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원죄가 카인(Cain)을 통하여 그 후손 대대로 이어져 내려간다는 설명은 우리 모두가 카인의 후손이라는 심각한 착오(錯誤)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부적절한 오류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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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5 ㅣ No.2011

 

게시자 주: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1.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질문 1: 우리들 모두는 태생적으로, 자신의 동생인 아벨(Abel)을 죽인 카인(Cain)의 후예(後裔)들이라서, 위선자들이고 또 악마들인가요?

 

질문 1에 대한 간단한 답변; 아닙니다. 순자(荀子, 기원전 315-230년)의 성악설(性惡說)에 동의하는 자가 아닌 이상, 결코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혹시라도 그러한 생각 쪽으로 여러분들의 사고의 틀, 사고의 방식을 기울어지게 하는 표현을 담은 책들은, 설사 선물로 받았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 찬미 예수님!

 

1.

다음은, 인천 교구 소속의, 성서 신학을 전공한, 신교선 신부의 책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제33쪽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발췌 시작)

이와 같이, 아담이 지은 죄는 모든 죄의 뿌리, 곧 원죄로 자리를 잡습니다. 이 원죄는 카인을 통해 꼬리를 물고 그 후손 대대로 이어져 내려갑니다.

(이상, 발췌 끝)

 

1-1.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그러나 "원죄(original sin)가 카인(Cain)을 통하여 그 후손 대대로 이어져 내려간다"는 설명은, 우리들 모두가 원죄를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브라함과, 심지어,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하여, 우리들 모두가 카인의 후손이라는 심각한 착오(錯誤)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하여 그 결과, 그리스도교 신앙과 윤리에 해악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부적절한 오류의 설명임을 아니 지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담(Adam)과 하와(Eve)가 원죄(original sin)를 범하여 에덴의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에 카인(Cain)과 아벨(Abel)을 낳았고, 그리고 카인이, 분노(anger)와 질투(envy)로 인하여, 자신의 친동생 아벨을 살해한 이후에 아담과 하와가 낳은 또다른 아들인 셋(Seth)을 통하여서도, 원죄가 그 후손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

(*)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CCCC)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에 주어진 바를 학습할 수 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41.htm <----- 필독 권고

[제목: 죄의 정의, 원죄, 성령을 거스르는 죄 등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1-12-05]

(발췌 시작)

CCCC 76. 원죄(original sin)가 무엇인지요?
CCC 404, 419

모든 인간들이 그 안에서 태어나게 되는 원죄는 원래의 거룩함과 의로움(original holiness and justice)을 상실당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 죄는 우리에 의하여 ‘범해진(committed)’ 죄가 아니라 ‘감염된(contracted)’ 죄이며, 그리고 이 죄는 어떤 인격적 행위(a personal act)가 아니라 출생의 상태(a state of birth)를 말합니다. 모든 인간들의 원래의 단일성(original unity) 때문에, 이 죄는 ‘모방(imitation)에 의하여서가 아니라, 번식(propagation)에 의하여’ 아담의 후손들에게 전달됩니다. 이 전달은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신비(a mystery)로 남아 있습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ot_10_c404.htm

(이상, 발췌 끝)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가 낳은 또다른 아들인 바로 이 셋(Seth)의 직계 후손들 중에, 연대 순에 있어 내려가면서, 의로운 자(the just)들인, 노아, 셈, 아브라함, 다윗, 성모 마리아,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 등이 포함되어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지금 드린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께서는, 예를 들어, 예수님의 족보인 루카복음서 3,23-38을, 연대순에 있어 내려가면서, 즉, 꺼꾸로, 읽도록 하십시오.

 

1-2. 다른 한편으로, 혹시라도 한문 문화권에 속하는 동양인들이 카인(Cain)의 후예들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할 수도 있는데, 구약 성경 창세기 말씀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노아의 홍수의 결과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죽었으며(창세기 7,23), 이 세상의 모든 인류는, 노아와 함께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가족 8명, 즉, 노아와 그의 아내 그리고 노아의 세 명의 아들들, "셈", "함", "야펫"과 그들의 아내들의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창세기 9,19).

 

따라서, 노아의 세 명의 아들들, "셈", "함", "야펫"과 그들의 아내들의 후손들이 결코 아닌, 카인의 후손들은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모두 죽었습니다.

 

1-3.

