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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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1-06-23 ㅣ No.625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다해. 2001. 6. 24)

                                                  제1독서 : 이사 49, 1 ∼ 6

                                                  제2독서 : 사도 13, 22∼26

                                                  복   음 : 루가 1, 57∼66. 80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그 기다리던 비가 내렸습니다.  모두가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장마철이 되어 다시 우리는 물난리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잘되고 좋아도 걱정이요, 못되고 어려워도 걱정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종교에서는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삶이 고행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세례자 요한 탄생 축일입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주님은 은혜로우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박해시대 2세기의 가다꼼바 안의 벽화에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푸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요한은 초대교회 때부터 세례자 요한이란 이름으로 불리었습니다.  이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사제인 즈가리아이고, 어머니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엘리사벳입니다.  나이가 많이 들었는데도 아이를 낳지 못해서 이 부부에게는 아이를 가진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 부부에게 아이가 생깁니다.  사제인 즈가리아가 하느님 앞에서 사제직을 수행하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어 "그는 바로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먼저 와서 사람들을 올바른 생각을 하게 하고 주님을 맞아들일 만한 백성이 되도록 준비시킬 사람으로 요한이라고 하라"고 아이를 가질 것임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즈가리아는 믿지 못하여 결국 벙어리가 됩니다.  이제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어머니 엘리사벳 뿐 아니라 일가친척은 물론 모든 이웃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 주었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여 당신의 백성이 되는 외적 표시로 할례식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할례식을 거행하면서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예식도 함께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름은 그 사람 자체를 나타내는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다른 이와 구별하여 부르기 위한 호칭이 아닙니다.  그들의 이름은 일생동안 그들이 할 사명을 가리키는 일정의 예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름을 아이에게 지어주는 것은 부모의 권리입니다.  그러나 친척들도 이름을 짓는데 함께 할 권리도 있었습니다.  특별한 사명이 부여되지 않았을 때는 보통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 받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엘리사벳의 아들 이름을 즈가리야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이끄심을 받은 엘리사벳은 아들 이름을 요한이라고 주장합니다.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붙이는 순간 그 아버지 즈가리야의 입이 열리고 귀가 트였다고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하고 하느님의 찬미하였음을 오늘 복음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이일을 마음에 새기고 주님의 손길이 그 아기를 보살피고 계신 것이 분명했기에 "이 아기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될까?"하고 말하였다고 복음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이름을 받은 요한은 구약시대의 마지막 예언자로써, 구세주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이로써의 자신의 삶을 충실히 이행하면 살아갑니다.  그는 자신은 구세주가 아니라 구세주의 길을 닦는 이라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우리는 가끔 "인생이 나를 속일지라도..."라는 말을 합니다.  또 자식이 없는 것이 상팔자라고 합니다.  그래도 아이의 재롱을 보면 자식이 있는 사람이 부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태어나고 싶은 곳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 생명이 태어나면 모두가 즐거워합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가 장차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가지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 예언서에서 "주님께서 태중에 있는 나를 이미 부르셨고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에 이미 이름을 지어 주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께로부터 선택된 이들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선택되었듯이 우리는 우리의 삶 안에서 선택되어 파견된 이들입니다.  우리가 선택되고 파견된 이로써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일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자신의 일에 충실하였듯이 말입니다.  이미 선택된 이들로써 우리의 일에 충실할 때 세례자 요한처럼 하느님의 일을 행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에 충실하고 우리가 하는 일에 충실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하느님의 사랑을 다른 이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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