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신부님의 낡은 기도서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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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호(도미니꼬) [morningnews] 쪽지 캡슐

2002-11-06 ㅣ No.1167

신부님의 낡은 기도서  [퍼온 글]

 

 

 

 

 

수요일에 퇴원을 한 아이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보통 큰 일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 신자들은 성당으로 연락을 합니다. 그러면 신부님께서 기도를 해 주러 오시는데...

 

 

 

아이의 상태가 연락드릴 정도가 아니라서 감히 신부님의 방문을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어느 날, 물리치료실을 다녀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신부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복사를 서는 아이라 금방 알아보신 신부님은 잊지 않으시고 기도를 해 주러 오셨는데...

 

 

 

여느 때처럼 아이를 위해 자상한 말씀을 들려주시면서 기도서를 펼치셨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서를 보는 순간 미련한 엄마는 가슴이 복받쳐 오르는 깊은 슬픔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신부님께서 펼치신 기도서의 모서리가 마치 손을 대면 부서질듯이 닳고 닳아서 거의 해질 정도로 얇아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신부님의 방문을 하느님의 선물로 생각하는 아이가 깊이 잠든 시간... 엄마는 낮에 보았던 신부님의 기도서에 대한 감정이 영 마음 한 구석을 떠나지 못하고 있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해질 정도로 얇아진 기도서가, 어쩌면 쉽지만은 않았었을 신부님의 여정을 대변이라도 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을까요... 생각이 깊어질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이의 병실에 주름이 깊이 패이신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길을 걸으시다가 발을 헛디디시는 바람에 입원을 하시게 됐다고 하시면서 365일을 들어도 모자랄 것 같은 할머니의 일생을 못난이 엄마에게 진솔하게 털어놓으셨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는 왜 그렇게 신부님의 그 낡은 기도서가 떠오르던지요. 다 해지고 닳고 닳은 기도서 안에 숨겨져 있을, 신부님의 평탄치만은 않았었을 과거와 현재가 보이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 할머님처럼 누군가에게 쉽사리 멍울진 가슴을 열어 보이시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하니 그 가슴은 얼마나 아픔으로 가득 차 있을까 하는 인간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픔 속에는 여러 가지의 것들이 자리하고 있겠지요. 믿었던 신자들에 대한 배신감도 있을 것이고 본당에서 체험적으로 느껴지는 신앙관에 대한 오류와 결핍도 있으셨을 것이고 신부님들 사이의 문제와 여자 문제로 방황을 하셨던 때도 있으셨을 겁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몰라주었으면 하는 내용들도 조그맣게 그 자리를 메우고 있겠지요.

 

 

 

그런 저런 시간들을 신부님과 함께 해 왔었을 낡은 기도서... 그 해진 자욱들을 바라 보는 엄마의 마음은, 고된 시집살이에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의 세월을 보내셨던 우리의 할머님들과 거의 같은 고초의 시간들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감히 해 봅니다.

 

 

 

아니, 어찌 보면 그 보다 더한 시간들일 수도 있었겠지요. 웃으시면서 기도를 해 주시는 신부님의 모습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낡은 기도서... 앞으로 더욱 많은 시간들을 신부님과 함께 할 그 낡은 기도서를 보면서...

 

 

 

신부님의 마음이 더 이상 그 낡은 기도서처럼 해지지 않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물론 그 해진 마음을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다 치유해 주시겠지만...  그 치유의 시간 동안 흘리시게 될 신부님의 눈물을 우리 신자들은 어느 누구도 볼 수가 없을 것이기에 마음이 아픕니다.  왜냐하면 신부님 혼자 가슴 깊이 삭히실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엄마는 잠시지만 그런 신부님을 생각하면서 숙연해지는 시간을 애써 가져 보려 합니다.

 

 

 

낡은 기도서로 본 신부님의 마음에 주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길 빌면서... 새로 구입한 것인 양 깨끗함을 자랑하는 엄마의 기도서를 바라보는 지금, 닳고 닳아서 낡아질 때까지 감춰져야 하는 무심한 세월들을 훌쩍 넘겨버리고 싶은 성급함이 드는군요.

 

 

 

만약 저의 기도서가 다 해지고 낡아질 즈음에서 다시 한번 글을 올릴 수 있게 된다면 그 때는 과연 어떤 감정으로 글을 쓰게 될까요?  그 때까지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실까요?  

 

신부님의 낡은 기도서의 반에 반만큼이라도 해어진다면 글을 올릴 수 있을런지요.  

 

 

 

기도서에서 느껴지는 신부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드리고 싶어지므로... 아주 이른 새벽에 이 글을 씁니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서 할 수만 있다면 신부님의 조각난 마음들을 조금이라도 모아 드리고 싶어집니다. 그 조각들이 비록 실과 바늘 자국으로 얼룩진다 해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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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로 생활하면서 물론

 

신부님으로 인해 마음 아팠던 기억들도 약간은 있습니다만,

 

그보다는 가슴 아릴 정도로 따뜻하고 존경스러웠던 신부님들에 대한 기억이

 

제게는 훨씬 더 많습니다.

 

정말 아버지 같고 할아버지 같으시던 그 모습들,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어찌 보면 개신교의 목사님들에 비해 세속적으로 보이면서도

 

내면적으로는 더할 수 없이 고결하던, 그 아름다운 모습들...

 

 

 

문득 어느 게시판에서 이 글을 읽고

 

그런 신부님들이 생각나서 이곳에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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