인내, patience, longanimitatem, patientiam, μακροθυμίαν

테살로니카1서 1,3: 꾸준한, 인내, endurance, ???, ???, ὑπομονῆς [주: 번역 오류]

테살로니카2서 1,4: 잘 견디어 내며, 인내, endurance, patientia, patientia, ὑπομονῆς [주: 번역 오류]

테살로니카2서 3,5: 인내, 인내, endurance, patientiam, patientia, ὑπομονὴν [주: 번역 오류]

티모테오1서 1,16: ???, 인내, patience, longanimitatem, patientiam, μακροθυμίαν

티모테오1서 6,11: 인내, 인내, patience, patientiam, patientiam, ὑπομονήν [주: 번역 오류]

티모테오2서 3,10: 참을성, 끈기, patience, longanimitatem, longanimitatem, μακροθυμίᾳ인내, 인내, endurance, patientiam, patientiam, ὑπομονῇ [주: 번역 오류] [주: 번역 오류]

티토서 2,2: 인내, 인내, endurance, patientia, patientia, ὑπομονῇ [주: 번역 오류]

히브리서 6,12: 인내, 인내, patience, patientia, patientia, μακροθυμίας

히브리서 10,36: 인내, 인내, endurance, patientia, patientia, ὑπομονῆς [주: 번역 오류]

야고보서 1,3: 인내력, 인내, perseverance, patientiam, patientiam, ὑπομονήν [주: 번역 오류]

야고보서 1,4: 인내력, 인내, perseverance, patientia, patientia, ὑπομονὴ [주: 번역 오류]

야고보서 5,11: 끈기있게 끝까지 견디어 낸, 끝까지 견디어 낸, persevere, sufferentiam, ὑπομείναντας; 인내, perseverance, sufferentiam, ὑπομονὴν [주: 번역 오류]

베드로2서 1,6: 인내(2), 인내(2), endurance(2), patientiam, patientia; patientiam, patientia, ὑπομονήν(2) [주: 번역 오류][주: 번역 오류]

요한묵시록 1,9: 견디어 온, 인내하는, endurance, patientia, patientia, ὑπομονῇ [주: 번역 오류]

요한묵시록 2,2: 인내, 인내, enduance, patientiam, patientiam, ὑπομονήν [주: 번역 오류]

요한묵시록 2,3: 잘 참고, 인내심, endurance, patientiam, patientiam, ὑπομονὴν [주: 번역 오류]

요한묵시록 2,19: 인내, 인내, endurance, patientiam, patientiam. ὑπομονήν [주: 번역 오류]

요한묵시록 3,10: 참고 견디라, 인내하라, endurance, patientiae, patientiae, ὑπομονῆς [주: 번역 오류]

요한묵시록 13,10: 인내, 인내, endurance, patientia, patientia, ὑπομονὴ [주: 번역 오류]

요한묵시록 14,12: 인내, 인내, ???, patientia, patientia, ὑπομονὴ, [주: 번역 오류; NAB에서 의역 번역된 듯].

 

