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이 세상에 소풍 온 사람아

인쇄

지학남 [obbji] 쪽지 캡슐

2005-03-19 ㅣ No.3944



이 세상에 소풍 온 사람아 누구나 소풍을 떠나기 전날 밤에 밤 하늘을 보며 잠 못 이뤘던 시절을 기억할 것입니다. "별님, 밤새 반짝반짝 눈을 뜨고 계세요. 그래야 내일 아침에 해님이 뜨고, 우리들 소풍을 떠날 수 있어요. 별님, 두 눈 감고 있으면 정말 안 돼요?" 별님이 잠들지 않고 꼬박 밤을 새운 덕에 소풍가는 날은 해님도 함께 떠나는 즐거운 날입니다. 동무들과 손잡고 떠나는 소풍길은 즐거움의 길, 가벼움의 길, 넉넉함의 길입니다. 이것저것 가방에 가득 담아 자기만 먹고 즐기는 길이 아닙니다. 이른 아침 엄마가 싸주신 김밥, 찐 계란, 사이다 한 병, 그리고 선생님께 드릴 답배 한 갑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혼자 가는 길은 외롭고 쓸쓸하지만 동무들과 함께 걷는 소풍길은 신나는 길입니다. 비록 김밥 한 덩이, 사이다 한 병이지만, 친구들과 선생님과 나누어 먹는 소풍길은 넉넉한 길입니다. 무엇을 이루러 가는 길이 아니니 소풍길은 '무소유'의 길입니다. 소풍길은 마음을 비우고 손에 쥔 것을 놓고 가는 길이기에 가벼운 길입니다. 소풍길은 무엇보다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길입니다. 소나무 숲을 지나고 개울을 건너고, 산새소리 들으며 사람과 자연이 어깨동무하는 길입니다. 소풍길은 사람만의 길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함께 가는 길입니다. 사람이 자연의 품에 안기는 길이요, 자연이 사람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숲 속 넓은 공터에 모여 앉아 노래자랑을 하고 보물찾기를 하면 주변의 굴참나무도, 다람쥐도, 너구리도 함께 노래하고, 즐거워합니다.
소풍오신 예수 2천 년 전에 아기 예수는 이 세상에 왜 오셨을까? 하늘에서 이 세상으로 소풍을 오신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 잠시 저 세상으로 소풍 좀 다녀오겠습니다." "즐겁고 신나는 소풍이 되거라." 그렇습니다. 아기 예수는 서로 사랑하며 재미있게 소풍과 같은 삶을 사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마리아가 노래하듯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가 떠나는 소풍길에는 높은 사람, 낮은 사람, 가난한 사람, 교만한 사람, 권세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모두가 같은 사람, 같은 동무들, 어깨 걸고 놀수 있는 친구들만 있습니다. 바로 마리아의 노래처럼 아기 예수는 높고 낮은, 지배하고 지배받는, 부유하고 빈한 모든 것을 흩으시고 모든 사람과 그 관계를 친구의 관계, 동등하고 평등한 관계로 만드셔서 정말 인생을 소풍길처럼 재미있고 멋있게 살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와보니 소풍길이 아닙니다. 서로 다투고 논쟁하고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서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 하고 죄인들을 잡아갑니다. 이건 소풍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예수까지 잡아죽이려고 합니다. 예수께서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 사람들아, 인생은 소풍놀이란 말이네.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나. 서로 등 두드려주고 어깨 걸고 손 마주잡고 서로 평등한 동무요 친구로 만나 즐겁게 소풍놀이 하는 것이 하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삶이란 말이야. 그래서 나도 이 세상에 소풍놀이 온 것이네. 그러니 재물이 어떻고, 땅이 어떻고, 권세가 어떻고, 종교가 어떻고 서로 다투며 싸우지 말고 즐겁고 멋지게 놀잔 말이네. 인생은 소풍이라네."

이 말씀을 전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종교 지도자들과 바리사이들과 대제사장들과 로마 위정자들은 다릅니다. "뭐 인생이 소풍놀이라고? 그렇게 심한 말을, 인생은 놀이가 아니라 힘있는 사람들이 지배하며 그 권세를 누리며 사는 것이 인생이란 말이야. 그런데 네가 감히 인생을 농락하는구나. 그래, 인생이 무엇인지 한번 그 맛을 보여주지."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그들의 종교적 힘과 정치적 힘을 앞세워 십자가에 달아 죽였던 것입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소풍길을 떠나는데, 어른들이 그것은 애들 장난이라고 방해하고 훼방놓는 것과 같습니다. 전도서를 쓴 저자는 우리에게 삶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멋지게 잘 사는 것은 하늘 아래서 수고한 보람으로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만 바라시니,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라." 마치 우리가 어릴 적 소풍놀이하며 먹고 마시며 즐기던 일이 인생이라 하십니다. 우리는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친구들과 가족들과 소꿉놀이하듯 살다가도 너무 심각한 나머지 절망하기도 하고 남의 것을 탓하기도 하며 서로 싸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소풍정신은 하느님 마음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그곳에 들어가는 것이 이미 예고된 죽음의 입성인 것을 알았지만, 나귀 타고 춤을 추며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은 호산나 호산나 연호했고 예수는 나귀에 타고 춤을 추었습니다. 이 광경은 소풍 온 사람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일 죽을 것을 알고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의 현실에 집착하지 않고 어릴 적 동무들과 욕심 없이 즐겁고 여유롭게 놀았던 소풍놀이와 같은 모습입니다. 현실의 도그마에 얽매어 있지 않고 엉성함 속에 따스함이 있고 비어 있음 속에 꽉 차있는 것이 어릴 적 소풍놀이였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소풍 온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품에 있다가 잠시 이 세상에 소풍을 와서 동무들과 흥겹고 멋지게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소풍 온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의 자리에 있다가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소풍 오신 것처럼, 우리들도 소풍 온 마음으로 동무들과 어깨걸고 즐겁게 살다가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갈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온 우리들은 소풍과 같은 삶, 소풍과 같은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소풍과 같은 삶, 소풍과 같은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이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어릴 적 떠났던 소풍길처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무소유의 길, 동무들과 손잡고 떠나는 흥겨움의 길,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설레임의 소풍길을 떠나보시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인이 걸어가야 할 구원의 길입니다. 여기 천상의 시인 천상병 님의 시가 오늘 우리의 복음입니다. 눈을 감고, 가만가만히 우리의 영혼으로 시를 읽어 가세요. 그러면 우리 마음속에 하느님의 마음, 소풍과 같은 여유로움이 찾아올 것입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의 시 '귀천' - ♬ 하늘 위에도 그대의 노래가



40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