1-3-1. 그리고 한문 문화권에 속하는 동양인들은, 다들 잘 알고 계시듯이, 아세아인들이며, 그리고 아세아인들은, 카인(Cain)의 후손들이 아니고, 셋(Seth)의 후손들에 포함되는, 노아의 큰아들인 셈(shem)의 후손들입니다.

 

이것은,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듯이,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한문본 천주교 수덕서 "칠극"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예수회 소속의 판토하 신부님(1571-1618년)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교리서인 "방자유전", 권4 "인류원시"(저술 시기: 1610년), 제22p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1-1618_디에고_데_판토하/1600_방자유전.htm  

(발췌 시작)

방자유전_권4_114-130_전인류원시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주: 인류원시 제3쪽(17p)에서, 이 책(즉, 인류원시)이 저술된 해가 기원후 1610년임을 밝히고 있음] [(2017년 9월 7일) 주: "성모마리아" 라는 표현들이 사용되고 있음. 제27쪽에서, "득죄"라는 용어 대신에 "범죄"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2017년 9월 30일) 주: "원죄" 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여기서, 노아의 장자 "셈(Shem)""生"(생)으로 음역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노아의 차자 "함(Ham)"이 "岡"(강)으로 음역되었고, 그리고 노아의 3자 "야펫""아불덕"으로 음역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 발췌 끝)

 

1-3-2. 그리고 또한, 아세아인들이, 카인(Cain)의 후손들이 아니고, 셋(Seth)의 후손들에 포함되는, 노아의 큰아들인 셈(shem)의 후손들임은,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듯이,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의에 의하여 1642년에 저술된 한문본 교리서인 "4자경문"에도 서술되어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1642_천주성교4자경문.htm 
(발췌 시작)

천주성교4자경문_전능천주_4-13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주: 성삼위 하느님에 대한 언급 그리고 성삼위의 제3위격이신 "성령"을, 예를 들어, 디에고 데 판토하 신부님(1571-1618년)의 유고(遺稿)인 "방자유전"에서처럼 "사피리다삼다"라는 음역하는 대신에, 1640년에 저술된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의 다른 저서 천주강생인의_상권_제6장_천주성삼_강생제2위비략_15-17에서처럼 "성신"으로 번역하였음. 천지 창조부터 노아의 홍수 이후에 그의 세 아들들의 자손들이 천하에 퍼지는 이야기까지. "아담"과 "하와", "지당"(즉, 에덴의 동산), 그리고 "원죄" 등에 대한 언급은 제5쪽에 있음. "영혼""영혼불멸"이라는 언급은, 그리고 "연옥"에 대한 언급은, "사입연옥"이라는 표현이 있는, 제6쪽에 있음. 여기서 "죽을 사"자가 우리가 사용하는 글자와 다름에 주목하라. 제7쪽에, "천당""천역"이라고 언급하고 있고, 노아와 대홍수 이야기가 있음. "방주""독"으로 언급되고 있음]. [(2016년 8월 29일) 주: 제2쪽에 천지창조가 6일만에 되었다는 언급이 있음. 제5쪽에 "아당"(즉, 아담)과 "액말"(厄襪, 즉, 하와)에 대한 언급이 있음. 제7쪽에 노아의 세 아들의 이름들이 언급되고 있음. 노아의 장자 "셈"은 그 이름이 "生"으로, 그리고 차자 "함""岡"으로, 그리고 3자 "야펫""아불덕"으로 표기되고 있음. 직방외기에서처럼, "아세아", "리말아"(즉, 지금 표기로는 아프리카), "구라파" 라는 표현들이 제8쪽에서 사용되고 있음]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세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여기서, 노아의 장자 "셈(Shem)""生"(생)으로 음역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노아의 차자 "함(Ham)"이 "岡"(강)으로 음역되었고, 그리고 노아의 3자 "야펫""아불덕"으로 음역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 발췌 끝)

 

(이 글의 결론 1) 따라서, 위의 제1항의 시작부분에 발췌된 바에서, "원죄(original sin)가 카인(Cain)을 통하여 그 후손 대대로 이어져 내려간다"는 설명은, 예를 들어, 우리들 모두가 카인의 후손이라는 심각한 착오(錯誤)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전후 문맥 안에서, 적절하게 바로잡아져야 할 것입니다.

 

2.

그리고 다음은, 인천 교구 소속의, 성서 신학을 전공한, 신교선 신부의 책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제11쪽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발췌 시작)

구약 46권은 히브리어(일부 아람어)와 그리스어로 집필되었지만 신약 27권은 모두 그리스어로 쓰였습니다.

