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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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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규 [marco1998] 쪽지 캡슐

2008-04-12 ㅣ No.6444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 나는 내복을 딱 두 벌만 가지고 입는다. 매일 빨래를 하기 때문에 오늘 벗어서 빨래한 것을 내일 운동하고 입는데 내가 항상 내복을 빨기 때문에 사제관에 있는 주방 아줌마는 내 내복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내복의 수명이 어떻게 다하고 있는지 실제로 잘 모른다. 어디 출장 갈 때 누가 내 가방에 내복을 챙겨 준 적도 없다. 처음부터 내가 그렇게 살았고 또 그렇게 길들여진 탓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이 있어서 가끔 애를 먹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별 불편함을 몰랐다. 한번은 친구 신부와 시내에서 대중탕에 갔을 때였다. 목욕 후에 미리 준비해 간 러닝셔츠를 갈아입는데 셔츠의 목둘레에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전날에 빨래를 할 때는 버리기가 아까워 걸레라도 만든다고 깨끗하게 만든다고 깨끗하게 빤 것을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그냥 다시 챙겨서 가져온 것이었다. “아따, 형님은 궁상 좀 자그마치 떠쇼!” 다 헤어진 내복을 보고 가만히 있을 신부가 아니었다. “사람은 좀 뚫린 구멍이 있어야 해!” 입 다물고 있을 나도 아니었다. 그러자 그 신부가 퉁명스럽게 한마디 더 던졌다. “그 개똥철학 같은 말씀은 그만하쇼!” 내 쪽에서 한마디 더하고 싶었지만 그쯤 해서 그냥 시동을 껐다. 내가 한창 술을 마실 때는 취함의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나름대로 있었다. 즉 간밤에 양말을 빨고 잤으면 덜 취했던 것이고 빨지않고 그냥 잤으면 엔간히 취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술을 마셨을 때는 잠에서 깨어나면 얼른 양말부터 찾아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때 양말이 방 안의 빨랫줄에 얌전하게 널려 있으면 기분이 좋은 것이고,빨지 않고 방바닥 어딘가에 아무렇게나 내던져 있으면 누가 보는 사람이 없어도 그게 그렇게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리 취했어도 나는 내 할 일을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정말 편하게 살기에는 인생은 너무 아름다우며 또 너무 소중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른다. 모르니까 조금만 고생해도 사람이 불행하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오직 한 번민 주어진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정말 보람있게 살아야 한다. 가령 요즘 같은 봄날에 날씨가 좋다고 누군가가 허구헌 날 술이나 마시고 낮잠만 잔다면 그 친구는 참으로 별 볼일 없는 친구다. 낮잠만 자기에는 너무 짧은 것이다. 땅도 좀 파서 씨도 뿌리며 겨우내 쌓인 먼지도 털면서 대청소도 해야 한다. 그런데 인생은 봄날보다도 더 멋지고 소중한 것이다. 나는 또 등산을 좋아한다. 그것은 내 청소년 시절에 받은 여러 가지 아픈 상처 때문이다. 그 시절에 나에게는 오직 하느님과 산밖에 없었다. 많은 친구들이 내 처지를 몰랐고 또 내 얘기를 해도 그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듣고 이해하기에는 그들과 내 삶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런데 산과 상처 난 내 아픔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줬다. 어떤 스승도 나에게 줄 수 없는 삶의 지혜와 깨달음을 주었다. 방황하며 몸부림쳤던 청소년기는 절대로 헛된 세월이 아니었다. 하느님께선 필요 없는 아픔을 결코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으신다. 한번은 어떤 신부님이 산을 좋아하는 나를 보고는 “내려올 텐데 뭐 하러 올라가는가?” 하셨다. 그런데 사람은 땀 흘려 고생해 봐야 세상 안에 감춰진 보물을 캐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세상이 주는 깨달음은 고통과 눈물이 아니면 만날 수 없다. 정상에 올라 사방을 내려다볼 때의 그 감동을 밑에서는 잘 모른다. 뿐만 아니라 깨달음을 얻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 감동은 고생하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고생 속으로 들어가 봐야 비로소 세상이 보이고 인생이 보인다. 여러 가지 애매한 일로 고통받는 분들이 많이 있다. 신앙으로도 어떻게 답변을 다 드릴 수 없는 아픈 사연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 그러나 깨달음의 지혜만 있다면 눈물 속에 있는 축복 때문에 울면서도 기쁘게 되고 아픔 속에 있는 은혜 때문에 고통 속에서도 즐겁게 된다. 하느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가 결코 편하게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좀 고생스러워도 당신이 감추신 보물을 우리가 손수 캐내기를 원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은 것이다.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소록도에서온 편지)중에서 -
      - 강길웅 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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