4-4-2. 따라서, 바로 위의 제4-4-1항에 있는 목록으로부터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4) 위의 제4-4-1항에 있는 목록에서, "대중 라틴말 성경"([Clementine] Vulgate) 중의 신약 성경의 해당 절에서 사용된 라틴어 성경 용어는 1979년에 개정된 "새 대중 라틴말 성경"(Nova Vulgata) 중의 신약 성경의 해당 절에서 바뀐 것이 전혀 없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5) 위의 제4-4-1항에 있는 목록에서, "대중 라틴말 성경"([Clementine] Vulgate)"새 대중 라틴말 성경"(Nova Vulgata) 둘 다에서 그리스어 성경 용어  ὑπομονὴ 에 대응하는 번역 용어로서 선정된 라틴어 단어 patientia와 그 파생어들번역 오류들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6) 위의 제4-4-1항에 있는 목록에서, "공동번역성서" 및 "새 번역 성경"의 신약 성경들 중의 해당 절들[주: 왼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 및 세 번째 열에 나열된 행(rows)들]에서, 밑줄이 그어진 경우들을 제외하고, "인내"로 번역된 용어들은 번역 오류들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7) 위의 제4-4-1항에 있는 목록에서, "새 번역 성경"의 신약 성경 중의 해당 번역 용어들이 "인내"잘못 번역된 이유는, "공동번역성서"의 해당 절에서 잘못 번역된 영향을 받음과 함께, 또한, "새 대중 라틴말 성경"(Nova Vulgata) 성경 중의 해당 단어가 "patientia"임을 인지한 후에, 그리고 "patientia"가, 위의 제1-1항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우리말본 가톨릭대전 등에서 이미 "인내"로 번역되고 있음 때문이었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로 8) 만약에(If) "새 번역 성경"으로의 우리말 번역 작업에 임하셨던 고 임승필 신부님께서 본글에서 지적하는 바들를 이미 아셨더라면 혹은 본글을 읽으셨더라면(가정법 과거 완료), 영어로 "perseverance"로 번역 되는 그리스어 성경 용어 "ὑπομονῇ"와 그 파생어들결코 "인내"(patience)로 번역하지 않으셨을/못하셨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4-5. 바로 위의 제4-4항에서 "공동번역성서""새 번역 성경"에의 신약 성경의 본문에 있어, "인내와 끈기/항심"과 관련된 절들의 파악 및, 이들 절들에서의 번역 오류의 문제를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상당히 자세하게 들여다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그리스도교 신앙 생할에 있어, "예수! 마리아!"로 이어지는 "인내와 끈기/항심(恒心)"(patience and perseverance)은 그리스도교 신자이라면, 남녀노소 물분하고, 학력, 빈부 차이 불문하고, 약간의 신앙 실천 생활을 몸/육신으로 그냥 부딪히면서 직접 체험하기만 하면 곧바로 그리고 지극히 보편적으로 누구든지 각자 자신의 심장(heart) 안에 저절로 그리고, 매우 편안함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되는, 그리하여 그 결과로서, 항상 자나깨나 품고 있으면서 필요시에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발휘하여야 하는 용기/용덕/굳셈들임은, 예를 들어, 위의 제2-4항에서 이미 고찰하였듯이, 더 이상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를 들어, 최양업 신부님 등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의 신앙의 선조들 대다수가 그리하셨듯이, 그리스도교 신앙 생활 중에 "인내와 끈기/항심(恒心)"(patience and perseverance)으로 불리는 이들 두 용기들을 발휘한 분들 중에서만 오로지 자신의 임종 시점에, 바로 이들 두 용기들의 연장으로서, 천주의 특별한 도우심인 자비을 청하는, "예수! 마리아!" 기도를 자신이 바치는 마지막 기도로서 외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위의 제2-4-3항에 발췌된 "선종하기를 날마다 예비하는 경" 기도문이 얼마나 탁월한 내용을 담고 있는 "예수! 마리아!" 기도인지 그 본문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위의 제3-3항에서 "슬픔의 골짜기"로 표현되는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삼구"들의 유혹 때문에, "인내"라는 용기가 옴추려들어, 좌절, 분개, 원망 등을 하게 될 수도 있게 되고 그리고 "끈기"라는 용기가 지속적이지 못하게 되어, 체념, 방황, 냉담 등을 하게 되 수도 있게 되고 하니, 다들 하느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하느님의 의지/뜻(will)을 하느님께 여쭈고자 기도 생활을 하게 되고,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고자 성사 생활을 하게 되며, 예수님의 가르침들, 계명들 대로 살고자 실천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리고 이들 생활들을 더 충실하게 하고자, 성경 공부 및 묵상을 시작하고 또한, 이와 함께,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학습 및 묵상을 하게 되는데,

 