(이상, 발췌 끝)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그러나 "신약 27권은 모두 그리스어로 쓰였습니다"라는 설명은,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도권에 의하여 수용된, 오래된 전승에 의하여 실증적으로(positively) 증거되어 온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따라서 모순(contradiction)인, 한 개의 오류입니다.

 

2-1. 이 지적에 대하여서는,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에서, 성서 학자인,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강론 말씀과 또한 안내된 다른 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36.htm <----- 필독을 권고 드립니다

[제목: 마태오 복음서의 최초 저술 연대 - 교황 베네딕토 16세, 2006.08.30, 교리 교육용 일반 알현 강론; 게시일자: 2014-03-27]

 

(발췌 시작)
Lastly, let us remember that the tradition of the ancient Church agrees in attributing to Matthew the paternity of the First Gospel. This had already begun with Bishop Papias of Hierapolis in Frisia, in about the year 130.

 

끝으로, 교회의 오래된 전승(tradition)이 첫 번째 복음서의 저작권(paternity)을 마태오에게 귀속시키는 것(attributing to)에 동의하고 있음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이 동의는 기원후 130년경에, [소아시아 지역의] 프리기아(Frisia)에 있는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Papias of Hierapolis, 기원후 70년전-155년경) 주교와 함께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He writes: "Matthew set down the words (of the Lord) in the Hebrew tongue and everyone interpreted them as best he could" (in Eusebius of Cesarea, Hist. Eccl. III, 39, 16). 

 

그는 다음과 같이 씁니다: "마태오는 히브리어 말로 (주님의) 말씀들을 기록하였으며 그리고 모든 이는 이 말씀들을 그가 할 수 있는 힘껏 이해하였습니다(interpreted)" [카이사리아의 에우세비오(Eusebius of Cesarea, 263-339년), Hist. Eccl. III, 39, 16에서].

 

Eusebius, the historian, adds this piece of information: "When Matthew, who had first preached among the Jews, decided also to reach out to other peoples, he wrote down the Gospel he preached in his mother tongue; thus, he sought to put in writing, for those whom he was leaving, what they would be losing with his departure" (ibid., III, 24, 6).

 

역사가인 에우세비오는 다음과 같은 한 조각의 정보를 추가합니다: "처음에 유다인들 사이에서 설교하였던 마태오가 다른 백성들을 붙잡으려고 손을 뻗기로 또한 결정하였을 때에, 그는 자신의 모국어로 이 복음서를 저술하였으며, 그리하여 그 결과, 그는, 자신이 떠나고자 하는 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떠남과 함께 그들이 장차 상실할 수도 있는 바를 글로 적어 놓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ibid., III, 24, 6].

 

The Gospel of Matthew written in Hebrew or Aramaic is no longer extant, but in the Greek Gospel that we possess we still continue to hear, in a certain way, the persuasive voice of the publican Matthew, who, having become an Apostle, continues to proclaim God's saving mercy to us. And let us listen to St Matthew's message, meditating upon it ever anew also to learn to stand up and follow Jesus with determination.

 

히브리어 혹은 아람어로 저술된 마태오 복음서는 이미 현존하지 않으나, 그러나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그리스어본 복음서 안에서,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한 명의 사도가 되고 나서,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구하는 자비(saving mercy)를 선포하는 것을 계속하고 있는, 세리(稅吏, publican)인 마태오의 설득하는 음성을 우리는 여전히 계속하여 듣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호하게 일어나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또한 언제나 새로이 배우고자 그의 메시지를 묵상하기 위하여, 성 마태오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도록 합시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1) 만약에 성 마태오가, 기원후 50년경에 처음 기록한 것으로 전통적으로 알려진, 처음 기록한 히브리어본 혹은 아람어본 마태오 복음서의 정전성(正典性, canonicity)이 초기 교회 시절의 가톨릭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인정되지 못하였더라면, 예를 들어,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of Hippo, 354-430년)가 파악하였던 신약 네 복음서들의 저술 연대순에 따라 정해진, 그리고 현재까지도 유지가 되고 있는, 이들 네 복음서들 사이에 있어서의 현재의 나열 순서가, 성 아우구스티노 생존 당시의 가톨릭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결코 승인되지 못하였을 것이고 또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세월동안 유지되지도 못하였을 것임을 반드시 유념하여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다음에 있는, 히브리어 혹은 아람어 마태오 복음서에 대한 1911년 교황청 성서 위원회의 공지문의 내용이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는 것이 그 요지인 위에 전달해드린 성서학자인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2006년 8월 30일자 일반 알현 교리 교육 강론은 대단히 유의미하다는 생각입니다:

http://www.newadvent.org/cathen/10057a.htm [Appendix]
http://www.ecatholic2000.com/cathopedia/vol16/volsixteen124.shtml

http://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faith/pcb_doc_index.htm

Quaestiones de evangelio secundum Matthaeum, On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June 19, 1911)
[AAS 3 (1911) 294-296]
[Italian, Latin]

 

특히 위의 교황성 성서 위원회의 1911년 6월 19일자 공지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명기되어 있습니다:

 

(발췌 시작)
this very Greek Gospel is identical in substance with the Gospel written by the same Apostle in his native language.

