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작은터

[순수]3분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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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순 [soonsu1] 쪽지 캡슐

2000-08-16 ㅣ No.6588

 

성당에서 피정을 갔을 때의 일이다. 프로그램 첫머리에 한 수녀님께서 자리에 모인 우리들에게

 

시험지를 나누어 주며 3분 안에 풀라고 하셨다. 받아 보니 맨 위에 "끝까지 다 읽어 보고 문제를

 

푸시오"라고 쓰여 있고 그 밑에 꽤 많은 문제들이 이어졌다. 수녀님을 초시계를 꺼내 "5초, 10초"하며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문제라는 것이 고작 숫자를 쓰라거나, 동그라미를 그리라거나, 이름을 거꾸로 써 보라는 등 피정과는

 

아무 사관이 없을 듯한 것들이었지만 누구 하나 의문을 제기하거나 투덜거리는 사람이 없었다.

 

째깍째깍 초침 소리를 의식하며 모두들 최대한 빠르게 연필을 움직일 뿐이였다.

 

3분이 다 되어갈 무렵 여기저기서 "어머나!"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맨끝 문항을 보는 순간 내 입에

 

서도 절로 "어머나!" 소리가 새어 나왔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끝까지 읽어보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문제를 풀 필요는 없습니다. 시험지에 이름만 쓰십시오."

 

당혹해하는 우리를 보고 수녀님은 말씀하셨다.

 

"시험지 첫머리에 끝까지 다 읽어 보고 풀라고 쓰여 있는데 무엇이 그렇게 급하셨나요?

 

내가 시간을 재고 있고 옆 사람이 열심히 푼다는 이유로 그 문제들을 서둘러 풀었나요?

 

남들이 다 탄다는 이유로 목적지도 모르는 기차에 올라탄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이 "3분 테스트"의 교훈이었다. "왜"라는 질문 없이 그저 바쁘게 움직이는 것, 방향 감각 없이 빠른

 

속도에 휘말리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이다.

 

                                                                                          [시간의 향기 / 윤소영 /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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