그러나 정작에, 현재 제공되고 있는 우리말본 "새 번역 성경" 및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이들 둘 다의 "예수! 마리아!"로 이어지는 "인내와 끈기/항심(恒心)"(patience and perseverance)을 가르치는 부분들에, 위의 제1-5-2항제4-4-2항에서 함께 고찰하였듯이, 도사리고 있는 도무지 예상 밖의 번역 오류들이라는 걸림돌(stumbling blocks)들을 만나, 자신의 심장(heart) 안에 약간 남아 있는, "인내와 끈기/항심(恒心)"(patience and perseverance)으로 불리는, 이들 두 용기들을 발휘하여, 이들 책들 중의 알쏭달쏭한 유관 부분들을 이해하고자 시간들을 보내다 오히려 더 미혹의 상태에 빠지게 되어, 그리하여, 그나마 자신의 심장(heart) 안에 조금 남아 있던 "인내와 끈기/항심(恒心)"(patience and perseverance)이 소진될 수도 있으니, 혹시라도 바로 이러한 일이 발생하게 되면 이 어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 할 수 있겠는지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생각에, "인내와 끈기/항심(恒心)"(patience and perseverance)이 소진된 심장(heart) 안에 더 많이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의 어휘들로 표현하여, (i) "하느님이 사랑받게 되는 사랑"[즉, 애덕, 까리타스(caritas, charity)]일까요??? 아니면, (ii) "세상이 사랑받게 되는 사랑"[즉, 돈(money) 사랑, 쿠피디타스(cupiditas, cupidity)]일까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하더라도, 아마도, (ii) "세상이 사랑받게 되는 사랑"[즉, 돈(money) 사랑, 쿠피디타스(cupiditas, cupidity)]일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와 동시대인인 성 예로니모(St. Jerome, 342-420년)께서 380년대에, 라틴어로 기 번역된 당시의 라틴어본 신약 성경의 교정 작업을 하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바로 이 작업 중에 위의 제4-4-2항에서 구체적으로 고찰한 번역 오류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며, 그러나, 심지어 작금에 이르기까지, 이들 번역 오류들이 바로잡아지지 않은 점이, 참으로 아쉽다고 아니 지적할 수 없습니다.

 

 

게시자 주 4: 추가적인 참고 자료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12.htm [공로(merit)]

https://maritain.nd.edu/jmc/etext/emt17.htm 

https://www.newadvent.org/summa/3128.htm [the parts of fortitude]

https://www.newadvent.org/summa/3136.htm [patience]

https://www.newadvent.org/summa/3137.htm [perseverance]

https://www.newadvent.org/cathen/11711a.htm [final perseverance]

 

루카 복음서 8,15: 

1704년 장 바쎄 신부 신약 성경: 忍耐(인내)

1823年神天新遺詔書-救世我主耶穌新遺詔書,馬禮遜,馬六甲英華書院 : 忍耐恒(인내항)

1839年救世主耶穌新遺詔書,郭實臘譯 :忍耐(구인내)

1853年聖經新遺詔全書,高德譯: 恒忍(항인)

1855年委辦譯本新舊約全書: 恒忍(항인)

1863新約裨治文/ 克陛存版: 恒忍(항인) [주: 우리나라 개신교회용 성경들의 번역 대본] 

(이상, 게시자 주 4 끝)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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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성자 주: 2020년 가해 부활 제3주일부터, 매주 시리즈의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본 "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교안"은 통상적으로 이틀 동안의 묵상 후에 작성되고 있으며, 그리고 묵상 동영상 녹화 후에 추가적인 묵상의 결과로서 내용 보강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아래의 안내 첫 공지일자: 2021년 3월 10일]

이곳은 2004년에 굿뉴스 서버에 개설된 "가톨릭 문서 선교회"가 운영/관리하는 Big DataBase Archive 구축 공간 및 2000년 대희년부터 당시 교육부 지원 공동연구/교육용 SGI Origin 3400 수퍼컴퓨터 사용자들을 위하여 연구/개발해 온 고유한 AI 알고리즘/빅 데이터 분석 기법 기반 최신 연구 결과물들의 제공처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또한 이곳은, 문화장벽(culture barriers)들/언어장벽(language barriers)들 등에 기인하는 형이상학 개념(metaphysical concepts)들의 전달 장애/훼손/오류 등의 조기 회복/복원 및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이들 개념들 사이에 현존하는 진리인 유의미한 관계의 상태들의 전달/발견 등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추구해 온, 연구/교육, 선교/전교/복음화 및 토착화, 공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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