 

바로 이 그리스어본 복음서는 동일한 사도에 의하여 그의 모국어로 저술된 복음서와 본체적으로(in substance) 꼭 같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2. 그리고 이 지적에 대하여서는 또한,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11.htm <----- 필독을 권고 드립니다

(발췌 시작)

[...]

S. Jerome, S. Augustine, Eusebius, and the rest of the fathers unanimously declare that S. Matthew wrote in Hebrew, and that he did so because he was asked by the Jews, when he was going away amongst the gentiles, to leave them in writing what he had orally preached to them.


성 예로니모(St. Jerome),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에우세비오(Eusebius), 그리고 나머지 교부들은 성 마태오가 히브리어로 저술하였으며, 그리고, 그가 이방인들 사이로 떠나려고 할 때에, 그가 구두로 그들을 이미 가르쳤던 바를 저술로 그들에게 남겨줄 것을 유다인들에 의하여 그가 요청받았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하였다고 이구동성으로 단언하였습니다(declared)].

 

[...]

 

S. Jerome, in the passage already cited from his commentary on Matthew, claims that he had seen the latter’s gospel written in Hebrew at Cæsarea in the library of S. Pamphilus the Martyr, and from it had transcribed his own copy. The Hebrew text of S. Matthew, however, is now lost.


성 예로니모는(S. Jerom, 347년경-420년), 마태오 복음서에 대한 그의 주석으로부터 이미 인용하였던 구절에서, 카이사리아에 있는 순교자 성 팜필리오(S. Pamphilus)의 도서관에서 히브리어로 저술된 마태오 복음서를 그가 이미 보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 마태오 복음서의 히브리어 본문은, 지금까지 분실된 상태입니다.

 

[...]

 

S. Matthew wrote a gospel in Hebrew at the bidding of the Apostles, says S. Epiphanius (haeresi 51), in the same year that the Apostles took counsel about dispersing, that they might go to the gentiles. This was in the year 37 after the birth of Christ, the fourth from the passion, as I showed in the chronology that I prefaced to the Acts of the Apostles.


성 마태오는, 흩어짐에 대하여 사도들이 협의하였던,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갈 수도 있었던, 바로 그 동일한 해에, 사도들의 명령에 따라 히브리어로 한 개의 복음서(a gospel)를 저술하였습니다 라고 성 에피파니오(St. Epiphanius)(haeresi 51) 는 말합니다. 그 시기는, 수난으로부터 네 번째 해인, 예수님의 탄생 후 37년이었습니다.

 

[...]

 

Moreover, the gospel, which S. Matthew wrote in Hebrew, was immediately translated into Greek, seeing that this language was more popular and widespread among the peoples to whom the Apostles were to go. This was done either by S. Matthew himself, or by S. John, S. James or some such person.


더구나, 성 마태오가 히브리어로 저술하였던 복음서는, 그리스어가 사도들이 가기로 하였던 사람들 사이에 더 대중적이었으며 그리고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어로 즉시 번역되었습니다. 이 번역은 성 마태오 자신에 의하여, 혹은 성 요한(S. John), 성 야고보(S. James) 혹은 누군가 그와 같은 자에 의하여 행하여졌습니다.

 

[...]

 

Then Athanasius (loc. cit.) holds that Matthew’s Gospel was translated into the Greek language by the Apostle James; but others attribute this translation to John the Apostle, and others to Matthew himself. But, whoever made it, this translation was received as though Matthew’s Gospel had first been written in that language.


게다가 아타나시오(Athanasius)마태오의 복음서사도 야고보에 의하여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고 주장하며 (loc. cit.), 그리고 다른 이들은 이 번역본을 사도 요한의 덕분이라고 하며 그리고 다른 이들은 마태오 자신의 덕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가 그것을 마련하였던지간에, 이 번역본은 마태오 복음서가 애초에 바로 그 언어로 저술되었던 것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 글의 결론 2) 따라서, 위의 제2항의 시작부분에 발췌된 바에서, "신약 27권은 모두 그리스어로 쓰였습니다"라는 설명은, 예를 들어,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 충실하도록, 바로잡아져야 할 것입니다.

