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일반 게시판
이름에 대한 단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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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난 내 이름이 정말 싫었다. 왠지 촌스럽고, 너무 흔하고....하옇튼 싫었다. 좀 더 예쁘고 우아하고 세련된 이름을 가지고 싶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이름 타령을 하기엔 힘겨운 세상살이가 장난이 아니었던 시절
스무 살이나 되어서야 난 아주 고상하고도 예쁘장한 이름-세례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입속으로 가만히 불러봐도, 글씨로 적어봐도 내 깐에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이름을 다시는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난 이름때문에라도 천주교 신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자식을 낳아 이름을 지어주고 세례명을 지어 주면서 이름이란 그저 단순한 부르기 위한 도구가 아님을 어렴풋이 깨달아 가고 있다. 자식에 대한 기대와 희망과 사랑을 담아 세상에 단 하나의 이름으로 지어주는 것임을.
그리고 사람들의 이름을 알고 불러 준다는 것이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음을.
게시판에서도 낯 익은 이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실제로 아무 관계가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글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알게 된 이들이다. 때로는 그들의 이름이 오랫동안 안 보일 때도 있는데, 은근히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나타나면 공연히 반갑다. 어떻게 보면 게시판이란 곳이 익명의 공간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또 하나의 사이버 공동체임에 다름아니라고 여겨진다. 이름 석 자로 만나 이름으로만 대화하는 우리들을 주님께선 틀림없이 보고계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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