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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매님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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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105.*]

2005-05-24 ㅣ No.3442

 

   힘든 직장 생활중에도 어머니와 함께 좀더 주님 보시기 아름답도록 살 것을 갈망하는 자매님의 기도가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자매님의 사연을 접하며 어떤 일화를 회상해봅니다. 시골의 조용한 무의 무탁하셨던 할머니들을 모시고 사는 두메꽃 양로원 공동체가 있는데 하루는 이곳에 어느 치매 할머니와 그의 따님인 듯한 분이 눈물을 흘리며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탑승한 택시의 앞 좌석을 꼭 잡고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앞세우셨고 이에 택시 운전자는 다시 환속을 하여 가족을 위한 생계를 이어야 하는 생각과 함께 안절 부절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연인즉, 며칠전까지 이 할머니께서 생활하였던 치매 센터에서도 더 이상 구제불능이라며 내침을 당하셨기에 적지 않은 자녀중 그나마 친정 어머니의 안위를 걱정하여 그 딸이 시간을 할애하여 맹목적으로 이곳에 어머니를 전가(?)하고자 온 것이고 양로원측에서는 연고자가 있는 노인을 모실 수 없다 하고 있었기에 여인은 눈물로써 계속 하소연을 하는 형국이었습니다.

 

평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를 갖고 있던 나는 이때에 갑자기 공명심을 앞세우고는 기사 아저씨, 걱정 마세요! 하고는 그녀에게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 보세요! 우리가 할일이 없어 이 반경 1.5키로 되는 넓은 곳에서 이 할머니들을 모셔야 하는지 아십니까? 이곳이 부모를 그냥 떨구고 가면 되는 곳인지 착각하시는 모양인데 정신들 차리세요!"

 

그는 계속하여 구경하다가 박수까지 치시는 그곳 할머니들의 반응에 우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아무말도 못하고 계속 눈물을 흘리며 어디론가 사라졌고 무엇보다 그는 당시 그 할머니가 또다시 자녀들에게 버림받지 않았슴에 안도를 하였던 일화였습니다.

 

사람들이 다 그같지 않아 당시의 자매는 왜? 이런 사연을 사전 통지 받았을 때 지도 신부님과 상의를 안하였는지 한심해 보였고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가운데 한편으론 그런 똑똑하였던 나는 몇개월만에 신부님과 마찰을 빚고는 세상으로 돌아와 있으며 동정녀인 이 자매는 수년간의 한결같은 봉사의 덕으로 현재 이곳의 원장으로 역임중에 있기도 합니다.

 

현재 저는 온갖 화려한 이야기들로 때때로 이곳의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구나!란 자책감에 휩쌓였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글을 올리신 자매님의 진솔하고도 애절한 사연에 작은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방법을 몰라 저역시 일지기 청상 과부로서 33년간 노점상을 운영하시다 지금은 근처에 홀로 기거하시는 어머니를 가진 못난 아들이기도 합니다.

 

아마 조용하고도 타고난 보호본능을 가진 여성에 반하여 제가 남자이기에 어머니의 가슴을 자매님보다 더 아프게 해드렸을 수 있기에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으로 글을 이으며 어머니를 가까이서 더욱 아름답게 모시고자 하는 그 의지가 이루이지길 바랄 뿐입니다.

 

어제의 미사중에 저는 또하나의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아마 주님께서 고통을 나누면 반감되지만 사랑은 나누면 두배가 됨을 몸소 인도하여 주시기에 좋은 결과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동안 온갖 화려한 수식어로 저는 미사는 완전한 기도라는 주변 성직자들의 이야기를 퍼 날랐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이시대의 초라한 가장의 한사람으로써 여전히 우물가의 개구리처럼 지내고 있기도 합니다.

 

미사전에 성수를 아무리 찍고 발라도, 그리고 온갖 에프엠적인 자세를 취하며 제일 먼저 어느 수녀님 권면데로 주님의 제단위에 내 모든것을 봉헌하려 하여도 도무지 봉헌꺼리가 제대로 생각나지 않았고 의무감이 앞섰으며 해치움등으로 일관된 답답한 여정을 이어오고 있었던듯 합니다.