 

3.
그리고 다음은, 인천 교구 소속의, 성서 신학을 전공한, 신교선 신부의 책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제17쪽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발췌 시작)

오경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문헌 가설을 인용하여 오경을 설명하지만, 이 문헌 가설에도 문제점이 없지 않습니다. 즉 복잡한 전승을 완벽하게 설명해 낼 수 없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하지만 현대 성서학계는 이 문헌 가설을 능가할 만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상, 발췌 끝)

 

바로 위에 발췌된 바는 "문헌 가설(documentary hypothesis)"이라고 불리는 한 개의 가설(a hypothesis)을 여전히 신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사해 문서들의 발굴 이후부터, 더 구체적으로 1975년 경에 이르면, 설득력을 상실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들을 읽도록 하십시오:

 

3-1.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60.htm <----- 필독을 권고 드립니다
[제목: 이스라엘 자손들??? -신명기 32,8 및 사해 문서들; 게시일자: 2009-09-15]

 

게시자 주: 바로 위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참고 자료 2 (동영상)(25:41 - 27:38 요약) 을 읽도록 하십시오:

 

(발췌 시작)

(25:41 - 27:38 요약) 아마도 가장 괄목할 만한 점은 12개의 문서들이 고대 히브리어(paleo-Hebrew)로 기록되었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된 창세기가 발견된 것인데, 이 고대 히브리어는 바빌론 유배 이전에 사용되었기에, 유다인들이 바빌론 유배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문서들을 복사하고 또 복사해 왔음을 추론할 수 있기에, 바로 이 발견에 의하여, 예를 들어, 모세가 창세기의 저자가 아니라는, [소위 말하는] "바빌론 유배 이후에 창세기가 집필되었다는 문헌 가설(documentary hypothesis)"이 바빌론 유배 이전의 글자인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된 창세기가 사해 문서들 중에서 발견된 이후부터는 더 이상 가설(hypothesis)로서도 설정될 수 없음이 입증되었다고 함.

(이상, 발췌 끝) 

 

3-2.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01.htm <----- 필독을 권고 드립니다

[제목: 2010년 판 프랑스어 공동 번역 성경 TOB 에 대한 안내; 게시일자: 2011-01-17]

 

게시자 주: 바로 위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특징" 을 읽도록 하십시오.

 

(발췌 시작)

■ 특징

성서위원회는 「주석 성경」을 내는데 있어 「공동 번역 성경」의 주석을 단순히 번역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정, 보완하는데 중점을 뒀다.

특히 「주석 성경」은 성경을 읽는 이들이 본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역사와 지리, 문화적 배경 등을 충실히 설명했다.

입문에서는 물론 각주에서도 히브리 사람들의 독특한 사고방식과 언어습관을 설명, 번역 자체에 대한 이해를 쉽게 풀어냈다. 반면 본문에 대해 주관적인 해설이나 논란이 되는 신학적 내용 등은 가급적 뺐다. 논란이 되는 본문들은 권위있는 여러 현대 번역본들을 참조, 가장 중립적이고 본문 내용을 잘 번역한 것을 선택해 옮겼다. 각주에는 직역과 다른 번역 가능성도 덧붙여 본문 자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 것도 눈여겨볼만하다.

히브리말 수사본, 칠십인역과 다른 그리스말 수사본, 쿰란 수사본, 아람말 역본, 시리아말 역본, 라틴말 역본 등 주요 번역본들을 소개한 것도 특징이다. 위원회가 여러 수사본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본문들의 각주 내용으로 달아, 본문 자체의 문제와 본문 비평의 견해들을 알고 비교해볼 수 있도록 힘을 실은 것이다.

또한 위원회는 본문 자체에 나타난 언어유희와 은유법 등 다양한 문학적 기법들을 되도록 살리려고 노력했으며, 입문과 각주에서도 이를 설명해 본문이 의도한 바를 명확히 알리는데 힘썼다.

아울러 최근 연구 경향에 따라,(*) 모세오경의 주석에서는 '문헌 가설'을 거의 내세우지 않고 오래된 이야기와 전승들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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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이에 대한 더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다음의 글의 제3항참고 자료 2(25:41 - 27:38 요약)을 또한 꼭 읽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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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3-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주석 성경"모세 오경 입문 전문을 읽을 수 있다:

 

출처: http://bible.cbck.or.kr/Knbnotes/Intro/2100 <----- 필독 권고

(발췌 시작)

[...]

