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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人을 위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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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기 [p.b.hong] 쪽지 캡슐

2008-04-15 ㅣ No.6445

비좁은 골목길을 질주하는 자동차, 삐쭉삐쭉 튀어나온 간판, 울퉁불퉁하고 비좁은 보도, 높다란 계단….

허겁지겁 주택을 짓고 도로를 뚫다 보니 우리 도시는 노인들을 배려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힘없고 민첩성이 떨어지는 노인들에게 거리는 냉혹하고 비정하다. 그렇다고 집 안이 안전한 것은 아니다. 노인의 안전사고 비율이 가장 높은 장소는 바로 주택 내부이다. 한국소비자원이 노인층의 안전사고를 조사한 결과, 전체 사고의 57.2%가 주택에서 발생했다.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욕실이나 문지방에 넘어져 사고를 당하는 노인들은 부지기수이다.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최근 영국에서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5시간에 한 명의 노인이 낙상(落傷) 사고로 사망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혼자 사는 노인들이 가벼운 부상으로도 도움을 받지 못해 아사(餓死)에 이르는 고독사(孤獨死)라는 단어가 유행할 정도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기는 선진국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진국들이 최근 노인에게 편리한 도시와 주택을 만들기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노인과 장애인에게 편리한 도시 구조를 만들자는 '유니버설 디자인 시티(Universal Design City)', 노인들도 살기 편리한 생애주택 등이 대표적인 정책이다.

'노인을 위한 도시' 만들기가 노인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고령화로 인해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의료비 등 사회복지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노인에게 편리한 도시는 사회복지비를 줄이고 노인의 경제활동을 촉진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선행 투자이다.

고령화 시대에 노인을 위한 시설 못지않게 중요한 게 노인과 젊은 층이 함께 사는 '에이지 믹스(Age Mix)'이다. 고령화 대국 일본에서는 겨울만 되면 눈으로 인해 수백 명의 노인 사상자가 발생한다. 노인들이 주로 사는 산간지역에서는 지붕에 쌓인 눈을 제때 치우지 못해 주택이 붕괴되는 사고가 빈발한다. 그 지역에 노인들을 대신해 눈을 치울 수 있는 젊은 층이 있다면 쉽게 막을 수 있는 비극이다. 일본 교외 신도시지역의 경우, 노인 인구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취학연령 어린이가 감소해 학교가 폐쇄되고, 학교가 줄다 보니 젊은 부부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활기 없고 범죄의 표적이 되는 '올드타운'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위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들은 자녀 의료비 지원 등 유인책으로 젊은 부부 유치에 나서고 있다.

노인과 젊은 층이 서로 돕고 사는 주택도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에서 각광받는 '다세대 공생형 주택(Collective House)'은 한 지붕 아래 노인과 젊은이 등 다양한 연령대가 독립된 공간에 살면서 식당, 거실 등을 함께 이용하는 주택이다. 노인들은 이웃을 만들어 죽음보다도 더 고통스럽다는 외로움을 해결하고, 맞벌이 부부는 노인들의 도움으로 육아 걱정을 덜 수 있다.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한국은 수도권에서만 10개의 신도시가 건설 중이어서 노인을 위한 도시·주택을 만들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추진 단계에서부터 노인과 젊은 층이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과 공간을 배치한다면 추가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고 고령화 시대를 대비할 수 있다. 건물을 더 멋있게 짓자는 '디자인 시티' 못지않게 '노인에게 편안한 도시'가 국가 경쟁력인 시대이다.

                                                                                                                '와플레터(WapleLetter)'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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