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위동성당 게시판

신유박해200주년8...정약종의죽음

인쇄

이범석 [simon] 쪽지 캡슐

2000-11-17 ㅣ No.1325

아래 적은 다산 정약용의 형인 성조 정약종(아오스딩)의 순교는 다른 교우들에게

많은 힘을 주었습니다.

 

그는 의금부에서 많은 고문과 매질에도 끄덕없이 신앙을 증거햇습니다.

 

그는 형장으로 끌려가는 수레에서 수레를 끄는 사람에게 목이 마르다고 말합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이를 조롱하고 나무라자 정약종은 사람들에게

"내가 물을 청하는 것은 나의 위대하신 그분의 모범을 본받으려는 것이오"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당시에 형장에 끌려가던 죄인들의 모습을 잠시 적어보겟습니다.

죄인들은 수레에 십자가형태의 나무를 세워 그 나무위에 머리카락을 묶고 두발을

묶어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이 됩니다. 게다가 머리카락에 온몸을 지탱하니

그 고통은 얼마나 클지 짐작이 됩니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인들은 이미 여러번의

고문과 매질로 사지가 으스러지고 살이터진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죄인을 끌고가다가

어느 시점이 되어 내리막길이 나타나면 그 울퉁불퉁한 길에 끌고가던 사람이 소를

매질하여 빨리 달리도록 합니다. 그러면 소는 내리막길을 마구 뛰어가고 수레에 매

달려 있던 사람은 고통으로 실신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흔들림없는 신앙의 뜻을 밝혔습니다.

 

정약종 성조는 형장의 망나니들이 엎드려 목을 대라고 하자

"땅을 보고 죽느니 부끄럼없이 하늘을 보고 죽겠다"라고 말하며 하늘로 얼굴을

향해 누웟습니다. 이 모습을 본 망나니들은 두려워벌벌 떨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두 눈 시퍼렇게 뜨며 죽이라고 쳐

다보는 일이 없었기때문입니다. 그들의 첫번째 칼이 목을 완전히 베지 못 해

반만 끊게 되자 정약종은 일어나서 보란 듯이 성호를 긋고 다시 누워

두번째 칼에 목이 떨어집니다.

 

순교자들의 이러한 당당한 모습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잇습니다.

 

다른 순교자 최필홍은 형장에서 목을 내밀었지만 당시 경험이 없던 망나니는

한번에 자르지 못 하였습니다. 최필홍은 자신의 목에 손을 얹어 피가 흥건한

손을 바라보며 "보배로운 피"라고 외치며 두번째 칼에 목을 떨구었다고 합니다.

 

또한 내포(충청도의 평야지대...)의 사도라고 불리는 단원 이존창(루도비코 공사가)는

여섯번의 칼에 참수당하는데 며칠 후 그의 시체를 찾으러 간 가족들이 그의

머리가 몸에단단히 붙어 있고 목에는 실날같은 흉터만이 남아잇었다고 증언합니다.

결국 이렇나 순교자의 피로 인하여 그의 집안은 끊어졌지만 그의 조카의 손자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과 그의 조카딸의 손자인 김대건 신부님은 우리나라의

최초 방인사제로 기록되는 영광을 얻습니다. 또한 이 두분은 조선의 땀의 순교자와

피의 순교자라는 빛을 얻게 되었습니다.



21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