 

독자들의 눈에 쉽게 띄는 것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가리키기 위해 서로 다른 이름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본문은 고유 명사인 야훼(주님)를 사용하는가 하면 어떤 본문들은 보통 명사인 엘로힘(하느님)을 쓴다. 예를 들어 하가르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는 야훼를, 두 번째 이야기는 엘로힘을 언급한다. 또한 요셉에 관한 이야기에는 창세 39장의 몇몇 구절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하느님만이 쓰이며 이스라엘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은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이렇게 하느님이 서로 다르게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오경의 구성에 관한 첫 번째 이론이 나온다. 프랑스에서 루이 15세의 주치의였던 장 아스트뤽은 1753년에, 오경은 두 가지 기록이(하나는 야훼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기록, 다른 하나는 엘로힘이라는 이름을 쓰는 기록) 합쳐진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구별이 이른바 ‘문헌 가설’의 단초가 되었으며, 이 이론은 19세기 말에 독일의 주석가 율리우스 벨하우젠을 통하여 일반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

 

그러나 이 가설은 1975년 이후 문제시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야훼계와 엘로힘계 문헌의 기록 연대가 문제로 제기된다. 기원전 10세기부터 이미 서사체 줄거리가 전해 내려왔다는 사실을 주장하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되었다. 사실 야훼계와 엘로힘계 문헌으로 여기는 상당수 본문들이 신명기의 문체와 신학과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을 보인다. 예컨대 탈출 19,5의 본문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는 신명기에서(신명 7,6과 28,9) 그 병행 문구를 만날 수 있다. 또한 (야훼계와 엘로힘계 문헌이 뒤섞여 있는) 탈출 3장의 모세의 소명 이야기는 예레미야와 에제키엘의 소명 이야기와 공통점을 드러내고 있어 이 본문을 기원전 6세기 이전에 쓰였다고 보기가 힘들다. 이와 같은 견해들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야훼계 저자를 신명기계 저자와 가까운 인물로,2) 나아가 야훼계 저자를 신명기계의 한 구성원으로 다루고자 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문헌 가설을 무조건 포기하기를 권장한다. 이들은 오경의 비교적 규모가 큰 서사체 전승들과 법률 전승들의 자립성을 역설한다. 이 전승들은 먼저 독립적인 방법으로, 오경 전승 전체와 아무런 관련 없이 전해졌다는 것이다. 사실 몇몇 문학 단위들은, 앞뒤 연결 없이, 독립된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 특히 기원 설화집에서(창세 2─8) 사제계 문헌이 아닌 오래된 형태의 이야기들이나, 이집트 탈출에 관한 역사의 경우가(탈출 1─15) 그렇다. 이와 마찬가지로 법전들 역시 서사체 전승들과 무관하게 생겨났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오경의 규모가 큰 서로 다른 단위들 사이의 문학적 연관성은 후기의 편집 결과일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서는 오경 연구에 관한 어떠한 새로운 가설도 절대적인 이론으로 강요될 수 없다. 그러기에 상당수의 저자들은 문헌 가설을 계속해서 인용하지만, 이 이론이 제기하는 적지 않은 문제점들은 어느 정도의 신중성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수긍해야 한다. 한편 오경 연구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점에서 부분적인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진다. 토라에는 사제계 문헌들이 있다는 점과, 유배 시대와 페르시아 제국 시대 초기(기원전 6-5세기)가 오경의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이 오경 구성에 대한 분석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이상, 발췌 끝)

 

3-3.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783.htm <----- 필독을 권고 드립니다

[제목: 창세기 37장 28절 NAB 성경과 한글 성경 대조; 게시일자: 2008-01-01]

 

게시자 주: 바로 위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게시자 주" 을 읽도록 하십시오.

 

(이 글의 결론 3) 따라서, 위의 제3항릐 시작부분에 발췌된 바에서, "하지만 현대 성서학계는 이 문헌 가설을 능가할 만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는 설명은, 예를 들어, 사고의 과정에서 행하게 되는 판단(judgment)의 잣대/기준(norm, standard)으로서 사용하기에 부적절하기 때문에, 즉, 건전하지 않기(unsound) 때문에, 전후 문맥 안에서, 적절하게 바로잡아져야 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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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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