 

그런데 어제도 미사때에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신부님께서 성체를 거양하시며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의 말씀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비록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지만, 하느님께서 아무리 우리 죄가 주홍빛 같을 지라도 용광로 이상의 뜨거운 성령의 은총으로써 그것을 정화시켜 주시고 수련시켜 주시고자 다시 세상에 보내주심을 나름대로 믿고 있지만 도무지 내가 아무리 노력하려 하여도 안되는 사연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내가 제대위에 그것들을 쌓아 올릴때 그것을 다시 하느님꼐서 축성하길 원하시고 그 축성된 살과 피로써 다시 우리의 부족한 몸을 재충전 받길 원하고 계심이었던 것입니다.

 

자매님도 이 원리를 받들어 미사에 참례하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등으로 범한 죄들을 하느님께서 오늘도 끊임없는 침묵과 희생등으로 거룩하게 변모시켜 주시고 다시 그것을 믿는 것보다도, 보는 것보다도, 아예 먹게 만드시는 이 엄청난 진리앞에서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문제는 제가 결과적으로 그것을 온전히 봉헌한 적이 한번도 없없슴이었던 것입니다. 사전 준비가 소홀하였다는 이야기지요.

 

자매님도 정결, 청빈, 순명의 갈망을 가지고 있기에 이러한 우리의 몸과 피를 정결하게 순환시켜주시는 미사의 엄숙한 진리앞에서 이제 그 모든 것이 전화 위복으로 세상속의 어머니를 다시 성모님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시간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예루살렘에는 예수 무덤 성당이 오늘도 우리를 말없이 바라보기도 할 것입니다. 어머니께 이 사연을 다시 차근 차근 설명해 주실 수 있도록 지금의 그 맘을 주님의 제대위에 쌓아 올리십시오.

 

그리고 어머니께도 미사를 우리가 예배로써 올릴 수 있으면 그것이 금상 첨화인점을 설명해 주십시오.

 

때때로 인생은 외로운 순례자의 길이기에 어머니도 자매님도 그리고 저도 다수의 이웃도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상처를 받으면 홀로 조용히 머물고 싶어하는것이 순리일것입니다.

 

하지만 두사람 모두가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가 답습한 실수처럼 주님을 도외시하는 봉헌은 주님을 왕으로 모시기는 커녕 종으로 부리려 하기 쉽상이기 때문일것입니다.

 

더불어 생활 성서사에서 보급하는 클래식 선율과 함께하는 기도 시디(3매)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시디에는 66가지 기도가 새아침 클래식 선율과 함께 고운 수녀님인듯한 분의 음성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성이 날 때, 이웃의 평가가 두려울 때, 남편이 미울 때, 시어머니가 미울 때, 하루를 시작할 때 등등 무수히 많은 은총등이 별빛처럼 쏟아지기도 합니다.

 

반면 인간이란게 그 자아로는 도무지 게으름, 불안, 교만 심리에서조차 자유로울 수 없기에 저의 경우는 이로 인하여 마음의 평화를 얻고 있으나 똑똑하여짐의 병고를 10년 가까이 앓아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성체성사로 하여금 시간 문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비록 성체 성사를 성사로 받아들일 기력조차 혼미해져 있지만, 그래서 미사 입당시 이제는 내 자신부터 주님 보시기 좋도록 다시 추스리려 하고 있지만 주님은 틀림없이 복받쳐 오르는 감동으로써 우리를 반기실 것입니다.

 

봉헌이 잘되면 우리는 미사중에 어머니를 위하여도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할 것입니다. 아니, 주님의 희생과 그 사랑을 기억하는 성사의 신비가운데 마냥 성화되어가는 행복감에 다시 어머니와 축제의 한마당을 손잡고 걸으며 성부께 더욱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미사를 과학적으로 먼저 보려는것이 아닌, 참례의 중요한 일환으로 나의 모든 희로애락을 보다 성심껏 제대위에 쌓아놓으려 할 때 주님께서 그것을 또다시 정화하고 변모시켜 주실 것이고 일지기 보아왔던 미사 전,후의 주님과 즐겨 대화하고 그것을 몸소 실천할 수 있는 벗들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저 무색 무취의 물같은 부부 사랑일지라도 다만 그것을 성심껏 봉헌함으로써 아무것도 바랄 것 없는 아쉬움 없는 그 순간을 위하여 미리 땡겨서 감사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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